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기도

이번주 토요일에는 남선 교회 주관으로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스탠포드 근처 공원으로 야유회를 갑니다. 작년의 버클리 마리나에 이어서 이번에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나들이입니다. 우리 교회는 갓 태어난 아기들부터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지만 90이 넘으신 권사님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려서 예수님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수십년전에 미국에 오신 권사님들부터 최근에 미국땅을 밟으신 식구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계십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시는 교인들부터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오시는 분들까지 사시는 지역과 하시는 일도 다양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들이 한마음으로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지역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자 특권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편지를 쓰는 빌립보 교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간직했고, 교회를 세운 사도바울은 물론 모든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처음부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함께 하시고 빌립보 교회의 사역을 완성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감사와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울이 현재 감옥에 갇혀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각별한 인연으로 세워진 교회였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는 바울의 고백이 특별합니다. 십자가위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빌립교 교회와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역시 한결같이 바울 편에 섰습니다. 바울의 복음전도에 물심양면으로 동참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변함없이 바울을 지원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나누는 사랑과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편지의 인사말(1-11절)을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사랑 안에서 예수의 날까지 복음을 지킬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의의 열매”는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것을 추구함으로 의의 열매를 맺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河-

첫날부터 이제까지

세상 속에 하나의 교회가 세워 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빌립보에 갔지만, 복음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주님의 때를 기다렸고 루디아라는 최초의 교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때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계기가 되어서 감옥을 지키던 간수를 두 번째 교인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믿음과 기도로 끝까지 견뎠을 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마음에 자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을 시기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흐트러뜨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서 더 이상 바울을 사용하지 않고 그가 전한 복음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바울을 깎아내리면서 그릇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옥에서 전해 들은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고, 올바른 믿음과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빌립보 교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한시도 빌립보 교회를 잊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진 것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왔고, 어려운 중에도 예수님을 믿고 자라가는 빌립보 교인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쁨과 감사로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잊지 않고 복음 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악한 무리들이 들어와서 유혹했지만, 바울로부터 전해 받은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은 신앙입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신앙은 하나님 안에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처럼 한결같은 신앙을 갖고 사는 빌립보 교인들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6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도 착한 일을 시작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계획하신 선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하나님의 계획에 변함없는 신앙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가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담대함이요 확신입니다. 처음부터 이제까지 한결같은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축복 선언이 우리 참빛 교회와 참빛 식구들께 그대로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빌립보 교회

13년 전 샌프란시스코에 올 때, 베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지인들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임지로 보내신다는 믿음으로 무작정 샌프란시스코에 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보니 지역의 환경은 물론 목회 상황이 제가 생각하던 것과 매우 달랐습니다. 저의 부족함에 낯선 환경까지 더해지니 목회가 쉽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을 믿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걸어가는 여정에서도 예상치 않은 장애물을 만납니다. 그때는 누구나 지치고 낙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결국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믿고 걷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는 주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게도냐 왕 빌립 2세가 세웠습니다. 금광이 있고 농업과 상업이 발달한 살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특히,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 대제가 빌립보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에, 특별 구역으로 지정하였고 퇴역 군인들이 이주해서 살기도 했습니다. 빌립보는 이처럼 전통과 명성을 두루 갖춘 도시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현재의 유럽인 마게도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빌립보에 도착했지만, 복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빌립보라는 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도착한 임지였는데 그만 어려움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문을 두드렸고, 염색 산업이 발달한 두아디라에서 빌립보에 이주한 루디아라는 옷감 장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음에도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다가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발에 쇠사슬이 매인 채로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렵게 열린 복음의 문도 닫히고 바울과 더불어 예수님의 복음도 갇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기도하고 힘차게 찬송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며 풀려나게 되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빌립보 교회였기에 바울은 그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사랑하는 바울의 심정과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 원합니다.-河-

다윗의 기도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은 구약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구약성경 속의 기도는 개인을 넘어서 이스라엘 전체의 외침이었기에 우리 기도생활에 도전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처음 시간에는 아기를 갖지 못한 채 마음고생을 하던 한나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는 깊은 내면의 기도를 배웠습니다. 한나는 더 이상 참기 힘든 다급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먼 나라로 도망가던 요나가 극적으로 구원받은 후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요나가 갇힌 물고기 뱃속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그곳에서 기도할 때 물고기 뱃속이 하나님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세 번째 시간인 지난 주일에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외롭고 절박한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임을 알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탄식했고, 하나님과 논쟁했고, 심지어 다시는 예언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다시 힘을 얻었고 선지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기도가 아니었으면, 예레미야 역시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힘겨운 상황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의 일생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목동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물리칠 때만 해도 다윗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로 10여 년을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왕의 자리에 올랐고 왕권도 견고해져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을 때, 전쟁에 나간 신하의 아내를 범하면서 다윗에게 고난이 닥쳤습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다윗 역시 기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도했습니다. 시편 3편은 아들 압살롬이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서 밤중에 피난 가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그 비참한 순간에 다윗 역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소리 높여 기도합니다. 물고기 뱃속의 요나처럼 구원은 주님께만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번에 살펴본 네 명의 구약인물들은 힘든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나와 요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고, 예레미야나 다윗은 그들의 일상이 기도였습니다. 우리도 남은 한해 기도로 살기 원합니다.-河-

예레미야의 기도

구약의 인물을 중심으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는 “하나님과 깊은 대화”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선지자 요나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듯이 우리도 각자의 상황에서 주님을 찾을 수 있고 그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 대화하고 교제할 때, 다양한 방식이 있듯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리 내서 기도하고, 침묵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형식을 갖춰서 기도하고, 일상적인 대화식으로 기도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기도하고, 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기도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도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특권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기도합니다. 시작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일하는 중간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일을 끝낸 후에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신앙과 삶의 길을 걷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말씀과 함께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오늘 살펴볼 예레미야 선지자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조국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무너지는 순간을 끝까지 함께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살 수 있다고 온 힘을 다해서 외쳤지만,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라와 민족이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달콤한 말로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까지 득세하면서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까지 예레미야를 핍박했습니다.

 

선지자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와서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와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고 예언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고,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남은 5월을 기도로 마무리하고 기도로 새달을 맞이합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