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닻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히브리서를 읽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핍박으로 인해서
신앙을 저버리기 쉬운 상황에 처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유대교에서 개종하였거나
유대교와 밀접하게 연관된 기독교인들에게
구약의 전통을 갖고 예수님께서 메시야되심을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서에는
구약성경의 인용과
유대교와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구약의 제사와 연관시키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약의 제사가 폐지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길 부탁하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을
창세기의 아벨부터 차례로 소개합니다.

믿음 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을 올린
구약의 인물들처럼
히브리서를 읽는 성도들은 물론
오늘날 우리들까지 믿는 이들이 들어가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2.
지난 수요일에 살펴본 히브리서 6장 20절에는
“영혼의 닻(the anchor of the sould)”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We have this as a sure and steadfast anchor of the soul, a hope that enters into the inner place behind the curtain, (Heb 6:19 ESV)

닻(anchor)은 배들이 항구에 도착해 있거나
바다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배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옛날에는 바위덩어리나
쇠를 바다에 던져서 배를 고정시켰답니다.
항구에 들어오면 밧줄 같은 것으로
기둥(닻)에 묶어서 배를 고정시키기도 했습니다.

배가
풍랑에 흔들리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지 않도록 확실하게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영혼”에는
“목숨” 또는 “삶(life)”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의 닻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고정시키는 닻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긴 소망이
영혼의 닻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여기서 “소망”은
구원의 소망,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되는 소망이기에
세상이 주는 소망과 다릅니다.

소망으로 영혼의 닻을 삼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 삶이 예수님께 매여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망망대해 인생의 바다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정처 없이 헤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닻을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에 내린 우리들은
삶이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고정시켰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들 삶의 닻을 예수님께 내리고
힘차게 시작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 영혼의 닻을
예수님께 내리고
흔들림 없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2.7 이-메일 목회서신)

은혜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나라가 드디어

나로호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습니다.

이제 대한민국도

우주강국이 되었다고

신문에서 앞다투어 보도합니다.

과학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위성의 움직이는 속도가

1초에 7.9km라는 것과

하루에 지구를 14바퀴를 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와- 굉장한것이구나’라고 감탄할 뿐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비상시에 산소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승무원의 설명을 듣습니다.

고도가 높으면 산소가 모자라기 때문이겠지요.

비행기가 대개 10km높이로 난다고 하는데도 산소가 모자란다면

나로호는 300km-1500km위를 돌고 있으니

도대체 그곳은 어떤 곳일지 막연히 궁금해졌습니다.

대기권 밖 우주공간이니

당연히 공기는 없겠지요.

나로호를 생각하다가

엉뚱하게도 공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숨을 한번 크게 쉬어봅니다.

우리 동네 공기가 참 상쾌합니다.

몸 속 깊이 공기가 들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심호흡을 연거푸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공기(산소)가 중요한데

그 귀중함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공짜로 숨을 쉬듯이

은혜도 거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라는말 자체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은혜로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값을 지불하셔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니

값싼 은혜는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 만큼 자라있는 것도 생각해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귀한 것이어서

미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공기가 없어진다면

우리의 목숨이 거기서 끝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거두어가시면

우리들의 생명도 그 순간 끝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것을 감지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애원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51:11)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Psa 51:11 ESV)


나를 주 앞에서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우리들 사방에 공기처럼 임해 있는

주님의 은혜를 감지하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아무런 공로 없이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안에 넘치기 원합니다.

나로호가 우주공간을 향해서 쏘아올려져듯이

오늘 하루는 시간을 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양을

높이 높이 올려 보냅시다.


하나님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 귀하고 커서 때로는 감지할 수 없지만

주님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느끼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31 이-메일 목회서신)

나다니엘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서는

요한복음 1장을 읽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마지막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시고

빌립을 부르십니다.

같은 동네 벳세데 출신 사내들입니다.

빌립이

나다니엘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나다니엘이 오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 이스라엘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것이 없도다. (요1:47)

Here is truly an Israelite in whom there is nodeceit!” (Joh 1:47 NRS)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나다니엘을 만나기 전에

그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단지 그를 바라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인물 됨됨이와 성품까지 꿰뚫어 보셨습니다.

깜짝 놀란 나다니엘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임금이로소이다 (요1:49)

“Rabbi, you are the Son of God! You arethe King of Israel!” (Joh 1:49 ESV)

예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가십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랍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나다니엘 –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다” 또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을 보시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속에 “간사함(deceit)”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사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돌로스”는

“고기를 잡는 미끼”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간사함은 남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꼼수를 부리는 것입니다.

거짓말로 덫을 놓는 것입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 나다니엘에게는

간사함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신 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쯤 해서 우리는 창세기의 야곱을 떠올리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간사한 인물이었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면서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피난갈때

돌베개를 베고 길에서 잠을 잡니다 (창28장).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환상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간사함에 빠져있었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참빛 되신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어두운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1:9-11).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에 돌을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했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신앙을 회복하길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향해서 나다니엘처럼

고백하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임금이로소이다

간사함이 없던 나다니엘은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3.

어느 덧 2013년 새해의 첫 달도

거의 지나갑니다.

시간이 빠르다고 하염없이 말하기에는

꽤 아까운 순간들입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 말씀드린대로

흘러가는 시간들(클로노스)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들(카이로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안에 참됨/진실됨을 간직하기 원합니다.

행여나 야곱의 간사함이 있다면

환도뼈가 부러지는 처절한 씨름을 통해서

참 이스라엘,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 원합니다.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고백하기 원합니다.

무화과 나무 아래 있던 나다니엘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예수님께서

각자의 삶의 처소에 있는

우리들을 바라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참된 주의 백성으로 주님께 보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루 하루

진실됨으로 주님께 나가게 하옵소서.

나다니엘처럼

참된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께 인정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24 이-메일 목회서신)

앞서 가시는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가을부터 성경읽기 속도가 붙어서
주보에 나오는 진도보다 앞서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지혜를 얻고, 평안을 누리고,
살아있고 운동력있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에
힘들 때 성경에 마음을 쏟은 것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 시간에
저의 성경읽기 본문은
신명기 1-5장이었습니다.

신명기 말씀은 이번 주일 설교 본문이기도 합니다
신명기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이스라엘의 2세들에게 행한 설교입니다.

모세라는 큰 지도자 없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물론 젊은 세대에
두려움이 밀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늘 함께 하시고
큰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2.
올 해도 어느덧 20여 일이 지났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염려가 생깁니다.

요즘 세상이 불안하다 보니
실제로 어려운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곳의 민족들과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40년을 광야에서 지내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을 그들에게는 두려운 일입니다.

이래저래 불안한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싹텄습니다.

이것을 안타까이 여긴 모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의 하나님 (신1:30)
(The Lord your God who goes before you)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서서 행하셨다는 고백입니다.
먼저 가셔서 그들의 길을 예비하셨다는 간증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앞서 가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새벽에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은혜가 밀려왔습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의 하나님!”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선발대로 앞서 행하심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신 길이라면

어떤 길이라도 감사와 기쁨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앞 길을 미리 알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길이 펼쳐질 지 조급해하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길에 관심을 갖고 신경쓰기 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은혜가 넘쳤고 감사의 고백이 나왔습니다.

2013년의 첫 달도 절반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350여 일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올해만 그렇지
우리들 앞에 남아 있는 인생길은 훨씬 많습니다.

미래를 놓고 지나친 염려나 두려움을 버리고
또한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도 옆으로 제쳐놓고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차근차근 주어진 삶의 여정을 걸어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보다 앞서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17 이-메일 목회서신)

믿음이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 목요서신에
“거세개탁”이라는 어려운 제목을 달았다고
아내에게 꽤 면박을 받았습니다.ㅠㅠ
제가 생각해도 조금 그랬습니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서는
누가복음 17장을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 17장 5-19절을
한 문단으로 읽으면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간청했습니다(5절).:
우리에게 믿음을더하소서 (Increase our faith)

새해를 사는 우리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이름 뜻도 “더하기”임) 사도들의 요청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아주 작은 것으로 축소시켜서 대답하십니다.

겨자씨와 같은 믿음입니다(6절).
그것도 겨우 겨자씨 한 알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사도들은 꽤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 더러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순종하였으리라.

If you had faith like a grain of mustard seed, you could say to thismulberry tree,
‘Be uprooted and planted in the sea,’ and it would obey you.(Luk 17:6 ESV)

뽕나무가 뿌리가 뽑히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이 바다에 심기는 것은
사람들의 지식과 상식을 초월한 사건입니다.

그러고 보니 믿음은 말 그대로 신비입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갖고도
우리의 존재, 생각, 마음씀씀이를 뛰어넘는
신비로운 사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뽕나무가 우리에게 순종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말씀의 주제를 살짝 바꾸십니다(twist).

어떤 종이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7-10절)
그렇다고 주인이 종을 위해서 상을 차려주지 않습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서 상을 차리고 수종 들어야 합니다.
종이 그 일을 했다고 주인이 감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종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종은 믿음을 가진 우리를
주인은 하나님을 뜻할 것입니다.

종인 우리가
주인 되신 하나님 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주인 되신 하나님께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종의 신분을 망각한 행동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뽕나무를 뽑아서 바다에 심고
그 일을 통해서 자신이 높아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6:33)는 말씀이
여기에 와 닿습니다.

믿음을 갖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3.
이어서
지난 번에 설교했던 열명의 문둥병자 사건을 소개합니다 (11-19절)
열 명의 문둥병자(한센씨병을 앓는 사람들)가 고침을 받았는데
예수님을 찾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한 명,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다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예수님께서 그 한 명의 문둥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너를 구원하였느니라 (17:19)
Rise and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ell.(Luk 17:19 ESV)

믿음의 끝은 결국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헬라어 직역은 “너의 믿음이 이미 너를 구원했다/your faith has saved you”)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겨자씨 만한 믿음부터
순종하고 감사하는 그래서 생명에 이르는 믿음까지
차례로 더하고 계십니다.

새해가 야금야금 지나갑니다.
우리들도 누가복음 속의 사도들처럼
매일같이 기도하며 살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 마음과 삶 속에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주옵소서.
살아있는 믿음을 심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10 이-메일 목회서신)

거세개탁

Happy New Year!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국의 한 신문에서는
대학교수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를 발표했습니다.:
거세개탁(擧世皆濁).

꽤 어렵게 들립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들다.”는 뜻이랍니다.
그런데
2013년도 그리 쉽게 지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새해벽두부터
섭씨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가 닥쳐서 한강이 얼었답니다.
마음까지 얼어 붙으면 안되는데요.

미국은 재정절벽(fiscal cliff)를 간신히 모면했지만
미국의 국가 부채가 어마어마합니다
(10조 달러, 1경원을 웃도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 숫자).

경제야 2008년 이후 계속 불경기를 맴돌고 있어서
그러느니 한다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바르게 살려는 마음도

진리를 추구하려는 생각도

더불어 살려는 시도도

물질만능주의와 극도의 개인주의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홀로 깨어있기 힘든 세상임에 틀림없습니다.

2.
주일설교에서 함께 살펴본 이사야 53장은
온 세상의 죄 짐을 홀로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고난 받는 종(suffering servant)으로 오셨습니다.
무시 받으셨고, 거절당하셨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Isa 53:5 ESV)

이사야 53장 속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혼탁한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을발견합니다.
그 분이 우리의 치료자요, 힘이요, 구원이심을 고백합니다.

설교시간에 다루지 못했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으면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걸어가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불사하는 신앙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물결이 강하게 흘러도
살아있는 송사리처럼
세상 물결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입니다.

이처럼 이사야 53장은
우리가 단지 바라보고 믿어야 할메시야 예수님을 넘어서
우리들 역시
고난 받는 종으로 살아야 한다는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3.
힘이 들어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기 원합니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되기 원합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어있기 원합니다.

나 혼자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
세상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고난 받는 종으로 나가기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에가능할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진다해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걸어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래도 올 한 해가 여러모로 힘이 들고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십자가의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그 길을 걷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3 이-메일 목회서신)

연말연시

좋은 아침입니다.

1.
성경을 읽다 보면

“두려워 말라(do not fear)”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그만큼 우리 안에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일 겁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놓고 느끼는
삶에 대한 두려움,
모든 인생이 향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
우리들은 사나 죽으나 두려움을 등에 엎고 갑니다.

두려움에서 파생된 자잘한 일들 가운데
염려와 근심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업고 있다면
염려와 근심은 옆구리에 달고 삽니다.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염려와 근심 때문에 휘청거립니다.

열등감 또는 자신 없음이라는 짐을
가슴에 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기가 힘겹습니다.

인생길이 전후 좌우로 흔들리고
갈팡질팡 방황합니다.
넘어지기도 합니다.

2.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지나온 350여 일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더불어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염려와 근심
그리고 무너지는 자신감을 감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금 더”라는 아쉬움은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골손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지나온 삶의 구비구비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경험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삶의 구석 구석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내기 원합니다.
거기서 범사에 감사가 나옵니다.

두려움, 염려와 근심
자신 없음까지
은혜로 녹여버립시다.

3.
한 해를 이렇게 보내지만
우리 가슴에 여전히
남겨진 일들이 있습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제목,
오랫동안 또는 한 해 동안 씨름했지만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입니다.

내년으로 넘겨야 할 것들입니다.
기다림의 훈련이 무엇인지
실제로 깨닫게 해주는 일들입니다.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는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듯이
우리들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일 수도 있습니다.
견뎌내야 할 소명입니다.

앞으로 견뎌야 할 인생길,
신앙의 길,
올 한해 풀지 못한 숙제들도
기쁘게 지고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1:21)
Keep yourselves in the love of God, waiting for the mercy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leads to eternal life.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떠나 보내면서
신실하신 아버지를 꼭 붙잡고
그 안에서 위로 받고 힘을 얻게 하옵소서.
참빛 교회 식구들을 한 분 한 분의 인생길을 친히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2.12.20 이-메일 목회서신)

헵시바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이들과 전화를 하면꼭

아빠 엄마는 잘 있느냐고묻습니다.

그러면 괜히 기분이좋습니다.

아이들과 얘기하다보면

자신들이 직장을 가지면

편안하게 지낼 수있도록 해 주겠답니다.

조금만 기다리고 합니다.

경쟁이 심한 세상에서

자신들만 잘 살아주어도 감사하지

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에게신세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내심 마음이 든든하고기분이 좋아집니다.

늘 제가 무엇인가해 주어야 할 아이들 같았는데

어느덧 커서 저희부부를 생각해 주는 것에

부모로서 감사한 마음도듭니다.

2.

지난 주일 설교에서

자신이 지으시고 택하신인간들에게 무시 받고

상처받았을 하나님의마음을 헤아려 보길 부탁 드렸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이브, 이스라엘 백성들만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을무시하고 버리는 대표일 수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는양처럼 그릇 행해서

제 갈 길로 가려는성향이 있습니다.

당장 올 한해만 돌아봐도

우리는 참 많은 기도를하나님께 쏘아 올렸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지않고

우리들이 갖고 싶은것, 원하는 것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배워서 이론적으로알지만

결국 우리들의 기도는대부분이 이기적이 간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괜히송구스러워집니다.

수십 년을 믿었으면이제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할수 있으련만

여전히 내가 주인입니다.

“주세요”라는 기도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3.

올 해가 보름 남짓남았습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소원을 간구하기 보다

진실되게 하나님 뜻을먼저 생각하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찬양하듯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배려하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것이지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신앙의진수가 있고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헵시바 – 나의 기쁨을 너에게 둔다 (사 62:4)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돌아보면 많은 은헤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기간동안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하옵소서.

받은 은혜를 하나님께 그리고 이웃에게 베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2.13 이-메일 목회서신)

대강절을 지내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부터
성탄절 전 주일까지
네 주간이 교회력에 따라서 대강절(Advent)입니다.

교회력에 대해서 올 해 1월 달 주보에 실었던 글을 다시 옮겨 옵니다.

교회력은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회가 여러 절차를 걸쳐서 제정한 교회의 달력(church calendar)입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교회력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가톨릭의 성자들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배척되기도 했지만, 현대에 와서 교회력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습니다. 교회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전반부 6개월은 예수님의 탄생, 사역, 고난,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들이고, 후반기 6개월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성령과 더불어 동행하는 성도와 교회의 삶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교회력을 따라서 한 해를 보내면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성령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 주일 예배순서 앞에 교회력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부터 시작됩니다. 성탄절 4주전부터 시작되는 대강절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오실 것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켜가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또한 교회력을 상징하는 색깔이 있는데 대강절은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온 인류를 구하실 메시야요 왕으로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성탄절 이후 사순절 전까지의 6주간은 주현절입니다. 주현(Epiphany, “빛으로 나타나심“)이라는 의미대로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public life)를 시작하십니다.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할 메시야이심을 세상에 보이신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주현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주현절의 색깔은 흰색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주현절이 끝나고 고난주간 전까지가 사순절(Lent)입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시작되는데, 금식과 선행 등을 실천하면서 1년 365일 가운데 10분의 1이 조금 넘는 40일을 경건하게 보내게 됩니다. 사순절의 색깔도 대강절과 마찬가지로 보라색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거룩한 삶을 통해서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사순절이 끝나면 고난주간(Passion week)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우리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기로 결단하는 기간입니다. 고난주간의 색깔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빨강입니다. 고난 주간이 끝나면서 곧이어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절기입니다. 부활주일의 색깔은 흰색입니다. 부활주일 새벽에 흰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부활절 후 7주간이 끝나면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의 약 6개월 기간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강조됩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순절 이후부터 그다음 대강절까지 긴 6개월 동안의 색깔은 초록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과 신앙의 성숙을 뜻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력을 따라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매주간 주보에 있는 교회력을 따라서 올 한해를 주님과 동행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2012년 1월 15일 주보 생명의 샘에서)

2.
대강절 기간을 보내면서
매 주일 우리들 마음 속에도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성탄을 기다리기 원합니다.

촛불이 우리 자신을 밝혀 주기를,
촛불처럼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우리가 매 주 하나씩 켜는 촛불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길 원하면서
대강절 촛불을 마음에 키는 것입니다.

대강절은 연말연시와 맞물려 있어서
자칫 우리들 마음도 분주하기 쉽습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멈춰서
한 해를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대강절에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차분하게 그렇지만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대강절을 맞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심으로,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2.6 이-메일 목회서신)

기도의 마무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 기도회에서

마가복음 14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는

매우 조촐하게 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동일하게 역사함을 봅니다.

마가복음 14장 35절에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Abba, Father, all things are possible for you. Remov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Mar 14:36 ESV)

“아바”라는 친근한 표현을 쓰시면서 기도하심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셨음을 뜻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전합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졌답니다(눅22:44).

우리들의 기도와 많이 비교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타락 이래 예수님 당시까지

그리고 앞으로 있을 세상의 모든 죄 짐을

홀로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실 때는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그 짐을 지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순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심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그러나”와 함께

확- 바뀝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 절박한 순간,

예수님의 기도 마무리가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2.

우리들의 삶이 늘 장밋빛 융단처럼

화려하고 형통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골라서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입니다.

어떤 때는

내게 닥친 이 일만은 피해 주시길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 드리기도 합니다.

저절로 그런 기도가 나올 정도로 힘든 순간이 있지요.

예수님도 그러셨는데 우린들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들의 기도가 예수님처럼 마무리되기 원합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기도의 마무리가 얼만큼 중요한지

다시금 뒤 새겨 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 삶은 물론

하나님 나라에 가장 선하고 귀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여러 가지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지만

“주님의 뜻대로” 되길 원하는

기도로 꼬-옥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1.29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