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7절 (4)

은혜와 평강

 

로마서 서문(롬1:1-7)을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로마서 서문은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의 첫 부분입니다. 당시 편지의 형식대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인사말이 등장합니다. 대신, 로마에 간 적이 없는 바울은 서문에서 편지의 내용을 요약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알려줍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는 수신인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입니다. 바울이 다른 편지에서는 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로마서에서 성도라는 표현을 쓴 것이 색다릅니다. 로마 교회가 매우 커서 하나의 교회로 모이지 않고 여러 가정에서 모였을 수도 있고, 여전히 유대인 회당 등에서 모였기에 교회라고 부를 정도로 조직이 갖춰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는 대상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성결의 영으로 태어나시고 능력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 교인들은 성도로 선택해서 부르셨습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하신 주의 백성들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성도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구약의 이스라엘이 성도로 발전했음을 강조합니다.

 

“은혜와 평강”은 로마 시대에 편지 서두에 사용하던 관용 문구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임한 구원이 대표적인 은혜입니다.

 

평강(샬롬)은 은혜가 주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내적 평안이 임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입니다. 은혜와 평안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면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통해서 세상에 평화가 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하는 은혜와 평강이 로마 교회에 임했듯이 우리 안에도 임하길 원합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서로 격려하고 인사하기 원합니다. 주의 은혜로 삽시다. 샬롬! -河-

씨케이다(cicada)

좋은 아침입니다.

 

1.
지금부터 17년 전인 2004년
인디애나에 있을 때입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매미 천지가 되었습니다.
창문에도, 자동차 위에도, 길에도, 나뭇가지에도
심지어 길을 갈 때 매미가 옷에 와서 붙을 정도입니다.
셀 수 없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씨케이다(cicada)라는 매미였습니다.
17년 동안 땅 밑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한꺼번에 성충으로 지상에 나타나서 짝짓기를 하고 한두 달 후에 사라집니다.
자연의 신비입니다.

 

2.
엊그제 신문에 보니
동부에 씨케이다가 나타나기 시작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2004년 인디애나에서 씨케이다를 본 후
정확히 17년이 지났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씨케이다를 보면
다음 씨케이다가 태어날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다음 씨케이다를 볼 수 있을지,
아이들은
다음 씨케이다가 나올 때 몇 살이 되고 무엇을 하고 있을지,
17년이 짧은 세월이 아니기에 막연한 소원부터
구체적인 계획까지 씨케이다 생애 주기를 보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저희도 2004년 씨케이다를 보면서
17년 후에는 저희 부부가 60 가까이 될 것이라며 놀라워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른을 넘거나 가까이 갈 것이라면서
그때가 오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올여름에도 동부와 중서부에는 매미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매미 철이 지나면,
앞으로 17년을 떠올리면서 각자 인생의 꿈을 꾸겠지요.

 

3.
씨케이다가 살아가는
17년이라는 주기(cycle)는 너무 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하루,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 한 달, 일 년을 삽니다.

 

각각의 주기에 맞게
삶을 준비하고, 펼치고,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17년 전, 씨케이다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올해 다시 나온다는 보도에 갑자기 씨케이다가 그리워집니다.

 

어쩌면 펜데믹을 비롯한 지금 우리의 삶에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께름칙한 것들도 있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립고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회고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present)로 주신 오늘 현재(present)를
마음껏 누립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 3:11)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Also, he has put eternity into man’s heart. (Ecc 3:11)

 

하나님,
길고, 때로는 짧게 느껴지는 삶의 순간을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20 이-메일 목회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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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7절 (3)

믿음의 삶

 

사도 바울은 로마서 서문(롬1:1-7)에서 자신을 예수님의 종으로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도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사도 바울이 특별히 선택되어 세움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받고 전하는 복음을 차근차근 소개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미 예고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 아들에 관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부활과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예언하고, 다윗의 혈통으로, 부활의 능력으로 완벽하게 임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바울은 물론 로마 교회 그리고 우리 모두 예수님을 한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지난 두 주간 배운 말씀(롬1:1-4)입니다.

 
오늘 본문(롬1:5-6)에 의하면 바울은 사도의 직분을 예수님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은혜와 사도의 직분”이라는 말씀은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바울의 표현대로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신 은혜를 가리킬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에서 이름은 예수님을 대표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그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게 돕는 것이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은 두 단어로 “믿음의 순종(obedience of faith)”입니다.

 
여기서 순종은 삶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삶”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삶을 이끄는 근원이자 원동력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믿음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관계는 믿음이 있어야 순종(신앙의 실천)이 가능하다는 측면과 신앙의 실천이 믿음의 증거가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약2:17). 로마서 서문의 믿음과 순종(삶)의 관계가 로마서 마지막 결론에도 등장합니다(롬16:26). 바울이 로마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앙과 삶의 일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듯이 로마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함으로 예수님께 속하기 원합니다. -河-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로마서 1장 3-4절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절에 주목했습니다.

 

예수님을 주(主, Lord)라고 고백하는 것은
초대 교회의 매우 중요한 신앙이고 전통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주”라고 불렀기에
제국의 황제가 아닌 나사렛 출신 예수를
“주”라고 부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칫, 로마 당국에 끌려가서 감옥에 갇히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순교를 각오한 위험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주”라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선포했습니다.

 

2.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주후69-155년)은
불에 타서 순교했습니다.

 

폴리갑은 당시 로마 총독과 친구였습니다.
친구를 잃는 것을 주저한 로마 총독이 폴리갑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이 주가 아니라 로마 황제를 주로 부르면)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때 폴리갑이 남겼다는 말이 유명합니다:
내가 86년간 예수님을 섬겼고,
그분이 나를 모른다고 한 적이 없으신데,
내가 어떻게 내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순교 사화에 의하면 폴리갑이 순교하기 위해서
원형 경기장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답니다:
폴리갑이여, 강건하라! 대장부답게 싸워라!

 

폴리갑을 죽이기 위해서 불을 붙였을 때, 불꽃이 그를 둘러쌓고
신비로운 향기가 원형 경기장을 가득 채웠답니다.
폴리갑은 그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순교했습니다.

 

3.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초대 교회의 전통은
2천 년 교회사는 물론
오늘 우리 참빛 교회까지 변함없이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헷갈릴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여러 가지로 대답할 이유도 없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도 똑같이 예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면
더할 것도 감할 것도 없는 완벽한 신앙 고백입니다.
기독교에 입문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번째 관문이요 첫 단추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모든 대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들어있습니다.

 

우리 참빛 식구들이 한마음으로 한 목소리로
그리고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드러내기 원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4)

 

[He] was declared to be the Son of God in power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
by his resurrection from the dead, Jesus Christ our Lord. (Rom 1:4)

 

하나님,
교회에서, 가정에서, 각자의 삶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한결같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13 이-메일 목회 서신)

로마서 1장 1-7절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확실하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특정해서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종으로 그리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자랑스러웠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바울 서신의 일반적인 형식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에 이어서 받는 사람을 소개하고 “은혜와 평강”으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는 바울과 로마 교회 성도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비교적 길게 설명합니다. 로마 교회를 방문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소개한 적이 없기에 편지의 서두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바울의 배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로마서 1장 3-4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짧지만 매우 중요한 설명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성경에서 약속한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인 척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십니다. 우리가 배운 룻기속의 보아스가 룻의 구원자가 되었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결의 영”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을 뜻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자기 몸에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그 거룩한 몸에 짊어지시고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자신임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나신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실히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 역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바울은 다윗의 혈통이며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 데 이어서, 예수님을 “주(Lord)”라고 고백하는 바울의 확실한 믿음을 닮기 원합니다. 바울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듯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기 원합니다. -河-

포모 증후군

좋은 아침입니다.

 

1.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예전 같으면 속속들이 알 수 없었던
개인의 삶과 친지들의 모임이 전부 알려지고 있습니다.

 

행여나 자기 삶이 남들보다 자랑스럽지 못하거나
친지들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 때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상하고, 소외된 느낌이 듭니다.

 

1990년 처음 소개된 포모 증후군입니다.
FOMO (Fear of Missing Out)
– 소외되었거나 자신만 배제된 듯한 두려움입니다.
우리 말로 “고립 공포감”이라고 옮기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 성취, 행복 등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자신은 행복한 사람들의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 것 같을 때
고립 공포감이 찾아옵니다.

 

미국의 GameStop 신드롬에서 알 수 있듯이
주식투자를 통해서 큰돈을 벌려는 현상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그때 자신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주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
자신만 대열에서 배제된 것 같은 고립 공포감(FOMO)을 느낍니다.

 
2.
자기만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포모(FOMO)는
현대인들이 겪는 커다란 심리적 부담입니다.

 

고립 공포감을 갖게 되면
자아 존중감이 떨어지고, 인간관계에 자신감을 잃고
심리적으로 무척 위축되게 마련인데
많은 현대인이 포모( FOMO)를 느낍니다.

 

그러니 무엇엔가 소속되고 싶어 합니다.
무슨 일이든 해야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나눴듯이
자칫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종으로 붙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립 공포감이 아니라
도리어 배제되었다는 기쁨(JOMO: Joy of Missing Out)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야 하는데
세상에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포모(FOMO)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3.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되시고,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행여나, 세상일에 조금 배제되고 밀려나는 느낌이 들어도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과 행복을 느낍니다.

 

배제되었다는 공포가 아니라
배제되었어도 기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길을 함께 걷는 공동체 식구들이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가 되고, 개인의 삶이 속살까지 드러나고
자랑이 앞서는 시대가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고립 공포감(FOMO)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같은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배제의 두려움이 배제의 기쁨으로 변하길 기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하나님,
참빛 식구들과 항상 함께 하소서.
행여나 외롭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6 이-메일 목회 서신)

로마서 1장 1-7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룻기 연속 설교에 이어서 이번 주부터는 로마서의 처음 일곱 구절(롬1:1-7)을 살펴보겠습니다. 룻기의 인물들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갔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살았지만, 그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니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겉으로 눈에 띄게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삶에 스며들어 있었고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든지 하나님 백성 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룻과 보아스 그리고 나오미와 함께 하셨습니다. 신앙이 삶으로 이어졌을 때 온전한 믿음으로 세상의 빛이 됨을 배웠습니다.

 

오늘부터는 로마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로마서 1장 1-7절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모습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는 로마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로마 제국 한가운데 세워진 로마 교회에 그리스도의 복음, 신앙과 삶에 대해서 알려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로마서는 긴 서문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은 당시의 편지 형식에 따라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간단한 인사로 시작하는데, 로마서는 편지를 보내는 바울과 편지를 받는 로마 교회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소개합니다. 장차 펼쳐질 로마서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듯합니다.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바울의 심정이 서문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예수님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 모세를 비롯한 구약의 위대한 인물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 것은 바울의 사역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자기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이어서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게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따로 구별하셔서(택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임의로 생긴 것이 아니라 구약 시대부터 성경을 통해서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깃든 역사성입니다. 복음의 ‘길이’요 ‘깊이’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확신은 물론 확실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확실함을 추구해야 함을 배웁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