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 사사시대/ 사사기 17:1-6
https://www.youtube.com/watch?v=A-OzoGY3l8U
– 사사시대
팬데믹 가운데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모두에게 힘과 위로, 그리고 소망이 되는 말씀이길 원했던 시편 91편을 지난주에 마쳤습니다. 오늘부터 구약성경 룻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룻기의 역사적 배경은 그동안 수요예배에서 공부했던 사사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 끝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야 할 덕목을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조목조목 알려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결단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곳의 토착신이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 것을 구체적으로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가나안 신들을 쫓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한꺼번에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지켰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사(judges)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이방 민족의 통치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외손잡이 사사 에훗, 여성 드보라, 기드온, 입다가 대표적인 사사들입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힘들면 다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사사를 세우셨지만, 나중에는 사사들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등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나실인 삼손이 이방 여인들의 품에 쌓여서 사사답지 않게 생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사기 마지막 4장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인 레위인들이 앞장서서 잇속을 챙기고, 도덕성을 상실하는 등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이스라엘에 닥친 재난입니다.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여서 베냐민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내분입니다.
이처럼 사사 시대는 어지러운 세상이었습니다. 룻기는 바로 이런 사사시대가 배경입니다. 앞으로 룻기를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선한 하나님 백성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우리가 가야 할 바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교회 독서 모임에서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을 읽었습니다.
<생쥐와 인간>은 살리나스 출신인 존 스타인벡이
1937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입니다.
<생쥐와 인간>이라는 책 제목은
로버트 번스의 “생쥐에게”라는 시에서 왔습니다: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
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만 맛보는 일이 허다 하잖아!
스타인벡의 소설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이 배경입니다.
“조지”와 “레니”라는 목장 노동자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조지는 체격이 작지만 당찬 청년이고
레니는 큰 체격을 갖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약간 떨어져서
조지가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둘은 누가 봐도 단짝입니다.
이들이 취직한 목장에는
당시 자본가를 대표하는 목장 주인의 아들이 있습니다.
작은 키를 숨기기 위해서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체격이 좋은 사람에게 시비를 걸곤 합니다.
조지와 레니를 비롯한 목장의 노동자들은
행여나 해고될까 두려워 주인의 눈치를 봅니다.
노동자들이 기거하는 감옥 같은 벙커가 작품의 배경입니다.
그곳에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외롭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서로를 경계하고 어디나 그렇듯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깁니다.
2.
레니는 부드러운 물체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꼭 쥐는 습관이 있습니다.
주머니 속의 생쥐와 작은 강아지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소설 속의 복선이어서
레니가 주인의 아내 머릿결을 만졌다가 목을 조여 죽인
사건이 소설의 절정입니다.
소설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주인과 목장 사람들이 레니를 잡아서 복수할 것을 알고 있는
친구 조지가 총으로 레니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려우니 친구 간의 우정도 유지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느 노동자들처럼 조지와 레니도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자신들만의 농장을 갖고, 레니가 좋아하는 토끼도 키우고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같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꿈꾸지만,
언불생심 거친 세상은 이들의 꿈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3.
위에 소개한 번즈의 시구처럼
아무리 사람이 계획을 세워도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은 꽤 힘듭니다.
구조적인 악이 존재하고
개인의 습관, 이기적인 본성, 거기서 파생하는 또 다른 비극까지
소설 속에서 스타인벡이 그리는 세상과 인물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하루하루 거친 현실을 살아갑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과 같은 세상을 마주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끊임없이 악한 본성이 살아납니다.
우리 마음이 타락한 세상의 축소판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4.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비극으로 끝날 수는 없습니다.
너무 힘들 때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숨는 것도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공동체 가족끼리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서로를 세워주고 함께 걷는 신앙의 동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정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조지와 레니가 꿈꾸던 낙원이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열매를 보기 원합니다.
p.s. 행여나, 대공황과 같은 팬데믹 기간에 세상의 악한 구조에 눌려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Ps 23:4)
하나님,
우리가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
신앙의 동지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2. 4 이-메일 목회 서신)
내가 그와 함께 하여
매년 첫째 달에는 그해의 표어를 갖고 주일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올해는 작년과 똑같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표어로 살기로 했기에, 팬데믹 가운데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시편 91편 말씀을 다섯 번에 걸쳐서 나눴습니다.
연속 설교 중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시편 91편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이상적입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씀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시편 91편 말씀이 있는 그대로 분명히 이뤄질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을 조심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시편 91편을 붙잡고 살았는데, 말씀대로 삶이 펼쳐지지 않았다고 실망할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나누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바로 지금, 말씀을 통해서 힘과 용기를 얻고 다시금 믿음의 자리로 나왔다면, 시편 91편 읽기를 잘한 것입니다.
혹시 나중에 말씀대로 삶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도, 그 순간 주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시편 91편을 읽으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읽고 대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때마다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건지시고 높이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91편은 88편부터 이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지난 두 주 동안 살펴본 시편 91편 14-16절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어 보이시는 에피파니의 순간입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뒤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고, 어려운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체험한 자신의 백성들을 건지시고 높이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간구할 때, 얼씨구나 응답하십니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15절).
하나님 백성이 환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결국에는 건지셔서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랫동안 장수하는 것은 위험이 많았던 옛날에는 최고의 복입니다. 장수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 즉 구원까지 연결됩니다.
새해 첫 달에 함께 나눈 시편 91편 말씀이 2021년 우리 인생길에 토대가 되고 푯대가 되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이 걷는 인생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천사들을 보내서 보호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신축년(辛丑年) 새해 첫 달이 지나갑니다.
소처럼 느릿느릿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걷기로 결심했던 새해입니다.
여느 해처럼
빠른 속도로 걷기 힘들 것을 우리는 압니다.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혼자서만 앞으로 치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2020년 거의 한 해를
팬데믹으로 살았기에
새해의 삶이 더 이상 새로운 일상(new normal)도 아닙니다.
2.
참빛교회 목사로서 갖고 있는 고민은
언제 우리가 다시 모여서 예배할 수 있을까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하고 흩어져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신앙이 식고 행여나 부서지는 것은 아닐까 입니다.
신앙은 혼자 가는 길이 절대로 아닙니다.
공동체로 모여 있을 때 유지되고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연말에 참빛식구들께 선물한
헨리 나우웬의 책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누려는 소원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때는
함께 식사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식탁, 음식, 음료, 말, 이야기, 이러한 것들이 서로에게
각자의 삶을 내어 주려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가장 친밀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나는 ‘함께 떡을 뗀다’는 표현을 아주 좋아하네. 그때는
깨어지고 나누어 주는 것이 확실하게 하나가 되기 때문이지. (93쪽)
지난 주일 예배 후 <참빛 테이블 토크>에 초대된 권사님께서
주일 예배 후에 함께 떡을 떼며 식사하던 때가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심정입니다.
3.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보다도
경제와 학교가 먼저 열려야 합니다.
함께 만나서 예배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안전한 세상이 속히 올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양보하고 더 길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대신,
우리가 지속해서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에 깊이를 더하는 일입니다.
신앙을 나무에 비유하면,
팬데믹 동안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잎과 줄기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열매가 꼭 필요하지만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고, 신앙을 표현할 기회가 적은 지금은
깊이 있는 신앙을 훈련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웬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신앙을 갖추기 원합니다.
전도를 비롯한 이웃과의 관계는 제한을 받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지기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골방 시간”을 꼭 가지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셔도
잠자리에 들기 전,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 것입니다.
보슬비에 옷이 젖듯이
하나님과 단둘이 갖는 골방 시간이 깊이 있는 신앙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 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 91:14)
Because he holds fast to me in love, I will deliver him;
I will protect him, because he knows my name. (Ps 91:14)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고요한 시간 골방에서
주님을 찾을 때마다, 꼭 만나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28 이-메일 목회 서신)
네가 나를 사랑한 즉
성경 말씀대로 살면 모든 것이 잘 되고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삶이 말씀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고민이 생기고 회의가 밀려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책임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막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실수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솔직히 힘듭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만 믿기로 언약을 맺었는데, 이들이 먼저 계약을 어겼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가나안 신들을 섬긴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질문이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갖게 되는 일반적인 질문입니다. 시편 91편 앞에서부터 시작된 질문들입니다.
시편 88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신 것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하나님과 자신들의 끈이 끊어진 것 같았습니다. 시편 89편에서도 현재의 고난이 언제 끝날 지 하나님 앞에서 호소합니다. 악인들이 승리한 것에 대한 한탄도 섞여 있습니다. 시편 90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 오시길 간청합니다.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들에게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편 91편에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새롭게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의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시편 91편은 예배 상황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시편 기자가 자신의 고백과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하시고 이스라엘을 지켜 주심을 선포합니다. 백성들이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고 화답하고, 인도자는 다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편 88편부터 이어진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물론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힘들게 하셨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백성들을 건지시고 높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약입니다.
우리도 2021년 새해를 힘겹게 시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 품으로 달려가고, 두렵고 불확실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책임지실 것을 믿고 신앙의 길을 걸어갑시다.-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
<호모 비아트로 Homo Viator> 라는 말을 소개했습니다.
길을 걷는 존재, 여행자와 같은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한 평생”이라는 말은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 ‘한’없이 길다는 의미와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뜻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평생은
어느 시인의 싯구대로 “소풍”이요
노래 가사 대로 “나그네길”입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오르막과 내리막과 같은 인생의 굴곡
때로는 험한 길, 때로는 고속도로와 같은 평탄한 인생길을 만납니다.
그 길을 가면서
미움, 시기, 질투, 경쟁, 실패
사랑, 화해, 양보, 승리, 기쁨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합니다.
그 길을 함께 걸을 “길동무”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가장 큰 축복입니다.
2.
지난 월요일 아침
우리 교회의 최 연장자셨던
낸시 바렛 권사님께서 94세로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낸시 권사님의 한평생도
말 그대로 곡절(曲折)의 삶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셨건만
남편은 권사님과 갓난아이만 남겨놓고
전쟁터로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셨습니다.
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시기에
주택을 개조해서 사고파는 사업을 하셔서 나름 성공하셨습니다.
재혼을 하셔서 일찍이 미국에 오셨습니다.
아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권사님 소원대로 버클리 공대를 졸업한
어느덧 70이 넘으신 아들의 효도를 마지막까지 충분히 받고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권사님 집 뒤뜰은 가파른 절벽입니다.
그곳을 모두 일구셔서 산비탈의 정원을 만드셨고
그곳에 갖가지 꽃들과 채소를 심으셨습니다.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던 부지런한 권사님이십니다.
깔끔하시기가 이를 데 없으셨습니다.
지난 5-6년은 거의 노환으로 집에 계셨습니다.
코로나 전에 심방 가면, 교회 걱정을 하시고,
따뜻해지면 교회에 꼭 오고 싶다고 저희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노련하게 신앙을 표현하지 못하셔도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으셨던 멋쟁이 권사님이셨습니다.
연초에 달력과 교회 선물을 갖고
잠깐 권사님을 뵈러 갔더니
기도하는 중에 그렇게 흐느껴 우셔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홀연히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평생 편두통으로 타이레놀을 조제해서 드시고
노년에는 허리도 아프셔서 앉아있기 힘드셨는데
이제 고통도 아픔도 없는 하나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하실 줄 믿습니다.
3.
권사님의 한평생을 회고하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끝이 있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끝은 빈손으로 홀연히 하나님께 가는 길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끝까지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상투적이지만 다시 스스로 다짐합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남는 인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손을 꼭 붙들고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길동무, 신앙의 동지들과 기쁨을 나누며
오늘 하루, 한평생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1)
For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to guard you in all your ways.(Ps 91:1)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가는 모든 길을
천사를 동원해서 꼭 지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21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