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속의 교회들 (1) : 안디옥 교회

지난 3주에 걸쳐서 구약성경 시편 116편을 살펴보았습니다. 죽음의 위기까지 몰렸던 이름도 없는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함으로 구원받고 그 은혜를 백성들 앞에서 간증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평생에 기도할 것과, 세상에 살 때에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갚을 것을 다짐합니다. 이처럼 지난 세 시간에 걸쳐서 살펴본 시편 116편은 구원의 하나님을 만난 한 개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앞으로 5주에 걸쳐서 사도행전 속에 나타난 교회들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인의 신앙만큼이나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신앙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함으로 교회들이 세워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능력 있는 사도들로 변화됩니다. 이들이 전하는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갔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와 땅 끝까지 전파됩니다. 이 모든 복음전파의 사역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은 사도바울이 세 번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의 주요도시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바울이 세운 4개의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과 바울을 파견하면서 본부 역할을 담당했던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핍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들은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초대교회들이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무엇보다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참빛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고,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힘과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 다음으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안디옥은 오늘날 터키의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로마제국의 3대 도시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는 등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 전했는데 이들이 안디옥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는 여러 인종들이 함께 어울려 세운 교회였습니다. 여기는 예루살렘에서 피신 온 유대인들은 물론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과 헬라인들이 한 마음으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웠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라는 선하고 성령충만한 사도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말씀에 굳게 선 교회였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실라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등 구제와 선교에 앞장섰습니다. 무엇보다 안디옥 교회에서 비로소 제자들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려는 진짜 신앙인들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밖 외국에 세워진 이민교회,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다양성, 구제와 선교에 앞장서면서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안디옥 교회야 말로 우리 참빛 교회가 표본으로 삼아야 할 교회임에 틀림없습니다. -河-

서원을 갚으리로다

시편 116편에 대해서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꼼짝달싹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세상을 향해서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정도의 극심한 회의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려주세요”라는 외마디의 처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시편기자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경험을 한 시편기자는 성전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기에“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결심합니다. 사는 날 동안 기도의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체인입니다. 우리들도 시편기자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시편기자는 “내가 생존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고 결심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인생길을 걷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러한 결단은 시편기자의 확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인생에 희망의 빛이 전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세상살이가 서럽고 힘이 들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셨습니다. 실수를 했든지 아니면 걸림돌에 걸렸든지 넘어질 때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했기에 세상사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시편기자처럼 고백하기 원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행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같은 말씀이 오늘 본문에 두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14절과 18절). 시편기자는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잔을 드는 것이지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약속(서원)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원을 갚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듯이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것을 모두 실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들은 기도할 때 여러 가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면 그 모든 것을 잊고 자기 마음대로 살 때가 많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하나님 앞에서 드린 약속을 지키겠다고 결심합니다. 여기서 서원을 갚는 것은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편기자는 감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나님 백성의 행복한 삶입니다. 평생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사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시편 116편에 대해서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편기자는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났습니다. 그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사망의 줄이 그를 꽁꽁 둘러맸습니다. 죽음의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마저 버림받았습니다. 그가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 끝”이라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때 시편기자에게 남아 있던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그는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한없이 낮아졌습니다. 우리가 종종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손들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한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외마디 기도였습니다: “아- 주님, 살려주세요!”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우리를 모두 이해하시는 하나님께서 시편기자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때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고백을 합니다.:“내가 저를 사랑하도다.” 그리고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다짐하지요. 시편기자의 고백은 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곳에 모인 예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했던 간증입니다. 그의 간증을 듣고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가 새로운 생명으로 회복된 것을 보고 성전에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시편기자는 성령충만합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기에 자신을 향해서 독백처럼 명령합니다.:“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7절).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세력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과거의 고통을 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을 누리자는 결심입니다.“후대하셨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주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간증입니다.

8-9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금 회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살려주셨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사라지게 하셨고, 넘어지려는 순간 잡아주셨습니다.“아- 주님, 살려주세요”라는 외마디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평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노라고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2절 말씀에서는 평생 동안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는데 9절에서는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합니다. 

우리들도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길을 모색하면서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건져주십니다. 하늘의 평안으로 그를 감싸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입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 이 은혜에 들어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시편기자처럼 고백하기 원합니다:“내가 살아있는 동안 주님 따라 살겠습니다.”-河-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엊그제 신문에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 대한 소개가 실렸습니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것을 요청하지 않았고 그냥 와서 편하게 명상하고 마음을 수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그 종교로 귀의하고 그렇지 않아도 마음 편하게 모임에 참석하면 된답니다. 요즘 세대에 잘 맞는 종교적 처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종교를 믿는 것은 일단 편할 것입니다. 내가 편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 기독교는 신자들에게 확실한 믿음과 분명한 결심을 요청합니다. 우선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보다 더 확실한 길이 없기에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요청합니다. 물론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생각하고 마음이 열렸을 때 지난주에 배운 것처럼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음으로 신앙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온 교우들 앞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인격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교에서 확실한 믿음과 결심을 요청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실제로 체험하고 나면 저절로 믿음이 견고해 지고 하나님만이 구원자라고 스스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신앙의 진수인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기도입니다. 지난 번 연속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접촉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세 주간에 걸쳐서 살펴보게 될 시편 116편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한 시편기자가 성전에 예배하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고백하는 간증이자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지요.

그렇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난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 1-2절에서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고백입니다.:“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맞습니다. 우리들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순간순간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맞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고난도 맞이합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빛으로 오신 예수님

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은 구약 성경이 시작되는 창세기 1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되기 이전에 세상은 공허했고 어둠이 깊었습니다. 하나님께서“빛이 있으라”말씀하시니 빛이 생겼고 그때부터 어두운 세상이 빛으로 밝아졌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로고스”인데 이것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진리”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창조될 때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창조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처럼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말씀과 더불어 중요한 단어가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생명”과“빛“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두움과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1장 9절에서는 예수님을“참 빛(true light)”으로 소개합니다.:“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말씀은 첫째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비추는 유일하신 빛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이 여러 개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세상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심을 우리 모두는 똑같이 고백합니다. 둘째로, 예수님만이 진리이심을 보여줍니다. 참 빛을 다른 말로 ”진리의 빛“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이 진리라고 했듯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빛도 진리입니다. 진리 안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우리들의 신앙은 물론 삶도 밝아질 수 있습니다. 셋째로 참 빛 되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각 사람을 비추십니다. 예수님의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빛 되신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인 것을 뜻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빛 되신 예수님을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어두움의 세력이 모두 물러날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우리 교회 새 이름은 바로 요한복음 1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참 빛은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와 각 성도님들을 빛으로 밝혀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빛 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 속에 생명의 빛으로 나가길 원합니다. SF 참빛 교회로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 위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진리로 임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길 기도합니다.-河-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2)

올 해 우리 교회 표어인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는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통해서 표어의 첫 번째 부분인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무엇보다 교회 식구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표어의 두 번째 부분인 “섬김”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예수님으로부터 임했듯이, 그리스도인의 섬김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빌립보서 2:5-8절에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종의 형체, 즉 인간의 몸으로 입고 오신 성육신 사건을 언급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것이 곧 섬김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높은 곳에서 낮은 자의 자리로 내려오셨듯이 우리들 역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교만해서는 섬길 수 없습니다. 높은 자리를 고집해서도 섬길 수 없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신 예수님의 섬김을 우리들도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섬김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섬김은 구원사역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섬김의 삶을 살 때,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로 돌아 올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매시고, 대야에 물을 떠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섬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발을 씻긴 놀라운 순간입니다. 발을 모두 씻기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내가 주와 또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예수님께서 친히 섬김의 본을 보이심으로 우리들에게도 섬김의 삶을 살 것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섬김 속에서 자신은 죽고 온전히 하나님과 이웃만이 드러납니다. 섬김은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올바른 섬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섬김의 삶을 기억하시고 은밀히 갚아주십니다. 섬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시고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행복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섬기는 서머나 식구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사랑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연초에는 이삭에 대한 연속설교를 하느라 표어에 대한 말씀을 나눌 기회가 없었습니다. 물론 틈틈이 올해 표어를 언급했었지만 늘 부족했습니다. 이제 6월이 지나고 2011년도 하반기를 맞게 됩니다. 지금까지 잘 하셨지만 하반기에는 더욱더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두 주 동안 올 해 표어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핏값으로 사신 거룩한 모임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로 비유합니다(엡4:15-16). 각각의 지체가 모두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각자 맡은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건강한 지체가 건강한 몸, 곧 튼튼한 교회를 만들 것입니다.

교회의 사역을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worship), 복음과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는 구제와 선교 (Evangelism),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양육(education), 성령 안에서 서로 사귀는 교제(love)입니다. 교회는 이상의 네 가지 – 예배, 구제와 선교, 양육, 교제-를 통해서 균형 있게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샘(WELL)인 교회로부터 생명수가 세상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이 모든 교회의 사역은 사랑과 섬김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교회를 이루는 뿌리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교회는 세상의 사교단체 또는 자선단체와 똑같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물론 교회도 소망가운데 거합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 하우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충만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 위에 사랑이 더해져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교만이나 위선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이 빠진 소망은 구원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엄격한 잣대만을 제시합니다. 사랑은 우리들 신앙에 힘을 주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신앙의 꽃이요 열매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삶 속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거저 받은 것이기에 우리들 역시 이웃과 세상에 그냥 나눠줘야 합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도“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눠야 합니다. 그 중에 먼저 믿음의 가정들, 우리 서머나 식구들께 사랑을 나눠줘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행함과 진실함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교회로 자라가길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河-

기도실천

기도에 대한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는 오늘까지 6주에 걸쳐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성도님들의 신앙은 물론 우리 교회 사역에 기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교회에 기도의 열기가 뜨겁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함께 모여서 기도할 시간과 장소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대신에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에 5분씩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부탁드렸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실천하고 계시는 줄 압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제목이 이루어지는 것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나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과 이웃으로 기도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가 기복신앙이나 자기최면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바라보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과 기도 가운데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기도시간에 만나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제목들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를 위해서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겸손은 하나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는 진정한 회개가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되었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겸손한 기도 속에는 삶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서머나 식구들께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시길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우리들은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살길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연결시켜주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속으로 데려갑니다. 기도하지 않고 신앙이 자랄 수 없습니다. 기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첫 시간에 배운 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믿어지는 하나님을 꼭 붙잡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적어도 기도시간 만큼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세상의 욕심과 자랑 그리고 교만도 내려놓고 하나님과 단둘이 골방에서 대화하셔야 합니다.

실제로 무릎 꿇고 기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진실 되게 기도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것을 세 번씩 명령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마 7:7). 기도에 대한 삼중명령은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애타는 부탁입니다.

 또한 세 가지 명령이 기도에 대한 각기 다른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기도를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문을 열어주실 때까지 두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경우에 맞게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선한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분명히 체험하시길 바랍니다.-河-

겸손의 기도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또는 사귐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기도가 얼마나 커다란 특권인지 깨닫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들의 마음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기도는 자기최면이나 허공에 외치는 한탄에 불과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서머나 식구들 신앙 가운데 든든히 자리 잡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기도드리는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50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시 50:12)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되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은혜로 없애주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구원자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우리의 기도가 허공을 치고 힘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식었다는 표시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로 나올 때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성품, 손길, 역사를 묵상하면서 하나님 품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하 7장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긴 기도(역대하 6장)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이 기도의 집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솔로몬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드리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장 15-16).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항상 생각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라면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겸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들의 망가진 삶을 고쳐주심을 기억하십시다. 겸손히 주님 앞에 나가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河-

믿음의 기도

앞으로 3주 동안은 기도에 꼭 필요한 덕목들과 기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기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기도를 두고 자신의 바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도의 지경은 넓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기도까지 기도의 지경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간구”입니다. 기도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기도를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대화라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우리의 기도제목만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양방향 소통인 셈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신비로운 체험입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기도는 허공에 대고 외치는 하소연이나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게 되고, 우리들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 품속에 거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19장의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올라가서 당시의 강국인 앗시리아 왕이 보낸 선전포고문을 펼쳐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믿음은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펼쳐놓은 선전포고문을 읽을 수 있으시고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왕하 19:16). 하나님을 향한 히스기야 왕의 믿음은 이처럼 실제적이었고 확실했습니다. 그에게 이정도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죽을병에 들었지만 기도함으로 15년의 생명을 연장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 말씀에서도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깨우쳐 줍니다. 여기서 믿음은 단지 우리가 기도한 것이 응답될 것이라는 자기 최면식의 믿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믿음에 반대되는 표현인 의심이라는 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의심 역시 우리가 기도한 내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그 기도가 응답되기가 힘이 듭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있습니다.:“오직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라”(6절).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입니다. 바람이 불면 바닷물은 한 군데 있지 못하고 요동을 칩니다. 의심하는 마음은 이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지 않고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둘째로 의심을 “두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두 마음은 하나님의 존재 유무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믿음의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