신약 성경의 복음서에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을 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표적(sign)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적 자체보다도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표적 이후에 그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마태, 마가,누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에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자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똑같이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서의 기적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시고, 병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의 표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기적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하면서 병 고침을 받거나 귀신이 쫓겨나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곤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이자 놀라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신앙에 확신이 생기고 역동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사와 이적에 매달리는 신앙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보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표적만을 구하고 집착하면 신앙이 왜곡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2천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는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고, 병에 걸리면 죄를 지은 결과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는 인구가 매우 적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풀어주고 대신 글을 기록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는 꼭 기적이 아니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의술을 통해서 병을 고치면서도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해 지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령하시니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의 세력이 침투해 있다면 달리다굼하고 일어나면서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Author: 참빛
터키 사면식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절은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해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했으니
40여 년 동안 지켜 온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백악관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칠면조 한 마리를 풀어 주는
터키 사면식(turkey pardoning)입니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이,
혹자는트루먼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 행사를 정례화한 사람은
조지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랍니다.
어제도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에 뽑혀 온
터키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2.
해마다
약 4천5백만 마리의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릅니다.
정확한 유래는 설왕설래하지만
아마도 죽어가는 그 많은 터키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백악관에서 한 마리 터키를 (사실은 후보까지 두 마리)
대표해서 살려주게 된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 터키는 특정 농장에서 7월쯤 부화한 새끼들 가운데 응모해서
행사 기간 동안 순하게 있을 우량 터키를 선정합니다.
보통 몸무게가 40파운드를 넘고, 날개 길이가 6피트 이상입니다.
올해의 터키는
우리 지역 근처 모데스토(Modesto) 농장에서 길러졌습니다.
대통령 앞에 앉아 있던 터키가 “정직”이고
후보로 뒤에 있던 터키 이름은
“아베(Abe, 링컨 대통령의 별칭)였습니다.
백악관에서 실시한 트위터 공모에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고,
두 마리 터키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답니다.
사면된 터키들은
해마다 각기 다른 농장으로 옮겨져서 여생을 마감하는데
체중을 너무 불린 나머지 심장마비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하면서 덕담을 하거나 조크를 합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웠는지,
빨리 커 버린 딸을 보면서 흐뭇했는지,
아니면 흰색 터키를 보면서 하염없이 늘어난 자신의 흰머리를 생각했는지
다음과 같은 조크를 했답니다:
“터키는 날지 못하지만, 시간은 날아갑니다
(Time flies, even if turkeys don’t).”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아주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 하는지 의미가 혼란스럽다는 식입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들이 했으니 특유의 농담을 하면서
“정직”과 “아베”를 살려 준 것입니다.
4.
초등학생들이 올해의 터키에게
“정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솔직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마을에 가서
한눈을 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정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삶이라는 교훈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verbs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합당이 여기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5.
그나저나
어제 사면을 받은 “아베”와 “정직”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를
감사와 평안 가운데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휴동안 참빛 식구들께 쉼을 주시고
힘차게 새 달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26 이-메일 목회서신)
깔끔하게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 기도회에서는
역대하 27장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함께 읽고
10분 내외로 말씀을 전하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본문 말씀을 모두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4절과 5절까지 있는 찬송가를 불렀고
말씀도 자세히 전했건만 5분이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27장이
단지 아홉 절이었기 때문입니다.
25세에 왕이 되어서
16년 간 남쪽 유다를 다스렸던 “요담”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는 정치를 잘했지만
성전에서 제사장의 일을 자신이 행하다가 그만
나병에 걸려서 남은 인생을 격리된 채 살았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마샤 역시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영토를 확장했는데
에돔을 물리친 후에
에돔에 있는 신상을 갖고 와서 숭배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나중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피난가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아버지 웃시야나 할아버지 아마샤에 못지 않게
요담 역시 성전을 증축하고, 영토까지 확장하는 등
나름대로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의 신앙과 통치가 끝까지 어긋나지도 않았습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역대하 27:6)
So Jotham became mighty, because he ordered his ways before the Lord his God. (2Chronicles 27:6)
2.
요담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보기좋게 정돈된 인생을 사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길게 나열해서 보여주는 지루한 인생보다
아홉 구절로 단순하게 정리된
요약판 인생도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4S로 표현하곤 합니다:
silent, simple, strong, sacrificial.
그렇습니다.
이제 한달여 남은 올 한해 우리의 삶이
단순하고(simple) 강력하게(strong) 마무리되길 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조용함(silent)과
이웃을 향한 희생(sacrificial)이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추수감사절을 앞 둔 참빛 식구들의 삶이
주님 앞에서 깔끔하게 정돈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9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다음 뉴스에 들어가 보니
한국의 한 개그맨이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로 인해서
모든 활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인기를 많이 얻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느 날 갑자기 물거품처럼 인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무척 힘들어했답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기라는 것이 아침 안개와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기를 얻어서 꼭데기에 올라갈수록
내려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더 올라갈 데가 없으니 결국 내려갈 일만 눈앞에 떠오르겠지요.
기사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하는
다른 인기 연예인들도 소개했습니다.
TV 앞에서는 활짝 웃고 있지만
뒤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2.
현대인들은 염려와 근심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깊은 어둠이 계속될 것 같은 불안감,
일이 너무 잘 풀려도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염려,
갑자기 닥쳐오는 인생의 폭풍 등등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유인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쓸데없는 경쟁의식도
불안과 초조함에 한몫을 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염려는 우리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dwelling care).
염려는 우리를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corroding care).
그래서 염려가 신앙의 적이라고 했습니다.
염려가 생기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염려를 일으킨 바로 그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길,
염려가 생기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부르시길 제안했습니다.
성경에
염려와 근심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 모두 명령입니다.
매우 강력한 명령입니다.
3.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인기 연예인들의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 안에 있는 염려와 불안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마음과 삶을 휘저어 놓습니다.
솔직히 많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기도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베드로전서 5:7)
Casting all your anxieties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1 Peter 5:7)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꼭 붙들어 주시고
삶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2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일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접경지역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멀리서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시니, 제사장에게 뛰어가는 동안에 나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분명히 열 명이 병에서 고침을 받았는데 예수님께 나와서 감사한 사람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은근히 섭섭하셨는지 “나머지 아홉은 어디 갔느냐?”고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열 명 가운데 한 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열 가지 은혜를 주시지만, 진작에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하는 경우는 한 번뿐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이 아홉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은 달랑 하나일 때도 많습니다. 이렇듯 감사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에서 감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리를 쫓아 살게 하셨습니다.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인데 이웃의 도움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염려가 사라집니다. 이처럼 감사는 하나님은 물론 이웃과 우리 자신을 향합니다.
감사의 유익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가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을 줍니다. 감사에 익숙한 사람은 활력이 넘치고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알코올이나 약물과 같은 중독에 빠질 위험도 낮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잠이 쉬들고 숙면을 취합니다.
우리 안에 감사성향이 선천적으로 50% 차지하고 있답니다. 절반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니 앞에서 소개한 문둥병자의 예보다 감사하면서 살 확률이 높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사도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함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인간의 심리와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으로 감사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실제로 100명의 대학생을 세 그룹으로 나눠서 첫번째 그룹은 일주일 동안 감사일기를 쓰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일주일 동안 화나게 한 일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나머지 세 번째 그룹은 아무 일이나 일기장에 기록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 감사 일기를 쓴 학생들이 마음과 생각이 긍정적이었고 학업 성취의욕도 훨씬 높았습니다.
감사일기 쓰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감사일기는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좋은 아내, 좋은 가족”처럼 제목만 나열하면 감사일기가 무미건조해 지고 멀지 않아 일기장을 덮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어서 감사했다” 또는 “밖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가 달려와서 허그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의 이유를 찾아서 일기장에 적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섯 가지를 찾기가 쉽지 않고, 매일 같이 비슷한 내용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감사 제목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던 일들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일기장 밖으로 나가서 하루에 한 번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 전도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감사가 습관이 되고, 성품에 녹아들어서 인격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추수감사절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왔듯이 적어도 일 년 중 마지막 한 달을 감사의 달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마가복음 3 : 감사하는 마음
어느덧 11월도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일 년 중에 11월은 어찌 보면 꽤 어중간해 보입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에 접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한 해가 다 갔다는 생각이 들고, 연말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세일 광고들이 우체통을 가득 채우고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한 해가 지나갔음을 알립니다. 그러다 보니 11월은 빠르게 때로는 없는 것처럼 훌쩍 지나갑니다.
저는 11월을 맞을 때마다, “감사”를 떠올립니다. 물론 우리 삶에 늘 감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감사보다 불평, 염려,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믿음으로 부정적인 마음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그런 마음마저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려 하지만 생각처럼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 그대로 받은 복을 세어 보면서 11월을 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올해 우리 교회를 돌아보니, 감사할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게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젊은이들도 힘껏 교회를 섬겨 줍니다. 물심양면으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도 태중에 생겼고 또 엊그제는 이재웅/조선미 가족에 승호가 태어났습니다. 여전히 빈자리가 있고 떠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채워가십니다. 찬양대와 찬양팀의 섬김, 여선교회와 남선교회의 꾸준한 섬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선생님들의 은밀한 섬김, 권사님들과 임원들의 기도와 섬김 등 감사할 뿐입니다.
남선교회 기도회, 참빛 보이스, 부부 세미나, 네팔 선교 음악회, 강찬 전도사 초청 등 올해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들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을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반면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 해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찬양대와 남성 중창단, 주일학교가 정성껏 추수감사 주일과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선교회에서도 예년과 같이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하시겠지요.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님들 각자의 삶도 한 해의 끝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늘 만족스러울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몸이 예전만 못하십니다. 몸이 약해지시니 마음도 때로는 신앙도 내려앉습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연약해지신 몸과 마음을 붙드시고 하늘의 평화를 깊이 누리셔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겹습니다. 이기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어려움을 훌쩍 뛰어넘어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힘차게 그리고 꿋꿋하게 부르심의 목적을 쫓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여정의 한가운데 감사가 임할 때 멋지고 근사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 속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밭의 네 가지는 우리의 마음을 표시합니다. 우리 안에 네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그중에 좋은 밭의 비중이 커져서 열매맺는 신앙과 삶이 되길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2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매우 빠른 진행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 마가복음의 특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갈릴리 지역은 물론 갈릴리 호숫가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과 같은 이방 지역까지 포함한 순회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에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까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지붕을 뚫고 구멍을 내서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 앞으로 내리는 방식입니다.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릴 생각을 한 것도 파격이고, 지붕이 뚫어지는 동안 소음과 먼지를 참으신 예수님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더 파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와서 지붕에서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5절). 병을 고치시기에 앞서, 죄를 사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 파격입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서기관들이 하나님도 아닌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신성모독 죄를 지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십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얻으라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쉬운지 물으십니다.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죄를 사하는 것이나, 일어나서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막1:1). 곧이어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향해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자리를 가지고 모든 사람 앞을 지나갑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하고 시기하는 서기관(당시의 엘리트이며 성경학자)들과 같은 적대세력이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보았고, 자신들의 지식과 신앙 전통에 매여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지붕을 뚫어서 중풍 병자를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과 대조적입니다.
믿음은 예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지붕을 뚫는 용기와 파격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일으키실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죄 사함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믿고 있습니다. 다음 한 주간 죄를 사하는 권세와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서 힘차게 걸어갑시다. -河-
마가복음 1 : 예수님의 하루
올해 속회공과는 마가복음입니다. 속회를 한 달에 한 번 모이다 보니 성경공부가 이어지기 힘들고, 앞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의 남은 주일에 속회에서 공부했던 마가복음 본문을 갖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속회에 참석하셨던 분들에게는 복습과 심화학습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속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님들은 뒤늦게나마 속회공부를 하실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마가복음을 마태와 누가복음과 함께 공관복음(共觀福音,Synoptic Gospels)이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내용과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부르는데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님을 로고스(말씀)로 설명하는 등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갈릴리에서의 순환사역과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크게 구분합니다.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직진사역도 물론 포함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간략하고 빠른 속도로 전합니다. 마태나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는 선포와 함께 복음서가 시작됩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서 시험받으신 사건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가 되면 메시아가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알리시면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일과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꽉 찬 일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본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기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는 데만 주력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들도 굴복하는 “권위 있는 새 교훈” (막1:27) 이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는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병자들을 밤늦도록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쁜 일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소화하신 비결이자 힘이었습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분주한 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쁠수록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조용한 시간을 갖고 거기서 힘과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河-
준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월요일에 비가 오더니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물론 샌프란의 겨울철 날씨가 된 것인데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고,
써머타임까지 해제되면서 밤이 빨리 오니
이상하게도 더 추워지는 듯합니다.
새벽에 교회가 무척 춥습니다.
미처 히터를 준비하지 못해서
오늘 처음으로 히터를 틀었더니
기름 냄새가 올라옵니다.
문을 활짝 열고
미리 준비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뒤늦게 히터를 돌려서 냄새를 없앴습니다.
2.
에베소서 마지막 시간에 배운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생각납니다.
서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패, 평화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로마군대를 목격한 요세푸스라는 유대인 역사가는
로마 군대가 연병장에 모여서 열심히 연습하고
“우리는 준비되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로마 군대의 대단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역시
바울이
당시 로마 군인들을 생각하면서
도입한 개념일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기쁜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먼저 감사합니다.
3.
날씨가 추우니 환절기 감기가 염려됩니다.
권사님들과 어르신들,
갓 태어난 승호(이재웅/조선미 가족)부터 아이들도 건강하길 기도합니다.
행여나
독감 예방주사(flue shot)를 아직 맞지 않으셨으면
서둘러 감기 예방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지혜롭게
매사에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5 이-메일 목회서신)
스스로 겸비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에는 역대하 12장을 읽었습니다.
“백성을 번성하게 하다”는 뜻을 가진 르호보암 왕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의 후광과
남과 북으로 갈라졌지만,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나라를 견고히 세워갑니다.
17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르호보암으로서는
절정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신앙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앙은
아래 있을 때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
힘들 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찾게 되고 의지합니다.
그런데 위에 올라가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귀찮아지고, 하나님보다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집니다.
좋은 것은 쉽게 전파되지 않지만
나쁜 것은 전염속도가 빠릅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 말씀을 떠나자
백성들도 모두 르호보암을 따라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역대하 12:1)
When the rule of Rehoboam was established and he was strong,
he abandoned the law of the Lord, and all Israel with him. (2 Chron 12:1)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해 지고 세력이 강해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떠나면
즉시 심판이 찾아왔습니다.
르호보암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이집트의 왕 시삭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르호보암과 신하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와서 엎드립니다.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대하 12:6)
Then the princes of Israel and the king humbled themselves and said,
“The Lord is righteous.”(2 Chron 12:6)
“스스로 겸비하여”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회개했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 하나님을 버렸더니 곧 바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서운 분이고, 공의로운 분임을 고백합니다.
르호보암의 겸손과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음이 꽤 약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
“겸손과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고,
겸비하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일일 잘 되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자신 마음대로 사람들이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즉 하나님이 필요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평소에 준비하고 훈련해 놓치 않으면
정작 높아졌을 때
르호보암과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고
이웃들을 배려하면서 빛의 자녀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주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한 마음과 태도를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29 이-메일 목회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