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마지막 주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는 지금 사순절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이고
부활주일을 앞둔 다음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이렇게 일년을 교회력을 따라서
(매 주일 주보 예배 순서 앞에 있는)
사는 것이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신앙을 <예수님 닮기>라고 요약할 수 있고
교회력은 예수님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오늘 새벽에 나눈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가르쳐줍니다.

여호와께서 그의[모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The LORD passed before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a God merciful and gracious,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steadfast love and faithfulness, (Exo 34:6 ESV)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부족함도 없으신 완전한 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설명해 주시는
성품들이 쭉- 나옵니다.

지금 이 순간 잠시 멈춰서
한 가지씩 깊이 생각해 보길 권합니다.

“자비롭고” – 어머니의 품을 연상케하는 하나님의 마음(compassionate)
“은혜롭고” –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 (graceful)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 부족하고 때로는 무척 못된 우리를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patient)
“인자” – 우리를 무조건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steadfast love)
“진실: – 우리의 모습과 상관없이 끝까지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faithfulness).

다음 구절에도 하나님의 성품이 이어집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Keeping steadfast love for thousand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but who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visiting the iniquity of the fathers on the children
and the children’s children, to the third and the fourth generation.” (Exo 34:7 ESV)

인자를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함과 과실과 죄도 용서해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자손 천대까지 용서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의 죄나 허물을 절대로 기억하지 않으심을 강조한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뒤끝이 없으시네요!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섬뜩합니다.
벌은 면제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하신다니….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작동되면
벌까지 면제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죄는 용서하시지만
벌을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은 죽음이니 큰 일 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를 발견합니다.

3.
우리는 사망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벌을 받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는 물론 우리가 받을 벌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깃든 대속(대속, redemption)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지요.

출애굽기 34장 7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이 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가 살았습니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고난주간을 맞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죄는 물론
우리가 받을 벌까지 십자가에 묻어버리신
우리 주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를 감싸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4.10 이-메일 목회서신)

빌립보서 4장 13절

좋은 아침입니다.

1.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즐겨 암송하는 구절가운데 하나가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Phi 4:13 NIV)

그런데
지난 주 설교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11-12절을 한꺼번에 읽어야
그 본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1-12)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I am in need,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whatever the circumstances.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Phi 4:11-12 NIV)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천이든, 궁핍이든, 풍부이든,
배부름이든, 배고픔이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등산가들이 힘겹게 산 정상에 오른 다음에
“야~ 호”를 외치듯이,
사도 바울 역시
이 모든 일체의 비결을 터득한 후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선포합니다.

2.
빌립보서 4장13절이
그리스도인의 성공의 열쇠로 인용되곤 합니다.

어떤 큰 일을 앞두고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식으로
빌립보서 4장13절을 암송합니다.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있을 때,
예수님의 능력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읽습니다.

틀린 적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11-12절의 문맥을 따라 읽을 때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와 삶이 어떠하든지
그 속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어느 곳에나 예수님의 능력이 임한다고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지난 주일 설교문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일체의 비결을 익혔다면 말 그대로 거침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감사합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으니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비결 – 인생의 매스터 키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닥쳐오는 세상이
의외로 강하고 만만치 않지만,
질그릇인 우리 안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기 원합니다.

사도바울처럼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그래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기 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Phi 4:13 NIV)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삶에 자족하게 하옵시고
주님 안에서 일체의 비결을 터득한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4.3 이-메일 목회서신)

귀 뚫은 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출애굽기 21장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옵니다.

십계명으로 시작된 출애굽기 20-23장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21장은 종에 대한 규정으로 시작합니다.
6년 동안은 종으로 살지만
7년째가 되면 종에서 해방시켜서 자유인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한번 종인 사람이 영원히 종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종들은 자유인이 될 7년째를 고대하면서
여섯 해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인이 되는 일곱 번째 해가 되어도
영원히 주인을 섬기려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처자식을 얻게 된 경우입니다.
그러면 처자식을 놓고 홀몸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런 경우,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되기로
마음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인은 종을 데리고 하나님의 재판장에게 갑니다.
그리고 문설주에서 송곳으로 귀를 뚫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되겠다는 표시입니다.

2.
본문을 읽으면서
두 가지 구절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는
종이 주인 집에 남아있기로 한 이유입니다.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출21:5).
‘I love my master, my wife, and my children; I will not go out free,’ (Exo 21:5 ESV)

종이 주인의 집에 억지로 남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자신의 가족은 물론 주인까지 사랑합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자유인을 포기하고
주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과 가족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른 한가지는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되겠다는 표시로
문설주에 귀를 뚫는 의식입니다.
문은 주인집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귀를 뚫는 것은
영원히 주인의 집에 속해 있을 것이라는 표시입니다.

비록 귀가 뚫렸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기에 행복했을 것입니다.

3.
귀를 뚫는 종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 영원히 거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주님(Lord)으로 모시고
주님 앞에서 종으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귀 뚫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귀가 뚫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가족들과 성도들을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 귀 뚫린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도 주님 안에서 행복한 종들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할 일이 분명해졌습니다.
– 주인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해나가면 됩니다.
–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임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임을 믿고
“주님! 사랑해요”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종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귀 뚫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특권을 마음껏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3.20 이-메일 목회서신)

제단 뿔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광야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성막(tabernacle)을 지으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5장부터 마지막 40장까지는
성막을 짓는 방법(설계도)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알려주시고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성막을 짓고, 제사장을 세우는 말씀입니다.

설계도의 도면을 제시하듯이 수치까지 정확하게 지시하셔서
너무 자세하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말씀이 반복되어서 지루할 정도입니다.

출애굽기 27장 1-8절에서는
제단(altar) 만드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가로와 세로가 다섯규빗(약2.5미터)되고
높이가 삼규빗(약1.5미터)되는 정사각형입니다.
제단의 네 모서리에는 뿔이 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제사드릴 때
네 모서리의 뿔에 제물의 피를 묻힙니다 (레 4:7).
피의 제사임을 나타내줍니다.

제단 뿔에 피를 바르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우리의 생명을 드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났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구하는 예식입니다.

이처럼 제단 뿔에 피를 묻히는 것은
무엇보다 구원의 상징입니다.

2.
제단 뿔에는 다른 기능도 있습니다.
훗날에 예루살렘에 성전이 생기고
성전에도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네 모퉁이에 뿔이 있는 제단이었습니다.

그때
제단의 뿔은 용서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성전에 들어와서
제단 뿔을 잡고 있으면 죄를 용서함 받았습니다(왕상2:28)

실제로 반역을 도모했던 아도니야가
제단뿔을 잡고 있으니까
솔로몬이 그에게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단 뿔을 잡았다고 모든 죄가 용서함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단뿔을 노리고 일부러 죄를 짓는 경우는
거침없이 벌을 받기도 했습니다(출21:14).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만홀히(경하게 여기는 교만) 여기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3.
요즘 우리 시대에
제단 뿔이 무엇일까를 묵상하면서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보혈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았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신앙의 길을 걸어갑니다.

십자가를 붙드는 손에
주님의 위로와 힘이 임합니다.
십자가를 붙드는 마음에
용서함과 불쌍히 여기심이 임합니다.
십자가 붙잡고 가는 인생길을 주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제단 뿔을 잡고 살기 원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할 때도 제단 뿔을 잡기 원합니다.

우리 삶에 십자가 드리우고
그 십자가를 꼭 붙잡고 걷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니라 (히12:2)

Fixing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has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Heb 12:2 NAU)

하나님 아버지
제단 뿔을 꼭 붙잡고
주님의 구원과 용서함을 구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3.27 이-메일 목회서신)

말씀 붙잡기

은 아침입니다.

1.
연말에 선물했던
헨리 나우웨의 <삶의 영성>을
발췌해서 주보에 계속 싣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 주보에 싣은 내용을
여러분과 미리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30분만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의 간단한 단어나 구절을 머리와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이 구절을 세 번 반복해서 말해보라. 우리는 이 말씀의 뒷부분이 사실이 아님을 안다. 내게 부족한 것과 원하는 게 많이 때문이다. 우리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진리 자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계속 되뇌며 그 진리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하면, 점점 그 말씀이 내면에 있는 성소의 벽에 새겨진다. 거기서 생겨나는 여유 덕분에 우리는 직장 동료와 일, 가족과 친구, 하루 중에 만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의 <삶의 영성>, 54쪽-

나우웬은 하나님 말씀을 꼭 붙잡고
하루에 30분씩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을 갖기를 제안합니다.

30분이 아니라
단 몇 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의 단어나 구절을 붙잡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줍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는 구체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때때로 우리는 자신에게 다짐하면서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다잡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자기 자신의 신념을 강화합니다.
일종의 마인드 콘트롤입니다.

자칫하면 위에서 나우웬이 제안한 말씀 붙잡기도
마인드 콘트롤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말씀 붙잡기와 마인드 콘트롤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인드 콘트롤은 자기안에 있는 것을 갖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 붙잡기는
밖에 있는 하나님 말씀을 자기 안으로 갖고 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생기는 능력은 늘 제자리 걸음입니다.
반면에 밖에서 들어오는 능력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 말씀이기에
말씀 붙잡기가 효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마인드 콘트롤이 아닙니다.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그 능력을 힘입기를 소원하며 확신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맞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단어든지 아니면 한 구절이든지
머리에서 가슴까지 꼭 붙잡고 사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꼭 붙잡고
오늘 하루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3.13 이-메일 목회서신)

감동 그리고 또 감동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와 오늘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눈길이
거의 모두 김연아 선수에게 맞춰졌던 것 같습니다.
합쳐서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경기를 기다렸고, 동작 동작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은메달을 땄습니다.
부당한 경기결과에 온 국민이 속이 상해하지만
말 그대로 가장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어제는 노랑 나비처럼 아름답게
오늘은 <아디오스 노니노/안녕 할아버지>라는 곡에 맞춰서
우아한 스케이팅을 보여주었습니다.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 모든 국민이 박수를 보냈지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2.
어쩌면 김연아 선수에 가려서
관심을 덜 받았지만
또 하나의 감동이 금강산에서 있었습니다.

3년 4개월 만에
남북이산가족이 재개된 것입니다.

남측의 12만 이산 가족들 가운데 5만 명이 이미 고인이 되었고
남은 7만 여명의 이산가족들도 80세가 넘으셨답니다.

호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신
이산가족들이 만남을 갖는 것을 보고
그들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니
왠지 모를 죄송함과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산 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3.
세상 일들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고
늘 아쉬움을 갖고 살지만
삶 속에서 느끼는 감동이 일상에 활력을 줍니다.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작은 일에도 의미를 찾아서 감사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있으면
하루 하루가 그리고
우리들 삶 자체가 감동일 것 같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남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보람된 인생입니다.

오늘 하루 참빛 식구들 모두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감동 감동 그리고 또 감동이 넘치길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구절을 곱씹어 읽으면서
말씀 가운데 임하는 감동까지 느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62:5-8)

For God alone, O my soul, wait in silence, for my hope is from him.  He only is my rock and my salvation, my fortress; I shall not be shaken. On God rests my salvation and my glory; my mighty rock, my refuge is God.  Trust in him at all times, O people; pour out your heart before him; God is a refuge for us.  (Psa 62:5-8 ESV)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 소망을 두게 하시고
오늘 하루 세상 속에서
이웃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2.20 이-메일 목회서신)

일곱개의 동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새벽에 읽은
출애굽기 3장 7-8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6개의 동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7Then the LORD said, “I have surely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who are in Egypt and have heardtheir cry because of their taskmasters. I know their sufferings,  8 and I have come down to deliver them out of the hand of the Egyptians and to bring them up out of that land to a good and broad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o the place of the Canaanites, the Hittites, the Amorites, the Perizzites,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Exo 3:7-8 ESV)

우리 말 번역에 “인도하여…데려가려하노라”는 영어 번역에 있듯이
“bring them up”이라는 한 가지 동사가 히브리어 본문에도 쓰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잠시 시간을 내서
위의 말씀을 차근차근 서너 번 꼼꼼히 읽어보십시오.
말씀을 읽는 것을 넘어서 먹는 차원으로 들어가보십시오.
빨강색 즉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는 동사를 한가지씩 붙잡고 묵상하고
여러분의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상관들이 괴롭힐 때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타향살이,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심과 막막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 하나님의 마음이 세가지 감각적인 동사로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십시다.
애굽에서 건져내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은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때때로 근심이 몰려오고, 한없이 외롭습니다.

그때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말씀이 커다란 힘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행동을 묘사한 단어가 여섯 가지 입니다.

여기에 완전수 일곱을 채우는 것은 우리들 몫입니다.
마지막 일곱은 하나님의 마음과 행동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믿음대로 살아가는 행함/삶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심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하옵소서.
내려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2.13 이-메일 목회서신)

하늘 바라보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날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보통 겨울에는 비가 많이 와서
제발 주일날은 비가 오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어르신들은 물론 교인들이 예배 오기가 불편하시니까요.

하지만 지난 주일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는
주일날 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께서도
조금도 불편한 기색 없으셨고
할머니 권사님들은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내린 비여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2.
주일날 잠시 내렸던 비가
어제부터 다시 내립니다.

수요예배 갈 때도 비가 제법 내렸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 갈 때는
빗발이 거셀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3-4일씩 몇 번만 내려주면
급한 대로 만물이 소생할 것 같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실감했습니다.

올 겨울 캘리포니아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가정마다 물을 20% 줄이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물을 줄여도 말라가는 저수지를 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기 자동차를 넘어서
무인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발명되고
조만간 어디서든지 집의 가전제품과 냉온방을 원격 조정할 수 있게 된다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니 속수무책으로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3.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다시 바벨탑을 쌓은 인류처럼
우리들도 조금 살만하면 교만해져서 창조주 하나님을 넘봅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자랑하지만
죽음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당장 비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자연을 움직일 수도 거슬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이것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꼭 필요해서
하나님을 “주님(LORD)”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하나님을 다시금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사모하게 됩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폭풍질문을 고스란히 맞은 욥처럼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 원합니다.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새번역, 욥42:2-3)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새번역, 욥42:5-6)

I know that you can do all things, and that no purpose of yours can be thwarted.  ‘Who is this that hides counsel without knowledge?’ Therefore I have uttered what I did not understand, things too wonderful for me, which I did not know.  (Job 42:2-3 ESV)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therefore I despise myself, and repent in dust and ashes.”  (Job 42:5-6 ESV)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2.6 이-메일 목회서신)

당황스러움이 놀라움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 성경 창세기의
요셉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어디에 있든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와 함께 하셨고,
요셉으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이집트 총리로 임명됩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이후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아내를 맞아 결혼하고 아들을 낳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 버리게하셨다”(51절)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52절)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요셉은 이집트에서 총리가 된 후에
그 동안 겪었던 고통과 자신을 팔아버린 가족들을 잊어버리고
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
그때 온 세상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도 양식이 떨어지자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에 곡식을 사러 옵니다.

요셉은 형들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은 20에 노예로 팔아먹은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고향집 일을 모두 잊어 버리고
이집트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이
자기 앞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요셉이나 형들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과의 앙금을 해소하고
화해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 나갑니다.
그리고 결국 형들 앞에서 자신이 요셉임을 밝힙니다.

형들에게 했던 요셉의 말은
두고 두고 곱씹을 명연설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45:5)

And now do not be distressed or angry with yourselves because you sold me here, for God sent me before you to preserve life. (Gen 45:5 ESV)

요셉은 하나님의 큰 그림을 읽고 있었고
형들을 성숙한 자세로 맞아 주었습니다.
형들과 요셉의 갈등은
당황스러움에서 놀라움으로
즉 해피앤딩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요!

3.
오늘이 음력 설입니다.

올 한 해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짧은 우리들로서는
당황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결국 깜짝 놀랄 일들,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을 일들이
설날을 맞이하는 참빛 교회 식구들 위에 많이 일어나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한 해의 여정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남은 2014년의 열한달 동안
주님께서 행하시는 깜짝 놀랄 일들을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30 이-메일 목회서신)

하루하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저는 한 달에 한번
은퇴하시고 우리 지역에 계신
감리교 총장님 그리고 목사님들과 몇분들과 함께
요한 웨슬리의 설교를 읽는 모임을 갖습니다.

평생 동안 웨슬리를 연구하신
은사님의 설명을 깃들여서 설교를 읽는 유익한 시간입니다.

오전에 설교읽기가 끝나면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근처 볼링장에 가서 뒤풀이를 합니다.

저는 직장에 다닐 때 몇 번 볼링을 쳐본 이후로
거의 못하다가 이번에 하게 되었기에 완전 초보입니다.
제가 그 모임의 대표격이어서 참석했는데

오늘도 점수가 100을 간신히 넘겼습니다.

하도 제가 헤매니까
볼링 고수이신 총장님께서
자세와 위치를 교정해 주십니다.

요령은
멀리 있는 핀을 보고 던지지 말고
마루 앞에 표시된 화살표를 보고 던지라는 것입니다.
스승님 말씀대로 해보니 신기하게 공이 맞습니다.
스트라이크도 두 번 했습니다. 나이스!!!

2.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내와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을 자주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Therefore do not be anxious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be anxious for itself.
Sufficient for the day is its own trouble. (Mat 6:34 ESV)

내일 일을 오늘 염려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삶입니다.

저 멀리 있는 볼링 핀을 맞추려고 애를 쓸 때는
공이 자꾸 양 옆 도랑으로 빠졌습니다.

코 앞에 있는 화살표를 보고 던지니
멀리 있는 핀을 맞출 수 있었듯이
하루 하루가 모여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푯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3.
새해 첫 달도 어느덧 지나갑니다.
힘차게 시작했지만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남게 마련입니다.
남은 한 해를 생각하면
염려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한 켠에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곱씹어 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루 분만 내려주셨습니다.

하루씩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
하나님께서 내일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겁니다.

허락하신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내일이 있음을 믿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허락해 주신 하루를
소중하게, 열심히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3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