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있으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에 대한 해설과

시편 46편 말씀을 나눴습니다.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는

1908년 감리교와 장로교가 편집한 찬송가에 수록되었습니다.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기 2년 전입니다.

 

누군가 시편 46편 말씀에서 커다란 은혜를 받고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을 말씀에 녹여내서

<피난처 있으니> 찬송시를 썼습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이리로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1절)

 

나라를 잃고 마음둘 곳이 없이

구한말을 살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면서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만유주 하나님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없네 (3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습니다.

소위 선진국들은 앞다퉈서 최첨단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드론이 전장에 사용되면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새로운 판도의 전쟁이 펼쳐집니다.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호령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창검이 필요 없는 세상이 속히 오길 기도합니다.

 

2.

2023년도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중요합니다.

말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 인생이 사람이 만든 달력에 따라 펼쳐지지 않습니다.

일년 내내 힘겨웠던 일이 있습니다.

갑자기 생긴 일도 있습니다.

지지부진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조바심이 나고 때로는 기도하는 것조차 지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드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것도 부담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계심을

꼭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도움이시라 (시편 46:1)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가서 피하면 됩니다.

힘이 남아 있으면 힘차게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가면 되고

힘이 없으면 터덜터덜 하나님께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잠잠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산성(fortress)가 되심을 믿습니다.

 

3.

가야 할 곳, 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언제든지 우리를 기다리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남은 한 달,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주님의 은혜로 삽시다.

우리도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어서 하나님 사역에 동참합시다.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46:10)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46:10)

 

하나님,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30이-메일 목회 서신)

숨은 감사

1.

감사절(Thanksgiving Day) 아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는데

농경 사회의 영향입니다.

 

물론 한 해를 마감하는 면에서

“추수”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영어에서 유래된 명절이고 우리가 미국에 있으니

미국식으로 <감사절 Thanksgiving Day>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수십년 사용하던 용어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 어렵기에

우리 교회에서는 조금씩 차근차근 감사절로 부르고 있습니다.

 

2.

성경에서 감사절의 유래를 찾는다면

이스라엘에서 가을철 포도 농사를 마치고 지켰던

수장절 또는 초막절입니다.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음력을 사용했기에

양력으로 치면 9월말에서 10월 말 사이에 옵니다.

올해 초막절은 9월 29일부터 10월 6일이었습니다.

 

수장절을 초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막을 치고 일주일 동안 밖에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재연한 것입니다.

 

동시에,

한 해 동안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비추셔서

한 해의 농사를 수확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3.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에게서 유래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풍토병은 물론 생소한 토양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첫 겨울을 나면서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씨를 뿌리는 방법, 가축을 키우는 법 등을 알려주면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모두 함께 어울리는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보냈지요.

 

3.

우리도 한 해를 지내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잠시 멈춰서 숨은 도움의 손길들을 떠올리기 원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주일 동안

초막(텐트)을 짓고 그곳에 살면서

광야에서 고생하던 조상들의 삶을 떠올렸듯이,

우리도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고난이 현재의 삶으로 승화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를 살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작은 손길들이 우리를 도왔고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서 결실을 맺은 열매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숨은 감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 삶 이곳저곳에 흩뿌려지듯이 숨겨진 감사를 찾아내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합시다.

이 모든 것을 은혜 가운데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95:2)

 

 

하나님,

숨겨진 감사를 찾아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23 이-메일 목회 서신)

선으로 악을 이기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공부하는 로마서 12장은

강력한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악에게 지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시도입니다.

교활하고 치밀한 악한 세력에 넘어가서

결국 세상에 악을 퍼뜨리게 될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을

로마서 12장 14절 이하에서 찾는다면,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선을 도모하고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는 것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마5:38-48)

눈을 눈으로, 이를 이로 갚지 말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

교회 독서클럽에서 읽었던 월터 윙크의 <예수와 비폭력>에서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원수들을

어떻게 비폭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독특하게 풀어내서 알려줍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5:39)의 경우,

오른손을 쓰는 사람이 손바닥으로 치면,

상대의 왼편 뺨을 때리게 됩니다.

그러니, 오른손으로 오른편 뺨을 때리려면,

오른손 손등을 사용해야 합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예수님 말씀에서 오른편 뺨을 맞았다는 것은

상대방이 오른손 손등으로 톡톡- 쳤다는 것입니다.

뺨을 맞는 사람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커다란 수치입니다.

 

그때 맞은 사람이 왼편 뺨을 돌려댑니다.

왼손 손등으로 톡톡 치면서 창피를 주어야 하는데

당시에 왼손을 사용하는 부정하고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오른손(주먹)으로 왼편 뺨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상대를 동등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왼쪽 뺨을 돌려 대는 순간,

상대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러설 가능성도 큽니다.

 

물론, 원수를 환대하는 것보다는 소극적인 방식이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비폭력 방법임이 틀림없습니다.

 

월터 핑크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대신에

제 3의 길, 예수님의 길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창조적 대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3.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환대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주일설교에서

이 말씀이 성경 가운데 가장 어려운 말씀 가운데 하나라고 했습니다.

복수하고 응징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함을 우리는 배웠고 깨달았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사역을 곰곰이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1)

 

 

하나님,

삶의 현장에서 선을 악을 이길

구체적인 지혜를 알려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16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에 항상 힘쓰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 배운 로마서 12장 12절은

세 가지 말씀이 운율을 갖고 있습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Rejoice in hope

환난 가운데 참으며           Be patient in tribulation

기도에 항상 힘쓰며           Be constant in prayer.

 

외워서 마음에 담아두고

수시로 꺼내서 읊조리고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해도 좋겠습니다.

 

세 가지 구절 가운데

“기도에 항상 힘쓰며”가 특별했습니다.

 

기도할 때,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환난 가운데 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씀은

삶이 기도가 되고,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훈련과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2.

미국에 처음 왔던 전도사 시절에

지역 교회 청년부를 인도했었습니다.

 

금요일이 되면 캠퍼스에 모여서 청년부 모임을 갖고

밤늦게 헤어지곤 했습니다.

 

우리 모임에 악기를 전공하는 자매들이 있었는데

인사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자매들은 “연습하러 가요”라고 말하면서 연습실로 향했습니다.

 

주말 저녁이라도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답니다.

혹시라도 연습을 놓치면 연주하는 소리에 나타나고

자신은 물론 교수님도 알아차리신다고 했습니다.

 

자매들의 연습하는 모습이 저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자매들처럼 읽고 있는지,

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지,

목회의 길을 가는 전도사로 신앙의 훈련에 애를 쓰는지,

저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3.

“기도에 항상 힘쓰며”는 훈련입니다.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훈련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품이 되면 자연스레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너무 좋거나 너무 힘들 때만

주님께 나와 무릎을 꿇는 특별 행사가 아니라

기도가 습관이 되고 성품이 되기 원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서 성전 봉헌식을 하는 솔로몬 왕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을

어제 수요예배에서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던 솔로몬의 모습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의 표시요

하늘을 향해서 손을 편 것은 사모함의 표시입니다.

우리도 남은 두 달 그렇게 기도합시다.

 

기도가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절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서 손을 펴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하나님 백성의 아름다운 모습이고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2)

 

 

하나님,

기도가 습관이 되고,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9 이-메일 목회 서신)

갑작스러움

좋은 아침입니다.

 

1.

힘든 일이 갑자기 찾아오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당황스럽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면

미리 대비하고 있었더라도 속수무책일 때가 많습니다.

 

모든 일이

예측 가능, 통제할 수 있게 닥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기간 중, 주일에

시편 91편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전염병처럼 갑자기 또는 통제할 수 없게 찾아오는

재난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시편 91편에

“밤에 찾아오는 공포” “낮에 날아든 화살” 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둠에 사로잡힌 밤은 무섭기 마련입니다.

새벽이 찾아오길 기다리면서 밤의 공포를 견딥니다.

 

대낮에 날아드는 화살은

맥락 없이 찾아오는 고난입니다.

밝은 대낮에 화살이 날아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생길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입니다.

 

2.

대낮에 날아오는 화살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신앙 가운데서 미리 생각해 놓으면 도움이 됩니다.

 

첫째, 화살이 날아온 것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려다가 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대낮에 날아온 화살은 탄식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고 서럽습니다.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감정의 기복이 심할 것입니다.

마음껏 슬퍼해야 합니다. 한탄하고 탄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셋째, 갑자기 날아와서 몸이나 삶에 박힌 화살을

제거할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제거해 낼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와 아픔은 아물 것입니다.

냉철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치밀함이 요청됩니다.

 

넷째, 화살을 제거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화살이 박혀서 아픈 상황을 내어드리고,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견디고, 믿음으로 주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속의 기자(記者)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랬습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2절).

 

하나님을 믿고 맡김에 힘이 있습니다.

신앙의 힘입니다. 우리 안에 없는 힘이 밖에서 들어올 것입니다.

 

다섯째,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누구를 또는 상황을(때로는 하나님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꿋꿋하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요 하나님 방식입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닥쳤습니까?”라는 질문을 내려놓고

“지금 내가 어떻게(무엇을) 해야 합니까?” 를 질문하면서

상황을 마주하고 헤쳐 나가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결국에는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11절).

 

맥락 없이 갑작스레 닥치는,

대낮에 날아오는 크고 작은 화살 앞에서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시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 백성답게 일어서서

주어진 인생길을 완주할 수 있는 실제적인 믿음을 구합니다.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91:15)

 

하나님,

어려움 가운데서 건지시는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2이-메일 목회 서신)

리트머스 시험지 세 가지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매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롬12:2)이

무엇인지 찾고 구하게 마련입니다.

 

빛의 자녀 답게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애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손색이 없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세상이 복잡해 지면서

Yes와 no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회색 지대가 많아 졌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때 도움이 되는 세 가지를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2.

첫째는 지난 두 주 동안 주일에 말씀드린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시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주택 복권을 추첨할 때

구슬을 돌리는 기계를 연상하셔도 좋습니다.

 

구체적인 문제/선택지 등을 놓고

이모저모로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생명” “평안”이라는 구슬이 떨어진다면 그 일을 추진해도 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늘 말씀드리듯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고민, 선택지의 주어에

“나” 대신 “예수님”을 대입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 수록 답도 금새 나옵니다.

물론, 그 답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결심이 요청됩니다.

 

셋째는 처음 소개하는 것 같은데

“누가(무엇이)  나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맨 꼭대기에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더 나가면 우상숭배입니다.

 

“누가(무엇이) 주인인가?”에 대한 질문에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는 답이 나온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올바로 찾은 것입니다.

그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3.

“생명과 평안,”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누가(무엇이) 주인인가?”

 

이상의 세 가지 질문을 리트머스 시험지 삼으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우리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돕고

기도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모든 결정과 그 이후의 삶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위의 세 가지 리트머스 시험지는

개인의 선택과 결정을 넘어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여러 사안에 위의 세 가지 리트머스 시험지를 대입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마음과 삶에

그리고 세상에 이뤄지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나님,

주의 뜻을 찾고 그것을 실천할 믿음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0. 26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 편에 서라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 편에 서라 On God’s Side>는

짐 월리스라는 분이 쓰신 책 제목입니다.

짐 월리스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난, 전쟁, 차별과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시는 분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세상이 양극화되었습니다.

우리 편만 중요합니다.

자기는 늘 옳고, 상대방은 바른 일을 해도 비판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둘로 나눠서 싸울 뿐입니다.

 

짐 월리스는

보수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진보는 사회의 책임을 중요시한다고 했습니다.

보수는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에 돌리는 경향이 있고,

진보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개인 혼자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사회적 책임도 결국 개인이 협조할 때 가능합니다.

 

짐 월리스는 이 지점에서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필요한 “공동선(common good)”과

건전한 시민 정신을 강조하면서

성경에 기초한 일곱 가지 선언문을 만들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두 가지 선언만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서로 대화할 때,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는

성경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

심지어 그들이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이거나 우리의 원수일지라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우리에게 동의하는 사람들과 우리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와 함께 ‘그들도 하나가 될’(요17:22) 수 있도록

기도하셨던 우리 주님의 신실한 증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

세상이 너무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극우와 극우가 만나면 전쟁도 불사합니다.

극우와 극좌가 만나면 대화가 단절되고

상대방을 비판하고 자기주장만 쏟아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신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요!

 

지난주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이 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소원은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고, 평화가 임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편에 서서

세상에 생명과 평화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주님의 자녀를 찾고 계실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품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게 하소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6)

 

하나님,

우리 마음에, 우리 세상에

생명과 평안을 간절히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0. 19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꿈

좋은 아침입니다.

 

1.

리처드 로(Richard Rohr)라는

영성가의 묵상글이 매일 이-메일로 배달됩니다.

항상 챙겨서 읽지는 못하고

제목을 보고 마음이 가면 클릭해서 읽곤 합니다.

 

지난 월요일(9일)에 배달된 편지의 제목은

“희망, 평화, 그리고 공의(Hope, Peace, and Justice)”였습니다.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폐지를 위해서 평생 투쟁했던

데즈먼드 투투 주교의 “하나님의 꿈(God’s dream)”이라는 글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유명한 연설을

하나님 입장에서 다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꿈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게는 꿈이 있단다(I have a dream).

내 꿈이 이루어지도록 제발 나를 도와다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꿈이지.

세상의 추함, 보기 흉할 정도로 잔악함과 가난,

전쟁과 적대감, 탐욕과 가혹한 경쟁, 소외와 위화감(disharmony)이

그와 반대되는 영광스러운 것들로 바뀌는 꿈이란다.

 

더 많은 웃음, 기쁨, 평화,

정의와 선함과 연민(compassion),

사랑과 돌봄과 나눔으로 바뀌는 꿈!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내 자녀들이 한 식구가 되는 것이 내 꿈이란다.

온 인류가 하나님의 가족, 바로 내 가족이 되는 것이지.”

 

2.

또다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의 9.11에 버금가는 테러로 규정하고

무차별 보복을 선포했습니다.

 

민간인을 상대로 한 총격이나 폭격은

누구를 막론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수천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를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데

팔레스타인이든 이스라엘이든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희생되는 전쟁은

하루속히 끝내야 합니다.

 

3.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요한 계시록의 아마겟돈 운운하면서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믿는 하나님이시라면,

백성들이 무차별 희생당하는 전쟁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와 기쁨, 돌봄과 나눔, 긍휼과 사랑,

무엇보다 아주 많은 웃음이 세상에 넘쳐나길 꿈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고

그 꿈을 이뤄드리는 주의 백성들이 곳곳에 많이 생기길 기도합니다.

 

전쟁을 멈추십시오(Stop war)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이라 (롬14:17)

 

 

하나님,

전쟁으로 희생당한 분들을 위로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0. 12이-메일 목회 서신)

다시 시작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한국은 거의 일주일 동안

추석 황금연휴를 보냈답니다.

 

미국에 살면 살수록

추석이라는 큰 명절도 잊혀집니다.

한국의 친지들이 보내주는

추석 인사에 옛 추억을 되새길 뿐입니다.

 

한국 뉴스를 보니

추석 연휴 동안 중국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과 같은

커다란 국제 대회에서는

여러 가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번에도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니

롤러스케이트 3천 미터 계주 경기에서

너무 아쉬운 일이 생겼습니다.

 

마지막 계주가 우승인 줄 알고

결승전 바로 직전에 손을 번쩍 들었는데

그사이에 대만 선수가 스케이트 날을 들이밀면서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것입니다.

 

롤러스케이트는 이번에 처음 채택된 시범 종목이랍니다.

올림픽에도 같은 종목이 없고

4년 후 아시안 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지 확실하지 않다니

정말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놓친 선수들이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군대 면제의 혜택도 있다는데

0.01초 차이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루고도

웃지 못하고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습니다.

 

2.

0.01초 차이라니

허리만 펴지 않고 들어왔어도 우승했을 것입니다.

조금만 참고 우승이 결정된 후에 기뻐했더라면…

 

저도 아쉬운데 당사자 선수는 오죽할까요!

평생 그 순간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선수처럼

잠시 잠깐 삐끗해서 실수하고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들이 많을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요.

 

누구나 실수합니다.

실력이 모자라는데 더 열심히 하다가 실수하고,

실력은 충분한데 한순간의 방심으로 실수하고

너무 좋아서 흥분한 나머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결승점에서 실수한 선수를 너무 나무라지 말고

그 선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고

힘을 북돋아 주면 좋겠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지만,

행여나 마음에 커다란 짐을 갖고 경기를 끝낸 선수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조금 일찍 우승을 즐기다가 금메달을 놓친 선수부터

아시안 게임은 물론 우리 인생의 경주에서

잠깐 한눈팔다가 실수한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닙니다.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37:24)

 

 

하나님,

우리 손을 붙들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0. 5 이-메일 목회 서신)

믿음으로 사는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로마서 12장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6장 말씀 가운데

8장이 최고로 꼽힙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했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것이 없다는

보석과 같은 말씀입니다.

 

8장과 쌍벽을 이루는 말씀이

로마서 12장입니다.

 

“그러므로”로 시작하면서

로마서 전반부(1-11장)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요약하고,

이어서 하나님 백성의 삶에 관해서 조목조목 교훈합니다.

13-15장은 12장의 부연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연속 설교의 제목을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붙였습니다.

가짜가 판치는 요즘 시대에

진짜 그리스도인(Authentic Christian)으로 살기 원해서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12장 말씀대로

믿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한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믿음을 지나치게 추상화했는지 모릅니다.

‘영적’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현실감 없는 믿음을 만들어서

신앙과 삶이 따로 놀게 했습니다.

 

교회에서의 신앙과 세상에서의 삶이 다르거나

연결조차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신앙과 생활의 통합이 결여된 모습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신앙을 저 멀리 하늘나라로 옮겨 놓아서

이 세상의 삶에 소홀하거나

세상의 삶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준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역시 온전한 신앙은 아닙니다.

 

아니, 신앙 자체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고

악세사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3.

믿음으로 사는 것은

지난주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배웠듯이

우리 “몸(body)”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몸은 실체입니다.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 자체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는

일상이 예배가 되고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제사(living sacrifice)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다 보면,

그 유익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실제의 삶에 하나님을 초대합니다.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평소에 흘려보내던 시간도

하나님과 더불어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됩니다.

삶 전체가 소중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신비입니다.

느끼고 더불어 살아가는 경험입니다.

신비가 현실이 될 때, 깜짝 놀랄 경이(驚異)를 맛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놀랍고 행복할 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

 

 

하나님,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9. 28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