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 첫 달에 연속해서 나눈

에베소서 3장에 등장한 사도 바울의 기도는

–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길

–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넓어지고

그리스도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고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길

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충만함(fullness)”에 관해서 나눴지만,

지난 며칠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충만하다는 것은 속을 무엇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름달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충만한 상태를 “벅차오른다”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위대하고 멋진 광경 앞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듯이

하나님의 충만하심 앞에서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모세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습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서 수건으로 가릴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두 번 기도합니다.

 

1장의 기도에서는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풍성함에 들어가길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길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시내 산 위의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속에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공부한 에베소서 3장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능력으로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 안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영광의 내주(indwelling)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임하면,

우리도 모세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을 비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충만하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것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잠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속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푹 잠김’와 ‘꽉 채움’이 곧 충만입니다. 완전한 상태입니다.

 

작은 컵을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양동이에 넣으면

컵이 물에 잠기고, 동시에 컵 속에 물이 가득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우리 안팎에 임한 상태가 바로 그럴 것입니다.

충만을 완전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충만함을 경험한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모세처럼 우리 모습이 감사와 기쁨으로 밝게 빛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밖으로 드러날 정도로 차고 넘칠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에베소서 3장에서 기도를 끝낸 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듯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게 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9)

 

 

하나님,

부족함이 없는 충만함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2. 8 이-메일 목회 서신)

순간포착

좋은 아침입니다.

 

1.

올겨울은 무척 추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도 일어났습니다.

독감도 유행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찾아온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내일(2월 2일)이 그라운드호그데이(Groundhog day),

그라운드호그라는 설치류 짐승이

봄이 찾아온 줄 알고 겨울잠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날입니다.

 

아무리 춥고 지루한 겨울이라도

새싹이 돋고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는

봄을 이길 수 없습니다.

 

2월이 시작되는 첫날,

우리 안에 봄기운이 살아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봄이 찾아오길 기대합니다.

 

2.

지금은 조그만 휴대전화에

카메라와 비디오가 함께 들어있지만,

예전에는 카메라에 필름을 끼워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필름을 모두 사용하면 전문점에 맡겨서 사진을 인화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셔터 소리와 동시에 플래시가 터지면서

눈을 감는 일이 다반사여서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웃고 즐기던 때입니다.

 

그때는 정말 순간의 포착이 중요했습니다.

“치-즈”하면서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3.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진은

순간의 포착이 중요합니다.

 

작은 동작, 사소한 일상,

길에서 마주치는 경치까지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능력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힘은 드는데

이 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어요.”

 

아이들이 정말 빠르게 큽니다.

지나간 순간과 그때의 모습은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순간 순간이 중요한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순간의 포착을 놓친 것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4.

새달이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2월도 인류 역사는 물론 개인의 인생에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허둥지둥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생각하고,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길 원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진은 남는다고 하듯이

우리 삶의 작은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은혜의 순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편123:2)

 

 

 

하나님,

주를 바라보면서

순간의 은혜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2. 1 이-메일 목회 서신)

사과 이야기

좋은 아침입니다.

 

1.

1월 24일, 어제는

애플 컴퓨터 매킨토시(Macintosh)가 세상에 나온 지

4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애플(Apple)이라는 회사 이름,

한입 베어 먹은 사과 로고,

매킨토시(“맥 Mac”)라는 이름까지

전부 사과와 연결됩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평생 채식주의자였고 특별히 과일을 즐겨 먹었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사과 과수원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기에

자기 회사에 애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처음 애플 컴퓨터 로고는

만유인력을 발명한 아이작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서 책을 읽는 그림이었습니다.

 

현재의 한 입 베어먹은 듯한 애플의 사과 로고는

1977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한 입을 베어먹은 사과 모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 태생 앨런 튜링(1912-1954)에게서 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은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지만,

당시 영국 사회의 동성애자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과에 청산가리를 묻혀서 한입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과를 한 입 베어먹은 것을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보기도 합니다.

체리와 사과를 구분하기 위해서

한 입 베어먹은 모양으로 디자인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컴퓨터 용어 바이트(byte)와 베어먹다는 영어 바이트(bite)와 연결하기도 합니다.

 

2.

애플 로고 뿐만 아니라

40년 전 시작된 애플의 매킨토시 개인 컴퓨터의 이름도

사과 품종 가운데 하나인 매킨토시에서 왔습니다.

 

40년 전 애플에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세상에 출시했을 때는

IBM이라는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가

90% 이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가 강한 IBM에 맞서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애플만의 특징을 갖춰서 다른 제품군들이 애플을 모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연히 애플 컴퓨터만 선호하는 매니아 층이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IBM과도 협력하면서, 애플의 약점을 보충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애플 특유의 칩(M1 chip)을 개발해서 보급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으면 올해로 69세가 됩니다.

과연 그가 살아 있다면 애플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어떤 혁신을 이루고, 어떤 제품들을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3.

애플이라는 회사나 애플 제품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사과”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갖고 회사 이름, 로고, 제품 이름까지

일관성 있게 정렬하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특별합니다.

 

올 한 해를 살면서

우리에게도 한 가지 주제(모토)를 정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면서

신앙과 인생의 혁신, 확장, 성장을 이뤄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 입 베어먹은 사과가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듯이

우리 인생과 신앙의 신비도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킨토시 40세 생일을 축하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쟁반에 사과니라 (잠언 25:11)

 

 

하나님,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참빛 식구들께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25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에서 마음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속마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길”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속마음을 강조한 이유는

성경은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이

‘마음’이 존재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

속에 숨겨진 마음, 존재의 중심을 보십니다.

 

겉모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듯이

우리의 육체는 물론 마음과 영(spirit),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파편처럼 부서진

우리 자신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부분”만을 주목하지 않으시고

우리 존재와 삶 전부를 돌보십니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신경을 쓰면 안 됩니다.

육체로 대표되는 겉모습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업적들,

삶 속에서 행하는 일들도

당시에 유익을 줄 뿐이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속마음(inner being)”입니다.

 

2.

밖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합니다.

하나님 마음과 우리 마음이 이어지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진실하고 정직하길 원합니다.

우리 속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여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에게 진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우리들 관계의 근원이 되고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마음이 우리 안에 이식되어서

하나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진실하고 깊은 교제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마음을 품고 하루 살아갑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3:16)

 

 

하나님,

우리의 모든 관계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18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시간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로 시작한

2024년 새해가 열흘 이상 지났습니다.

 

어릴 적에는 새해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한 살 더 먹고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이 자유로워 보이고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새해를 맞는 것이 시시해집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이게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지

한 살씩 많아지는 것이 은근히 부담도 됩니다.

 

그래도 새해는 새해입니다.

크고 작은 새해 소망도 만들고

마음의 각오도 새롭게 다지게 됩니다.

 

2024년이라는 새해는

우리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세계 역사에도 다시 오지 않을 연도(year)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덤덤하게 맞이하던 새해였는데

정신이 바짝 듭니다.

 

혹시,

아직 새해의 계획, 기도 제목을 준비하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2024년을 새롭게 설계하시길 제안합니다.

 

2.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 찌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잠언 말씀이 생각납니다(잠16:9).

 

그렇다고 계획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계획하고, 계획한 것을 최대한 열심히 실천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결과에 집착하거나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을 자기가 주관하려는 태도에 대한

경고일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계획한 것이 모두 이뤄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 길을 인도하시니

너무 염려하거나 불안하지 말라는 깨우침일 것입니다.

 

3.

잠언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luck)이 좋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시간이라고 고백하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시간도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이 아님을 깨닫고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습니다.

 

갑자기 깜짝 놀랄 일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 놓으신 것에 감사하면서

기쁨과 감사로 열린 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포착하고 그 시간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삶이 축복이 될 것입니다. 행복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나서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시간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감지해 내는 영적 감수성/능력을 장착하기 원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 읽으면서, 그리고 생각하고 대화하면서 찾아내고,

일을 시작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해 가면서

하나님의 시간, 돕는 은혜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

 

하나님,

맞는 시간에 임하는 돕는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11이-메일 목회 서신)

든든히 서기

좋은 아침입니다.

 

1.

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용띠, 그것도 청룡(靑龍) 해랍니다.

 

푸른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패기와 멋짐이

올 한해 모든 분께 임하길 기대하면서

새해를 맞이한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척 끈질기었습니다.

우리 안에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실제로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은 분들도 계십니다.

 

푸른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팬데믹의 남은 잔재를 모두 털어버리고

힘차게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든든히 서게 하소서>입니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흐트러진 우리 신앙을 복구해서

깊고 넓은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송구영신 예배에서 나눴듯이

든든히 서기 위해서

신앙의 깊이와 넓이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깊이는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넓이는

터를 넓게 잡아서

웬만한 차이와 간격을 포용하고

대범하게 대처하는 마음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이

깊고 넓게 터를 잡으면서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팬데믹과 작금의 시대 상황 가운데

왜곡되고 흐트러진 신앙을 바로잡고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는,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장 앞에, 위에 두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에 하나님을 앞서는 것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신실함입니다.

주어진 신앙과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쉬움과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신앙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도 신실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신뢰입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앞길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신앙의 길을 걸을 뿐입니다.

 

위에 소개한 세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신앙의 기초입니다.

높은 건물을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

기초공사가 필요하듯이

우리 신앙에도 기본적인 사항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꼭 필요한 것을 점검합시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과 삶이 굳게 세워지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

 

 

하나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4 이-메일 목회 서신)

소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소식이

이따금 들리지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팬데믹도

2023년의 시작과 끝을 훼방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마스크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지난 3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세 먼지로 마스크 착용이 잦다고 들었지만,

미국에서는 특정 직종에 근무하는 분들이 아니면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당시 대통령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느낀 이유입니다.

 

펜데믹 동안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우리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微笑)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리다 보니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얼굴의 표현과 표정이

얼마나 소중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아직도 마트나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감기 기운만 있어도 이웃을 배려해서 마스크를 쓰고

예배나 공공 행사 참여를 자제합니다.

 

코로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그렇고,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하면

서로를 향해서 조심하겠다는 표시입니다.

 

2.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은

작고 사소한 것, 가까운 것, 일상적인 것에 숨겨져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을 보고 미소 짓는 것,

깜짝 놀랄 표정을 짓고 감탄의 말을 전하는 것

명확하게 의사전달을 하는 것 등등 –

마스크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니

우리 삶의 뒤편에 숨겨진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면서,

불가피하게 뒤에 숨겨놓았던 것들,

늘 그곳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챙기고 마음 한편에 소중히 간직하기를 원합니다.

 

가까운 이웃의 소중함도 깨닫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별한 것, 대단한 것,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보다도

마스크 속에 숨겨졌던 아름다운 미소처럼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찾아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감사와 기쁨을 더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거기에 물을 주고 가꿔 나가기로  우리 함께 결심합시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하나님,

주변에 흩뿌려진 소중한 것을 찾아내서

감사하는 연말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28 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님이 읽으신 성경

좋은 아침입니다.

 

1.

대강절 셋째 주일이었던

지난 주일에는

성서일과(Lectionary)에 따라서

이사야서 61장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2절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을 방문해서 첫 번째로 읽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목적과 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해서 직접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정통하셨습니다.

 

2.

이사야 61장 말씀을 갖고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읽으신 본문을

지금 제가 읽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2천 년이라는 시차는 있지만,

예수님과 제가 같은 말씀의 공간에 머무른 것입니다.

 

메시아의 사역을 예고한

이사야서 61장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이사야 61:1-2)

 

한 글자 한 글자, 한 구절 한 구절을

예사롭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사야 말씀을 대하셨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구할 메시아로

살아가실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준비하시면서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으셨을 것 같습니다.

 

3.

이처럼 우리가 읽는 성경 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신앙과 삶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분들을 성경에서 만납니다.

그러니 성경은 매우 신비로운 책입니다.

 

올해도 성경 통독을 마쳤습니다.

10여 년 가까이 계속된 성경 통독입니다.

매년 읽을 때마다 같은 말씀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성경의 신비를 경험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합시다.

보물찾기하듯이, 성경 속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성경의 신비를 누립시다.

 

하나님,

세심하게 주의 말씀을 읽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21 이-메일 목회 서신)

견리망의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국의 교수 신문은 사자성어를 공모해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목요 서신에서는

거의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소개하면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2023년에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빠져서 의로움을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성현 장자(莊子)가 산책을 하는데

매우 커다란 까치 한 마리가 그의 이마를 스치더니

밤나무 숲에 가서 앉았습니다.

 

장자가 새총을 들고 까치를 잡으러

살금살금 밤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까치에 접근하는데

까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알고 보니, 눈앞에 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는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까치를 모른 채

눈앞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습니다.

매미 역시 시원한 밤나무 숲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장자 뒤에서

밤나무를 지키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장자를 밤 서리꾼으로 생각한 것인데,

장자 역시 까치를 잡으려는 생각에

남의 집 밤나무 밭을 침범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장자가 사흘 동안 고민에 빠집니다.

까치를 잡으러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은

눈 앞의 먹잇감만 노리고 있는 까치나 사마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다가 옳은 일을 잊어버렸다”는

사자성어 <견리망의(見利忘義)>가 나왔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배만 불리려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빗대서

견리망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 같습니다.

 

2.

견리망의의 반대는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견리사의(見利思義)>입니다.

눈앞에 이익을 놓고,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바른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도리인데,

개인의 잇속을 먼저 챙기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살기보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적 생각도

코로나 이후 사람들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지요?

 

올해 마지막 성경공부 주제였던 <참된 복>에서 배웠듯이

상대적인 복을 절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성공이나 출세, 심지어 기도 응답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길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길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마음도 장착하고 싶습니다.

 

야곱에 관한 연속설교 이후 계속 반복하듯이

‘정말 중요한 것’과 ‘그까짓 것’을 분별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길 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하나님,

행여나 우리 속에 숨어있는

<견리망의>몰아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14 이-메일 목회 서신)

샌드라 오코너

좋은 아침입니다.

 

1.

12월이 시작된 지난 1일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샌드라 오코너(Sandra O’Connor)가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샌드라 오코너는

애리조나에서 수천 마리의 소를 키우는

목장 집 딸로 자랐습니다.

 

16세에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서

1952년 22세의 나이로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여성 차별이 심하던 당시에 오코너가 원하는 로펌에 취업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산 마테오 카운티에서 검사를 돕는 일을 하다가

결국에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애리조나로 옮겨서

주의회 상원 의장에 오릅니다. 여성 최초였습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오코너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후보 시절 공약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상원이 만장일치로 오코너의 대법관직을 인준했습니다.

 

대법관이 된 오코너는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이 추천한 보수 진영의 대법관임에도 불구하고

낙태에 찬성하고, 소수 민족을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에 찬성하는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실용적 행보를 하면서

여성 최초의 대법관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습니다.

 

25년간 대법관직을 수행하던 오코너는

2005년 종신제 임기인 대법관직을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은 놀랐고 또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치매에 걸린 오코너의 남편은 요양원에서

다른 여성과 연애에 빠졌다는군요.

 

오코너는 개의치 않고

남편과 함께 TV에 출연하는 등,

치매와 싸우는 가족들을 격려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자기 경험을 살려서 암 환우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오코너는 애리조나 목장집 딸에 걸맞은

억척같은 여성이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일에 앞장선 선구자였습니다.

 

2018년,

안타깝게도 오코너 역시 치매 판정을 받습니다.

엊그제 12월 1일 치매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오코너는

명예나 권력에 인생을 걸지 않았습니다.

평생 공직을 수행함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었고

그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었지만, 오코너는 남편을 선택했습니다.

 

공적인 일보다

별것 아닐 수 있는 사적인 일에서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오코너가 추구하고 바라보는 인생의 목표가

소위 성공에 몰입하는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법관 시절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면서

실용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도 오코너의 큰 업적입니다.

특별한 가치관을 갖고 살았던 오코너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귀감(龜鑑)이 된 이유입니다.

 

3.

한 해를 마무리하고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그까짓 것’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에게 귀감이 되었는지 등등.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꼭 붙들고 삽시다.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구별되게 행동하면서

거룩함, 예수님을 닮아 갑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엡4:15)

 

 

하나님,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