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런던 올림픽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미국에 있어서 올림픽을 생중계로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스포츠 경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영국과 미국의 시차는 물론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다 보니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기상황을 수시로 살펴봅니다.

올림픽이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상업화되었다고 해도
4년 마다 지구촌 전체가 올림픽 열기에 빠져드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2.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귀감이 되는 일화들이 전파를 탑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네이버 뉴스에
한국의 유도선수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유도선수로는 환갑이 넘었을
서른 다섯의 나이에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올림픽에 참석했습니다.

16강 전에서 경기를 하다가
이마가 찢어 졌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지만
붕대로 감고 경기에 임해서 승리를 거둡니다.

8강전에서는 손톱이 부러졌습니다.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3-4위 전에서 패배해서
결국 메달을 얻지 못하고 경기를 마쳤습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웃으면서 생애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마무리했답니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많은 언론이 이 선수를 주목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메달 리스트 이상의 귀감이 된 것입니다.

3.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값진 일입니다.

그렇다고 꼭 금메달을 따고
일등을 해야만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셨고
급기야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LORD)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무릎을 그에게 꿇게 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 2:10)

물론 우리 같은 범인들이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을 닮으면 귀감이 되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사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마음과 삶이 예수님을 닮기를 애쓰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Let the same mind be in you that was in Christ Jesus.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서
세상 속에서
귀감이 되는 근사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8.1 메일 목회서신)

잊지 않으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동네 근처를 운전하고 가다가
한 아파트에 붙어있는 재미있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Best Senior Apartment for 55+”
– 55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위한 최고의 아파트랍니다.

아내가 저에게 말합니다.
당신도 5년만 있으면 되네…”

생각해 보니 5년만 있으면 저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치솟는 아파트 렌트비를 생각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실제로 값이 싼지는 모름)
왠지 순간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 집니다.

뭐 우리 교회 어르신들 앞에서야
제 나이를 꺼낼 수도 없지만
요즘 들어서 부쩍 염려되는 것이
약간의 건망증이 가미된 심각한 망각증세입니다.

약속 같은 것들을 메모해 놓지 않으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책을 읽고 났는데
내용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독서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한 가지만 잊어 버리지 않으면 되겠지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 붙잡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우리들은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리고, 덜렁대고, 실수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어르신들이 일러주십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답니다.

누가복음 12 6절에서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 하는도다.
Are not five sparrows sold for two cents?
Yet not one of them is forgotten before God.

페니에 팔리는 참새 두 마리 가운데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우리를 잊으실 리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까지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언제나 거기에 계십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하루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새 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억해 주실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26 메일 목회서신)

분복 (分福)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아모스 6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풍요입니다.
6 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리로다.
Woe to you who are complacent in Zion,
And to you who feel secure on Mount Samaria,
you notable men of the foremost nation.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라는 왕이 통치했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빈부의 격차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하고
속여서 부를 챙겼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그것을 비판합니다.
재물로 인해서 마음이 든든해 지니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그리고 쾌락을 쫓았습니다 ( 6:4-6)

2.
그래서인지
성경에서는 지나친 부유함을 경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 (daily bread)를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길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내려주신
만나를 연상케 합니다.

만나는
안식일 전날을 제외하면
하루 분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욕심을 부려서 하루 분 이상을 거두면
어김없이 썩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하루 분 만나만 가져오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불안했을 것입니다.
다음 날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3.
때때로 우리들도 더 많은 소유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창고에 쌓아놓고
안일하게, 마음 편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그것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만나를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일용할 양식을 두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만나를
하루 분 음식이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만나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은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신앙 안에서 적정수준입니다.
많아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적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지 않는
알맞은 수준이 곧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것을 두고 잠언 30 7-8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Two things I ask of you, O Lord,
do not refuse me before I die: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전도서 3 13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갑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That everyone may eat and drinks, and final satisfaction I all his toil
– this is the gift of God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分福, portion)에 만족하고
누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확실히 의지하기 원합니다.
주신 복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19 메일 목회서신)

변덕쟁이

좋은 아침입니다.

1.
기도해 주신 덕분에

코스타에 잘 다녀왔고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선한 사람이 세상에 더 많은 것처럼
요즘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와 달리 신앙에서 멀어져 있다 해도
하나님을 찾는 아침이슬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음을 몸소 느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면, 밝은 면 그리고 희망찬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겠지요.

2.
시카고에 있는 동안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일주일 내내 기온이 100도에 육박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신문을 보니
이번 더위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답니다.

땀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은근히 습도까지 높아서 몸이 끈적끈적거렸습니다.
대낮에 강의실로 걸어가다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허덕 허덕!
사시사철 선선한 샌프란이 그리웠습니다.

코스타를 마치고
샌프란에 돌아와서 공항을 나오자마자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일주일간의 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만큼 시원했습니다.
바로 이거야!
하나님,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2.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새벽에는
옷을 끼어 입고 집을 나섭니다.
겨울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옷입니다.

기온을 보니 50도 안팎입니다.
시카고의 절반인 셈입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동네를 걷다 보면
아침안개와 바람이 얼굴을 내리칩니다.
“한 여름인데 왜 이리 추운거야!”

더운 곳에서는 선선한 곳을 생각하고
선선한 곳에 있으면 적당히 더울 것을 기대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 보다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비슷해서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거나 조금만 힘든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합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하나님이 내 장단에 춤을 춰 주시길 바라는
못된 심보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기 원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ous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하나님 아버지
험한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님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욕심쟁이가 되기 쉽습니다.
변덕쟁이 신앙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일정하신 하나님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12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 사랑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가 무엇으로 살까를 생각해 봅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을까?
지혜로 살 수 있을까?
세상의 물질로 살 수 있을까?
아니 가족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을 의지해서 살 수 있을까?”

우리들이 의지해서 살고 있는 것들을
나열해 보니 끝이 없이 많습니다.
우리들 혼자서 홀로서기가 불가능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두 없어질 것들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의지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거나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물위에 떠다니는
부초(浮草)를 붙잡고 사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2.
그때마다 하나님 믿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믿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밀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믿게 된 것임을
요즘 주일설교에서 살펴보는
요한복음 4장 말씀을 통해서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생수의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없어질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의지하며 살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났기에 더욱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호세아서 10 8절 뒷부분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My heart is turned over within Me, All My compassions are kindled.

말씀이 매우 시각적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마음이 소용돌이칩니다.
그러더니
하나님의 사랑에 불이 붙었습니다.
아주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쏟아지겠지요!

3.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사랑!
때로는 잠잠하게
때로는 호세아 말씀처럼 불꽃처럼
때로는 빛으로 밝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삽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친
사랑의 불꽃이 우리들에게 임하길 원합니다.
그 사랑의 열기를 이웃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불꽃처럼 생겨난 사랑을
체험하고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28 메일 목회서신)

젊은 사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예배에서는
호세아서를 한 장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선지자 자신의 삶을 통해서
전해지는 매우 독특한 말씀입니다.

또한 호세아서에는
비유적인 표현도 많이 나옵니다.

오늘 살펴본 호세아 7장에는
이스라엘의 죄를
달궈진 화덕” “뒤집지 않은 전병
어리석은 비둘기” “속이는 활에 비유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음란의 죄로 설명하면서
달궈진 화덕(oven)에 빗대서 말합니다.
전병(flat cake)은 부침개와 같은 것을 뜻할 텐데
뒤집지 않고 내쳐 두었으니 한쪽만 익거나 탔을 것입니다.
균형을 잃었습니다. 교만이 그렇답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는  
이집트와 앗시리아같은 세상 나라로 날아갑니다.
하나님께 가야할텐데 말입니다.

속이는 활 (faulty bow)은 과녁에서 빗나가게 마련입니다.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을 라고 합니다.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와 헬라어 하마르티아는
모두 과녁에서 빗나간 화살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리스도인의 과녁입니다.
다른 곳을 겨냥하고 있으면 죄의 길로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죄를 많이 지으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한없이 아프셨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심하게 실망하셨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계실 우리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호세아 5 14-15절에는
하나님을 젊은 사자로 비유합니다.

젊은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죄 속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움켜지고
본래의 자리로 옮겨 놓으십니다.

움켜쥔다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의 뜻은 사자가 먹이를
조각 내듯이 찢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산산조각 내십니다.
그들의 죄악된 삶을 부숴버리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따릅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는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절대로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신을 차려서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를 기다리실 뿐입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같고 유다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쥐고 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5:14-15)
For I will be like a lion to Ephraim, and like a young lion to the house of Judah. I, even I, will tear and go away; I will carry off, and no one shall rescue. I will return again to my place, until they acknowledge their guilt and seek my face, and in their distress earnestly seek me.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젊은 사자처럼 임하실 때가 있습니다.
자꾸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때
참다 못한 하나님께서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우리를 낚아채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 앞에 닥치는 고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행여나 우리들이 그릇된 길로 간다면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우리를 움켜쥐고
바른 길로 옮겨 주옵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귀한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고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21 메일 목회서신)

절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유럽에서는
4년마다 열리는 Euro 2012라는
축구시합이 한창입니다.

미국 시간으로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중계방송이 있는데
유럽의 축구강국들이 펼치는 시합들이어서
월드컵 못지 않은 인기와 흥미가 있습니다.

축구경기를 좋아하는 저에게도
Euro 2012는 큰 기쁨이자 유혹입니다.
멋진 경기와 세계적인 선수들의 묘기를 보면서
축구 경기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한가하게 축구경기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기 하이라이트를 유튜브로 보거나
컴퓨터로 점수만 확인합니다.
물론
경기를 보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으면서 말입니다.

2.
누구나 좋아하는 일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일 수도 있고,
먹거리일 수도 있고,
사람들과 만나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요즘 세대에는 컴퓨터나 게임일 수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적당히 즐기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일종의 취미생활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빠져들면
시간이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기에
절제(self-control)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절제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보다
음식을 적당히 먹는 절식이 힘든 것을
생활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지 않습니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외에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고 고장이 나게 마련입니다.

3.
우리는 매사에 절제를 훈련해야 합니다.
절제는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에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절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크라테이아에는
Self-control이라는 뜻 외에
숙달(거장, mastery)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매사에 절제를 훈련함으로
단정하고 균형잡이 삶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믿음의 거장으로 자라가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1 5-7)
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supplement your faith with virtue, and virtue with knowledge, and knowledge with self-control, and self-control with steadfastness, and steadfastness with godliness, and godliness with brotherly affection, and brotherly affection with love.(2Pet 1:5-7)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에도 지나치지 않게 하옵소서.
절제를 훈련하고
절제를 통해서 믿음의 거장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14 메일 목회서신)

크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는
금성이 태양을 가리는
금성일식(Venus Eclips)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다음에는 105년 후에야 온다고 하니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금성일식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노래할 때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과학에도 문외한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을 아주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사진이 뜨는데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이것저것 찾아았더니
태양 속에 작은 검은 점이 금성이라는 것입니다.

금성에 가려서
태양의 일부분이
검은 점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솔직히 생각보다 시시했습니다.
일식이라면
금성이 태양을 가리는 것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사람들이 조금 심하게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2.
금성이 태양을 가린다는 금성일식
그러나 태양을 가리기에는
금성이 너무 작았습니다.
태양이 너무 크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 보다 앞서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려보겠다고
하나님 앞에 배짱 좋게 나설 때도 있습니다.

우리들 스스로는 하나님을 가렸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어림없는 일입니다.
기껏 가려봐야 금성일식 정도도 안 되는 점(point)이나 될까요?

금성일식을 보면서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 마음 한 켠에
점처럼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합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입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표현을 써서 찬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 (시편 18:2)
The LORD is my rock and my fortress and my deliverer, My God, my rock, in whom I take refuge;
My shield and the horn of my salvation, my stronghold. (Psalms 18:2)

오늘 하루
시편기자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조목조목 생각해서 찬양하기 원합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고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그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태양과 비교할 수 없는
태양을 만드신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그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7 메일 목회서신)

한 걸음씩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의 다니엘서 읽기
수요예배에서의 골로새서 읽기
청년부들과 에베소서 읽기
아침마다 큐티 본문읽기
속회공부에서 성경본문 읽기
주일 설교에서 말씀 읽기
1년 성경읽기

일주일 동안 제가 참여하거나 인도하는
성경읽기와 관련된 일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상당한 분량의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읽기 진도가 쭉나갑니다.

물론 모든 분들께서
저처럼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절반만 참여하셔도
꽤 많은 양의 성경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모래성이 바닷물에 밀려 가듯이
쌓아놓은 것들마저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야금야금
그리고 꾸준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묘미이고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골로새서 마지막 장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4 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f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여기서 기도에 항상 힘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카르테레오에는 위에 있는 NIV 성경번역처럼

1) 자신을 헌신해서 드리다라는 뜻과
2) 참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은
몸과 마음을 기도에 헌신하는 것이고,
기도생활에 결석하지 않고 참석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를 쉬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서
우리는 결석해서는 안됩니다.
예배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큐티도 그렇고
출석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꾸준히 참석하는 것이
곧 항상 힘쓰는 신앙입니다.

신앙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신앙의 달인이 되는 비약도 없습니다.
신앙은 항상 힘쓰면서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듯이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그 길이 복된 길이요 살길이기에
매일같이 밥을 먹고 숨을 쉬듯이 신앙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걸음씩
주님을 향해서 나가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항상 힘쓰는 신앙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가는 끈기와 성실함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31 메일 목회서신)

여호와 삼마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예배에서
에스겔서를 모두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읽어가니
48일이 걸린 셈입니다.

새벽에 예언서를 읽기가 쉽지 않지만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긴 여정이기에
광야를 걷는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에스겔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선지자의 관점에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행했던
예루살렘이 멸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예루살렘에 남은 것이라고는
처절한 심판뿐입니다.
그렇게 에스겔서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2.
하지만 끝 무렵에 가면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심판이 아닌 소망인 것을 가르쳐줍니다.

37장에서 죽은 뼈가 살아나는 모습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물이 되어서
바닷물을 살리는 말씀을 읽을 때는 속이 시원했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47장 말씀은
얼마 후에 주일설교에서 다룰 계획도 세웠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에스겔서의 마지막은
두 단어로 종지부를 찍습니다.:
여호와 삼마 (The Lord is There)

이제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 성전에 계십니다.
하나님 거기에 계십니다.

3.
우리들도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간 것인데……
그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행여나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할 지를 염려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버리면 버렸지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전에 모여서 예배할 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예배를 끝내고 각자 삶의 처소로 돌아갔을 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
하나님 늘 거기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
언제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교회 식구들이 가는 곳에
하나님께서 거기 계실 줄 믿습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24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