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는 연단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화요일 저녁에는

우리 교회에서 청년부 리더와

찬양팀으로 섬기는 경욱 형제의

첼로 독주회가 있었습니다.

샌프란을 떠나는 경욱 형제이고

짧은 기간 있으면서도 교회를 열심히 섬긴 것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다른 스케줄을 취소하고 독주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도 미국에 와서

늘 음대생들이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었기에

연주회에 많이 다녔지만

첼로 리사이틀은 매우 오랜만에 갔었던 것 같습니다.

중후하면서도 매우 섬세한 첼로의 선율을

만끽할 수 있었던 리사이틀이었습니다.

거기에 경욱 형제의 멋지고 열정적인 연주에

큰 감동을 받고 자칫 기립박수를 칠 뻔했습니다.

2.

음악을 하시는 분들과 목회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습하는 자세입니다.

거의 똑 같은 것을 반복해서

완전히 외우고 매스터할 때까지

인내를 갖고 연습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악기로 또는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음악 하시는 분들은

연습실을 내 집처럼 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저 역시 매사에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로마서 5 4절에는 그리스도인의 세가지 덕목이 나옵니다.:

인내 (perseverance), 연단 (character), 소망 (hope)

위의 세가지 덕목들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내는 연단으로 이어집니다.

연단에 해당하는 영어가 (성품)character입니다.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난 후에

쇳덩이가 풀무 불에서 연단되듯이 생겨나는

그리스도인의 깊은 마음이요 근사한 성품입니다.

연단은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환난을 뛰어넘는

궁극적이고 진실된 소망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내에서 시작합니다.

인내는 단순히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듯이

습관이 되고 인격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거듭해서 연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3,

우리는 지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돌아보면 아쉬움이 먼저 생각납니다.

물론 감사한 일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11년이었습니다.

올 한 해의 모든 일들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습관과 품성으로 자리잡고

그것이 신앙 안에서 소망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하루 하루가

우리의 신앙인격과 소망을 이루는

거룩한 연습이요 훈련이길 원합니다.

올해의 남은 반 달 동안

말씀과 기도 가운데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고

주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끝까지 견디는 인내를 더해 주옵소서

인내가 우리 안에 성품으로 자리잡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마음에 품고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2.15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 앞에 귀한 것 세가지

좋은 아침입니다.

1.

한 동안 목요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바쁜 것도 이유였지만

매주 보내는 리듬이 깨지면서

다시 회복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목요서신이 뜸해지면서

제 안부를 물어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회의 일상이 언제나 쉽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늘 부족한 종이지만,

주님 주신 힘과 은혜로

40대의 마지막 달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2.

새벽기도회는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피곤하지만

그래도 기도할 수 있어서 고맙고

영적으로 많은 힘을 얻습니다.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릎 꿇고 사는 것이 최고입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끝내고

내일부터 예레미야서를 읽게 됩니다.

오늘 나눈 이사야 66 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

Has not my hand made all these things, and so they came into being? Declares the Lord.

“This is the one I esteem; he who is humble and contrite in spirit, and tremble at my word.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덕목이 세가지 나옵니다.

첫째는, 마음이 가난한 것입니다.

가난의 반대말은 부유함이겠지요. 부유함은 많은 것을 소유한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부유함의 반대말인 가난은 소유한 것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겠군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마음임 다시금 깨닫습니다.

둘째로, 심령에 통회하는 것입니다.

통회는 울면서/진실로 회개하는 것을 뜻합니다.

심령이라고 했으니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영으로 (in spirit)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은 심령의 통회자복!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것을

지난 주 잠언 말씀으로 바꾼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요 뜻임을 인정하면서

말씀 따라 살려고 애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3.

올해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 각자의 깊은 곳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신앙의 길로 나가기 원합니다.

가난한 마음, 통회하는 심령, 말씀 앞에서 전율할 수 있는

참빛교회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없이 가난한 마음을 주옵소서.

깊이 회개하며 주님을 찾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을 꼭 붙들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2.8 메일 목회서신)

감사 2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주간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Thanksgiving이라는 영어를 그대로 읽으면

추수감사절은 감사를 나눠주는 절기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허락하시고 주셨기에

올 한해도 마무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욕심이 한이 없어서

더 많이 갖고 싶어 합니다.

적어도 남들보다 더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속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는 더 채워지고,

더 가져야 할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것들을 곰곰이 헤아려보고(think)

그것들을 감사(thank)로 바꿀 때

진정한 감사의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올 것입니다.

2.

요즘 수요예배에서 나누는 고린도후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변호하는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만큼 고린도 교회 안에

바울을 좋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표시겠지요.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자신을 자랑하겠다고 솔직히 밝힌 후에

자신의 육신적인 출신성분을 자랑합니다.

사도로서 얼마나 큰 어려움을 당했는지도 자랑합니다.

하늘 나라에 다녀올 정도의 특별한 영적인 체험도 자랑합니다.

위의 세가지 (육신적 자랑, 사역에 대한 자랑, 영적인 체험을 자랑)는 정말로 자랑할 만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다.

사단의 사자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가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없애주시길 세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고후 12:9)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약함에서 나온다는 하나님 말씀을 들은 바울은

다른 약한 부분들도 모두 하나님께 내어놓고 자랑합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

3.

약한 것을 두고 자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약함이 자랑이 되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들 역시 약함을 마음껏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도 이와 비슷합니다.

좋은 것을 두고 감사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약한 것, 아쉬운 것, 뭔가 부족한 것들을 놓고 감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 안에 감사가 깊숙이 자리잡지 못합니다.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

추수감사절을 맞는 우리 안에

약한 것, 아쉬운 것, 2% 부족한 것,

때로는 실패한 것들을 두고도

감사한 마음을 갖길 원합니다.

Happy Thanksgiving!!!

하나님 아버지

추수감사절을 맞는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끊임없이 샘솟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1.18 메일 목회서신)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거의 한달 만에 목요서신을 보냅니다.

그 동안 교회 이전관계로 바빠서

목요서신을 차분히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교회 이전이

마무리되어가고

지난 주일에는 첫 예배도 드렸습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에게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어쩌면 꿈만 같은 일,

하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눈으로/몸으로 목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응답해 주심을

온 교인이 체험한 귀한 기회였기에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2.

지난 2 7개월 동안 성전에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 기도하다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싶을 때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평일에도 문을 열어놓는

성당에 가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새 교회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마음껏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도 지난 화요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시지 못해도

예전에 새벽기도회에 오셨던 전도사님/권사님들이

그대로 오시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연세가 있으시지만

하나님께서 기도하실 건강과 마음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교회에 있으면서 수시로 기도합니다.

그 동안 아쉬웠던 기도의 한(?)을 풀고 있는 셈입니다.

아니

이제 새 교회에서의 사역에 기도가 빠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처럼

교회 건물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모여 있는 성도들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 건물에 대한 감격도

조금씩 식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참빛 교회 식구들 위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으려는 열심은 날로 커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것이 가장 귀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은 아니시지만

제 이메일 서신을 받고

저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앞으로도 여러분의 기도지원을 감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참빛 교회가

빛되신 예수님을 더욱 열심히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1.10 메일 목회서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오늘은 지난 2년 7개월 동안 나름대로 정이 들었던 미국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입니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전해서는 교회가 너무 커서 어색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성도님들께서 많이 거주하시는 저팬타운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고 무엇보다 주차장이 있어서 편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다란 예배당도 정이 들었고, 웅웅거리면서 잘 들리지 않던 마이크에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교회에 익숙해 졌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미국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우리들도 주일예배 후에는 교회를 사용한 흔적까지 없앨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었습니다. 매달 세 번째 수요일에는 노숙자 돕기에 참여해서 매달 100여명 이상의 노숙자들에게 정성껏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매달 자원봉사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요예배는 친교실 세미나실에서 드렸습니다. 예배실이 아니어서 비좁고 예배라기보다 성경공부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참석하셨고 서로 마주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겨움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교인들이 축하해주고 우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니 그것도 감사할 뿐입니다.

미국 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그래도 셋방을 사는 서러움도 있었습니다. 교회사용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새벽기도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고작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주일오후와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2시간뿐이었습니다. 가끔씩 미국교회가 친교실을 사용하면 우리는 빵과 커피로 교제를 대신해야 했습니다.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이 교회에 와도 유아실이 따로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중고등부아이들이 예배장소를 찾아서 큰 건물을 배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자체 건물을 가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또한 수요예배에서는 예배처소를 허락해 주시길 다 함께 기도했고, 무엇보다 권사님들께서 자체 건물 갖기를 간절히 소망하셨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체 건물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교회건물 매매가 활발하지 않았고 우리 교회에 걸맞은 건물은 더더구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의 때에 건물을 주실 줄 믿었습니다. 전도사님과 연로하신 권사님들께서 살아계실 때 자체건물이 생긴다면 더 없이 기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교회 건물 구입 절차가 요소요소에 돕는 손길이 생기고 아무런 하자나 거침돌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14일부로 우리 교회 자체 건물이 생겼습니다. 7월 초에 교회 이름을 변경한 이래 새로운 건물까지 주셨으니 더 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도우십니다. 우리들도 사무엘 선지자처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라고 외치면서 도움의 돌(에벤에셀)을 놓고 새로운 교회로 이전하기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도움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하나님 아버지! 우리 참빛 교회를 기억하시고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河-

바로 그분

좋은 아침입니다.

1.

언젠가 한국 방송을 보는데

어떤 연애인이 홈 쇼핑에 중독이 되었다고

남편이 흉을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제 경제행위가운데

도서 구입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빠듯하게 돌아가는 살림에

아내와 두 아들에게 미안해서

이제는 구입한 책만 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신간이 소개되면 저도 모르게 크레딧 카드 번호를 주면서

책을 구입하곤 합니다.

엊그제도 책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제목 (what God thinks when we fail)이 마음에 들었고

책 표지에 거북이가 벌러덩 누워있는 것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2.

이 책의 저자는 런던의 한 음악가에 대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이 분은 음악적인 재질이 많고 연주를 꽤 잘하던 바이올린 연주가인데

많은 청중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답니다.

워낙 재능이 있는 음악가였기에 한번은

큰 연주회에 초청을 받아서 멋지게 음악을 연주했답니다.

연주가 끝나고 모든 청중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데도

이 사람은 객석을 두리번거릴 뿐 반응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있다가 아주 기뻐하면서

객석을 향해서 인사하고 무대 뒤로 나갔습니다.

나중에 한 비평가가 청중들의 박수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이 음악가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답니다.

오늘 제 선생님께서 오시기로 했습니다.

연주를 하면서 선생님을 찾을 수가 없어서,

연주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다가 그만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제 선생님께서 발코니에 계셨고 저를 향해서 기립박수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박수만 받으면 되었거든요!”

3.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람(significant other)의 인정을 받으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다른 사람()의 반응에

마음을 쓰고 때로는 자신이 마음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기도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의 저자는

우리들이 정말로 신경 써야 할 분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바이올린 연주가가

자신이 선생님께만 인정받으면 자신의 연주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듯이

우리들 역시

한 분의 인정만 받으면

우리의 삶이 어떡하든지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실패의 기준에 상관없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 분은

우리가 믿고, 예배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가장 중요한 그 분(the ultimate significant other)이시지요.

오늘 하루

여러 사람을 만족시키려 애쓰기 보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 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꼭 기억할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향해서 기립박수를 쳐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힘내십시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참빛 교회 식구들을 주목하시고

한없이 사랑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0.13 메일 목회서신)

한 사람의 죽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한 마음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의 죽음입니다.

56년의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혹자는 그를 에디슨과 비교할 정도로

세상에 혁신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위대한 한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

그의 삶과 일을 통해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종착역(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이라고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잡스 자신이 말했듯이

그는 많은 유산과 감동을 세상과 사람들 마음 속에 남겨놓고

죽음의 길을 떠났습니다.

2.

2천년 전

서른 세 살의 젊은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주 받은 나무에 매달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3년 동안 유대 땅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적과 말씀 그리고

삶을 통해서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스승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보고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다음과 같이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도다/it is finished.

물론 이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종착역인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외롭게

십자가 위에서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춰 주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입었고

허물과 죄로부터 구원받았고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온 인류를 살린 것입니다.:

그런즉 한[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5:18)

Consequently, just as the result of one trespass was condemnation for all men, so also the result of one act of righteousness was justification that brings life for all men.

게다가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He is risen!).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죽으심과 부활!

유한한 인생길을 가는 우리들이

마음에 꼭 품고 있어야 할 믿음이요 확신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과 삶에

깊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0.6 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의 사랑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도 이제 정확히 세달 남았네요.

종종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냥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낼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달 한 달이 모여서 한 해가 되는

시간개념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나이에 대한 개념도 없겠지요.

그런데

인간이 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서

도리어 시간에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닌지

2.

시간뿐 아니라

우리들은 무엇엔가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스스로 홀로서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

고린도후서 5장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사도바울의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의 사랑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그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가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옮겼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 잡습니다.

참 리얼한 번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휘어 잡힌 그리스도인!

얼마자 멋진 고백입니까?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휘어잡으려고 유혹하고 접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휘어 잡혀서 살아가야 합니다.

3.

이 아침에 바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 이길 원합니다.

9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하루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그 안에 흠뻑 빠져봅시다.

그리고 세상에 그 어떤 것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통제 받기를 기도합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하나님

참빛 교회 식구들의 신앙과 삶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휘감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29 메일 목회서신)

청춘 합창단

좋은 아침입니다.

1.

저희 집에 위성방송 안테나를 달고 나서는

한국 방송으로 채널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요즘 한국 방송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연세가 꽤 되신 분들이 모여서

합창 연습을 합니다.

자세히 보니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제외하면

합창 단원들이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이십니다.

합창단 이름도 청춘 합창단입니다.

이 분들은 연습도 열심히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질문을 받으시면

자신들의 생각을 쭉풀어 놓으십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마치 초등학교 어린이들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노래하시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 꽤 되시는데

어르신들 합창단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2.

합창에는 특별한 묘미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화음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운 음색에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합쳐진 화음!

소프라노부터 베이스까지

각 파트가 어울려서 내는 화음!

합창대원의 숨소리까지 하나로 합쳐지고

그 안에 마음까지 합쳐졌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합창이 완성됩니다.

인생살이가 합창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불장군으로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도 인생의 화음이 깨집니다.

너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인생의 합창에 힘이 빠집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소리를 내지만

그것이 합창으로 어우러질 때

가정이나 교회나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엊그제 읽었던 전도서 말씀이 생각납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도서 4:9-12)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도우미가 되어야 합니다.

목소리가 합해지고

마음이 합해져서 우리의 삶이

합창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온 세상에 퍼져 나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참빛 교회가

한 마음으로 어우러진

신앙 공동체로 굳건히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22 메일 목회서신)

No! 변덕쟁이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보에 나오는 큐티 말씀이

마태복음의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오늘은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는 말씀으로 쭉이어지겠지요.

복음서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십자가위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절정(클라이맥스)으로 삼고

거꾸로 소급해 가면서 바둑 복기하듯이

복음서가 기록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십자가와 부활이 중요하지요.

2.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면서 제자들이 모두 흩어집니다.

흩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도망갔다고 원색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 26:56)

Then all the disciples deserted him and fled.

예수님께서 잡히자

제자들이 예수님만 홀로 남겨놓고

모두 도망간 것입니다.

두려워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잡히시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다가 막상 잡히시니까 줄행랑을 친 것이지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엊그제 큐티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베드로에 이어서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똑같이 말했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들 이와 같이 말하니라.( 26:35)

But Peter declared, “Even if I have to die with you, I will never disown you.”

And all the other disciples said the same.

그러고 보니

제자들은

상황이 급변하자

불과 몇 시간 만에 자신들이 했던 말을

뒤엎은 셈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예수님만 남겨놓고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바깥 뜰에 머물렀지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3.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많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변하면 한 순간에 마음을 바꿉니다.

예수님 혼자 내버려두고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신앙은 상록수처럼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서 또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등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외로이 계시는 순간들입니다.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기 원합니다.

행여나 예수님만 홀로 남겨두고

도망간 적은 없는지요?

신앙이 조변석개

변덕스러움의 극치를 달린 적은 없는지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신앙이

상황을 따라서 변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만 바라보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15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