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능력 (2) :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 지난주에 함께 나눈 말씀입니다. 저는 한 주간 살면서 이 말씀을 마음에 두려고 애썼습니다. 설교시간에 제안한대로 말씀을 외웠습니다.“보배”“질그릇”“심히 큰 능력”“하나님께 있고”“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과 같은 주요 표현들을 곱씹으면서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들이지만 보배가 담김으로 가치가 급상승했습니다. 보배가 담기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주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까지는 될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들 능력의 근원이 되심에 감사했습니다.

지난 주 초반에는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집안에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신선하고 여기저기 봄꽃이 만발했습니다. 화창한 날씨를 보면서 그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임했음을 느꼈습니다. 주 중반부터는 구름이 끼고 수요일에는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작년 말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그렇게 애를 태웠는데 하나님께서는 느지막이 단비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친 직후 폭포수와 같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성도님들과 교회위에 폭포수처럼 임하길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비가 오는 것도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예품사)으로 살다보니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저절로 감사가 넘칩니다.

보배를 담고 있는 질그릇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심히 큰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임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고후4:8-9절이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능력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능력입니다.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는 진퇴양난의 순간을 종종 경험합니다.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어떤 세력인지 알지 못하지만 포위망을 좁혀오는 것을 직감합니다.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당황이 되니 판단력이 상실하고 나중에는 허둥지둥 거리게 마련입니다. 우겨쌈을 당하는 것을 알지만 달리 피할 길이 없고 힘이 없기에 발만 동동 구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배를 품은 질그릇은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벗어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옥죄어오는 것들을 물리치거나, 위기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방에서 우리를 향해 공격해 와서 독안에 든 쥐처럼 포로가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우겨쌈을 당하지 않습니다. 질그릇처럼 연약한 우리 안에 보화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겨쌈을 당하는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꼭 붙잡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분명히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河-

그리스도인의 능력 (1) : 질그릇 속에 담긴 보화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능력(power)’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특징도 능력입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우리 자체는 말 그대로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능력이시기에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그리스도인의 능력’이라는 주제로 주일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능력이 어떤 것인지,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 있는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고린도후서 4장 7-10절 말씀을 갖고 살펴보게 됩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참빛 교회 식구들께서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그 능력을 마음에 품고 말 그대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비결을 배우시길 원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 있고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워지길 기도하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바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섞여 살아서 교회 안에 파당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린도 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속이 상한 바울은 고린도에 편지를 써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사도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간증하듯이 소개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살펴 볼 고린도후서 4장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질그릇과 같다고 전제합니다. 질그릇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가장 흔하고 값싼 물건입니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쉽게 깨지는 매우 연약한 그릇입니다. 그렇기에 질그릇에는 귀한 물건을 담지 않고 하찮은 것들을 담아 둡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는 질그릇에 보화가 담겼다고 가르쳐줍니다. 질그릇과 보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보화는 금과 은과 같은 값진 그릇에 담겨야 제격인데 질그릇에 담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릇의 진가는 그 안에 담긴 물건으로 결정됩니다. 아무리 질그릇이라도 보화를 담고 있으면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속의 보화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심으로 보화를 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것 자체가 능력입니다. 질그릇에 보화를 담고 있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신앙은 우리 안에 보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셨음을 믿고 그 보화를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히 큰 능력을 주셨음을 믿고 그 능력을 누리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河-

예수님의 손길 (5) : 못박힌 손

예수님의 손에 대한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첫째 시간에는 예수님의 손길이 닿으면 병이 고쳐지고, 눈이 뜨이고, 귀와 입이 열리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친히 손으로 만져주심으로 고쳐주셨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도 깨끗함을 받아야 함을 또한 서로의 손길로 섬겨야 함을 배웠습니다. 셋째 시간에는 색다른 예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판이 된 성전을 둘러엎으시는 분노의 손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분노는 성전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회복의 손길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린아이가 드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축사하시는 예수님의 손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손에 인생길을 맡기고 주님의 손에 얹어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생각할 때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발과 양 손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시면서 33년간의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53:5)고 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예수님의 손에 못이 박힌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신 손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의 죄도 깨끗이 사함 받고 보혈의 공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은 우리를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손입니다.

엊그제 수요일부터 2014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력에서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고난주간 전까지 주일을 뺀 40일간의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기도와 금식을 행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을 교회의 전통으로 삼았습니다. 기도와 금식이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라면 선행과 섬김은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사순절을 맞아서 손수 실천할 수 있는 경건의 훈련을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1) 사순절 전통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금식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금식해 보십시오. 하루에 한 끼, 또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금식을 실천하시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시길 바랍니다.

2) 기도와 말씀 훈련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를 통독하는 것도 좋습니다.

3) 영적 절제의 실천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육체의 즐거움이나 쾌락을 위한 일들을 삼가는 것입니다. 좋은 말만 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훌륭한 신앙훈련입니다.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사순절을 보내면 우리의 영이 맑아질 것입니다.

4)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아무도 모르게 한 가지 이상씩 선행을 실천해 보십시오. 마음속에서 기쁨이 샘솟고 삶에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못이 박히면서 우리의 허물과 죄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힌 손이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을 만져주시길 바랍니다. 사순절을 맞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힌 손을 깊이 묵상하고 신앙은 물론 삶이 주님께 드려지기 원합니다. 40일은 대략 일 년의 10분의 1에 해당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삶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듬뿍 내려주실 것입니다. -河-

예수님의 손길 (4) :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성경에서 손은 힘과 능력의 상징입니다.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원천입니다. 오른손으로 구원해 주신다고 시편기자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면 안전합니다.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올라가면 그것은 승리의 표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하늘을 펼치고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사48:13).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림을 그리듯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펼치시고 그곳에 달과 별을 그려 놓으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은 하늘의 능력이 세상에 임하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의 손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인간들과 똑같이 말을 하셨고, 손으로 만지셨고, 발로 걸어서 여행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목수는 손재주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손길은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예민하게 발달되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도 예수님의 손길이 닿으면 무엇인가 만들어졌고 고쳐졌을 것을 상상하니 더욱 흥미롭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능력의 손길로 병자들을 고치셨고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갈릴리 호숫가의 제자들을 먹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 치유와 회복 그리고 깨끗해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의 손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들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로마의 지배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그릇된 통치에 지친 백성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생명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겨주셨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면서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해산시키자고 제안합니다. 각자 먹거리를 해결하도록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풀밭에 앉게 하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 기도를 하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제자들에게 주었을 것이고, 제자들은 그것을 예수님께 건네 드렸을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즉 오병이어(오병이어)를 손에 든 예수님은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건네주십니다. 그리고 무리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위엄과 능력에 눌려서 예수님께 받은 오병이어를 말씀대로 무리들에게 나눠주었을 것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나눠줄수록 떡과 생선이 자꾸 생깁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남자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손에 들리니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은 작은 것을 갖고도 모든 사람을 만족케 하는 능력입니다. 어린아이가 내어놓음으로 기적이 가능했습니다. 제자들이 중간에서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은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작은 삶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의 손길을 통해서 임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기 원합니다.-河-

예수님의 손길 (3) : 둘러 엎으시며

예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하면 늘 따스하고 좋은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손길은 위로와 능력의 손길입니다. 3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예수님은 힘들고 지친 자들의 손을 잡아 주셨고, 병든 자들을 만져주셨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손길은 분노의 손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성전이 말할 수 없이 타락해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성전이“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사람들이 성전에서 장사를 합니다. 성전세를 바칠 사람들과 헌금을 바칠 사람들에게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도 있었습니다. 제사드릴 제물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전이 장사꾼들 즉 이권이 판을 치는 곳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책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십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분노로 임한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성전의 본질을 회복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손길은 그릇된 것에 대해서 분노하시고 바로 잡으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잘못된 길로 빠졌다면 이것은 큰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임재하시고 성전을 통해서 일하기 원하실텐데 하나님의 사역지에 세상 물결이 들어온 셈입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책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시면서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 뿐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이 어떤 잘못을 하고 죄를 지어도 끝없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세상에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랑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갖고 계십니다. 공의는 바른 것을 추구하고 옳지 않은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으로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공평하게 행하지 않거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그러지고 망가진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세상 마지막에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임해서 부정하고 악한 세력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의자와 상을 들러 엎으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성전 안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는 것들이 있다면 얼른 바로잡고 고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물결이 성전에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고전3:16).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안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된 것들이 있다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둘러엎으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임하기 전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하나님 보시게 바른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는 것이 아니라 칭찬받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예수님의 손길 (2)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작년 말에는 디즈니사의 “겨울왕국(Frozen)”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영화 속의 한 등장인물에게는 신기한 마법이 있어서 모든 것을 얼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훗날 그녀가 여왕이 되면서 모든 나라가 겨울왕국으로 변했습니다. 공주의 동생이 언니도 살리고 잃어버린 여름을 되찾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는 것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마이더스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도 있습니다. 마이더스라는 사람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디오니소스라는 신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그는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활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만지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고 마니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음식을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손길이 닿으면 과일이며 빵이며 전부 황금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초래한 비극이지요.

이에 비하면 우리가 지난주부터 살펴보는 예수님의 손길은 겨울왕국이나 마이더스의 손과 정반대입니다. 우선,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얼음으로 변하거나 황금으로 변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따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지시면 생명의 기운이 회복되었습니다. 나병이 깨끗이 사라졌고,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소경이 눈을 뜨고,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던 사람의 귀와 입이 열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길은 치유와 회복의 손길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욕심이나 명예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오셨고, 약한 자들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지만 예수님 자신에게 이익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철저한 내어주심, 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급기야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악한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손길은 희생과 사랑 그리고 승리의 손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만져주시길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손길 역시 매우 이례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하루 전날의 상황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던 자리에서 갑자기 웃옷을 벗으시고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스승이자 주님(Lord)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의 발을 정성껏 씻겨 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감동적입니다.

땅을 밟고 다니고 어쩌면 가장 더러운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손길을 생각하니 은혜가 밀려옵니다. 예수님 앞에 우리의 더러운 발을 내어드리고 싶어집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들도 날마다 깨끗해져야 할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발까지 깨끗하게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우리들도 예수님 말씀대로 이웃을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河-

예수님의 손길 (1) :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라는 표어대로 우리 모두 올 한 해 동안 많이 배우고 신앙이 자라가길 바랍니다. 기독교인들의 배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代贖)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구원은 우리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계셨고 마지막 3년은 메시야로서 공생애(public life)를 사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지내신 예수님의 사역과 삶은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배움의 본(本)입니다.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라는 표어에서 배우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주간 동안 예수님에 대한 배움 특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손길이 주는 교훈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산상수훈을 마치고 내려오셨을 때 이미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자신을 깨끗하게 고쳐주시길 간청합니다. 나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염성이 강합니다. 접촉을 통해서 전염되는 질병입니다. 나병환자는 격리 수용되었고 일단 저주를 받아서 병이 걸렸다고 생각해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서 그를 만지시면서,“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3절)며 고쳐주셨습니다. 말씀만 해도 고치실 수 있었을 텐데 나병환자의 병든 몸을 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외롭고 힘겨운 인생을 살았던 그 사람에게 닿았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의 경우처럼 몸에 손을 대신 사건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소경을 고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기신 다음에 그것을 눈에 발라주시면서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소경의 눈에 닿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에는 더 극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손을 얹어 안수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혀를 만지면서 하늘을 보고 탄식하면서“에바다(열려라)”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앓고 세상에서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의 몸에 손을 대면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으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치유와 회복을 넘어서 새 생명이 임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손길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어렵고 힘겨운 이웃들의 손을 꼭 잡아 줄 수 있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河-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3) : 말씀먹기

성경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또한 그를 믿음으로 그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공부 시간에 생명에 괄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갈 단어를 맞춰보길 부탁드리면 대개‘구원’또는‘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미로 보면 틀린 답이 아니지만 요한복음에서는“생명(life)”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에서“양식”은 말 그대로 먹을거리입니다. 목숨을 부지하는데 필요한 음식입니다. 성경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했을 때 성경이 영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연애편지 읽는 것처럼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상상력을 동원하고 행간에 깃든 의미까지 찾아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메시지를 포착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경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신앙과 삶 속에 내면화 시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하나님 말씀을“맛”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1) 영혼을 새롭게 살려내고, 2) 우둔함에 지혜를 더하고, 3) 마음을 기쁘게 하고, 4) 눈을 밝게 하고, 5)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시 19:7-10).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 하나님의 사람이 체험을 토대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맛보고 그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는데 꼭 필요한 것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렉치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라는 성경읽기와 묵상방법을 만들어서 실천했습니다. 렉치오 디비나는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하나님 말씀을 차근차근 꼼꼼히 읽는“읽기(렉치오)”입니다. 두 번째로 읽은 말씀을 마음으로 곱씹는 묵상 (메디타티오)입니다. 묵상은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작업입니다. 세 번째는 읽고 묵상한 말씀을 붙들고 입술로 기도하는 것입니다(오라티오).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갖고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으니 이제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말씀 안에서 쉼을 얻는 안식입니다 (콘템플라티오). 안식은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이 말씀을 읽었다면 이제부터는 말씀이 자신을 읽도록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집착이나 이기심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서 온전히 평온함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매일같이 위의 네 가지 단계를 모두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을 자세히 읽고, 마음에 깊이 다가온 말씀을 꼭 붙잡고 기도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그때 살았고 힘이 있는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 위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2) : 말씀읽기

“배우고 자라가는 교회”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통한 배움과 자라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읽고 먹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나누고,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4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힘이 있고, 말씀이 우리를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검보다 더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에 양날이 선 검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할 정도로 대단한 무기였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검’에 비유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강력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상한 골수와 영과 관절을 찔러서 폐부를 드러내고 새롭게 해줍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단순히 글자(letter)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영(spirit)입니다(고후3:6).

성경을 어떻게 읽으면 이 말씀이 글자가 아닌 영이되고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을까요?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배우고 익히시면 성경 말씀이 마음에 더 깊이 다가오고, 살았고 운동력있는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성경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임을 깨닫고 젊은 시절에 받았던 연애편지를 읽듯이 읽는 것입니다. 연애편지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어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는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를 씁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반복해서 자세히 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말씀 속에 깃든 하나님의 마음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읽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을 읽을 때는 마음에 다가오는 구절이나 표현들에 줄을 긋거나 따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금세 잊어버립니다. 줄을 그어놓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쉽고, 읽은 말씀을 따로 기록하다보면 그 순간 말씀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말씀을 눈으로 읽지만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놓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읽는 것과 동시에 성경을 쓰시는 것도 적극 권장합니다. 어떻게든지 읽은 말씀을 마음속에 소중히 담아놓아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반복해서 읽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개역성경으로 읽는 것과 새번역으로 읽는 맛이 다르고, 한글 성경으로 읽을 때와 영어 성경으로 읽을 때가 다릅니다. 같은 말씀을 읽어도 연초에 읽는 말씀과 연말에 읽는 말씀의 맛이 다릅니다. 말씀은 우리의 상황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한번 읽고 마는 것은 식사를 한번 만 하고 그만두는 것과 똑같습니다.

넷째,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성경읽기에서도 폭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읽는 것보다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큐티)을 가지시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습관화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라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을 때 성경이 생명의 양식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하나님 말씀을 자세히/깊이 읽으면서 주님의 사랑을 느껴봅시다. -河-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1) : 배움

올해 우리 교회의 키워드는 “배움”입니다. 만물 가운데 사람은 가장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서 완전히 성장하고 성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가운데 배우고 익히는데 상당 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마치는데 20년이 소요되고 요즘은 대학교육까지 의무처럼 되었으니 학습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특징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살면서 배워야 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배워야 하고, 성숙의 길로 나가기 위해서 배움이 꼭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배움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배워지는 것은 거의 없고 에너지를 들이고 때로는 물질을 투자해서 배워야 합니다. 노력하는 것만큼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배움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배우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지겨운 마음이 들지만 배움의 끝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또한 배움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것을 깨우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배움이 깊어지면 인격이 성숙해지고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배우는 학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는 책의 종교라고 말할 정도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은 성경에 들어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배움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손길과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쌓여갑니다.

올 한해 우리의 배움이 깊어지고 넓어지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떼어놓기로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제공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공부는 함께 할 때 효과가 배가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꼭꼭 씹어서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대로 행함으로 말씀의 능력과 은혜를 깊이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 하나님의 마음과 손길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이야말로 성경 다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성도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과 이웃을 우리의 스승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책인 셈입니다. 겸손하게 그리고 마음을 열면 최고의 스승들이 가정에 교회에 그리고 우리들 주변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참빛 교회 식구들 간에 풍성한 교제와 깊은 배움이 있길 원합니다.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북돋아주면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배우고 자라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풍성함을 누리는 참빛교회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