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홈페이지로 쓰고 있는
MSN에서는 2015년에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브랜드 다섯 가지를 선정했습니다.

사라질 것 같은 브랜드 다섯번째는
알라스카 항공이었습니다.
서부지역 항공노선을 강화하려는 델타에게 먹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징가(Zynga)라는 게임회사입니다.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고
누군가 싼 값에 사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세 번째는 핫도그와 소시지 회사(Hillshire)였고,
두 번째는 AT&T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Direct TV였습니다.
사라질 것 같다는 첫번째 브랜드는
여성운동복을 만드는 회사(Lululemon Athletica)였습니다.

세상이 하도 빨리 변화되니
적응하지 못하는 회사들이나 브랜드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오프라인 책방이었던
보더스(Borders)
전자기기 매장이었던 서킷시티(Circuit city 등등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경쟁력인 것 같습니다.

2.
성경에서도 사라진 것들이 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등
계속되는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의 삶을 살면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다윗이 천신만고 끝에 예루살렘으로 옮겼던
법계도 어느 순간부터인지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것 뿐만 아니라
원래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변질된 경우도 많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직분입니다.
모세의 형 아론의 후예들로
하나님의 거룩한 직분을 담당했던 제사장들이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타락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앞장섭니다.

3.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계절에 있습니다.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청산하고,
꼭 필요한 것인데도 행여나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연초에 마음 먹었는데 한 해 동안 변질된 것은 없는지.
각자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해를 견디게 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원합니다.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일은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가 더 좋다. 마음은 자만할 때보다 참을 때가 더 낫다. (전7:8)
Better is the end of a thing than its beginning, and the patient in spirit is better than the proud in spirit. (Ecc 7:8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을
끝까지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18 이-메일 목회서신)

은혜의 단비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녁을 먹고
아내와 근처 학교까지 산책을 했습니다.

비가 내린 다음에 걸으니
공기가 참 신선하고
덩달아 기분도 상쾌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반짝입니다.

비가 조금 더 왔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
집에 와서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토요일까지 비가 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 비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저 하늘을 바라볼 뿐입니다.

2.
지난 몇 년간 캘리포니아는
유래 없는 가뭄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입니다.
운전하다 보면 가뭄이 심하니
물을 절약하자는 광고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이 정도의 비로 가뭄이 해소될 수는 없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앞으로 수년간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합니다.

그러던 차에
비가 내리니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지요!

3.
단비를 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과 삶에도
은혜의 단비가 내리길 기도했습니다.

행여나
마음이 갈급하고
메마른 분들이 계시다면
은혜의 단비로 촉촉히 적셔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비를 기다리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신32:2)
May my teaching drop as the rain, my speech distill as the dew, like gentle rain upon the tender grass, and like showers upon the herb.  (Deu 32:2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에 충분한 비를 내려주시고
참빛 교회 식구들 신앙과 삶을
주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1.20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는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목요서신도 쉬었습니다.^^

2주 전 목회서신의 제목이
“은혜의 단비”였지요.

지난 3년여 극심한 가뭄으로 시달린
샌프란과 캘리포니아에 비가 내린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들 신앙과 삶에도 은혜의 단비가 내리길 소망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내려서
가뭄 해갈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폭우가 쏟아져서
도로가 물에 잠기고, 샌프란 주택가에 싱크 홀도 생기고
우리 교회도 빗물이 아래층으로 역류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어제 오전 내내 박권사님 내외분과 청소했습니다.
미래와 주영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물이 차서
이번 주 학교를 쉰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앞으로도 계속 비소식이 있습니다.
물이 차고, 도로가 미끄럽고 아무래도 비가 오면 생활하기가 불편하지만
이번 기회에 가뭄이 말끔히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한꺼번에 비가 내리지 않고
조금씩 분산해서 내려주신다면
우리 교회는 물론
빗물도 잘 저장해 놓을 수 있고 더 바랄 것이 없겠군요.^^

2.
가뭄이 들 때는 영원히 비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내로 캘리포니아가 사막으로 변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왔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이렇게 많은 비가 단숨에 내려서 가뭄을 해소해 줍니다.

우리들 인생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면서 불안해하고 심하면 절망합니다.
영원히(?)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은 ‘깜깜함’입니다.

하지만
인생길에 가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 기다리면 단비가 흡족이 내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것을 두고 ‘하나님의 때’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시간이 임할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3.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여호수아 21장 43-4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정착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라는 말씀은
창세기의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는 약속이니
거의 600년 만에 이뤄진 셈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수21:45)
Not one word of all the good promises that the LORD had made to the house of Israel had failed;
all came to pass. (Jos 21:45 ESV)

2014년의 마지막 달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할 일들도 많이 있지만
어떤 일들을 생각하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지,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과 염려를 밀려옵니다.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내(perseverance)라고 생각합니다.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남김없이 응할 줄 믿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차근차근 앞을 보며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믿음 안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때”를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측불허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하나님의 때를 살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걸어가는 신앙의 길, 인생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4 이-메일 목회서신)

아이성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의 성경읽기가
여호수아서까지 왔습니다.

여호수아 말씀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읽기만 해도 신이 납니다.

오늘 새벽에는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을 맞닥뜨리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서 열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이었지만
순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너뜨립니다.
일곱 바퀴를 돌고 크게 함성을 질러서
성이 무너졌다는 말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나타내줍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일어난 일인데도
마치 자신들이 한 공적처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만해졌습니다.

이것은
여리고성 다음에 아이성을 정복할 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냈는데
이들이 오더니 별 것 아니라고 보고합니다.
단지 이삼천 명만 올라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얕잡아 보았습니다.
적당히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공격했을 때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2.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에서 패배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위에서 말했듯이
아이성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하게 대응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이스라엘은
두 번째 공격을 할 때는
삼만 명의 군대를 보내서 승리를 거둡니다(8:3).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것 하나 얕잡아 보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둘째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면서
그 어떤 탈취물도 개인적으로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간이란 사람이 외투와 금과 은을 몰래 감췄습니다(7:24)

한 사람의 범죄함이
이스라엘 온 민족에게 미쳤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것을 묵인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쉽게 넘어갈 것 같은 사소한 일들
우리 삶 여기저기에 버려진 작은 죄들
몰래 행하는 작은 일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데 장애가 되는군요!

3.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사소한 잘못이나 부끄러운 부분까지
점검해서 하나님께 내어놓기 원합니다.

작은 것들에 마음을 쓰고
세세하게 챙기고
관리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6:10)
“One who is faithful in a very little is also faithful in much,
and one who is dishonest in a very little is also dishonest in much. (Luk 16:10 ESV)

하나님 아버지,
주님으로부터
작은 것에 충성했다고 칭찬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1.6 메일 목회서신)

로제타 스톤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매우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습니다.
10년 전 유럽우주국에서 쏘아 올린 로제타 우주선에서
필레(philae)”라는 냉장고 크기만한 탐사선이
혜성에 착륙했다는 소식입니다.

미국의 한 방송에서는
필레가 지름이 약 6킬로미터 정도인 혜성에 착륙하는 것은
2층 발코니에서 페니를 떨어뜨려서
토마도 캐첩병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혜성을 만나기 위해서 로제타호가 10년 동안
64억 킬로를 운행했다는 것이나
지구로부터 5억 킬로 떨어진 혜성에 탐사선을 착륙시켰다는 뉴스를 보면서
어느 한가지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과학의 세계를 접했습니다.

옛날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예술작품으로 묘사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네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3-4)

2.
저는 뉴스를 보면서
로제타(Rosetta)”라는 우주선의 이름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로제타 스톤이라고 하지요.
요즘은 어학을 공부하는 교재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로제타 스톤은 1799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길에서 발견한
가로 세로 각각 114cm 72cm되는 석판입니다.

이 석판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이집트 문자
그리고 그리스어 즉 세가지 언어로
이집트 왕의 업적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같은 내용을 세 가지 언어로 기록해 놓았기에
서로 비교하면서
그 동안 풀지 못했던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우주선 로제타의 이름 속에도
우주의 신비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3.
우주가 신비이듯이
고대 문서의 의미가 신비에 쌓여있었듯이
우리들의 삶도 어떻게 보면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어떤 때는 도통 무슨 의미인지
또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에게도
우리들의 삶을 읽을 수 있는
로제타 스톤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로제타 스톤은 무엇일까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십자가라는 렌즈를 통해서 조명될 때
이해가 되고, 설명되고, 또 앞으로 나갈 길을 발견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목숨까지 바치시고
죽음은 물론 모든 악을 물리친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과 부활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제는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십자가 붙들고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우리 참빛 식구들께서
힘들 때 십자가 바라보고
감사할 때도 십자가로 나가고
막막할 때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힘들 때는 자기 십자가 어깨에 메고
인생의 신비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꿰뚫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바라보며
사도 바울처럼 고백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 2:20 ESV)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에 깃든
지혜, 사랑, 은혜, 그리고 능력을 힘입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1.14 메일 목회서신)

Speed Limit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는 새크라멘토 근처
욜로 카운티(Yolo county)에 있는
감 밭에 다녀왔습니다.

캘리포니아가 극심한 가뭄인데
실제로 농사를 짓는 지역에 가보니
농작물들이 마른 곳도 있고
하루속히 단비가 흡족히 내려야 함을 실감했습니다.

과수원에 가까워 지면서
로컬 도로로 옮겨 탔는데
길가에 있는 스피드 리밋(speed limit)표지판의 숫자가 요동을 칩니다.

55 – 35 – 25 – 55

55마일 지역인 줄 알고 달렸는데
35마일 존으로 갑자기 바뀝니다.
게다가 근처에 학교가 있으면
25마일로 바뀝니다.

그 지역에 익숙하신 집사님 말씀으로는
경찰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가
속도 위반한 차들에게 가차없이 티켓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어느 때보다 길 옆에 있는
스피드 리밋 표지판을 주의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2.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들 인생길에도 스피 리밋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너무 늦게 달려도 티켓을 받듯이
인생길을 가는 우리들도 너무 늦게 걸어가고 있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속도를 내야 합니다.

너무 빨리 달려도 문제입니다.
그때는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물론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요.
아무리 빨리 달려도 방향이 맞지 않으면 큰 일입니다.

너무 늦게 걷는다면
게으름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빠르게 걷는 것은 욕심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피드 리밋을 지키면서
운전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속도를 지키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 23:6)
Therefore, be very strong to keep and to do all tha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turning aside from it neither to the right hand nor to the left, (Jos 23:6 ESV)

하나님 아버지,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 속도를 지키면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0.23 메일 목회서신)

*I-280도 곳곳에 경찰이 숨어 있습니다. 스탠포드에서 올라오시는 성도님들도 스피드 리밋을 꼭 지켜주시길.^^

행함이 있는 믿음

좋은 아침입니다.

1.
한 달에 한번
은퇴하고 이곳에 와 계신
신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요한 웨슬리 설교를 읽고 있습니다.

갑자기 내일 설교 한편을
발제해야 해서 준비를 하는데
설교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믿음으로 세워지는 율법 (the law established through faith)”

믿음과 율법
즉 은혜와 행위는 서로 상반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웨슬리는 믿음과 율법/ 은혜와 행위가 함께 간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율법없이 죄를 깨닫기 힘듭니다.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하지만
선행과 성결(거룩함)의 행위가 없다면
그 믿음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온전해 졌을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이 완성됩니다 (5:17).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은혜에 도취되어서
삶이 나태해지고, 방만해 지는 것을 무섭게 꾸짖습니다.

이제 주님을 향한 열정이 덜 하다는 말입니까?
금식을 하는 일과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과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부르는 일에 덜 열심입니까?
, 회개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 없음을 슬퍼하십시오! 어디서 떨어졌는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불성실을 비탄하십시오.
이제부터 열정을 다하여 처음 일들을 다시 찾아 행하십시오.
(설교 35, 믿음으로 세워지는 율법 I)

이 밖에도 웨슬리는
먹거리부터, 의복, 시간과 물질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은혜라는 핑계로 대충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의 모습을 조목조목 점검합니다.

2.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은
대단한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삶이 피곤하고, 힘겹고,
앞 길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인해서
신앙까지 나약해져서는 안됩니다.

이제 올 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한 해가 휘리릭 지날 것입니다.

믿음을 바로 세우고
삶의 고삐를 다잡고
새 달을 맞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를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 1:10-11)
so as to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Lord, fully pleasing to him, bearing fruit in every good work and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 11 May you be strengthened with all power, according to his glorious might, for all endurance and patience with joy, (Col 1:10-11 ESV)

하나님 아버지,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되게 하시고
그 안에서 주님의 능력을 힘입게 하옵소서.
새 달을 맞아서 매사에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0.30 메일 목회서신)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목요서신에서는
새벽에 읽는 신명기 말씀을
계속 나누게 됩니다.

오늘은
신명기에서 매우 익숙한
28장을 읽었습니다.

28장에 나오는 축복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 백성들을 향한 최고의 축복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유명한 구절을 옮겨 옵니다.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5-6)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8-9)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13-14)

익숙한 말씀들이지요?
어머니들께서 기도하실 때 많이 쓰시던 말씀도 있구요.

2.
그런데 28장을 읽다 보면
앞의 열네 구절만 축복이고 뒤에 15절부터 57절까지는
축복의 말씀을 모두 되엎는 저주가 나옵니다.
28장 앞에 있는 27장에도 마찬가지이고요.

저주의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저주를 받아야 할 우리들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저주를 끊고
은혜 가운데 축복으로 들어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
28장에 나오는 축복들을
욕심껏 모두 취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말씀이니
우리가 모두 취하는 것도 격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12절 말씀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무엇보다 우리들의 손으로 하는 것에 복을 주시면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헛바퀴 도는 인생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것에 열매가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남에게 꾸지 않고 베풀며 사는 것도 복입니다.
빚을 지고 사는 인생은 늘 쫓깁니다.
큰 재산을 축적하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베풀며 살 수 있다면 보람된 인생입니다.

이것이 우리들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꼭 있습니다.
하늘의 보고를 여시고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면 더 없이 행복한 인생입니다.

신명기 말씀은
하나님 나라 법칙입니다.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이기에
하나님을 믿어도 모든 축복이 그대로 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 새벽에는
12절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에게 그대로 임하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께서는, 그 풍성한 보물 창고 하늘을 여시고, 철을 따라서 너희 밭에 비를 내려 주시고,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많은 민족에게 꾸어 주기는 하여도 꾸지는 않을 것이다.
The LORD will open to you his good treasury, the heavens, to give the rain to your land in its season and to bless all the work of your hands. And you shall lend to many nations, but you shall not borrow.

(Deu 28:12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교회 식구들 께 하늘의 은혜를,
수고한 대가를,
베풀며 사는 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0.16 메일 목회서신)

멋지고 근사하게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 읽고 있는
신명기 말씀을 두고
저는 하늘나라 생활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2세들에게 행한 모세의 설교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 백성으로 손색이 없도록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요.

물론
어그러지고 거슬리는 세상(2:15)에 살다 보니
신명기는 물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가 어렵지만
우리들의 눈과 마음은 하나님 말씀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2.
오늘 새벽에는 신명기 23장을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두 절 말씀이 특별했습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신명기 23:24-25)
“If you go into your neighbor’s vineyard, you may eat your fill of grapes, as many as you wish, but you shall not put any in your bag. 25 If you go into your neighbor’s standing grain, you may pluck the ears with your hand, but you shall not put a sickle to your neighbor’s standing grain.  (Deu 23:24-25 ESV)

가난한 자들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곡식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손으로 따도 됩니다.

밭 주인들은 포도원과 밭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개방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경제 시스템인 셈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배가 고프고 가진 것이 없어도
포도를 그릇에 담아와서는 안됩니다.
곡식밭에 낫을 대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욕심입니다.
무례한 행동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힘겹게 사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포도나 곡식을 갖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은
엄격하게 금하십니다.

일정한 선을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례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이처럼 신명기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불쌍히 여기심)
하나님의 공의(엄격하심)
개인의 삶과 세상에 온전히 적용하라는 교훈입니다.

간혹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는 것은
포도를 그릇에 욕심껏 담기 때문입니다.
무례하게도 낫으로 곡식을 베기 때문입니다.
과욕을 부리거나 얌체처럼 행동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힘이 들어도
매사에 지나치면 안됩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는 품위(decency)를 지켜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멋지고/근사하게 살기 원합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24:19)
When you reap your harvest in your field and forget a sheaf in the field, you shall not go back to get it. It shall be for the sojourner, the fatherless, and the widow, that the LORD your God may bless you in all the work of your hands. (Deu 24:19 ESV)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면서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근사하게 살아가는 참빛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0.9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 바라보면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수요예배에 가기 위해서
I-280 고속도로를 탔는데
저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 오릅니다.

그러더니
소방차와 경찰차까지
비상벨을 울리면서 달려갑니다.

길이 꽉 막혔습니다.
일찍 나섰기에 망정이지
늦장을 부렸다면 예배시간에도 늦을 번 했습니다.

버스 한대가
완전히 불에 타서 길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승객들이 길 옆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막히던 도로가
사고현장을 지나가니
다시 말 그대로 고속도로가 됩니다.

2.
수요예배 끝나고
문 앞에서 잠시 얘기하고 있는데
하는 소리가 납니다.

교회 앞길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지만
충돌을 한 차의 앞 범퍼가 너덜너덜하게 떨어졌습니다.

두 차의 운전사가 나와서
서로의 잘못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의도적으로 한 일은 아니니
두 사람 모두 속이 상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3.
요즘은 유난히 길이 막힐 때가 많습니다.
미국의 경제가 좋아진다는 말이 맞는 지
도로에 자동차들이 부쩍 는 것 같습니다.

길이 막히면 누구나 조급증이 밀려옵니다.
그때마다
얌체 같은 차들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겠지만
막힌 길을 요리조리 차선을 옮기면서
머리만 들이대는 차들입니다.

하지만
조금 가다 보면
얌체처럼 끼어들던 차가 제 옆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오십보 백보인 셈입니다.

4.
어느 덧 10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이제 올해의 남은 날들은 말 그대로 화살처럼 지나가고
또 다시 새해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급증이 발동할 수도 있고,
이런 저런 염려와 불안이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길은 늘 불완전합니다.
룰루랄라 노래가 나올 정도로
쉬운 순간은 잠시뿐입니다.

우리의 앞길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순간에 닥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갑자기 버스가 불에 타고,
교회 앞에서 사고가 나고
길이 막힐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요즘 생명의 삶 큐티가 전도서인데
전도서 말씀이 깊이 다가옵니다.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7:14, 새번역)
In the day of prosperity be joyful, and in the day of adversity consider: God has made the one

as well as the other, so that man may not find out anything that will be after him. (Ecc 7:14 ESV)

좋은 때는 기뻐하고
어려울 때는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하면서
담담하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여정을 따라 갑니다.

그 안에서 느끼는
하늘의 기쁨,
하나님의 손길,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요즘 주일 설교를 통해서 배우듯이
하나님 주신 말씀, 한 구절을 곱씹으면서
말씀과 기도로 주어진 인생길을 멋지게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참빛 식구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하시고
삶이 예배가 되고, 그 안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0.2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