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샬롬

1.
교회 우체통을 확인해 보니
우리가 돕는 초록우산(소년소녀돕기)에서
두툼한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두 달에 한번 소식지를 보내주는데
이번에 온 우편물은 유달리 두꺼웠습니다.

봉투를 뜯어보니
전도사님의 뒤를 이어서
초록우산에 연락을 맡고 계신 권사님께
코미디언 이홍렬씨의 <60>라는 책이 배달되었습니다.

무심코 두 세 장 넘기자마자
왠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나옵니다.

코미디언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예전에 들어서 익숙한 원로 코미디언으로부터
요즘 한창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세 페이지 이상 총망라되었습니다.
코미디언 회원록에서 가져온 이름 같습니다.

생소한 이름도 꽤 있습니다.
방송에 이름만 한번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회원으로만 가입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속으로 불러가면서
세어보니 708명입니다.
아마 제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 준
코미디언들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홍렬씨는 이렇게 첫 번째 장(chapter)를 마무리합니다.

“하하, 이름만 봤는데도 즐거워지지 않는가?
나는 정말 간절히 내 이름 딱 석자 ,,!”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그런 이름이고 싶다.
당신은 어떤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으면 하는가?
What’s your name?”

2.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전에 설교했던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처형대에 선 순교자는
“I am a Christian”이라고 답합니다.

이름이 뭐냐고 재차 물어도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답합니다.
이름이 그리스도인(Christian)”입니다.

마지막 순교의 순간에
그리스도인(Christian)으로 불리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습니다.

참 멋진 장면입니다.

우리들이야 순교자들의 먼 발치에도 갈 수 없고
세상에서도 남달리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 자부심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온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고, 책임을 느끼는 인생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참되고 멋진 그리스도인들속에
묻어가는 인생이고 싶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감사한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3:5)
The one who conquers will be clothed thus in white garments, and I will never blot his name out of the book of life. I will confess his name before my Father and before his angels.  (Rev 3:5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지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31 메일 목회서신)

반딧불

샬롬

1.
저희 부부는
큰 아이를 보기 위해서
미시간에 와 있습니다.
예전에 인디애나에 살았었기에
매우 익숙한 환경입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캠퍼스 구경을 나섰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니
어두워졌습니다.

그래도 시차가 있어서
정신은 말짱하고
학교 근처에서 큰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주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잔디밭에 반딧불이 있습니다.

인디애나에 있을 때
밤늦게 공부를 하고
집으로 걸어오다 보면
잔디밭에 반딧불이 반짝반짝 수를 놓고 있었는데
이곳 미시간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반딧불은
공기가 깨끗한 청정지역에 산다고 하지요.
반짝 반짝!
잠시 잠깐 빛을 내는
반딧불의 향연이 잔디밭에서 펼쳐집니다.

2.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마음이 답답합니다.

뭔가 확실하게 설명해 주면 좋으련만
투명하고 솔직한 것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건만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점점 의혹이 커집니다.

태평양 너머에 있는 우리들도 답답한데
한국에 계신 분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할 것 같습니다.

투명하고, 솔직하고, 충분한 설명이 되는 세상이 되어야
반딧불이 돌아와서 빛을 발할 텐데 말입니다.

3.
마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복이 자꾸만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 임이요 ( 5: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Mat 5:8 ESV)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카타로스인데
마음이나 삶이 깨끗하고(clean), 당당하고(open),
순수하고(pure), 흠이 없는(spotless)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당당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순수하고, 솔직하고, 청결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가르쳐주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도 마음이 청결한 자를 향하여
그 얼굴 빛을 비춰주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거짓말 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고
잘못한 것을 두고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
투명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5: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Mat 5:8 ESV)

하나님 아버지
청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그만 반딧불까지 빛을 발할 정도로 깨끗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24 메일 목회서신)

세상을 위한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는 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무거운 요즘입니다.

어제는 말레이시아 민간 항공기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서 300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습니다.
물론 어린 아이들도 있지요.

서로 범인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지만
누군가 해서는 안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민간인들이 탄 항공기를 공격하다니요..

지난 번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던 항공기도
말레이시아 항공기였기에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휴전이 될 것 같더니
협상이 깨지면서
무차별 공격에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역시 어린아이들이 가장 안타까운 희생자들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사건과 사고, 테러의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3.
한국에서도
세월호 구조에 나갔던
소방 헬기가 시내에 추락했습니다.

조종사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조종간을 잡은 덕분에
큰 피해를 면했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여기저기서
전쟁의 소문, 재난과 사고 소식이 이어집니다.

지구촌이 늘 시끄러웠다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멍멍할 정도의 일들이
연거푸 터진 적도 별로 없는 듯 합니다.

4.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안타깝습니다.

태평양 너머에 사는 우리들이기에
조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바라볼 뿐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확실한 한 가지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진실된 기도입니다.

예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세상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원에서 밤을 새면서 기도했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뿌리가 뽑힐 정도로 간절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조국과
더불어 살고 있는 지구촌을 위해서
특히 자식과 부모, 친지를 잃은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9:17)
You are a God ready to forgive, gracious and merciful,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steadfast love, and did not forsake them (Neh 9:17 ESV)

하나님 아버지
떠나온 조국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17 메일 목회서신)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기도회에서는
민수기 6장을 읽었습니다.
그곳에는
나실인 서약이라는 특별한 말씀이 나옵니다.

삼손이나 사무엘처럼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 수도 있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일정기간 나실인으로 살면서
자기 몸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간을 정해서 금욕의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포도주는 물론 포도즙도 먹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죽은 시체를 만지지 않는 것이
나실인 서약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금식으로 기도하거나
평소에 즐기던 것을 금하거나 절제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로 결심하는 것에 해당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매번 좋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신앙이나 삶에 위기가 느껴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구약의 나실인들처럼
구별된 삶을 살면서
각자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필요가 있습니다.

2.
나실인 서약에 이어서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6:22-27).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아론과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축복기도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6:24-26)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the LORD make his face to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you and give you peace.  (Num 6:24-26 ESV)

참 아름답고
귀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축복입니다.

위의 축복이 임하면
우리의 삶은 주님 안에서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위해서 마음껏 축복합시다.
가족과 친지들과 동료들,
그리고 우리 참빛 식구들의 얼굴을 눈에 그리면서

저도
여러분들의 얼굴을 눈에 그리면서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the LORD make his face to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you and give you peace.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는
이웃들을 마음껏 축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10 메일 목회서신)

속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뭄에 시달리는 다섯 개 주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오늘 새벽에는
때에 맞지 않게
보슬비가 내렸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가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교회 정원에 물을 줄 때 마다
교회 앞 건널목에서
신호대기를 하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게 됩니다.

제 발이 저린 것일 수 있지만
물이 모자란다는데
교회가 물을 낭비하는 듯 보일까 싶어서입니다.

2.
작년에는 여름 내내 정원에 물을 주지 않고 지냈는데,
올해 들어서 일주일에 두 번 정성껏 물을 줍니다.

요즘 편찮으셔서 교회에 오지 못하시는
90을 바라보시는 노 권사님께서
올 초에 손수 정원을 가꾸셨습니다.

함께 정원을 일구면서,
언젠가 당신이 하나님께 가도
꽃나무들은 살아있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는데
정말로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정원을 가꾸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나 우리 교회 나름대로 사연이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지요.

3.
모든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외에
속에 깊이 숨겨진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섣불리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속사정을 알기 전까지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요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4.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아서 섭섭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의 앉고 일어섬과
마음 깊은 곳을 아시는 하나님께 나오면 됩니다.

베드로와의 첫만남에서
그가 요한의 아들 시몬임을 아신 예수님께서
우리들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가 누리는
하늘의 위로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 식구들 서로 서로
속마음까지 헤아려주고
서로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지요.^^

오늘 하루 살면서
가족이든, 친지나 동료이든
상대방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해봅시다.

섭섭하고 외로울 때는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 139:1)
O LORD, you have searched me and known me! (Psa 139:1 ESV)

하나님 아버지
서로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6.26 메일 목회서신)

속사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말에는
우리 교회에서 처음으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강사 목사님의 진솔하시고
목사님만이 걸어오신 30여년의 삶의 여정에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오고
온 교회가 잔잔하면서 강력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우리의 신앙과 삶에 스며들고
앞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같고 있는 질문들이
기도와 말씀 그리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풀어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2.
신앙은
우리들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속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신앙은
속이 채워진 다음에
그것이 겉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속은 비어있으면서
겉만 번드르한 신앙은 쉽게 무너지고
금방 바닥이 드러납니다.

속사람이 강건한 그리스도인은
혼자 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합니다.
기도가 깊어 지고, 말씀의 은혜 속에 빠져들어갑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범하기 쉬운 행동들을 자제할 줄 압니다.
하나님을 솔직하게 대면합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기 위해서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 앞에
진실된 그리스도인(authentic Christian)으로 서야 합니다.

교회가 돕고
서로 서로 격려하지만
결국에는 우리들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차근차근 이뤄내야 할 신앙의 과업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3.
우리 교회는 행사가 많지 않습니다.
교회행사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는 대신
우리의 삶이 주님께 드려지고
각자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서는 것에 주력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예배로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얻고 경축하기 원합니다.

신앙 터잡기와 같은
성경공부를 통해서 신앙을 점검하고
꼭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배워나가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이 채워지는 데
매주 보내드리는 목요서신과
한번 더 듣는 주일설교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4.
오늘 하루도
속사람이 강건한 주님의 제자들로 자라기 위해서
각자 삶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말씀 읽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3;16)
According to the riches of his glory he may grant you to be strengthened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in your inner being, (Eph 3:16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6.19 메일 목회서신)

함께 걷는 길

샬롬

1.
오늘 저녁에 있었던
미국 스펠링 맞추기 대회(National Spelling Bee)에서
52년 만에 공동 우승자가 나왔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각각 13,14살 먹은 소년들인데
이들은 주최측이 준비한 결승 단어들을
똑같이 맞췄습니다.

한 친구가 스펠링을 잘못 말하면서
우승자가 가려지는 듯 했지만
이어서 다른 친구도 실수를 했고
마지막 단어는 사이 좋게 같이 맞췄답니다.

이들이 맞춘 단어들은
외계어처럼 엄청 어렵습니다
(마지막 단어가 “fuelleton”).
웹스터 사전을 통째로 외워야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동 우승이 확정되자
함께 우승자가 되어서 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은 사전과 대결을 벌인 것인지
친구와 경쟁하지 않았다고 어른스럽게 대답했답니다.

특이한 점은
최근 8년 동안 스펠링 비의 우승자들이
모두 인도계 미국인들(Indian-Americans)이라는 사실이네요.
하여튼 대단합니다!

2.
공동우승(co-champion)이라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최종 우승자 한 명을 가려낼 수 있었을 텐데
두 소년을 공동우승자로 발표했습니다.
둘이 함께 챔피언이 된 것이지요.

요즘은 모두 경쟁합니다.
조금이라도 앞서 가려고 애를 쓰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경쟁을 말하기 보다
개인을 말하기 보다
함께 걷는 신앙의 길과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이 다음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로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모두가 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함께 걷습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마음을 갖고
성삼위 하나님께서 하나이듯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한 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걸어가는
신앙의 순례길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아 주고
서로 격려하면서 주님께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4:12)
And though a man might prevail against one who is alone, two will withstand him–a

threefold cord is not quickly broken. (Ecc 4:12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서로에게
험한 세상을 함께 걷는
신앙의 동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5.29 메일 목회서신)

삶의 기도

샬롬

1.
목사의 귀는 늘 교인들을 향해서
쫑긋 서 있습니다.

지나가는 말 속에서도 기도제목을 포착해내고
교회를 위한 아이디어나 성도님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무엇보다 믿음이 자라가길 기대하면서 듣고 얘기합니다.

<신앙 터잡기>에서 배웠듯이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길 기대하면서
우리 성도님들의 삶과 신앙이 통합되길 바라면서 목회합니다.

최근에 직접 또는 전해들은
우리 교회 칠순이 넘으신 어르신들의
흐뭇한 이야기가 있어서 나눕니다.

이야기 하나.
평생을 무뚝뚝하게 사신 어르신께서
아침마다 샐러드와 과일 주스를 손수 만들어서
부인께 선사해 드리신답니다.
대단한 섬김입니다.

이야기 둘
토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친교를 하는데
참석하지 않으신 권사님이 계셔서
집에 오면서 전화를 드렸더니
아내와 단 둘이 나와서 아침을 먹으려고 일찍 왔습니다.”
멋지십니다.

이야기 셋
권사님께서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가셨습니다.
그 날은 권사님의 생신이셨는데
집에 오셔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시니
남편 권사님께서 미역국을 끓어 놓으셨답니다.
감동입니다.

2.
요즘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따로 기도시간을 만들어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동안 나눈 감사의 기도, 탄식과 눈물의 솔직한 기도도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권사님들의 아내사랑과 섬김도
삶을 통해서 드리는 진솔하고 애틋한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이 예배가 되고
삶이 기도가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전에도 소개했던 리차드 포스터의 기도에 대한 글을 옮겨 왔습니다.
건전한 기도는 이 땅에서의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들을 필요로 한다. 산책이라든가 대화 혹은 건전하고 유익한 웃음거리들 그리고 정원에서 하는 일이나 이웃 사람들과의 한담, 유리창 닦기 등등, 이 모든 일들이 다 소중하다. 부부간의 사랑과 아이들과 놀아 주는 일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기도하는데 모두 필요한 요소들이다. 영적인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일상 생활의 작은 산들과 골짜기에서 정기적으로 훈련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 11>

3.
저는 일상생활 속의 신앙(everyday Christian)을 강조합니다.
특별한 만남보다
매일같이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족/동료와의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고,
특별한 기적을 바라는 것보다
하루 하루의 삶이 기적이요 은혜이고,
특별한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 주신 사명임을 깨닫고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멋진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힘차게/기도로
하루를 시작합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  (1Th 5:16-18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5.22 메일 목회서신)

다람쥐와 솔방울

샬롬

1.
엊그제 아내와 함께 집 근처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다람쥐 한 마리가 커다란 솔방울을
두 발로 잡고는 끙끙 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갖고 있는 것은 흔한 광경이지만
자기 머리보다 훨씬 큰 솔방울을 잡고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다람쥐에게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웬만한 다람쥐는
사람이 다가오면 줄행랑을 칩니다.

그런데 이 다람쥐는
30센티(1ft)까지 가도록
솔방울을 꼭 잡고는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 있습니다.

제가 마음이 좋은 사람이었기 망정이지
행여나 다람쥐를 잡아먹으려는 짐승이나
다람쥐 사냥꾼이었다면 꼼짝없이 잡혔을 것입니다.

2.
커다란 솔방울을 꼭 잡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다람쥐를 보면서
집착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다람쥐는 솔방울이
커다란 도토리라고 생각해서
꼭 잡고 있었을 테지만
결국에는 실속 없는 솔방울인걸요!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별로 소용이 없는 것에 집착할 때가 있습니다.
위험에 처하는 줄도 모른 채
손에 든 것을 꼭 쥐고 놓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손을 펴고 살 길을 찾으면
훨씬 자유롭고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데
그만 손에 쥐고 있는 것에 집착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입니다.

정호승이라는 시인은
그의 수필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손을 펴면 손바닥이 되고, 쥐면 주먹이 됩니다. 손바닥은 햇살을 받을 수도 있고, 물건을 올려 놓거나 쥘 수도 있고, 그것을 남과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먹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먹은 홀로 주먹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115>

3.
누구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늘 손을 펴고,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들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손을 꼭 쥐고 집착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 손에 얹어주실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습니다.
어깨가 축 쳐진 가족들의 등을 어루만져 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 143:6)
I stretch out my hands to you; my soul thirsts for you like a parched land. (Psa 143:6 ESV)

어울리지도 않는 솔방울을 움켜쥐고 있다면
얼른 내려놓기 원합니다.

주님을 향해서 손을 펴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손에 채워주시는
은혜와 사랑 그리고 지혜와 용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주님을 향해서 손을 활짝 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5.15 메일 목회서신)

기도의 사람

샬롬

1.
저는 매년 한달 정도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신앙 터잡기>에서 배웠듯이
말씀과 기도는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는데
꼭 필요한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주일설교는 물론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 속회모임,
그리고 종종 개설되는 세미나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배워나갑니다.

기도 역시 늘 강조하지만
매년 시간을 떼어서 말씀을 전하므로
기도생활을 점검하고
다시금 기도의 자리로 나가길 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달 동안
참빛 식구들의 기도가 넓어지고 길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지길 바랍니다.

2.
다음은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에서 요약/발췌한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 기도가 지금까지 부족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기도가 아예 없었을지라도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갈망, 그 자체가 기도이다. 메리 클레어 빈센트(Mary Clare Vincent)는 말하기를 기도에의 욕구가 기도이며 그것은 갈망의 기도이다라고 했다. 때가 되면 그 욕구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행동은 기도에 대한 열망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기도가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라. 또한 마음의 완고함으로 인해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기도로 마음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기도가 부족한 것까지도 하나님께 내어 놓으라.

만일 당신이 기도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면 하루에 열두시간씩 기도하기를 시작하는 대신 단지 몇 분만이라도 할애해서 모든 정력을 거기에 쏟아 넣으라.

또 하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는 제언을 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악한 일을 행하고 있을 때조차 기도하기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분노와 욕망, 교만과 탐욕, 야심 따위와 싸우고 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이야기해야 하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들까지도 말해야 한다.

우리의 불순종까지도 아버지의 품에 안겨 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게를 지탱할 만큼 강하신 분이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킨다. 하지만 죄를 숨기는 것은 우리를 더욱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에밀리 그리핀(Emilie Griffin)이 말하기를 주님은 우리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날 때 우리를 가장 사랑하십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별로 중요한 사건이 없는 일상적인 기도에 먼저 힘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편기자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뗀 아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시편 131:1-3)

O LORD, my heart is not lifted up; my eyes are not raised too high; I do not occupy myself with things too great and too marvelous for me.  But I have calmed and quieted my soul, like a weaned child with its mother; like a weaned child is my soul within me.  O Israel, hope in the LORD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more. (Psa 131:1-3 ESV)

처음에는 우리 자신이 당연히 기도의 중심이요 주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 마음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혁이 일어난다. 천천히 그리고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게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다가 우리가 그의 생활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놀랍고 신비하게도 하나님이 우리 기도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바뀐다. 마음의 변화와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역사이다.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 29-31)

3.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 삶 자체가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변화됩니다.
구체적인 기도 응답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기도의 축이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께로 옮겨지기 원합니다.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매 순간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5.8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