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야곱 (7)

야곱의 결혼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우물가에서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납니다. 어쩌면 야곱에게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의 약속대로 야곱과 함께하시고 인도하신 결과였기에 매우 감사했을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도 우물가로 와서 야곱을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야곱은 자초지종을 모두 외삼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14절)는 외삼촌의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외삼촌과 야곱이 유전적으로 뼈와 살이 같다는 뜻이니 외삼촌 역시 야곱의 성품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하란으로 피신 온 야곱이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것입니다.

 

외삼촌 집에 무사히 도착한 것 만도 감사하고 기뻤기에 야곱은 한 달 동안 열심히 일을 도왔을 것입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밥값을 해야 합니다. 야곱은 빈둥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태중에서 형 에서와 싸웠듯이 목적 지향적이고 전투적인 면이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 식구가 한 명 늘어나는 것은 가장에게 큰 부담이었으니 야곱은 외삼촌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 달을 살았을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에게는 딸이 둘이 있었습니다. 첫째 레아는 시력이 약합니다.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가 불확실한데, 라헬보다 레아의 외모가 뛰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레아는 야곱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우물가에서 처음 만났던 라헬이 야곱 마음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라헬은 곱고 아름다웠습니다.

 

외삼촌이 품삯 이야기를 하니 야곱은 예상외의 요구를 합니다. 우물가에서 처음 만났던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아내로 달라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7년 동안 공짜로 일해서 신랑이 신붓집에 지불하는 선물로 대신하겠답니다.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서 일했던 7년이 며칠처럼 느껴질 정도로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외삼촌 집에 가서 며칠만 있다 오라고 했으니 이제 7년이 지나면 라헬과 결혼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작정이었습니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하고 저녁이 되니 외삼촌 라반은 라헬이 아닌 큰딸 레아를 야곱에게 들여보냈습니다. 신부 지참금에 해당하는 그의 종 실바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을 속인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사건과 겹칩니다. 큰형 에서 대신 둘째 야곱이 아버지께 들어갔는데, 외삼촌은 큰딸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따집니다. 속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인 것에 대한 댓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외삼촌의 새로운 제안대로, 야곱은 7일 후에 라헬과 그의 여종 빌하를 아내로 얻고 7년을 더 일하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야곱에게는 두 명의 부인과 두 명의 여종이 생겼습니다. 야곱의 후손이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河-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율법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집약된다고 하셨습니다(막 12:29-32).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기도할 때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도

곁에 두고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점검할 말씀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을 훈련해서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된다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셈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신앙의 본질은 없습니다.

 

2.

C S 루이스는

<네 가지 사랑>이라는 책에서

“필요의 사랑”과 “선물의 사랑”을 구분합니다.

 

필요의 사랑은

배가 고픈 아기가 엄마 품을 찾듯이

필요에 의해서 성립되는 사랑입니다.

 

선물의 사랑은

선의로 베푸는 호의이고 말 그대로 선물(gift)입니다.

필요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 중심이라면

선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람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선물의 사랑에 가깝습니다.

 

C S 루이스는

두 가지 사랑의 경중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필요의 사랑을 이기심의 발로라고 단정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필요할 때 누군가의 사랑을 요청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우리 역시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선물의 사랑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이웃에게 공짜로 나눠줄 때

필요의 사랑과 선물의 사랑이 통합되고 완성됩니다.

 

3.

우리 모두에게 두 가지 사랑이 모두 요청됩니다.

 

대부분 사람이 사랑을 받기만 할 뿐

주는데 인색하다면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주는 사랑만 진짜라고 주장한다면

피조물인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랑도 못 해보고 지치고 말 것입니다.

기운이 쏙- 빠진 사람들만 세상에 넘치겠지요.

 

필요할 때는

망설임 없이 하나님을 찾고, 이웃을 찾아갑시다.

우리를 필요로하는 이웃이 생길 때는

힘을 다해서 사랑의 선물을 전달합시다.

 

미리 맛보는 천국,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6. 22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야곱 (6)

우물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길을 떠나서 외삼촌이 있는 하란에 도착했습니다.  개역 성경은 야곱이 동방 사람의 땅에 도착한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일어서서 길을 떠나는 행동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야곱이 그의 발로 서서, 동쪽에 사는 사람의 땅을 향해서 길을 떠났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고 반드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으니, 야곱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이 사는 하란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야곱도 벧엘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신앙과 삶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란에 도착하니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무리 세 떼가 누워있습니다. 목자들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는 우물입니다. 큰 돌로 덮여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아버지 이삭의 부인을 얻어 오라고 아끼는 종 엘리에셀을 하란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여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은 낙타 열 마리도 선물로 보냈습니다. 하란에 도착한 엘리에셀도 우물가로 가는데, 하나님께서 장차 이삭의 아내요 야곱의 어머니가 될 리브가를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유모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왔고 이삭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야곱에게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단지 야곱은 빈손일 뿐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채 우물가에서 하란의 목자들을 만났습니다. 야곱이 물으니, 하란에서 왔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의 딸 라헬이 양을 끌고 온다고 대답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구체적인 음성을 듣지 못했지만, 야곱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돕고 계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드디어 라헬이 양 떼를 몰고 옵니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야곱이 우물을 덮고 있던 큰 돌을 단번에 옮기고 양에게 물을 줍니다. 얼마나 반가웠으면 그렇게 했을까요? 또한 살아남기 위한 처세였을 수도 있습니다.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소리내서 웁니다. 400마일이 넘는 길을 왔습니다. 외삼촌 라반을 만날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의 딸 라헬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동안의 힘듦과 안도의 울음이었을 것입니다.

 

라헬이 달려가서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 야곱이 왔다고 아버지 라반에게 알립니다. 라반도 달려 나와서 야곱을 맞이하고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야곱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합니다. 야곱이 갖고 온 선물은 없지만 반가운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라반이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라고 말하면서 야곱을 받아줍니다. 야곱에게 거할 곳이 생겼습니다. 살 길이 열렸습니다. -河-

 

유레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말씀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팥죽 한 그릇을 주고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 이삭의 축복까지 가로채면서 형의 원한을 샀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가는 길입니다.

돌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데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꿈을 꿉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주었던

땅에 대한 약속, 후손이 번창할 것이라는 축복,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고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이 모든 일이 성취될 때까지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밤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고

야곱에게 꼭 필요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2.

잠에서 깬 야곱이 탄성을 지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히브리어 본문의 의미를 살려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확실하게 여기 계셨네요. 그런데 내가 그것을 몰랐습니다”

 

왕관에 섞여 있는 순금의 비율을 알아내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고민하던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방법을 알아내고는

“유레카(깨달았다”)를 외치면서

알몸으로 욕탕 밖으로 뛰어나갔다는 사건이 생각납니다.

 

야곱에게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이상의 깨달음이었습니다.

눈이 활짝 열리는 새로운 발견입니다.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자각입니다.

돌베개를 베고 깜깜한 밤을 보내는 야곱에게 임한 선명한 빛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속이면서 축복을 가로챈 야곱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표시였습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야곱을 버리지 않으시겠답니다.

그동안의 막막함, 절망, 경쟁심, 욕심, 힘겨움, 두려움이

두서없이 말끔하게 씻겨 나가는 처음 세례 예식과 같은 사건입니다.

 

3.

야곱은 일어나서 돌베개를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7)

 

하나님을 만나는 깨달음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깨달음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시킵니다.

 

야곱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집이 없는 야곱인데 그의 믿음과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닥다리를 보면서

하늘 문이 열렸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freeway가 개통되었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깨어난 야곱이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들은 말씀을 확장하는 야곱의 상상력이 대단합니다.

꿈처럼 스치듯 지나가는 벧엘의 사건이

외삼촌 집에서의 20년을 버티는 뿌리 경험(root experience)이 됩니다.

 

이번에 함께 나누는 야곱에 관한 말씀이

우리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에게 하나님을 보고

그동안 묵혀 놓았던 고민이 풀어지는 유레카의 순간의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집, 하늘 문으로 승화시키는 깜짝 놀랄 상상력도 발휘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창28:17)

 

 

하나님

꿈을 있는 상상력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6. 15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야곱 (5)

하나님의 집, 벧엘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에서가 공공연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 야곱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에서의 말을 들은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자기 고향인 하란으로 피신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명목상으로 외삼촌 집에 가서 부인을 얻어 오게 하자는 제안입니다. 이삭도 리브가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이삭이 먼 길을 떠나는 야곱을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8:3-4). 아브라함은 물론 창세기 아담과 이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야곱이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서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향합니다. 날이 저무니 길에서 노숙합니다. 돌베개를 베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잠을 청합니다. 야곱에게 의지할 것도 없고 당장 안전하게 거할 집도 없습니다. 외삼촌 집에 도착하는 여정도 염려가 되고 그곳에 가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을 알지 못합니다.

 

야곱이 잠을 자다가 꿈을 꿉니다.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야곱이 쳐다보니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십니다:“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3-15).

 

하나님께서 야곱과 언제나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야곱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야곱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지금 야곱이 누워있는 땅을 그와 자손에게 주실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피난 가는 야곱에게 꼭  필요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땅에 대한 약속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과 겹칩니다.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 야곱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절).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던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도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갖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가는 길을 지켜 주시고 먹을 떡과 옷을 주셔서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땅의 소산으로 십일조를 드려서 그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증명해 보이겠답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주셨고, 야곱 역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서원으로 표현했습니다. -河-

 

에이카

좋은 아침입니다.

 

1.

<생명의 삶> 순서에 따라서

아침에 읽는 성경 본문은 예레이먀 애가입니다.

 

앞에 예레미야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역을 따른 것입니다.

정황상 애가서를 지은 저자를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목도한

예레미야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반면, 히브리어 본문 성경에서 애가서는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에 속합니다.

메길롯이라는 다섯 두루마리(아가, 룻, 애가, 전도서, 에스더)와 함께

예루살렘 멸망을 기억하는 절기에 불리던 노래입니다.

 

“슬프다”는 뜻의 히브리어 <에이카>로 시작하는 애가서는

시편의 탄식시와 맥을 같이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조가(弔歌)의 형식도 갖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애가, “슬픈 노래”입니다.

 

2.

애가서의 특징은

1-4장까지 각 구절이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A부터 Z로 각 구절이 시작됩니다.

 

이것을 두고 다음과 같은 입장이 있습니다:

1) 알파벳 철자를 차례로 나열해서 노래하는 것에

귀신이나 악령을 쫓는 마술적인 힘이 있다는 고대 사회의 전통을 수용한 것

2) 교육과 암기용으로 알파벳 순서로 기록했음

3) 예루살렘의 무너진 것을 목도한 저자가

자신의 슬픔을 절제하기 위해서 알파벳 순서대로 차분하게 써 내려갔음

4) 예루살렘의 슬픔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기 위함.

5) 하나님의 징벌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임했다는 입장.

 

애가서 외에도 시편 119편을 비롯한 성경에는

알파벳 순서대로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암기나 교육용으로 그렇게 기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민족이 당한 고난과 슬픔을 낱낱이 헤아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슬퍼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리하고 정화하는

카타르시스의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애가서의 또 다른 특징은

“키나(3+2)”라고 불리는 히브리 운율입니다.

처음 셋이 긴 운율이라면, 다음 둘은 짧습니다.

이것도 슬픔을 노래하는 전형적인 문학 기법입니다.

 

애가서 1-3장(3)은 탄식으로 시작해서 소망(3장)으로 끝이 납니다.

4-5장(2)은 탄식과 공동체 기도입니다.

각 구절뿐만 아니라, 애가서 5장 전체가 키나 운율입니다.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합니다.

고난은 모든 사람을 시인으로 만든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운율을 갖고 애가서를 써 내려가면서

예언자는 물론 후대에 애가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3.

<에이카> 슬프다!

시편의 탄식시와 더불어 애가서가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포함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잘못으로 인한 어려움이든지

맥락 없이 닥치는 고난이든지

타인으로 인한 핍박이든지

우리 앞에 닥친 고통스러운 현실을 놓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슬퍼하고 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애가서를 묵상하면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응어리가 부서지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되고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참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토해내고 애통합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껏 웁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5:4)

 

 

하나님

애통하며 우는 자들의 편이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6. 8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야곱 (4)

에서

 

야곱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에서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서로 싸웠습니다. 장자가 되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정황상 야곱이 형 에서를 이기려고 애썼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에서는 장자의 자리를 뺏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태중에서 먼저 나온 것을 보면 에서가 힘이 셌고, 야곱은 집념이 강했을 것 같습니다. 야곱이 힘으로는 에서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는 들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조용하고 장막에 있기를 좋아하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장자권은 아버지의 상속을 두 배로 받는 특권입니다. 이삭의 가정에서는 아브라함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축복까지 얻게 됩니다. 그런데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렸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눈앞에 보이는 먹거리와 바꾼 셈입니다. 가치보다 물질을 추구했습니다.

 

성경은 야곱을 “조용한 남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조용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완전한”이라는 뜻과 “단순한”이라는 뜻이 있고 대부분 번역자는 “단순한”을 택했습니다. 야곱에게 완전하다는 별칭을 붙여 주기에는 단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야곱보다 단순해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계획대로 야곱은 형 에서로 분장하고 연기하면서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아버지의 축복을 놓친 에서는 아버지 앞에서 대성통곡합니다. 에서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버지 이삭이 축복을 해주지만, 에서가 자기 힘으로 살게 되고 그의 후손이 야곱을 앞설 수 없다는 예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절대 아닙니다. 그때부터 에서는 동생 야곱에 대한 원한을 품고 삽니다. 아버지만 계시지 않으면 동생을 죽이려는 생각까지 합니다.  쌍둥이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은 온데간데 없고 긴장만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에서가 세상에서 어렵게 산 것은 아닙니다. 에서와 그의 후손 에돔 민족은 하나님을 잊었을 뿐 세상에서 자기 영역을 탄탄히 구축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는 기준이 아니면 에서도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도리어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에게 더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에서를 보면서 마치 오답 노트를 점검하듯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약삭빠른 동생에 치인 형의 모습도 발견되니 애잔함도 느껴집니다. 아버지를 속인 야곱에게 어려움이 연거푸 생기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인생길은 다양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느냐가 중요한데, 야곱과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알기에…-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