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보니게 여인 (1)

– 두로와 시돈

 

오늘부터 마가복음 7장(마태복음 15장)에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을 살펴보겠습니다. 수로보니게는 시리아-페니키아라는 지명으로 갈릴리 북쪽에 위치한 해안 지역입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두로와 시돈이 속한 곳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서로 22마일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해안 도시로 현재는 레바논에 속해 있습니다. 시돈은 창세기에서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 가운데 가나안의 아들로 등장합니다(창10:15). 마태복음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가나안 여인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마15:21-28). 예수님 당시에도 두로와 시돈은 가나안 즉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지역이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구약시대부터 해상 무역에 능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을 때 두로에서 백향목을 비롯한 목재와 기술자를 수입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선지자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핍박하고 바알 종교를 전파했던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은 시돈왕의 딸이었습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두로와 시돈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예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막3:8),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두로와 시돈에서 복음을 전하셨다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것이라고 탄식하셨습니다(눅10:13). 수로보니게 여인이 바로 이곳 출신입니다.

 
두로와 시돈이 본문의 지리적 배경이라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등장하는 마가복음의 전후 문맥도 특별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무시하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했습니다(막7:5). 그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의 전통을 지키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고 정곡을 찌르셨습니다. 사람의 몸, 즉 겉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7:19-20).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께 나온 수로보니게 여인이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돌아오셨을 때, 귀먹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에바다(열려라)” 외치시며 고치십니다(막7:31-37).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종교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에 비하면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보는 안목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로 표현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참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가기 원합니다. -河-

 

회복 (6)

크고 은밀한 일

 

예레미야서(렘30-33장)를 통한 “위로와 회복의 말씀” 마지막 시간입니다. 처음 연속 설교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 백신 접종을 마친 우리 지역에 팬데믹의 끝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지역의 감염자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다시 실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습니다.

 

처음에 예레미야 말씀을 준비할 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은 우리 모두에게 항상 필요합니다. 설령, 팬데믹이 연장되더라도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세상이 깜깜해질수록 우리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함도 알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위로의 말씀은 30-31장에서 약속의 말씀을, 32-33장에서는 왕궁 시위대 뜰에 갇힌 예레미야가 그의 삶을 통해서 회복과 소망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힌 것은 바빌론에 포로가 된 예루살렘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포로 잡혀갈 것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모든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의 삶이 곧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32장에서 예레미야가 고향 아나돗에 있는 밭을 샀습니다. 친척의 밭을 사야 하는 기업 무를 자(친척의 가장 가까운 후견인)였지만, 나라가 망하는 순간에 밭을 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예레미야가 고향에 밭을 사서 계약서까지 남긴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작은 증표였습니다.

 

비록 나라가 망하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결국에는 회복시킬 것이라는 약속이 오늘 본문인 33장까지 이어집니다. 예레미야가 왕궁 시위대의 뜰에 갇혀 있을 때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32장의 작은 증표에 이어서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리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라가 망하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믿고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윗의 가지에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올 것까지 준비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현재의 어려움을 이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기대하기 원합니다. -河-

회복 (5)

내 밭을 사라

 

팬데믹의 꼬리가 매우 깁니다. 델타 바이러스로 다시 먹구름이 밀려오는 상황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끝이 어디인지 막연하니 지치고 힘이 듭니다.

 

예레미야서 한가운데 있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30-33장)을 나누면서, 지친 우리 몸과 마음에 회복을 꿈꾸고 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아무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그곳에서 새 살이 돋게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새 언약을 약속하면서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마음에 새겨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다시 세우시는 회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앞으로 두 주간동안 살펴볼 예레미야 32-33장은 앞에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부연설명이자 확증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32장은 예루살렘이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이미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예레미야는 왕궁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빌론에 항복하고 일단 예루살렘 성전과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무시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넘어갈 것이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빌론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예레미야가 현실을 직시한 것인데, 마지막까지 시드기야를 비롯한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애써 거부합니다. 자기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매우 어려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에 있는 예레미야의 숙부 하나멜이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자기 밭을 사라고 하면 그것을 사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기업 무를 자(구원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시점에서 땅을 사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값을 지불하고 땅을 사고, 거래 계약서를 두 개 만들어서 보관합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행동을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알려주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 약속이 틀림없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신앙이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삶이요 실체임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구체적인 확증과 실천, 삶이 동반된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河-

회복 (4)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베풀어 주시는 회복의 사건입니다. 또한 예레미야서의 회복과 소망의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를 넘어서 메시아 예수님의 오심(렘33:15)과 마지막 종말과 더불어 임할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내다보고 있습니다.

 

위로와 회복의 말씀 두 번째 장인 예레미야 31장은 하나님께서 재차 확인해 주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31:1).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딴 섬처럼 외롭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니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십니다. 마음에 새겨 주시는 지울 수 없는 새 언약입니다(렘31:31-34).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미 모세와의 언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 언약이 폐지된다고 하셨건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언약을 제시하십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새겨 주시는 완전한 새 언약입니다.

 

모든 것이 “다시”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31장 1-7절에 “다시”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4절).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아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왔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20절)이라고 부르실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애틋하게 생각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20절)는 말씀 속에서 비장할 정도의 하나님 사랑을 발견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였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뜨겁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이스라엘을 위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똑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회복 (3)

– 너를 고쳐주리라

 

지난 두 주 동안, 예레미야 선지자를 소개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순간에 목에 멍에를 메고 눈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였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과 예레미야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예수님 속에서 예레미야를 발견했고, 예레미야가 예수님을 닮은 선지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예레미야서 한가운데 위치한 “위로와 소망의 말씀”(30-3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 말씀드렸듯이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심판 예언입니다.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예언 한 가운데 “건설하고 심게 하는” 예언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렘30:3).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은 예루살렘 중심의 남유다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앗시리아에게 멸망했던 북이스라엘을 유다와 함께 언급하는 것이 특별합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온전한 회복을 약속한 것입니다. 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사람들은 겁에 질려 떨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계획을 이미 세우셨고 그것을 글로 기록하기를 예레미야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희망의 빛줄기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렘30:12).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고 재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렘30:17).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새로운 도시를 건축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문의 하나님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넘어서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까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희망이 필요합니다. 우리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사랑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간절히 구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