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권하시도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오클라호마를 비롯한
중남부 내륙에 토네이도가 연거푸 몰아 닥쳤습니다.

인디애나에 있을 때 토네이도가 스쳐 지난 곳을 목격했는데
마치 탱크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일정하게 길이 나있을 정도였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 자랑을 해도
자연을 이길 수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2.
토네이도하면
오즈의 마법사가 생각납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주인공 도로시는
켄사스에 살고 있었는데
토네이도에 휩쓸려 올라가서 오즈에 떨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그곳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실제로 토네이도는
사람은 물론 자동차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토네이도 영상을 검색하면
그 위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토네이도를 관찰하던 토네이도 추적자(Tornado Chaser) 일행이
지난 2일 토네이도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무너뜨리는 대단한 위력입니다.

이번 토네이도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재산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하루속히 재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오늘 새벽에 고린도후서 5장을 읽으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 (고후 5:14)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2Co 5:14 ESV)

“강권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순에코”에는
“통제하다 (to control)”
“강력하게 이끌다(to compel)”
“(군인등을) 흩어지지 않게 꼭 붙잡다(to keep from dispersing)”등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새번역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4.
토네이도는 세상을 망가뜨립니다.
토네이도에 휩쓸리면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을 살립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휘몰아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토네이도처럼 우리를 휘어잡았을 때
우리들의 신앙이 바로 서게 될 것이고
그 어떤 세상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는
우리들의 삶을 흩으러 지지 않고
밀도 있게 모아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참빛 식구들 신앙과 삶 속에 휘몰아치길 원합니다.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서
의와 기쁨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게 하옵소서.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6.6 이-메일 목회서신)

좋으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고린도후서를 새벽에 읽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항구도시였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우상숭배는 물론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했던 도시였습니다.
오죽하면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을 두고
“고린도사람스럽다(live like Corinthians)”라고 했을까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고린도 교회도 꽤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는데
성령의 은사를 갖고 서로 경쟁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면서도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도
차별과 시기, 다툼, 파벌과 분쟁을 일삼고 있으니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린도전/후서를 읽다 보면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간곡하게 부탁하고
때로는 아주 호되게 야단을 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르고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자라가길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신앙은 자신의 힘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워가는 신앙은
언젠가 여지없이 무너지거나
공동체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의 기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늘 고백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 하나님을 끝까지 의뢰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요즘 주일예배에서 배우고 있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3.
고린도후서 1장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네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3)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 (9)

이 아침에
네 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꼭 붙들고 기도합시다.
천천히 읽고 마음 깊이 묵상하면서
참 좋으신 하나님을 느낍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날마다 깊고 넓어지기 원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고
실제로 삶 속에서 체험하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30 이-메일 목회서신)

성령의 바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계절에 맞지 않게
꽤 쌀쌀합니다.
새벽에 교회를 가려고 나서면
다시 내복을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은 추위(?)가 몸에 스밉니다.
(샌프란에 와서 몇 십 년 만에 겨울철 새벽기도회에 갈 때 내복을 입기 시작했음 ㅠㅠ)

날씨만 쌀쌀한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엊그제는 나뭇잎이 길가에 다 떨어지고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종종 가는 산책로에는
큰 나무가 뿌리 채 뽑혀서 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바람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2,
지난 주부터 주일예배에서
성령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하흐”와 헬라어 “퓨뉴마”는
모두 바람(wind)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숨결” 또는 “영”이라는 뜻도 갖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한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람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
The wind blows where it wishes, and you hear its sound, but you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goes. So it is with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Joh 3:8 ESV)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그 위력으로 바람의 존재를 감지합니다.

성령으로 났다는 확증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위력이 마치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3.
성령의 바람이
우리 성도님들과 교회 안에
세차게 불어치길 원합니다.

위로의 바람,
평강의 바람,
기쁨의 바람,
소망의 바람
새로운 생명의 바람이

우리들 마음과 삶 그리고 신앙에 휘몰아치길 간절히 원합니다.

어디 우리들 마음과 교회뿐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생명을 주는 성령의 바람이 휘몰아치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주님의 영광 가득한 세상 되길 기도하면서
오늘 하루,
각자의 터전에서 부흥을 노래합시다.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이제 불어와
–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
–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바람이
우리들 마음과 삶에
참빛 교회와 온 세상에 불어 닥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 가득한 세상을 꿈꾸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23 이-메일 목회서신)

위로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이사야서 40장은
영어 번역에서 알 수 있듯이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comfort my people)” 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라도 잃고, 집도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들에게 남겨진 전부였지만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신앙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제일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셨고
광야 40년을 먹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0:26)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see: who created these? He who brings out their host by number, calling them all by name, by the greatness of his might, and because he is strong in power not one is missing. (Isa 40:26 ESV)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사는 백성들이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릴지언정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But now thus says the LORD, he who created you, O Jacob, he who formed you, O Israel: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 43:1 ESV)

2.
어디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만 그렇겠습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도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우리를 구속(redemption)해 주실 줄 믿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새 힘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소속된 주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위로의 하나님께서 참빛 교회 식구들 각자를 어루만져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영을 부어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담대하게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위로가 필요한 주님의 백성들 위에
위로의 손길을 내려주옵소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16 이-메일 목회서신)

무릎으로 임하는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것이 연일
한국신문의 톱기사를 장식합니다.

엊그제는 동행한 인사가운데
말도 안 되는 몰염치한 행동을 했다는
어이없는 기사도 있었지요.ㅠㅠ

양국 대통령의 오찬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서로의 이름을 갖고 말문을 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름에 “혜(惠)”자가 은혜/축복을 뜻하는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버락”도
스와힐리어로 “축복받은(blessed)”이란 뜻임을 언급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V자로 화답했답니다.

영화 라이언 킹의 유명한 대사 “하쿠나 마타타!’도
스와힐리어로
“근심하지 마, 걱정근심 다 떨쳐버려”라는 뜻이었지요.

스와힐리어는 케냐와 우간다 등
5천만 명이 쓰는 언어라고 하니
케냐에 뿌리를 둔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 앞에
버락이 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2.
축복받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바라크”입니다.

히브리어는 대개 세 개의 자음으로 구성이 되어서
그것들이 모음을 만나면서
동사가 되기도 하고, 명사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 개의 자음들이 각기 다른 파생어를 만들어냅니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스와힐리어 버락과 히브리어 바라크가
서로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바라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성경에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바라크에는
축복받다는 뜻 외에
“무릎 꿇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무릎 꿇어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말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가는 것입니다.
항복하는 표시로 두 손을 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함을
바라크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릎 꿇고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크 – 은혜와 축복을 겸해서 주실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6)

Oh come, let us worship and bow down; let us kneel[바라크] before the LORD, our Maker! (Psa 95:6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무릎 꿇고 주님께 나가는
참빛교회 식구들을 한없이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9 이-메일 목회서신)

여호와는 나의 힘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릅니다.
봄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고
나무들은 청록색으로 변합니다.
(우리 동네는 5월이 되면 산이 갈색으로 변하지만)

날씨도 화창해서
몸과 마음이 환해지고
움직임이 활발해 집니다.

이처럼 5월은
고향 뒷동산에 활짝 핀 진달래처럼
봄기운이 만발한 계절입니다.

캘리포니아의 5월도
만만치 않게 아름답습니다.

이제 9월까지
화창한 날들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 즈음에 바닷가라도 나가보면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의 조화 앞에서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마음까지 확- 트이게 해줍니다.

주말이면 바닷가에 떠 있는
하얀 요트들까지
우리 동네 최고의 경관이 펼쳐지는 계절입니다.

2.
그렇지만 마냥 5월을
즐길 수만은 없습니다.

학생들은 5월이 잔인한 달입니다.
한 해 학업을 마무리하는 학기말 시험들이
5월에 몰려 있기에
정신 없이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어느덧 올해도 반이 지나간다는
세월의 빠름에 한숨이 절로 나오실 겁니다.

이처럼 5월은
올 해의 반환점을 향해서
올라가는 언덕 베기처럼 느껴집니다.

힘에 겹습니다.
등줄기로 땀이 쭉- 흘러 내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5월이 되니
올해 성경 일독이 어느덧 욥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성경일독을 포기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때가 이릅니다.

새해를 열심히 살았지만
그리 변화된 것이나
아직 열매로 드러나는 것들이 적습니다.
힘이 빠져서
저절로 손을 내려뜨리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처럼 제 각각입니다.
엇박자 입니다.

3.
5월을
힘차게 맞이하기 원합니다.

구원의 은혜, 기쁨과 평강의 복음의 능력이
5월의 신록처럼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임하길 원합니다.

더욱 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마지막 고백이
우리의 기도요 고백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9)

GOD, the Lord, is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deer’s; he makes me tread on my high places. (Hab 3:19 ESV)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꿋꿋하고 멋지게 5월 한 달을 살아내시길
새벽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이
사슴 발처럼 높고 험한 곳을 다니면서도
피곤치 않게 하옵소서.
복음의 능력이 신앙과 삶 속에 그대로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5.2 이-메일 목회서신)

뿌리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 성경읽기는
로마서까지 왔습니다.
매우 조촐한 인원이 기도회를 갖지만
말씀의 은혜는 동일하게 임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신앙의 기쁨도 있습니다.

로마서 9장부터
오늘 읽은 11장 속에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비탄(파토스)이 서려있습니다.

선택된 민족이지만
그것이 올무가 되어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들로부터
배신자라고 낙인찍혀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형제와 골육 친척인 유대민족이
예수님의 복음 속으로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대에
두고 온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미국을 가슴에 품고
바울의 심정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2.
로마서 11장 18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Do not be arrogant toward the branches. If you are, remember it is not you who support the root, but the root that supports you.  (Rom 11:18 ESV)

여기서 뿌리는
모든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킬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구원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오신 성부 하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성자 예수님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구원을 이루도록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

가지는 유대인들이 믿던
율법과 그들의 신앙 전통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인데
유대인들은 가지를 갖고 자랑을 하다가
그만 뿌리에서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가지는
하나님께 접붙여져서
양자된 우리들 각각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가지는 밖에 있어서
잎도 나고 예쁜 꽃도 피우지만
정령 가지를 보전하는 것은 뿌리입니다.

뿌리는 땅 속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띠지 않아도
수분을 흡수하고
가지에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가지 신앙은 겉으로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금방 시들고, 쉽게 꺾입니다.

반면에 뿌리신앙,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에 기초한 신앙은
흔들리지 않고 곧게 자라갈 수 있습니다.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8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를 보전해 주시고
굳게 붙잡아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앙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뿌리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꼭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4.25 이-메일 목회서신)

날마다 짐을 지시는 주

좋은 아침입니다.

1.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교회 홈페이지 <성경 Q&A>에
레위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한 것이 포스팅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날짜를 보니 작년 3월입니다.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작년 이 맘 때는
8년 만에 한국을 다녀왔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만났던 그리운 분들과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내가 아팠었기에 더욱 선명하게 기억이 되지요)
그런데 눈깜짝할 사이에 1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올 해도 지나갈 것 같습니다.

2.
4월도 중순입니다.
한 해의 삶이 지치기 시작할 때입니다.

어르신들은
벌써 넉 달이 지났다는 사실만 갖고도
마음이 우울해 지십니다.

학생들은
한 학기를 마무리할 시점이고
졸업을 앞둔 청년들은 다음 단계를 계획할 시기이기에
마음이 분주합니다.

사업을 하시든지, 직장생활 또는 연구를 하시든지
4월은 쉽게 넘어가는 달이 아닙니다.
미국 전체로 보면
세금보고를 하는 달이어서 경제까지 가라앉습니다.

게다가
엊그제 터진 보스턴 테러사건으로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전쟁보다 무섭고 잔인한 것이 테러입니다.
예고도 없이, 그것도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심각한 해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개인이나 특정단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시민들을 볼모로 잡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3.
이렇게 힘겨운 4월의 한가운데를 보내면서
저도 오늘 새벽 무거운 마음으로
강단에 무릎 꿇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갔습니다.

샘물처럼 제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말씀을 만났습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편 68:19)
Blessed be the Lord, who daily bears us up; God is our salvation.  (Psa 68:19 ESV)

본문을 히브리어 어순 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을 송축합시다.
그분은 날마다(day by day) 우리의 짐을 져 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되십니다.

주님을 송축하고 찬양할 이유가
차례로 열거되었습니다.

한참을 묵상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음도
하나님께서 날마다 제 짐을 지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제 짐을 지고 가실 겁니다.
저의 하늘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은 우리 인생길의 짐꾼(porter)이십니다.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주 하나님께서
참빛 교회 식구들의 짐도 몽땅 져주시고
순간순간 구원자로 임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4.18 이-메일 목회서신)

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우리 동네 날씨가 참 좋습니다.
베이 지역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신 분들은
하나같이 이곳 날씨를 가장 그리워하십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베이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팔레스타인 지역과 매우 비슷합니다.

요즘은
겨울철 우기가 끝나고
여름철 건기로 접어드는 경계점에 있는데
팔레스타인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2.
성경대로 하면
지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40일 동안 지상에 계셨던 기간에 해당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행1:3).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잡던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도
바로 이 즈음입니다 (요21장).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던
제자들을 위해서 조반을 차려주시고
자신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네가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똑같이 물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께서는
따뜻한 봄 날씨 속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부활후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낙심가운데 있던 제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데
날씨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요?

3.
베이 지역의 화창한 봄을 맞으면서
2천년 전 갈릴리 호숫가를 거니셨던
부활하신 주님을 묵상합니다.

이른 봄날 아침,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께서
베이 지역의 화창한 봄날을 즐기고 있는
우리를 찾아 오셔서 같은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푸르고 높은 하늘을 향해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의 사랑을 힘차게 외치며 고백하기 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1)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 (Psa 18:1 ESV)

하나님 아버지
부활하신 주님과 지속적으로
사랑의 교제를 하게 하옵소서.
부활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능력 안에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4.11 이-메일 목회서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1.

오늘은 성금요일(Good Friday)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입니다.

“Good”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대체로 세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good의 고어적 의미에 holy가 들어있기에
우리 말 그대로 성금요일로 읽는 시도입니다.

Good이 God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도 있는데
꽤 임의적입니다.

세 번째 견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만 놓고 보면
슬프고 애석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임했기에 “선한(good) 사역”입니다.

저에게는
세 번째 견해가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2.
올해 성금요일에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있는
바울의 고백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 2:20 ESV)

한 단어 한 단어를 쉽게 읽고 넘길 수 없습니다.
한 구절인데 자꾸만 걸립니다.
멈춰서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을 믿는다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겁니다.

바울의 고백을 여러 번 읽고
마음에 새기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삶으로 이어지기 원합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확신이 생깁니다.
힘이 생깁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Good Friday인가 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날,
우리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오르게 하시고
그 은혜에 참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3.28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