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쟁이

좋은 아침입니다.

1.
기도해 주신 덕분에

코스타에 잘 다녀왔고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선한 사람이 세상에 더 많은 것처럼
요즘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와 달리 신앙에서 멀어져 있다 해도
하나님을 찾는 아침이슬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음을 몸소 느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면, 밝은 면 그리고 희망찬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겠지요.

2.
시카고에 있는 동안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일주일 내내 기온이 100도에 육박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신문을 보니
이번 더위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답니다.

땀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은근히 습도까지 높아서 몸이 끈적끈적거렸습니다.
대낮에 강의실로 걸어가다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허덕 허덕!
사시사철 선선한 샌프란이 그리웠습니다.

코스타를 마치고
샌프란에 돌아와서 공항을 나오자마자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일주일간의 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만큼 시원했습니다.
바로 이거야!
하나님,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2.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새벽에는
옷을 끼어 입고 집을 나섭니다.
겨울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옷입니다.

기온을 보니 50도 안팎입니다.
시카고의 절반인 셈입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동네를 걷다 보면
아침안개와 바람이 얼굴을 내리칩니다.
“한 여름인데 왜 이리 추운거야!”

더운 곳에서는 선선한 곳을 생각하고
선선한 곳에 있으면 적당히 더울 것을 기대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 보다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비슷해서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거나 조금만 힘든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합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하나님이 내 장단에 춤을 춰 주시길 바라는
못된 심보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기 원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ous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하나님 아버지
험한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님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욕심쟁이가 되기 쉽습니다.
변덕쟁이 신앙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일정하신 하나님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12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 사랑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가 무엇으로 살까를 생각해 봅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을까?
지혜로 살 수 있을까?
세상의 물질로 살 수 있을까?
아니 가족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을 의지해서 살 수 있을까?”

우리들이 의지해서 살고 있는 것들을
나열해 보니 끝이 없이 많습니다.
우리들 혼자서 홀로서기가 불가능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두 없어질 것들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의지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거나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물위에 떠다니는
부초(浮草)를 붙잡고 사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2.
그때마다 하나님 믿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믿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밀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믿게 된 것임을
요즘 주일설교에서 살펴보는
요한복음 4장 말씀을 통해서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생수의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없어질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의지하며 살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났기에 더욱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호세아서 10 8절 뒷부분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My heart is turned over within Me, All My compassions are kindled.

말씀이 매우 시각적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마음이 소용돌이칩니다.
그러더니
하나님의 사랑에 불이 붙었습니다.
아주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쏟아지겠지요!

3.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사랑!
때로는 잠잠하게
때로는 호세아 말씀처럼 불꽃처럼
때로는 빛으로 밝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삽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친
사랑의 불꽃이 우리들에게 임하길 원합니다.
그 사랑의 열기를 이웃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불꽃처럼 생겨난 사랑을
체험하고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28 메일 목회서신)

젊은 사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예배에서는
호세아서를 한 장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선지자 자신의 삶을 통해서
전해지는 매우 독특한 말씀입니다.

또한 호세아서에는
비유적인 표현도 많이 나옵니다.

오늘 살펴본 호세아 7장에는
이스라엘의 죄를
달궈진 화덕” “뒤집지 않은 전병
어리석은 비둘기” “속이는 활에 비유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음란의 죄로 설명하면서
달궈진 화덕(oven)에 빗대서 말합니다.
전병(flat cake)은 부침개와 같은 것을 뜻할 텐데
뒤집지 않고 내쳐 두었으니 한쪽만 익거나 탔을 것입니다.
균형을 잃었습니다. 교만이 그렇답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는  
이집트와 앗시리아같은 세상 나라로 날아갑니다.
하나님께 가야할텐데 말입니다.

속이는 활 (faulty bow)은 과녁에서 빗나가게 마련입니다.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을 라고 합니다.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와 헬라어 하마르티아는
모두 과녁에서 빗나간 화살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리스도인의 과녁입니다.
다른 곳을 겨냥하고 있으면 죄의 길로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죄를 많이 지으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한없이 아프셨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심하게 실망하셨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계실 우리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호세아 5 14-15절에는
하나님을 젊은 사자로 비유합니다.

젊은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죄 속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움켜지고
본래의 자리로 옮겨 놓으십니다.

움켜쥔다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의 뜻은 사자가 먹이를
조각 내듯이 찢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산산조각 내십니다.
그들의 죄악된 삶을 부숴버리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따릅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는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절대로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신을 차려서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를 기다리실 뿐입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같고 유다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쥐고 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5:14-15)
For I will be like a lion to Ephraim, and like a young lion to the house of Judah. I, even I, will tear and go away; I will carry off, and no one shall rescue. I will return again to my place, until they acknowledge their guilt and seek my face, and in their distress earnestly seek me.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젊은 사자처럼 임하실 때가 있습니다.
자꾸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때
참다 못한 하나님께서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우리를 낚아채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 앞에 닥치는 고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행여나 우리들이 그릇된 길로 간다면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우리를 움켜쥐고
바른 길로 옮겨 주옵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귀한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고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21 메일 목회서신)

절제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유럽에서는
4년마다 열리는 Euro 2012라는
축구시합이 한창입니다.

미국 시간으로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중계방송이 있는데
유럽의 축구강국들이 펼치는 시합들이어서
월드컵 못지 않은 인기와 흥미가 있습니다.

축구경기를 좋아하는 저에게도
Euro 2012는 큰 기쁨이자 유혹입니다.
멋진 경기와 세계적인 선수들의 묘기를 보면서
축구 경기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한가하게 축구경기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기 하이라이트를 유튜브로 보거나
컴퓨터로 점수만 확인합니다.
물론
경기를 보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으면서 말입니다.

2.
누구나 좋아하는 일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일 수도 있고,
먹거리일 수도 있고,
사람들과 만나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요즘 세대에는 컴퓨터나 게임일 수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적당히 즐기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일종의 취미생활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빠져들면
시간이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기에
절제(self-control)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절제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보다
음식을 적당히 먹는 절식이 힘든 것을
생활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지 않습니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외에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고 고장이 나게 마련입니다.

3.
우리는 매사에 절제를 훈련해야 합니다.
절제는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에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절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크라테이아에는
Self-control이라는 뜻 외에
숙달(거장, mastery)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매사에 절제를 훈련함으로
단정하고 균형잡이 삶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믿음의 거장으로 자라가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1 5-7)
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supplement your faith with virtue, and virtue with knowledge, and knowledge with self-control, and self-control with steadfastness, and steadfastness with godliness, and godliness with brotherly affection, and brotherly affection with love.(2Pet 1:5-7)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에도 지나치지 않게 하옵소서.
절제를 훈련하고
절제를 통해서 믿음의 거장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14 메일 목회서신)

크신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는
금성이 태양을 가리는
금성일식(Venus Eclips)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다음에는 105년 후에야 온다고 하니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금성일식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노래할 때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과학에도 문외한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을 아주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사진이 뜨는데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이것저것 찾아았더니
태양 속에 작은 검은 점이 금성이라는 것입니다.

금성에 가려서
태양의 일부분이
검은 점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솔직히 생각보다 시시했습니다.
일식이라면
금성이 태양을 가리는 것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사람들이 조금 심하게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2.
금성이 태양을 가린다는 금성일식
그러나 태양을 가리기에는
금성이 너무 작았습니다.
태양이 너무 크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 보다 앞서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려보겠다고
하나님 앞에 배짱 좋게 나설 때도 있습니다.

우리들 스스로는 하나님을 가렸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어림없는 일입니다.
기껏 가려봐야 금성일식 정도도 안 되는 점(point)이나 될까요?

금성일식을 보면서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 마음 한 켠에
점처럼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합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입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표현을 써서 찬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 (시편 18:2)
The LORD is my rock and my fortress and my deliverer, My God, my rock, in whom I take refuge;
My shield and the horn of my salvation, my stronghold. (Psalms 18:2)

오늘 하루
시편기자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조목조목 생각해서 찬양하기 원합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고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그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태양과 비교할 수 없는
태양을 만드신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그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6.7 메일 목회서신)

한 걸음씩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의 다니엘서 읽기
수요예배에서의 골로새서 읽기
청년부들과 에베소서 읽기
아침마다 큐티 본문읽기
속회공부에서 성경본문 읽기
주일 설교에서 말씀 읽기
1년 성경읽기

일주일 동안 제가 참여하거나 인도하는
성경읽기와 관련된 일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상당한 분량의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읽기 진도가 쭉나갑니다.

물론 모든 분들께서
저처럼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절반만 참여하셔도
꽤 많은 양의 성경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모래성이 바닷물에 밀려 가듯이
쌓아놓은 것들마저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야금야금
그리고 꾸준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묘미이고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골로새서 마지막 장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4 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f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여기서 기도에 항상 힘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카르테레오에는 위에 있는 NIV 성경번역처럼

1) 자신을 헌신해서 드리다라는 뜻과
2) 참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은
몸과 마음을 기도에 헌신하는 것이고,
기도생활에 결석하지 않고 참석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를 쉬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서
우리는 결석해서는 안됩니다.
예배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큐티도 그렇고
출석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꾸준히 참석하는 것이
곧 항상 힘쓰는 신앙입니다.

신앙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신앙의 달인이 되는 비약도 없습니다.
신앙은 항상 힘쓰면서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듯이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그 길이 복된 길이요 살길이기에
매일같이 밥을 먹고 숨을 쉬듯이 신앙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걸음씩
주님을 향해서 나가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항상 힘쓰는 신앙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가는 끈기와 성실함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31 메일 목회서신)

여호와 삼마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예배에서
에스겔서를 모두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읽어가니
48일이 걸린 셈입니다.

새벽에 예언서를 읽기가 쉽지 않지만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긴 여정이기에
광야를 걷는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에스겔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선지자의 관점에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행했던
예루살렘이 멸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예루살렘에 남은 것이라고는
처절한 심판뿐입니다.
그렇게 에스겔서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2.
하지만 끝 무렵에 가면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심판이 아닌 소망인 것을 가르쳐줍니다.

37장에서 죽은 뼈가 살아나는 모습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물이 되어서
바닷물을 살리는 말씀을 읽을 때는 속이 시원했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47장 말씀은
얼마 후에 주일설교에서 다룰 계획도 세웠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에스겔서의 마지막은
두 단어로 종지부를 찍습니다.:
여호와 삼마 (The Lord is There)

이제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 성전에 계십니다.
하나님 거기에 계십니다.

3.
우리들도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간 것인데……
그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행여나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할 지를 염려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버리면 버렸지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전에 모여서 예배할 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예배를 끝내고 각자 삶의 처소로 돌아갔을 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
하나님 늘 거기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
언제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교회 식구들이 가는 곳에
하나님께서 거기 계실 줄 믿습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24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구약성경의 신명기를 읽고 있습니다.
이래 저래 올해 성경 통독이 많이 늦었지요.
부지런히 따라잡아야겠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머지 백성들은 광야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모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의 2세들에게
들려준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제가 오늘 읽은 신명기 22장은
신명기 법전(12-26)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신명기 22 1-12절을 읽으면서
하나님 마음을 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예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1-4절에서는
이웃의 소나 양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랍니다.
주인이 없으면 집에 두었다가
주인이 찾을 때 돌려주랍니다.
소나 양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이웃이 잃어버린 것들을 발견하거든
못 본체 해서는 안 된답니다.

요즘처럼 무관심이 판을 치는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니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모두 각박한 세대를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솔선해서
이웃의 일을 내일처럼 보살피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6-7절에서는 길을 가다가 어미 새와 새끼 새가 있는 것을 보거든
새끼나 알은 꺼내와도 어미는 잡지 말랍니다.
어미는 계속해서 새끼를 낳으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명령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여지를 남겨놓으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은 끝장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8절에서는 집을 지을 때 난간을 만들어 놓으랍니다.
난간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져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발적으로 짓는 살인죄도 막을 수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행여나 준비를 덜해서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자신이 손해를 당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발적인 것까지 고려하면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라는 교훈입니다.

5절과 9-12절은
남녀가 옷을 바꿔 입거나,
양털과 무명실로 섞어서 짠 옷을 입거나
밭에 식물을 섞어서 심거나
소와 나귀가 함께 멍에를 지고 밭을 가는 것을 금지합니다.

혼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거룩한 것과 세상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섞어서 무질서하게 보이거나
혼란스럽게 일을 행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순수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고정되어야 하고
복잡한 것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정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혼란스럽거나 혼동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금물입니다.

엊그제 새벽기도회에서 읽었던
에스겔서 42 20절 말씀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 주변에 담을 두를 것을 명령하십니다.
성전과 세상을 구분하는 담입니다.:
그 담은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It had a wall around it to make separation between the holy and the profane.

구약의 율법서들이 지루한 것이 사실이지만
차분하게 읽다 보면
율법의 조항 조항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고,
이웃을 배려하면서 근사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동안 세상에 살면서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시고,
이웃을 배려하고,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완벽히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17 메일 목회서신)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제 얼굴을 가만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입과 코는 하나인데

눈과 귀는 각각 두 개씩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눈과 귀를 각각 두 개씩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이 하나라면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왜곡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두 개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세심하게 돌볼 수 있습니다.

물론 두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들만 본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도 생각해 봅니다.

당장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개의 귀를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다른 쪽 귀로 거의 정상인처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귀가 하나였다면

저는 지금 무척 답답하고 불편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세상의 말들을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라는 뜻도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말들을 들었다면 곧바로

다른 쪽으로 흘려 보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소리들을 듣습니다.

이른 아침의 맑은 새소리부터 시작해서

대낮의 자동차 소음과 군중들의 말소리,

귀담아 듣고 마음에 간직해야 할 조언과

하나님 말씀에 이르기까지

두 개의 귀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따금씩

양쪽 귀에 필터(filter)를 설치해 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들어야 할 말만 들을 수 있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그런 장치는 없습니다.

필터가 없으니 앞에서 말한 대로

필요 없는 소리들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 보내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모든 소리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

생각이 혼란스러워지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들을 소리만 정선해서 마음에 간직한다면

한결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두 개의 귀와 눈을 열어놓는 것은 물론

눈과 귀를 지혜롭게 차단하는 비결도 배워야 합니다.

이사야서 33장 15-16절에서는

하늘 나라 백성의 자질과 그들이 누리는 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 정직히 말하는 ,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 흔들어 뇌물 받지 아니하는 ,

귀를 막아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He who walks righteously and speaks uprightly, who despises the gain of oppressions, who shakes his hands, lest they hold a bribe, who stops his ears from hearing of bloodshed and shuts his eyes from looking on evil, 16 he will dwell on the heights; his place of defense will be the fortresses of rocks; his bread will be given him; his water will be sure.(Isa 33:15-16)

우리 귀를 통제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세상만 볼 수 있기 원합니다.

우리의 감각까지 통제할 수 있는

온전한 신앙인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곳,

견고한 바위를 요새로 삼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양식과 물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누리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눈과 귀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선하게 사용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10 이-메일 목회서신)

확신있게 서기

좋은 아침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느라

지난 3주 동안 목회서신을 보내지 못했는데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세월을 붙들어 놓을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아니 인생길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에 대한 점검과 확신입니다.

이것을 두고 골로새서 4 13절에서는

확신 있게 서기라고 말합니다.

골로새 교회를 세운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가

교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그가[에바브라]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 4:13)

He is always struggling on your behalf in his prayer, that you may stand mature and fully assured in all the will of God.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확신이 필요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확신

우리들 안에 계시는 성령님에 대한 확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모든 것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어느 한 가지 확실한 것을 붙잡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여서

확신 있게 서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확신 있게 서 있어야 합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을 맞으면서

우리들의 신앙과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교회 식구들께

흔들림 없는 확신과 온전함을 더해 주옵소서.

확신 있게 서 있는 굳건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3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