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즈베리의 지난 한 달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예배에서 소개했듯이
컨터키주 윌모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시작된 부흥 운동으로
미국은 물론 부흥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애즈베리라는 대학 이름은
영국에서 미국에 건너온 감리교 선교사로
훗날 미국 감리교를 세운
프란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 1745-1816)에게서 왔습니다.
오하이오주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신학교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한 달 전인 2월 8일,
애즈베리 대학교 채플이 끝나고
함께 모여서 밤늦게까지 기도하던 20여 명 남짓의 학생들이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쏟아붓는(outpouring) 은혜였습니다.

 

캠퍼스에 있던 학생들이
마치 플래시 몹(flash mob)을 하듯이 채플로 모였고
이렇게 시작된 애즈베리 채플 모임은 수만 명이 찾아오는
캠퍼스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애즈베리 현장을 찾은 분들과
참여한 학생들의 방송 인터뷰를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시작이었습니다.
특정 부흥강사나 리더가 의도한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현장 집회를 통해서
다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설교를 듣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뜨거운 부흥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일어난 영적 부흥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애즈베리 대학은 이름 그대로 크리스천 대학이고
일주일에 3번 이상을 채플 출석이 의무라고 합니다.
1970년에도 비슷한 영적 부흥이 일어나서
일주일 동안 예배와 기도회를 했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요즘 시대에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부흥이니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자연스러운 시작과 진행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부흥을 사람이 계획하고 의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나치면 조작(manipulation)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번 애즈베리 부흥 운동은 수십 명이 남아서 기도하다가
경험한 말 그대로 주님께서 찾아오신 사건이었습니다.

 

2.
CNN을 비롯한 주류 언론이 보도할 정도로
애즈베리 부흥(Asbury Revival 2023)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고 지속될지 궁금합니다.

 

애즈베리 대학 당국과 많은 사람이 기대하듯이
영적 부흥이 각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뜨거운 냄비가 금세 식듯이 부흥이 삶으로 내면화되지 않으면
자칫 한 번의 뜨거운 경험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 17세기 영적 대각성을 비롯한 미국의 부흥 운동은
백인 중심의 복음주의권이 주도했습니다.
회개와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회 정의와 같은 세상의 문제는 무시했습니다.

 

애즈베리 대학교도 공화당이 압도적인 켄터기주에 있습니다.
트럼프 시절 부통령이었던 마이클 펜스는 소셜 미디어에
자기도 켄터키 애즈베리에서 회심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뜨거운 부흥의 불길이
온 미국과 전 세계로 순수하고 온전하게 퍼져 나가길 기도합니다.

 

3.
사순절을 맞는
우리에게도 영적 부흥을 기대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집중하고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일하십니다!!!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시편 69:32)

 

하나님
주의 임재, 주의 부흥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3. 9 이-메일 목회 서신)

새봄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은 비가 많이 내리고
겨울 폭풍도 찾아오고
심지어 베이 지역의 높은 산에 하얀 눈이 쌓였습니다.
샌프란에 온 지 올해로 18년째인데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어쩌면 샌프란에도
약간의 눈이 내릴 수 있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우박으로 바뀌었지요.

 

찾아보니 샌프란에도 눈이 내린 적이 몇 번 있습니다.
1882년과 1887년에는 3인치가 넘는 눈이 내렸고,
가장 최근 1976년에 약간의 눈이 내렸답니다.
눈이 내린 집 앞에서 썰매를 타는 사진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 겨울 폭풍이
기후 위기의 맥락에서 진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눈이 온 적은 있으니까요!
단지 경각심을 갖고 지도자들이나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우면
집이 없는 분들이 염려됩니다.
물가가 오르니 춥고 배고픈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우리 사회 음지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께
정책과 도움의 손길이 임하길 바랍니다.

 

2.
그래도 어느덧 3월을 맞았습니다.

 

우리 지역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 날씨가 차지만,
교회 앞에 자두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봄입니다.

 

너무 움츠리지 말고
새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순례길, 함께 걷는 순례길,
푯대를 향해서 앞으로 나가는 길이 되길 바랍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3.
2023년 새봄을 맞아서
그리고 다시 못 올 2023년 사순절 길을 걸으면서
우리 모두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어 걷는 봄 길로 살기 원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4-6)

 

하나님
예수님을 따라
길을 만들고 길이 되는 참빛 식구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3.2 이-메일 목회 서신)

순례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존 번연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중심으로
올해 표어인 <푯대를 향하여>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 모두 길을 걷는 순례자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말이 통하고 생각이 같은 길동무를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믿음과 소망이라는 진실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판치는
허영의 도시에서 믿음이 순교합니다.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야 함을 친구 믿음이
크리스천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소망은 크리스천과 함께 천국에 들어갑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소망을 잃지 않고 푯대를 향해서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소망을 친구로 삼은 크리스천은 행복한 순례자였습니다.

 

크리스천이 믿음과 소망 두 친구와 나눈
대화와 우정이 곧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고
그 가운데 사랑이 최고입니다.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2.
지난주 점심 친교 시간,
각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한 집사님이 설교를 들으면서 느낀 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순례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섰을 때,
어깨에 지고 있던 짐이 풀리고 은혜를 체험했으면
거기서 끝나거나 그 은혜가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유혹과 어려움이 계속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생명수 강가에서 쉼을 갖고 떠나는 크리스천과 소망에게
절망과 자포자기가 위력을 발휘하는
의심의 성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집사님께서 귀한 발견과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세심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3.
우리가 알다시피
신앙이나 인생이 말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1+1=2)처럼 공식화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유혹과 위협이 이곳저곳에 숨어있고 계속 닥칩니다.
엉뚱한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도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많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을 배웁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순례길 곳곳에
쉼터, 해석자의 집, 아름다운 집(교회), 기쁨의 산
생명수 강가와 같은 ‘미리 보는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힘으로 순례길을 가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 각자의 순례길을 걷습니다.
누구도 걸어줄 수 없는 독특하고 유일한 길입니다.
“파라-클레토스(옆에서-부르시고 이야기 걸어 주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심도 믿습니다.

 

올 한 해 근사하게 말 그대로 성공적으로
푯대를 향한 순례길을 걸어갑시다.

파이팅!!!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2)

 

하나님,
주님과 함께 걷는 순례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 23 이-메일 목회 서신)

이름짓기

좋은 아침입니다.

 

1.
2월 6일 튀르키예-시리아에 강도 7.8의 지진이 일어나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마켓 스트릿은 물론
샌프란시스코가 폐허가 되었는데, 그때 지진의 강도가 7.8이었습니다.
1836년부터 현재까지 베이지역에 7 이상의 지진은 4번 있었습니다.
최근의 지진은 권사님들도 기억하시는 1989년입니다.

 

기록만 보아도 이번 시리아-튀르키예 지진이
얼마나 큰 재난인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온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돕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우리도 지난주에 구호품을 보내려고 하다가 일찍 마감되어서
다른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돕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작은 힘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2.
“튀르키예(Türkiye)”는
우리가 잘 아는 “터키(Turkey)”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튀르키예”는 “터키인의 땅” 이라는 뜻으로 이미 터키 국민들은
자신을 튀르키예라고 불렀고, “용맹한”이라는 의미도 있답니다.

 

반면, 터키는 영어 명칭으로 칠면조를 연상시킵니다.
게다가 어리석은, 겁 많은 등의 뜻을 갖이 있다니
터키 국민들이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합니다.

 

한국 언론은 대부분 “튀르키예”로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영문 명칭 그대로
“터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에도
<터키(튀르키예): Turkey(Türkiye)>”라고 표기해 놓았습니다.

 

사소한 일 같지만, 어려움을 당하는 튀르키예 분들이
미국의 언론을 접한다면 마음이 상할 것 같습니다.

 

3.
이름(Name)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여럿 등장하는데
각각의 이름에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를 에덴동산을 관리하는 동산지기로 임명하신 후에
각종 짐승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짐승들에게
각각의 이름을 주어서 그들이 고유한 생명체임을 드러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대로 짐승의 이름을 지으면서
에덴동산의 모든 동물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아담이 대신했으니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조연으로 참여한 셈입니다.

 

이름을 짓는 것,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
– 특별한 사랑의 행동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일을 위임받은 인간에게 주어진
계속되는 창조 사역입니다.

 

4.
재난을 당하면 희생자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그때 희생자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름에는 고유함과 특별함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언론이 <튀르키예>라고 부르지 않고
Turkey라고 보도할 때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종종 땅이 흔들리는 동네에 살아가기에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이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가족과 친지를 잃은 분들께 하늘의 위로가
집과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께 실제적인 도움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1)

 

하나님,
말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있는 분들의 위로와 힘이 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 16 이-메일 목회 서신)

그리스도의 편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 시편 23편을 설명하면서
양의 시력이 -10에 가까워서 1미터(3ft) 정도 앞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진으로 재난 가운데 있는 터키(튀르키예)에서
목자들이 한눈을 판 사이에 양 한 마리가 절벽으로 뛰어내리자
500여마리의 양들이 따라서 절벽으로 뛰어내렸다는 예전 외신 보도도 생각났습니다.

 

앞에 가는 양들의 궁둥이만 보고 가니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목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양뿐만 아니라
우리도 한 치 앞을 알지 못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지만,
예측불허의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서가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신앙의 길을 갑니다.
믿음이 주는 유익이고 힘입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재를 믿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요,
믿음은 우리 속에서 생기는 ‘느낌’일 뿐이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실재와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께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해 내는 통로가 되길 바랄 뿐이지요.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도 요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요일 4:12)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도 기억합니다(마5:16).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2.
“어떻게 살 것인가?”
– 우리 모두의 고민입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도 우리 몫이니
더욱 고민이 깊어집니다.

 

억지로 할 것이 아닙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것도 아닙니다.
자칫 신앙이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지고 가던 어깨 위의 짐이 되거나
겉으로만 빛과 소금인 척하는 위선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계속 생각하고
예수님의 흔적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길 기도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3.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몸)를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필요 없는 것, 예수님을 따라 사는데
거추장스러운 것을 비우고 덜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운 곳을 예수님 마음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고 자라가는 존재(being)의 채움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순간순간 많이 생각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매사에 던져야겠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세상에 펼쳐 보이기 원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ㅇ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2)

 

하나님,
우리 생각과 몸짓 어느 한 곳에라도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 9 이-메일 목회 서신)

그라운드호그 데이

좋은 아침입니다.

 

1.
2월 2일 오늘은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 hog day)입니다.
우리식 입춘(立春, 올해는 2월 4일)에 해당합니다.

 

그라운드호그는 다람쥣과에 속하는 설치류입니다.
봄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위로 올라오는데
그날이 바로 2월 2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라운드호그이 땅 위로 올라왔을 때,
날이 맑아서 그림자가 생기면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서 겨울잠을 청한답니다.
그러면 6주 후에 봄이 찾아온다고 믿었습니다.
날이 흐려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으면 곧바로 봄이 찾아왔다고 선언했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을 갖고 입춘, 봄이 찾아왔음을 가늠하는
독일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펜실베이니아에 이주한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이 1800년 후반부터 지키기 시작해서
수만 명이 이름도 신기한 펜실베니아 작은 도시 펑수토니(Punxsutawney)에 모여서
봄 축제를 즐깁니다.

 

동물이 겨울잠에서 깨는 행동을 통해서
봄이 오는 것을 가늠하니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2.
그라운드호그 데이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1993년에 개봉되어서 백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펜실베니아 펑수토니에서 열리는
그라운호그 데이를 취재하러 가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이직을 고려할 정도로 방송국 일에 싫증을 느낀 주인공이
여성 기자와 함께 억지로 취재를 나갔는데
매일 같이 2월 2일이 반복되는 시간 속(time loop)에 갇힙니다.

 

무슨 일을 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2월 2일 그라운도호그 데이입니다.

 

처음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도 나고 짜증이 났지만
사랑하는 여성의 조언대로
반복되는 하루를 피아노를 배우고, 예술작품을 만들어서 자선행사에 참가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두 알고 있으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지루한 일상을 특별한 날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결국 사랑까지 성공해서 아침을 맞았는데
드디어 2월 3일이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특별한 순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3.
유독 베이지역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지난 며칠은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꽤 추웠습니다.
그래도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전쟁, 사건, 사고로 혼란스럽습니다.
물가도 오르고 여기저기서 해고 소식도 들리니
우리 마음도 세상도 아직 겨울입니다.

 

하지만, 그라운호그가 땅을 뚫고 지상으로 나오듯이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일상, 지루한 일상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순간,
사랑을 주고 베푸는 시간으로 채워가는
감사하고 기쁜 하루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편 3:5)

 

하나님,
새 달에도 하루하루가
삶의 기쁨과 경이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2 이-메일 목회 서신)

언제까지

1.
저는 15년째
“좋은 아침입니다”로 시작하는 목요 서신을
참빛 식구들께 보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번은
일부러 “좋은 아침입니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엊그제처럼 총기사고가 났을 때이지요.
어쩌면 목요 서신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서 총기사고가 사라지길,
아니 적어도 통제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설날 전날인 지난 토요일
남가주에 위치한 몬테레이 파크에서
70대 남성에 의해서 11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장소를 옮겨서 또다시 총격을 시도했지만,
한 청년의 용맹스러운 저지로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처음 총격을 가한 곳이 댄스 연습실이었는데
범인이 자주 다녔던 곳이라는 보도에 더욱 놀랐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우리 동네에서 아주 가깝고 우리도 종종 방문하는
해프문 베이(Half Moon Bay) 농장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서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60대 후반의 범인도 농장 두 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범행을 했으니 몬테레이 총기사고와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번 총기 사건을 아시안의 이슈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핑계이고 미국의 문제입니다.
새해 25일동안, 무려 40명이 대량살상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었거든요.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두고 만 보고 있어야하는지요.

 

2.
지난 1월 10일 일리노이 주지사는
21세 이하의 주민은 총기를 소유할 수 없고
살상용 무기와 대용량 탄창(10발 이상)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에 서명했습니다.

 

작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발생한
시카고 하이랜드파크 총기사고 (7명이 목숨을 잃고 46명이 부상을 입음) 이후에
일리노이 주의회와 주지사가 추진한 총기 규제법입니다.

 

그런데 발효되자마자 어떤 사람들(나쁜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이
개인의 총기 소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2조를 위반했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1월 20일에 법 집행을 일단 중지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어렵게 발효된 총기 규제법이 10일 만에 저지를 당한 셈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실상입니다. 안타깝습니다. 화가 납니다.

 

솔직히
우리 같은 범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익단체들의 로비가 워낙 강해서
총기 규제를 위한 법안이 상정되는 것도 쉽지 않으니
투표로 저지할 능력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도움과 긍휼만 구합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이 땅을 고쳐 주시고, 악한 사람들을 벌해 주십시오.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지들께
주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90:13)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 26 이-메일 목회 서신)

율법과 복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예배에서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난한 대장장이집 아들로 태어난 존 번연은
예수님을 믿고 침례교 목사가 되면서
영국 국교회의 핍박을 받고 두 번이나 12년 가까이 감옥살이했습니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우의소설(Allegorical novel)입니다.

 

알레고리라는 표현대로
천로역정의 등장인물과 장소는 각각의 뜻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주인공 이름 자체가
그가 걷는 순례길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길임을 암시합니다.

 

앞으로 두 달여
우리 모두 가야 할 신앙의 순례길을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과 함께 걷기 원합니다.

 

2.
지난주에 살펴본
천로역정 속 해석자(interpreter)의 집에는
먼지가 가득 쌓인 넓은 객실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하인이 빗자루로 방을 쓸기 시작합니다.
쌓여 있던 먼지가 모두 날려서 방이 뿌옇게 변했습니다.
먼지가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다른 하인이 와서 물을 뿌립니다.
먼지가 잦아들고
그다음에는 깨끗하게 객실을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해석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며 또 모든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내면의 부패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Law)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물을 뿌려 준 사람은 복음(Gospel)입니다.”

 

3.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 실체를 보고 깨닫게 합니다.

 

먼지가 바닥에 쌓여 있을 때는 무심코 넘겼지만,
빗자루로 쓸기 시작하니
집안을 가득 채운 먼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이 어깨에 지고 있는 짐도
행위와 공적으로 의롭게 되고 싶어하는 율법의 짐이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 앞에서 내려놓습니다.
율법을 넘어서 복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기쁘고 개운해하든지요!

 

4.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해석자의 설명을 통해서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명확히 배웠습니다.

 

신앙의 길을 가면서
우리가 믿는 것, 행하는 것, 또한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하고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크리스천이 십자가 앞에서 무거운 짐을 벗듯이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사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올 한 해 우리 신앙에 가닥이 잡히고
실제로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하나님,
주님의 은혜 속에 깊이 잠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19 이-메일 목회 서신)

내가 가는 길

좋은 아침입니다.

 

1.
<푯대를 향하여>라는 올 해 표어와 관련해서
새해에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화두가 있다면 “길”입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천로역정>에 관한
연속설교 제목도 “순례자의 길”로 잡았으니
누구나 걷고 있는 인생길, 신앙의 길이 우리 모두의 관심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새로운 길>이라는 시에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는 길을 두고 새로운 길이라고 했습니다.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나는 일상의 길을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상의 그리스도인(Everyday Christian)을 강조하는
우리 교회에 딱 맞는 노래요 깨우침입니다.

 

2023년을 열흘 남짓 살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350여일
아침이 되고 저녁을 맞는 일상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나는 매일 걷는 길입니다.

 

그 길을 새로운 길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이겠습니다.
매일 걷는 지루한 길이 아니라
다시 못 올 오늘 하루만의 길,
말 그대로 새로운 길로 단장하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2.
운동 경기에서
감독이나 코치는 선수들에게
그동안 훈련한 대로 “우리 식의 경기”를 할 것을 요청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지
자기 팀 나름의 페이스를 잃지 말고
자기들 경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전략에 말려들어서 쩔쩔매면
경기 결과는 물론 후유증이 크지만,
자기 방식대로 경기하면
승패에 상관없이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흡족하기 마련입니다.

 

3.
우리가 걷은 인생길,
신앙의 순례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말저말 듣다가 자기 주관을 상실하고
좌우상하로 요동치는 삶을 살아서는
우리가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푯대를 정하고
흔들림 없이 주어진 ‘나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책임지고 내가 살아야 할 “나의 길”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부르심을 따라서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3년,
아무도 걷지 않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시기하고 질투할 것도 없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걸어갑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서 동행하실 것입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욥23:12)

 

하나님,
올 한해 참빛 식구들이 가는 길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12 이-메일 목회 서신)

푯대를 향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사뿐사뿐 뛰면서
올 한 해를 살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불황이 찾아온다는 예고가 많습니다.
팬데믹 동안에 너무 많은 돈을 풀어서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다시 돈을 거둬들이니 불황이 찾아올 수 밖에요.

 

그 과정에서
힘없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고생이 크고
격차는 더 벌어질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우리가 사는 베이지역도 뒤숭숭하고
웬만한 사건과 사고에 경찰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세상은 점점 양극화됩니다.
둘로 갈라져서 자기 편이 옳다고
내로남불의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과 분열은 물론
배제와 혐오가 버젓이 행하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평화의 동산으로 만드시고
그렇게 되길 바라시건만
세상은 점점 하나님의 의도와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푯대를 향하여>입니다.
지난 주일에 함께 공부한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푯대는 목표(target) 목적(goal)
바라보는 곳 또는 가야 할 곳을 뜻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 속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큽니다.

 

바른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틀리면 노력한 것이 헛것이 되거나
잘못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변치 않는 명확하고 확실한 푯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따라 살기에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부르심의 상을 푯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하늘의 부르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중간에 멈추거나 다 이루었다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날마다 이전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쫓아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이며
여러 개의 부르심이 동시에 작동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한 번뿐인 부르심도 있다고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선물이자 부르심입니다.
그러니 매일같이 푯대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올 한 해, 예수님 바라보면서
그리고 각자 삶의 현장에서 힘차게 부르심을 좇아 삽시다.

 

거친 세상을 살아갈 때
생명과 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4)

 

하나님,
푯대를 향해서 나가는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 5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