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는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기도에 대한 말씀이
다음 주일로 끝이 납니다.

올해는 <간구>라는 주제로
실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시고 분깃이 되심을 고백하면서
“오른 쪽을 살펴 보소서”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른 쪽은 삶의 축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간단히 기도노트를 적어갑니다.
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을 위한 기도가 맨 위에 있습니다.
다급한 기도제목을 갖고 계신 참빛 식구들과
후원자들의 이름을 써 가면서 기도합니다.

차근차근 이뤄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제 <간구 기도>의 기쁨이고 간증입니다.

이런 저의 경험 때문에
꼭 기도노트를 적어가시길 부탁 드립니다.
대충하거나, 며칠하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신앙은 마라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는 우리들에게 끈기는 필수입니다.

2.
간구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놓치기 쉬운 부분을
목요서신을 통해서 보충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리처드 포스터의 고요한 기도에 이어서
오늘은 유진 피터슨의 <응답하는 기도(Answering God)>에서
한 문단을 옮겨왔습니다.

시편은 순종의 행위이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대답하는 것이다… 시편의 기도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찾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 이 반응들은 놀람의 반응일 때가 많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러 오시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하나님은 오셔서 말씀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붙들고, 절망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내서 은혜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유진 피터슨, 응답하는 기도, 15>

처음 시간에
시편 자체는 찬양과 기도는 물론 예배로 나간다고 말씀 드렸는데
유진 피터슨의 책 소제목도 “시편을 가지고 기도하기”입니다.

간구는 우리의 생각이나 소망이 주체가 됩니다.
자칫 내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객체가 되는 누를 범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고 있듯이
시편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대로 간구한다면
간구 기도 역시 하나님께 응답하는 지경까지 나가게 될 것입니다.

3.
이번 주로 기도에 대한 말씀은 끝이 나지만
우리들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껏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부르짖어 기도하고
힘들 때는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응석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를 넘어서
온 세상을 위한 기도까지
무릎 꿇고 지구를 몇 바퀴 돌 수도 있습니다.

기도의 지경은 이처럼 길고, 높고, 넓고 깊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기도의 특권을 마음껏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잊지 말 것은
나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고
세상을 품기 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시편 142편5절)
I cry to you, O LORD; I say,
“You are my refuge, my portion in the land of the living.” (Psa 142:5 ESV)

하나님 아버지,
기도가 몸에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28 이-메일 목회서신)

진정한 그리스도인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유대인 학살과 핍박이 일어나고 있을 때,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르 샹봉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곳에는 안드레이 트로크메라는 개신교 목사가 있었는데, 이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하게 설교했고 교인들에게 복음대로 살기를 요청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마을로 피신해 오는 유대인들을 보호해 주고, 그들의 도피처가 되어 주자는 권면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트로크메 목사의 부탁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유대인 피난민들이 마을에 도착하면 각 가정이 한 명 또는 한 가구씩 맡아서 도와주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등록시켜서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도 나치 치하에 있었기에 유대인들을 돕는 것이 정부에 발각이 되면 감옥에 가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르 샹봉 마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인구에 버금가는 5천명의 유대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습니다.

어려서 가족과 함께 르 샹봉 마을로 피난 갔다가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훗날 영화감독이 된 피에르 소바주라는 분이 30년 만에 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70-80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수천 명의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해준 시대의 영웅들답지 않게 겸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종교도 아닌 유대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이유를 마을의 한 노인에게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했기에 도와주었을 따름입니다. 성경에는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자를 돌보라고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했을 뿐입니다.”

마을을 방문했던 영화감독 소바주는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소바주가 만든 영화 제목을 <신앙의 무기들>이라고 번역하고 싶습니다. 르 샹봉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유대인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신앙의 무기를 선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 속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고, 아무 대가도 없이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도왔습니다. “성경대로 했을 뿐입니다”라는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르 샹봉 사람들이야말로 신앙을 선한 일에 사용할 줄 알았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적입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값싸게 취급 받고 있습니다. 세속주의가 등장하면서 기독교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관심을 갖지 않고 심지어 구닥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과학 문명이 빠르게 발달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다 빼앗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삽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음은 조용하게 앉아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할 시간마저 훔쳐갑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신앙이 피상적이 되었습니다. 속은 텅 비었고 겉만 번드르르한 경건의 모양만 남았습니다. 신앙의 무기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진정한 복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상이나 이론, 신학적 논쟁이나 높은 학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순수한 의도와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거나 혼자서 축복받겠다는 식의 믿음은 이제 청산해야 합니다. 소외되고 힘없는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 편에 서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사람이 하늘의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르 샹봉 마을 사람들처럼 성경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참된 신앙으로 무장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길 원합니다.(2015년 5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15년 기도 : 시편 142편 4

기도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사도바울도 디모데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4-5).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목표가 있다면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은 구별됨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은 이후에 세상과 구별되어야 함은 물론 하나님을 믿기 전과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알려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선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일상속의 거룩함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거룩함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고 기도가 영혼의 호흡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오늘로 기도에 대한 말씀은 끝이 나지만 앞으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 기도가 낯선 분들은 할 수 있는 대로 기도를 훈련하셔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간절히 기도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 때는 저절로 하나님을 부르고, 기쁠 때는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찬송가 가사 그대로 기도하는 시간 자체가 즐거워야 합니다. 그때 기도는 인격이 됩니다. 비로소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저절로 거룩함에 이를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기쁨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의 사람은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행복합니다. 평안합니다. 은혜 가운데 푹 잠겨서 살아갑니다. 믿음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앞으로 기도로 사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기도하십시오.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시고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서 세상을 마음에 품고 어그러진 세상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시고, 기도한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시편 142편의 마지막 말씀은 다윗의 세 번째 부르짖음입니다. 다윗의 상황은 매우 열악합니다. 말 그대로 동굴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피난처가 되어주지 않습니다. 비참합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공로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살고, 그 능력으로 구원받고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싶어 합니다. 다윗의 간절함을 닮기 원합니다.

시편 142편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드린 기도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페르시아가 통치합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시편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할 차례입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 다윗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기 원합니다. -河-

2015년 기도 : 시편 142편 3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수요예배시간 요한복음에서 배웠듯이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신 후에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들 안에 내주(內住,dwelling)하십니다. 교회와 가정은 물론 성도들의 모임 속에 함께하십니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곁에 계시면서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조언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의 변호인이 되시는 셈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성령께서 제자들 가운데 능력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도록 돕습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면서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을 만큼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안타까워하면서 기도해주십니다:“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성령의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모두 만족시켜 줍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7)

이처럼 성령의 사역은 광범위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신 이후에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삼위 하나님가운데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아니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기도 자체에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저는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내 욕심이나 주장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려는 태도입니다. 둘째는,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는 먹구름들, 죄들을 회개를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어서 구별된 삶을 살 때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셋째는,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배운 간절한 기도입니다. 한 마디 기도를 하더라도 마음을 담아서 간절히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나눈 시편 142편 말씀은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속의 다윗은 지쳐있습니다. 다윗의 영혼을 돌봐줄 사람이 곁에 없으니 외롭습니다. 그때 다윗은 또다시 부르짖어 간구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난처가 되시고 분깃(모든 것)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갖고 있었던 기도의 힘입니다. 우리들도 다윗처럼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河-

고요한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 주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입니다.

간구는
우리의 다급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고
저절로 부르짖게 되고
마음을 토해내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나가는 기도의 길은 다양합니다.
이번에는 그 가운데 하나인
간구에 대해서 시편 142편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지요.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강조하다 보니
조용히 하나님께 나가는
“고요한 기도(silence prayer)”를 말씀드릴 틈이 없습니다.

다급하고
중요한 일 앞에서 우리는 부르짖고 간구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소리 내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복잡한 일이 앞에 있거나
마음과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혼란스러울 때는
조용히 드리는 무언의 기도가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 때 입니다.
단순하게 어떤 해결책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청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참 복잡할 때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 조용히 나가서
하나님 품속으로 들어가는
고요한 기도가 도움이 됩니다.

2.
리처드 포스터는
<무언의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마음의 평정을 이루는 방법이 하나 있다. 먼저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모든 긴장과 걱정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 방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 보라.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정신이 산만해 지면 그것을 다만 아버지의 품 안에 올려 드리고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맡기라.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풀어 버리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모든 것에서 자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기만 하면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과의 동행 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심적 갈등과 좌절까지도 마치 태양 앞의 눈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녹아 없어지고 만다. 속에서 끓어 오르는 폭풍우까지도 하나님께서 “평안하라. 고요하라”하시면 잠잠해 질 수 있다. 시끄럽고 복잡한 마음도 하나님의 큰 침묵 속에서 잠잠하게 될 수 있다. (리처드 포스터, <기도> 218-219)

3.
우리는 마음껏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온 몸이 땀에 젖도록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말없이 기도하면서
우리의 복잡한 심정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5-10분 잠깐씩
무언의 기도(silence prayer)를 드려 보십시오.

모든 삶의 스위치를 끄고
하나님 안에 평안히 거하십시오.

부르짖는 기도와 더불어
무언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속마음과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편 1-2절)
For God alone my soul waits in silence; from him comes my salvation.  He only is my rock and my salvation, my fortress; I shall not be greatly shaken.  (Psa 62:1-2 ESV)

하나님 아버지,
부르짖어 기도함과 동시에
말없이 주님께 나감으로
주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하옵소서.
잠잠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21 이-메일 목회서신)

기도의 삶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부터
기도에 대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시편 142편을 갖고
간청하는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동굴에 피신해 있는 다윗은
하나님을 외쳐 부르짖으며 찾습니다.
하나님께 소리 내서 간구합니다.

자기에게 닥친 원한들을 하나님 앞에서 토로하고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서 진술합니다.

그렇게 다윗은
빛이 없고,
들어온 입구밖에 다른 출구가 없는
동굴 속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기도합니다.

2.
우리의 삶은 날마다 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기도를 잃어버립니다.
아니 기도해야 할 때 다른 일을 하거나,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할 때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C.S 루이스가 기도에 대해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기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그래, 어찌됐든 지금 솔직하게 털어놓자구. 기도는 분명 괴찮네. 기회만 생기면 얼씨구나 하고 기도를 빼먹게 되고, 기도를 마치면 할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남은 하루를 감싸지. 기도를 시작하기 전까지 있는 대로 몸을 뒤로 빼다가, 기도를 마치면 기뻐하네. 소설을 읽거나 십자말풀이를 할 때와는 달리, 기도 시간에는 사소한 일에도 주의가 흐트러지네.(기도, 166)

그러면서 솔직하게 기도하길 요청합니다.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수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하나님은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 가장 친밀하게 말씀하시는 듯해.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가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낼 때가 있다는 거지. 찰스 윌리엄스는 그의 책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제단은 하늘의 불이 다른 곳으로 내려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쌓아야 할 때가 많다.”(기도, 172)

3.
기도가 삶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한 일이나 사건이 되면
기도가 의무가 되고 부담이 됩니다.
반대로 기도한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5월 한달 동안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가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서
간구하고, 마음을 토해내고, 진술하십시오.

기도가 기쁨이 되고, 힘이 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가 되기 원합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시편142;1-2)
With my voice I cry out to the LORD; with my voice I plead for mercy to the LORD.
 I pour out my complaint before him; I tell my trouble before him. (Psa 142:1-2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로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14 이-메일 목회서신)

2015년 기도 : 시편 142편 2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매우 신비로운 영역입니다. 세상을 사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설교가 스펄전은 “마른 눈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눈물로 기도한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웻(Jewett)이란 분은 “나는 열사람에게 설교를 가르치기보다 한 사람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싶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열 사람의 훌륭한 설교가보다 기도의 사람 한 명이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서, 열 번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번의 기도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말 그대로 영혼의 호흡이고 하나님께 나가는 관문입니다.

올해도 한 달 동안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기도를 두고 여러 가지로 정의합니다. 기도의 종류도 마음으로 기도하는 조용한 기도부터 온 교회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통성기도까지 다양합니다. 내용에 따라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부터 이웃을 위한 기도까지 각각의 상황에 맞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올 해는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는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간구하는 기도는 따로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들 기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구의 기도를 살펴보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기도의 힘을 알면서도 기도의 자리로 나가지 않고 염려하고 때로는 낙심합니다. 세상살이가 바쁘고 마음과 생각을 다른 곳에 두고 살 때가 많아서 실제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듯이“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기 원합니다. 기도 속에 자신의 마음을 모두 토해내고, 자신의 어려움을 진술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기도 가운데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고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삶의 모습이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잘 먹고 잘 삽니다. 남이 생각하면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내면은 많이 빈약합니다. 허전합니다. 자신 있어 하지만 알고 보면 매사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생업, 가정, 자녀, 인간관계, 자신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간구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과 삶을 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앞길을 생각하면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142편 3절 말씀에는 “길”이라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 길은 하나님께서 아시는 길입니다. 시편 말씀 속의 다윗은 매우 혼란한 상태에 있습니다. 영이 혼미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때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알고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두 번째 길은 자신이 걷는 길입니다. 자신의 길에는 여기저기 함정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길을 걷기 원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살펴주시길 간구합니다.

다음 한 주간 우리들이 걷고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살펴주시고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구합시다. 다윗처럼“주께서 내 길을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합시다. -河-

2015년 기도 : 시편 142편 1

우리 교회는 행사가 많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앞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지칠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신앙생활보다 참빛 식구들의 세상살이를 지원하고 여러분들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시길 원해서 교회 행사를 가급적 삼갔습니다. 때로는 너무 행사가 없으니 교회사역이 밋밋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매월 꼭 필요한 행사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2월에는 두 번째 참빛 보이스, 3월에는 행복한 부부세미나, 4월에는 기도회를 다녀왔습니다. 모든 순서들이 유익하고, 은혜롭고 성도님들의 호응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외부의 도움 없이 우리 교인들이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사역들이었기에 더욱 뜻 깊었습니다.

5월에도 훌륭한 행사가 마련되었습니다. 5월 말 메모리얼 데이 주간에 청년부가 수련회를 갑니다. 5월 29일에는 이경민 지휘자의 네팔 후원을 위한 한국 가곡 음악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 6년여 네팔의 박재면 선교사님을 지원해 왔기에 네팔은 각별한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 피해가 예상외로 컸고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차제에 훌륭한 성악가(소프라노)이신 지휘자님과 우리 교회가 함께 자선음악회를 개최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휘자님께서 한국 가곡들을 연주하신다니 우리 교회는 물론 이웃들을 초청하시면 분명 커다란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네팔도 돕고 우리 교회도 알리는 좋은 기회에 온 교회의 지원과 기도 그리고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매년 그랬듯이 올해도 한 달 동안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올 해는 시편 142편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우리의 기도생활을 점검하고, 참빛 식구들의 기도생활이 실제로 회복되길 기대합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소개한 웨슬리의 은총의 수단에 기도와 말씀이 으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먹지 않고,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충만한 은혜는커녕 살아있는 신앙을 유지하기조차 힘들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요즘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미국만 해도 인종과 종교 그리고 계층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심지어 폭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분노가 차오르고 그것들이 올바로 표출되지 않으니 불안감이 커집니다. 우리들 각자의 삶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가지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이 하루하루를 맞이합니다. 아니 지금은 안전해 보여도 언제 인생의 폭풍이 밀려올지 모르니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곧 기도일 것입니다.

시편 142편에는 “다윗이 굴에 있을 때 지은 기도”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동굴 속으로 피난했을 때 드렸던 기도라는 것입니다. 당시 다윗도 왕으로 기름을 받았고 골리앗과 싸워서 이겼지만 모두 과거지사요 현실은 매우 깜깜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솔직히 진술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빛이 없는 동굴의 위기를 견뎠습니다. 기도의 힘입니다.-河-

작은 은혜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한달 동안
은혜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많이 잊어버리시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매번 연속해서 말씀을 나눌 때마다
마음 속 깊이 남은 것들,
느낌과 결심,
그리고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은혜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못박는 로마 군병들까지 용서하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과 악에 대해서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세상을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집념이 십자가에 깃들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할수록
우리는 깨끗해지고,
겸손해 지고
세상을 품게되고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생명으로 나가게 됩니다.

3.
무엇보다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들 일상의 삶에 감사와 기쁨을 줍니다.

켄트 널번(Kent Nerburn)이라는 분은
일상 속에 잠잠히 임하는 은혜들을 기억하면서
각각의 에피소드를 모아서
<작은 은혜들(small gift: the quiet gifts of everyday life)>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분이 생계를 위해서 택시운전을 한 적이 있답니다.
아침마다 앞을 못 보는 한 여성이 자신의 택시를 탑니다.
그 여성은 한 손에 지팡이를 꼭 쥐고
뒷좌석에 조용히 아주 평온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용기를 내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보고 싶으세요?”

앞을 못 보는 여성이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구름(cloud)을 보고 싶어요.”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 마다 구름을 설명하는 것이 틀려서
꼭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앞을 못 보는 여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구름이 어떻게 생겼어요?”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꿈들과 같아요
(They’re like God’s dreams).”

여인이 “고마워요”라고 답변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뒷좌석에 앉아 있는데
평안함, 고요함, 그리고 작은 미소가
택시 안에 가득 찼었다고 전합니다.

4.
그 여성이 눈을 뜰 수 있다면
왜 하필 구름을 보고 싶다고 했을까요?

사람들의 설명이 다양하니 꽤 궁금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운전하는 작가는
“하나님의 꿈들”이라고 구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구름을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설명해 준 것입니다.
감사할 수 밖에요!

왠지 5월이 되면
꿈이 생기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 인생길에
구름이 찾아오고 또 지나가겠지요.
구름을 보면서 “하나님의 꿈”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작은 은혜들(small graces)”로 넘치는
아니 작은 은혜들을 흘려 보내 않고 포착하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For I decided to know nothing among you
except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 (1Co 2:2 ESV)

하나님 아버지,
삶 속에 작은 은혜들이 넘치게 하시고,
흘러가는 구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꿈을 포착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5.7 이-메일 목회서신)

은혜로 사는 삶 (4) : 혈루병이 낳은 여인

어느 덧 5월이 되었습니다. 올 해도 절반을 향해서 가고 있네요. 지난 넉 달 동안 우리는 올해 교회의 표어에 맞춰서 요한 계시록에 등장한 교회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창세기의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나눴고, 지난 한 달 동안은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가 필요합니다. 내 힘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도 막상 일이 닥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99%의 노력에 1%의 영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력이 무척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1%의 영감이 없다면 100%를 채울 수 없습니다. 영감 즉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우리의 삶이 온전해 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차별 없이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이나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는 절대로 주인공이 되기 힘든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그들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본 나인성 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여인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단지 슬퍼할 뿐입니다. 그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셨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관에 손을 대면서 여인의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도하신 일입니다. 아들을 잃은 여인이 불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은혜의 시작은“측은지심(惻隱至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향한 측은지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 자리를 엿보다가 쫓겨났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낙원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애를 쓰셨습니다. 그 절정이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사랑입니다. 이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측은지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때, 은혜가 임합니다. 나인성 과부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은혜가 우리를 따라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친히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 우리가 살펴본 본문의 여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앓은 여인은 사람들의 이목을 무릅쓰고 예수님께서 나와서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습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남아있을 때는 힘을 다해서 은혜를 사모하고 찾아야 합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에게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병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은혜 가운데 살기 원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은혜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과 우리 교회에 충만한 은혜를 내려주시길 기도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