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샬롬

1.

오늘은 9.11 13주년 되는 날입니다.
매주 9 11일이 되면
온 미국은 그때 그 악몽 같은 사건을 떠올리면서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그날 아침
저는 인디애나대학 기숙사에 살고있었습니다
우리 집은7층이었는데 아침 먹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방문교수로 오신 성도님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셔서 TV를 켜보라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오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TV를 켜는 순간
생방송을 진행하는 앵커 뒤로
비행기 한대가 건물로 돌진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아마 당시의 사건을 목격했던 미국 국민들은
9.11에 대한 트라우마를 여전히 갖고 살 겁니다.

그로부터 2년 후
한국에서 오신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동부여행을 하면서
World trade center현장을 가 보았습니다.

목숨을 잃으신 분들의 이름이 곳곳에 적혀있었고
복구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현장을 둘러볼 뿐이었습니다.

2.
13년이 지난 오늘
미국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이슬람 무장 단체의 무자비한 테러행위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급기야 어젯밤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무장 공습을 승인했습니다.

간신히 이락에서 빠져 나오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연말까지 철수하려고 하는데
또 다시 미국이 전쟁에 말려드는 지경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으로서도
다른 방법은 없고
여러모로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젯거리를 해결하기가 참 힘이 드는군요.

어제 저녁 대통령이 악(evil)이라고 규정을 하고
선전포고를 한 셈인데
손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3.
테러나 전쟁이나
평화가 깨진 상태입니다.
혼란인데 성경에 의하면 창조 이전의 상태가 바로 혼동입니다.

그러다보면
아무런 죄가 없는 시민들,
특히 노약자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가능한 피해야 합니다.
테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입니다.

미국이 대면한 테러와 전쟁,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에서부터
우리들이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이웃들과의 관계까지
여호와 샬롬(하나님의 평화)”이 임하길 원합니다.

참빛교회 식구들께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세상에 나감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을 누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함께 나눈 말씀대로
삶이 예배가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 같은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1분동안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Rom 14:17 ESV)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 (Mat 5:9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9.11 메일 목회서신)

네게 족하다

샬롬

1.
요즘은 새벽기도회에서
신명기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고
40년을 그들과 동고동락했지만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자신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세워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돕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두 번째 설교 또는 두 번째 법(Deuteronomy)이라는 뜻의
신명기는 이처럼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둔 모세가
새로운 시대에 전해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2.
모세는 약속의 땅에 꼭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신명기 3 23절 이하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Please let me go over and see the good land beyond the Jordan, that good hill country

and Lebanon.’  (Deu 3:25 ESV)

그렇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약속의 땅 동서남북을 바라만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길 세 번 구했던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12:9)라고 응답하신 경우와 똑같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합니다.
순명(順命) – 하나님의 명령을 아주 cool하게 받아 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고, 용기이고, 위대함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네게 족하다 (Enough!)”라는 하나님 말씀에 동의해서
정말 만족하고 감사한 삶을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몫(portion),
자신의 사명이 어디까지 인지 그 한계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모세의 마음으로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순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뜻 앞에 아멘이라고 응답할 수 있는지요?
나와 세상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는지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믿음, 용기가 우리 안에 있기 원합니다.

네게 족하다는 하나님 말씀에
아멘으로 답할 수 있는 진정한 부요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님 주신 삶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9.4 메일 목회서신)

소망의 하나님

샬롬

1.
지난 주일에
<신앙 터잡기> 복음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
세상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구속(redemption)
악과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부활(resurrection)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V-day).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가 가르쳐주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목이 빠지도록 우리를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행복한 둘째 아들입니다.
돌아갈 곳,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역사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마음과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춰지고
예수님 처럼 살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세계관)이 복음을 통해서 바뀝니다.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복음이요, 능력입니다.

2.
엊그제 수요일에는
로마서 15장을 공부했습니다.

로마서 15장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세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으셨으니 우리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신앙의 길을 가고, 공동체 안에서 이웃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로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 임하는 진짜 평화입니다.

중간에 소망의 하나님이 있습니다.

수요예배에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삶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받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라 사는 우리들의 삶도 만만치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서 그렇습니다.

그때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5:13)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in believing, so that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you may abound in hope. (Rom 15:13 ESV)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평강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믿음 안에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믿음은 축(axis)입니다.

기쁨과 평강이 넘치니 소망도 넘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어느덧 8월이 가고
9월이 코 앞에 있습니다.
우리들 삶이 언제나 분주하고, 힘겹고, 늘 무엇엔가 쫓기는 듯하지만
잠깐 잠깐 멈춰서
소망의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그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기 원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5:13)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in believing,
so that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you may abound in hope. (Rom 15:13 ESV)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8.28 메일 목회서신)

브올에서 생긴 일

샬롬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민수기를 읽고 있습니다.

엊그제까지
민수기 말씀 가운데 매우 흥미로운 부분인
발람과 발락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 22-25).

발락은 모압왕입니다.
발람은 당시에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모세가 인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으로 다가오자 위협을 느낀 발락왕이
선지자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나귀가 말을 하고
여호와의 사자가 선지자 발람을 막아서는 사건도 일어납니다.
절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그대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모압 왕 앞에 나간
선지자 발람은
브올이라는 곳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임을 선포합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실언하거나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선지자 발람의 축복을 통해서 만납니다.

2.
산 위에서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을 때,
브올의 산 아래 동네에서는
이스라엘의 남정네들이 모압 여인과 놀아나고
결국 바알의 축제에 참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시내산에 있을 때
산 아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거기에 절을 하던
광야생활 초기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만큼 세상의 유혹이 컸겠지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바알신상이 훨씬 매력적이었겠지요.

하나님께서
이방왕 발락과 이방 선지자 발람 사이에서
은밀하게 일을 하고 계셨으니
산 위에서 일어난 일을 백성들이 알아채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40년 광야 생활이 끝나고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었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에 은근히 화가 치밉니다.

3.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과 짝해서 세상을 즐기고
세상을 따라갑니다.

질투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과 사랑놀이를 합니다.
얼른 정신 차리고
산 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겠습니다.

산 아래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지만
우리에게 임할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주시는
산 위의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산 위의 하나님께 들릴 정도로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거짓말 하지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3:19)

God is not man, that he should lie, or a son of man,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Has he said, and will he not do it? Or has he spoken, and will he not fulfill it? (Num 23:19 ESV)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 살지만
산 위의 하나님,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8.14 메일 목회서신)

말씀먹기

샬롬

1.
지난 주일 친교 후에는
절제회에서 주관한 건강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유익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사 교수님께서는 건강의 비결로
탄수화물을 줄인 두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식사법을 권장하셨고
규칙적인 수면 습관과
정기적인 운동을 권하셨습니다.

탄수화물을 즐겨 먹는 저희 부부는
일단 탄수화물을 줄이기로 다짐하고
지난 3일 동안 실천한 결과
체중이 3파운드 감소하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 목사님들과 외식을 했더니
3일간의 다이어트가 도루묵이 되었습니다.ㅠ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오늘 목사님들과 함께 읽은 요한 웨슬리의 설교
더 좋은 길에서도 기독교인의 식습관에 대한 교훈이 나왔습니다.

음식의 양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선한 사람들은 과도하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적어도 음식 때문에 병이 들거나 술에 취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그들은 항상 천진난만하고 소화에 도 도움이 되게 즐겁게 먹습니다…”당신의 음식을 잡고 먼지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조금만 먹어라.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간다고 말하라.”

우리는 여전히 먹거리가 풍성한 곳에 살고 있습니다.
실컷 먹을 수 있고, 게다가 남기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의 음식 습관에도 절제가 꼭 필요함을 느낍니다.

2.
그런데 우리들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먹는 데는 다이어트가 필요 없습니다.
많이 먹으며 먹을수록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고 들어도
체하는 법이 없습니다.
많이 먹을수록 좋습니다.

말씀을 우리 안에 깊이 거하게 하는
묵상은 길면 길수록 좋습니다.

깊은 수면이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되듯이
깊은 묵상은 우리의 내면에 쉼과 힘을 동시에 줍니다.
신앙의 내공은 깊은 기도와 묵상에서 오지요.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그대로 사는 것은
신체의 운동과 같습니다.

말씀을 먹고, 묵상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건강한 신앙을 갖출 수 있습니다.
매끈하고 단정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절식하고, 깊은 수면과 운동을 통해서
우리의 육신이 건강하길 원합니다.

주의 말씀도 충분히 먹고,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감으로
주님 주신 생명을 마음껏 누리기 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12:1, 새번역)
I appeal to you therefore, broth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worship. (Rom 12:1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물론
삶 전체가 건강하게
주님 앞에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8.21 메일 목회서신)

듣는 기도

샬롬
1.
7월부터 주일예배 순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설교 후에 조용한 기도가 들어갔고,
봉헌기도 전에
한 목소리로 기도합니다.

설교후의 조용한 기도는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들은 말씀을 내면화하는 순서입니다.

주신 말씀을 꼭 붙들고
그 말씀을 갖고 한 주간 살기로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교회가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다면
(종종 앰블런스도 크게 들리지요)
방음이 잘 되어 있다면,
피아노도 치지 않고
침묵가운데 온 교회가 조용히 기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성도님들과
온 교회가 주님 앞에 고요히 나가기 원합니다.

2.
기도는 모놀로그(monologue)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 다이얼로그(dialogue)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 드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를 쏘아 올립니다.

어떤 때는 일방적으로 속사포처럼 쏘아 올리고
일초도 기다리지 않고 일어섭니다.

내 할말 다했으니
이제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참 무례한 행동입니다.

적어도 기도가 끝난 후 단 일분이라도
조용하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 속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속삭임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듣는 기도입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기도를 뒤로 하고
처음부터 조용하게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3.
물론 하나님 앞에서
외쳐 부르짖어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외침의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고
마음 속의 갑갑함을 해결합니다.

동시에
듣는 기도, 조용한 기도는
우리의 삶에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회개와 고백이 일어납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할 때
조용한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듣는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모든 장애물들과 마음의 모든 계획들과 의지의 모든 머뭇거림을 치워놓았다. 사랑과 찬양의 하나님 은혜가 바다의 파도와 같이 우리를 정결케 한다분명 고요함이 있으니 그것은 듣는 고요함이다. -IVP 소책자 시리즈 <묵상기도>에서

무수한 말들이 들려옵니다.
세상이 소란스럽고 시끄럽습니다.
갈팡질팡, 어지럽습니다.

잠시라도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의 스위치를 끄고
오직 주님께 귀를 쫑끗 세운 채
주님의 음성을 듣는 차분함, 고요함, 그렇지만 간절함이
우리 가운데 있기 원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19:14)
Let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acceptable in your sight,
O LORD, my rock and my redeemer. (Psa 19:14 ESV)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조용한 가운데
주님의 손길과 세심한 인도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8.7 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인

샬롬

1.
교회 우체통을 확인해 보니
우리가 돕는 초록우산(소년소녀돕기)에서
두툼한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두 달에 한번 소식지를 보내주는데
이번에 온 우편물은 유달리 두꺼웠습니다.

봉투를 뜯어보니
전도사님의 뒤를 이어서
초록우산에 연락을 맡고 계신 권사님께
코미디언 이홍렬씨의 <60>라는 책이 배달되었습니다.

무심코 두 세 장 넘기자마자
왠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나옵니다.

코미디언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예전에 들어서 익숙한 원로 코미디언으로부터
요즘 한창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세 페이지 이상 총망라되었습니다.
코미디언 회원록에서 가져온 이름 같습니다.

생소한 이름도 꽤 있습니다.
방송에 이름만 한번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회원으로만 가입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속으로 불러가면서
세어보니 708명입니다.
아마 제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 준
코미디언들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홍렬씨는 이렇게 첫 번째 장(chapter)를 마무리합니다.

“하하, 이름만 봤는데도 즐거워지지 않는가?
나는 정말 간절히 내 이름 딱 석자 ,,!”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그런 이름이고 싶다.
당신은 어떤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으면 하는가?
What’s your name?”

2.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전에 설교했던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처형대에 선 순교자는
“I am a Christian”이라고 답합니다.

이름이 뭐냐고 재차 물어도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답합니다.
이름이 그리스도인(Christian)”입니다.

마지막 순교의 순간에
그리스도인(Christian)으로 불리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습니다.

참 멋진 장면입니다.

우리들이야 순교자들의 먼 발치에도 갈 수 없고
세상에서도 남달리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 자부심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온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고, 책임을 느끼는 인생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참되고 멋진 그리스도인들속에
묻어가는 인생이고 싶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감사한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3:5)
The one who conquers will be clothed thus in white garments, and I will never blot his name out of the book of life. I will confess his name before my Father and before his angels.  (Rev 3:5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지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31 메일 목회서신)

반딧불

샬롬

1.
저희 부부는
큰 아이를 보기 위해서
미시간에 와 있습니다.
예전에 인디애나에 살았었기에
매우 익숙한 환경입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캠퍼스 구경을 나섰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니
어두워졌습니다.

그래도 시차가 있어서
정신은 말짱하고
학교 근처에서 큰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주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잔디밭에 반딧불이 있습니다.

인디애나에 있을 때
밤늦게 공부를 하고
집으로 걸어오다 보면
잔디밭에 반딧불이 반짝반짝 수를 놓고 있었는데
이곳 미시간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반딧불은
공기가 깨끗한 청정지역에 산다고 하지요.
반짝 반짝!
잠시 잠깐 빛을 내는
반딧불의 향연이 잔디밭에서 펼쳐집니다.

2.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마음이 답답합니다.

뭔가 확실하게 설명해 주면 좋으련만
투명하고 솔직한 것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건만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점점 의혹이 커집니다.

태평양 너머에 있는 우리들도 답답한데
한국에 계신 분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할 것 같습니다.

투명하고, 솔직하고, 충분한 설명이 되는 세상이 되어야
반딧불이 돌아와서 빛을 발할 텐데 말입니다.

3.
마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복이 자꾸만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 임이요 ( 5: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Mat 5:8 ESV)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카타로스인데
마음이나 삶이 깨끗하고(clean), 당당하고(open),
순수하고(pure), 흠이 없는(spotless)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당당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순수하고, 솔직하고, 청결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가르쳐주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도 마음이 청결한 자를 향하여
그 얼굴 빛을 비춰주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거짓말 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고
잘못한 것을 두고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
투명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5: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Mat 5:8 ESV)

하나님 아버지
청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그만 반딧불까지 빛을 발할 정도로 깨끗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24 메일 목회서신)

세상을 위한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는 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무거운 요즘입니다.

어제는 말레이시아 민간 항공기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서 300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습니다.
물론 어린 아이들도 있지요.

서로 범인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지만
누군가 해서는 안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민간인들이 탄 항공기를 공격하다니요..

지난 번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던 항공기도
말레이시아 항공기였기에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휴전이 될 것 같더니
협상이 깨지면서
무차별 공격에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역시 어린아이들이 가장 안타까운 희생자들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사건과 사고, 테러의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3.
한국에서도
세월호 구조에 나갔던
소방 헬기가 시내에 추락했습니다.

조종사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조종간을 잡은 덕분에
큰 피해를 면했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여기저기서
전쟁의 소문, 재난과 사고 소식이 이어집니다.

지구촌이 늘 시끄러웠다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멍멍할 정도의 일들이
연거푸 터진 적도 별로 없는 듯 합니다.

4.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안타깝습니다.

태평양 너머에 사는 우리들이기에
조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바라볼 뿐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확실한 한 가지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진실된 기도입니다.

예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세상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원에서 밤을 새면서 기도했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뿌리가 뽑힐 정도로 간절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조국과
더불어 살고 있는 지구촌을 위해서
특히 자식과 부모, 친지를 잃은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9:17)
You are a God ready to forgive, gracious and merciful,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steadfast love, and did not forsake them (Neh 9:17 ESV)

하나님 아버지
떠나온 조국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17 메일 목회서신)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기도회에서는
민수기 6장을 읽었습니다.
그곳에는
나실인 서약이라는 특별한 말씀이 나옵니다.

삼손이나 사무엘처럼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 수도 있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일정기간 나실인으로 살면서
자기 몸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간을 정해서 금욕의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포도주는 물론 포도즙도 먹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죽은 시체를 만지지 않는 것이
나실인 서약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금식으로 기도하거나
평소에 즐기던 것을 금하거나 절제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로 결심하는 것에 해당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매번 좋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신앙이나 삶에 위기가 느껴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구약의 나실인들처럼
구별된 삶을 살면서
각자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필요가 있습니다.

2.
나실인 서약에 이어서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6:22-27).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아론과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축복기도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6:24-26)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the LORD make his face to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you and give you peace.  (Num 6:24-26 ESV)

참 아름답고
귀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축복입니다.

위의 축복이 임하면
우리의 삶은 주님 안에서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위해서 마음껏 축복합시다.
가족과 친지들과 동료들,
그리고 우리 참빛 식구들의 얼굴을 눈에 그리면서

저도
여러분들의 얼굴을 눈에 그리면서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the LORD make his face to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you and give you peace.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는
이웃들을 마음껏 축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7.10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