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산호세에서 열린
목회자 회의를 다녀오는데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저의 운전 경력이 꽤 되지만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좀처럼 차선을 바꾸지 않습니다.

길이 너무 막혀서
차선변경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가 차선을 바꿀 때마다
옮겨 탄 차선이 더 막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 차선에 서 있어 보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옆에 차선이 잘 빠지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트럭을 기준으로 삼고
차선변경과 차선 준수 가운데
어떤 경우가 빠른지 실험해 보았습니다.

한 20분 갔는데
트럭과 차선을 이리 저리 바꿨던
저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비슷했습니다.

10여분 늦을 각오를 하고
그냥 제 차선을 지키면서 내려갔습니다.
일단 마음이 편했습니다.

2.
새벽기도회에서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바울의
삼위일체 찬양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찬양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막힌 도로 때문에
30여분 실랑이를 한 후에
제 마음에 떠오른 찬양은
뇌성마비로 평생을 살고 있는
송명희 시인의 “공평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다가도
주신 은혜를 세어보면(count)
받은 은혜가 참 많습니다.

내가 없는 것을 바라봐서
그렇지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
어느 덧 올 해도 반년이 지나갑니다.
가는 세월 앞에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날 돌아보면
인생길이 거의 오십보백보일 것입니다.

인생 70이 훌쩍 넘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비슷해진다는
어르신들의 말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찬양하기 원합니다.

송명희 시인처럼
주신 것을 갖고 찬양하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 (1Th 5:16-18 ESV)

하나님 아버지,
내게 주신 것,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통해서
공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27 이-메일 목회서신)

자신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에는
인생길이 힘겨운 분들의
기도제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이민생활이고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네 삶입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어떤 때는 사기충천해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금방 의기소침해져서
손을 늘어뜨리곤 합니다.

말 그대로 질그릇처럼
연약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떨쳐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신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세상과 맞서야 합니다.

2.
오늘 새벽에
미가서를 읽으면서
노트해 놓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두세 번 천천히 반복해서 읽으시고,
말씀을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라.
But as for me, I will look to the LORD; I will wait for the God of my salvation; my God will hear me. (Mic 7:7 ESV)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Rejoice not over me, O my enemy; when I fall, I shall rise; when I sit in darkness, the LORD will be a light to me. (Mic 7:8 ESV)

우리의 구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행여나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을,
어두움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빛이 되실 것을 믿고
자신 있게 하루를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갑니다.
도와주옵소서! 힘을 주옵소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20 이-메일 목회서신)

새 날의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새 날을 맞았습니다.
오늘 맞은 새날은
이 세상 누구도 먼저 가보지 않은
말 그대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새날입니다.

새 날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어나면서 드리는 첫번째 기도는
“아버지! 오늘도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하고 추구해야 할 첫 번째 덕목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 오늘 하루도 건강과 안전을 지켜 주옵소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합니다.
요즘같이 뒤숭숭한 시대에 안전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mission)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셋째는
“아버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게 하옵소서.”
가는 곳에서, 하는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고
어두움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축복입니다.

넷째는
“아버지! 오늘도 허락하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제자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그 길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다섯째는
“아버지! 오늘 하루를 마쳤을 때 주님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시편기자는 낮에 베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잠자리에서 생명의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아침에 주님의 인자(사랑과 은혜)를 구하고
밤에는 하루 동안 경험한 주의 성실을 찬양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 42:8)
By day the LORD commands his steadfast love, and at night his song is with me,
a prayer to the God of my life. (Psa 42:8 ESV)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1)
[It is good] to declare your steadfast love in the morning, and your faithfulness by night, (Psa 92:2 ESV)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 원합니다.
그 안에 행복이 있고, 감사가 있고,
세상을 향한 복음의 선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실하게 임하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오늘(present) 우리의 삶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present)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 가운데서
예수의 사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시고
아침마다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13 이-메일 목회서신)

강권하시도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오클라호마를 비롯한
중남부 내륙에 토네이도가 연거푸 몰아 닥쳤습니다.

인디애나에 있을 때 토네이도가 스쳐 지난 곳을 목격했는데
마치 탱크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일정하게 길이 나있을 정도였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 자랑을 해도
자연을 이길 수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2.
토네이도하면
오즈의 마법사가 생각납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주인공 도로시는
켄사스에 살고 있었는데
토네이도에 휩쓸려 올라가서 오즈에 떨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그곳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실제로 토네이도는
사람은 물론 자동차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토네이도 영상을 검색하면
그 위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토네이도를 관찰하던 토네이도 추적자(Tornado Chaser) 일행이
지난 2일 토네이도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무너뜨리는 대단한 위력입니다.

이번 토네이도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재산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하루속히 재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오늘 새벽에 고린도후서 5장을 읽으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 (고후 5:14)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2Co 5:14 ESV)

“강권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순에코”에는
“통제하다 (to control)”
“강력하게 이끌다(to compel)”
“(군인등을) 흩어지지 않게 꼭 붙잡다(to keep from dispersing)”등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새번역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4.
토네이도는 세상을 망가뜨립니다.
토네이도에 휩쓸리면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을 살립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휘몰아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토네이도처럼 우리를 휘어잡았을 때
우리들의 신앙이 바로 서게 될 것이고
그 어떤 세상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는
우리들의 삶을 흩으러 지지 않고
밀도 있게 모아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참빛 식구들 신앙과 삶 속에 휘몰아치길 원합니다.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서
의와 기쁨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게 하옵소서.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6 이-메일 목회서신)

좋으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고린도후서를 새벽에 읽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항구도시였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우상숭배는 물론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했던 도시였습니다.
오죽하면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을 두고
“고린도사람스럽다(live like Corinthians)”라고 했을까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고린도 교회도 꽤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는데
성령의 은사를 갖고 서로 경쟁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면서도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도
차별과 시기, 다툼, 파벌과 분쟁을 일삼고 있으니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린도전/후서를 읽다 보면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간곡하게 부탁하고
때로는 아주 호되게 야단을 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르고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자라가길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신앙은 자신의 힘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워가는 신앙은
언젠가 여지없이 무너지거나
공동체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의 기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늘 고백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 하나님을 끝까지 의뢰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요즘 주일예배에서 배우고 있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3.
고린도후서 1장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네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3)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 (9)

이 아침에
네 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꼭 붙들고 기도합시다.
천천히 읽고 마음 깊이 묵상하면서
참 좋으신 하나님을 느낍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날마다 깊고 넓어지기 원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고
실제로 삶 속에서 체험하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30 이-메일 목회서신)

성령의 바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계절에 맞지 않게
꽤 쌀쌀합니다.
새벽에 교회를 가려고 나서면
다시 내복을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은 추위(?)가 몸에 스밉니다.
(샌프란에 와서 몇 십 년 만에 겨울철 새벽기도회에 갈 때 내복을 입기 시작했음 ㅠㅠ)

날씨만 쌀쌀한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엊그제는 나뭇잎이 길가에 다 떨어지고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종종 가는 산책로에는
큰 나무가 뿌리 채 뽑혀서 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바람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2,
지난 주부터 주일예배에서
성령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와 헬라어 “퓨뉴마”는
모두 바람(wind)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숨결” 또는 “영”이라는 뜻도 갖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한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람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
The wind blows where it wishes, and you hear its sound, but you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goes. So it is with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Joh 3:8 ESV)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그 위력으로 바람의 존재를 감지합니다.

성령으로 났다는 확증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위력이 마치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3.
성령의 바람이
우리 성도님들과 교회 안에
세차게 불어치길 원합니다.

위로의 바람,
평강의 바람,
기쁨의 바람,
소망의 바람
새로운 생명의 바람이

우리들 마음과 삶 그리고 신앙에 휘몰아치길 간절히 원합니다.

어디 우리들 마음과 교회뿐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생명을 주는 성령의 바람이 휘몰아치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주님의 영광 가득한 세상 되길 기도하면서
오늘 하루,
각자의 터전에서 부흥을 노래합시다.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이제 불어와
–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
–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바람이
우리들 마음과 삶에
참빛 교회와 온 세상에 불어 닥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 가득한 세상을 꿈꾸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23 이-메일 목회서신)

위로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이사야서 40장은
영어 번역에서 알 수 있듯이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comfort my people)” 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라도 잃고, 집도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들에게 남겨진 전부였지만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신앙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제일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셨고
광야 40년을 먹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0:26)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see: who created these? He who brings out their host by number, calling them all by name, by the greatness of his might, and because he is strong in power not one is missing. (Isa 40:26 ESV)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사는 백성들이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릴지언정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But now thus says the LORD, he who created you, O Jacob, he who formed you, O Israel: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 43:1 ESV)

2.
어디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만 그렇겠습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도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우리를 구속(redemption)해 주실 줄 믿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새 힘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소속된 주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위로의 하나님께서 참빛 교회 식구들 각자를 어루만져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영을 부어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담대하게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위로가 필요한 주님의 백성들 위에
위로의 손길을 내려주옵소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16 이-메일 목회서신)

무릎으로 임하는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것이 연일
한국신문의 톱기사를 장식합니다.

엊그제는 동행한 인사가운데
말도 안 되는 몰염치한 행동을 했다는
어이없는 기사도 있었지요.ㅠㅠ

양국 대통령의 오찬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서로의 이름을 갖고 말문을 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름에 “혜(惠)”자가 은혜/축복을 뜻하는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버락”도
스와힐리어로 “축복받은(blessed)”이란 뜻임을 언급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V자로 화답했답니다.

영화 라이언 킹의 유명한 대사 “하쿠나 마타타!’도
스와힐리어로
“근심하지 마, 걱정근심 다 떨쳐버려”라는 뜻이었지요.

스와힐리어는 케냐와 우간다 등
5천만 명이 쓰는 언어라고 하니
케냐에 뿌리를 둔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 앞에
버락이 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2.
축복받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바라크”입니다.

히브리어는 대개 세 개의 자음으로 구성이 되어서
그것들이 모음을 만나면서
동사가 되기도 하고, 명사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 개의 자음들이 각기 다른 파생어를 만들어냅니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스와힐리어 버락과 히브리어 바라크가
서로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바라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성경에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바라크에는
축복받다는 뜻 외에
“무릎 꿇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무릎 꿇어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말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가는 것입니다.
항복하는 표시로 두 손을 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함을
바라크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릎 꿇고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크 – 은혜와 축복을 겸해서 주실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6)

Oh come, let us worship and bow down; let us kneel[바라크] before the LORD, our Maker! (Psa 95:6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무릎 꿇고 주님께 나가는
참빛교회 식구들을 한없이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9 이-메일 목회서신)

여호와는 나의 힘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릅니다.
봄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고
나무들은 청록색으로 변합니다.
(우리 동네는 5월이 되면 산이 갈색으로 변하지만)

날씨도 화창해서
몸과 마음이 환해지고
움직임이 활발해 집니다.

이처럼 5월은
고향 뒷동산에 활짝 핀 진달래처럼
봄기운이 만발한 계절입니다.

캘리포니아의 5월도
만만치 않게 아름답습니다.

이제 9월까지
화창한 날들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 즈음에 바닷가라도 나가보면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의 조화 앞에서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마음까지 확- 트이게 해줍니다.

주말이면 바닷가에 떠 있는
하얀 요트들까지
우리 동네 최고의 경관이 펼쳐지는 계절입니다.

2.
그렇지만 마냥 5월을
즐길 수만은 없습니다.

학생들은 5월이 잔인한 달입니다.
한 해 학업을 마무리하는 학기말 시험들이
5월에 몰려 있기에
정신 없이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어느덧 올해도 반이 지나간다는
세월의 빠름에 한숨이 절로 나오실 겁니다.

이처럼 5월은
올 해의 반환점을 향해서
올라가는 언덕 베기처럼 느껴집니다.

힘에 겹습니다.
등줄기로 땀이 쭉- 흘러 내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5월이 되니
올해 성경 일독이 어느덧 욥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성경일독을 포기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때가 이릅니다.

새해를 열심히 살았지만
그리 변화된 것이나
아직 열매로 드러나는 것들이 적습니다.
힘이 빠져서
저절로 손을 내려뜨리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처럼 제 각각입니다.
엇박자 입니다.

3.
5월을
힘차게 맞이하기 원합니다.

구원의 은혜, 기쁨과 평강의 복음의 능력이
5월의 신록처럼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임하길 원합니다.

더욱 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마지막 고백이
우리의 기도요 고백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9)

GOD, the Lord, is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deer’s; he makes me tread on my high places. (Hab 3:19 ESV)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꿋꿋하고 멋지게 5월 한 달을 살아내시길
새벽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이
사슴 발처럼 높고 험한 곳을 다니면서도
피곤치 않게 하옵소서.
복음의 능력이 신앙과 삶 속에 그대로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2 이-메일 목회서신)

뿌리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 성경읽기는
로마서까지 왔습니다.
매우 조촐한 인원이 기도회를 갖지만
말씀의 은혜는 동일하게 임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신앙의 기쁨도 있습니다.

로마서 9장부터
오늘 읽은 11장 속에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비탄(파토스)이 서려있습니다.

선택된 민족이지만
그것이 올무가 되어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들로부터
배신자라고 낙인찍혀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형제와 골육 친척인 유대민족이
예수님의 복음 속으로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대에
두고 온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미국을 가슴에 품고
바울의 심정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2.
로마서 11장 18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Do not be arrogant toward the branches. If you are, remember it is not you who support the root, but the root that supports you.  (Rom 11:18 ESV)

여기서 뿌리는
모든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킬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구원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오신 성부 하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성자 예수님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구원을 이루도록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

가지는 유대인들이 믿던
율법과 그들의 신앙 전통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인데
유대인들은 가지를 갖고 자랑을 하다가
그만 뿌리에서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가지는
하나님께 접붙여져서
양자된 우리들 각각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가지는 밖에 있어서
잎도 나고 예쁜 꽃도 피우지만
정령 가지를 보전하는 것은 뿌리입니다.

뿌리는 땅 속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띠지 않아도
수분을 흡수하고
가지에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가지 신앙은 겉으로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금방 시들고, 쉽게 꺾입니다.

반면에 뿌리신앙,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에 기초한 신앙은
흔들리지 않고 곧게 자라갈 수 있습니다.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8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를 보전해 주시고
굳게 붙잡아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앙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뿌리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꼭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4.25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