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거의 한달 만에 목요서신을 보냅니다.

그 동안 교회 이전관계로 바빠서

목요서신을 차분히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교회 이전이

마무리되어가고

지난 주일에는 첫 예배도 드렸습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에게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어쩌면 꿈만 같은 일,

하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눈으로/몸으로 목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응답해 주심을

온 교인이 체험한 귀한 기회였기에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2.

지난 2 7개월 동안 성전에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 기도하다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싶을 때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평일에도 문을 열어놓는

성당에 가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새 교회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마음껏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도 지난 화요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시지 못해도

예전에 새벽기도회에 오셨던 전도사님/권사님들이

그대로 오시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연세가 있으시지만

하나님께서 기도하실 건강과 마음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교회에 있으면서 수시로 기도합니다.

그 동안 아쉬웠던 기도의 한(?)을 풀고 있는 셈입니다.

아니

이제 새 교회에서의 사역에 기도가 빠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처럼

교회 건물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모여 있는 성도들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 건물에 대한 감격도

조금씩 식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참빛 교회 식구들 위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으려는 열심은 날로 커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것이 가장 귀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은 아니시지만

제 이메일 서신을 받고

저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앞으로도 여러분의 기도지원을 감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참빛 교회가

빛되신 예수님을 더욱 열심히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1.10 메일 목회서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오늘은 지난 2년 7개월 동안 나름대로 정이 들었던 미국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입니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전해서는 교회가 너무 커서 어색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성도님들께서 많이 거주하시는 저팬타운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고 무엇보다 주차장이 있어서 편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다란 예배당도 정이 들었고, 웅웅거리면서 잘 들리지 않던 마이크에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교회에 익숙해 졌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미국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우리들도 주일예배 후에는 교회를 사용한 흔적까지 없앨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었습니다. 매달 세 번째 수요일에는 노숙자 돕기에 참여해서 매달 100여명 이상의 노숙자들에게 정성껏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매달 자원봉사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요예배는 친교실 세미나실에서 드렸습니다. 예배실이 아니어서 비좁고 예배라기보다 성경공부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참석하셨고 서로 마주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겨움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교인들이 축하해주고 우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니 그것도 감사할 뿐입니다.

미국 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그래도 셋방을 사는 서러움도 있었습니다. 교회사용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새벽기도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고작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주일오후와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2시간뿐이었습니다. 가끔씩 미국교회가 친교실을 사용하면 우리는 빵과 커피로 교제를 대신해야 했습니다.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이 교회에 와도 유아실이 따로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중고등부아이들이 예배장소를 찾아서 큰 건물을 배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자체 건물을 가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또한 수요예배에서는 예배처소를 허락해 주시길 다 함께 기도했고, 무엇보다 권사님들께서 자체 건물 갖기를 간절히 소망하셨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체 건물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교회건물 매매가 활발하지 않았고 우리 교회에 걸맞은 건물은 더더구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의 때에 건물을 주실 줄 믿었습니다. 전도사님과 연로하신 권사님들께서 살아계실 때 자체건물이 생긴다면 더 없이 기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교회 건물 구입 절차가 요소요소에 돕는 손길이 생기고 아무런 하자나 거침돌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14일부로 우리 교회 자체 건물이 생겼습니다. 7월 초에 교회 이름을 변경한 이래 새로운 건물까지 주셨으니 더 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도우십니다. 우리들도 사무엘 선지자처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라고 외치면서 도움의 돌(에벤에셀)을 놓고 새로운 교회로 이전하기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도움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하나님 아버지! 우리 참빛 교회를 기억하시고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河-

바로 그분

좋은 아침입니다.

1.

언젠가 한국 방송을 보는데

어떤 연애인이 홈 쇼핑에 중독이 되었다고

남편이 흉을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제 경제행위가운데

도서 구입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빠듯하게 돌아가는 살림에

아내와 두 아들에게 미안해서

이제는 구입한 책만 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신간이 소개되면 저도 모르게 크레딧 카드 번호를 주면서

책을 구입하곤 합니다.

엊그제도 책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제목 (what God thinks when we fail)이 마음에 들었고

책 표지에 거북이가 벌러덩 누워있는 것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2.

이 책의 저자는 런던의 한 음악가에 대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이 분은 음악적인 재질이 많고 연주를 꽤 잘하던 바이올린 연주가인데

많은 청중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답니다.

워낙 재능이 있는 음악가였기에 한번은

큰 연주회에 초청을 받아서 멋지게 음악을 연주했답니다.

연주가 끝나고 모든 청중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데도

이 사람은 객석을 두리번거릴 뿐 반응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있다가 아주 기뻐하면서

객석을 향해서 인사하고 무대 뒤로 나갔습니다.

나중에 한 비평가가 청중들의 박수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이 음악가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답니다.

오늘 제 선생님께서 오시기로 했습니다.

연주를 하면서 선생님을 찾을 수가 없어서,

연주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다가 그만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제 선생님께서 발코니에 계셨고 저를 향해서 기립박수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박수만 받으면 되었거든요!”

3.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람(significant other)의 인정을 받으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다른 사람()의 반응에

마음을 쓰고 때로는 자신이 마음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기도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의 저자는

우리들이 정말로 신경 써야 할 분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바이올린 연주가가

자신이 선생님께만 인정받으면 자신의 연주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듯이

우리들 역시

한 분의 인정만 받으면

우리의 삶이 어떡하든지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실패의 기준에 상관없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 분은

우리가 믿고, 예배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가장 중요한 그 분(the ultimate significant other)이시지요.

오늘 하루

여러 사람을 만족시키려 애쓰기 보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 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꼭 기억할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향해서 기립박수를 쳐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힘내십시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참빛 교회 식구들을 주목하시고

한없이 사랑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0.13 메일 목회서신)

한 사람의 죽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한 마음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의 죽음입니다.

56년의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혹자는 그를 에디슨과 비교할 정도로

세상에 혁신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위대한 한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

그의 삶과 일을 통해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종착역(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이라고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잡스 자신이 말했듯이

그는 많은 유산과 감동을 세상과 사람들 마음 속에 남겨놓고

죽음의 길을 떠났습니다.

2.

2천년 전

서른 세 살의 젊은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주 받은 나무에 매달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3년 동안 유대 땅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적과 말씀 그리고

삶을 통해서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스승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보고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다음과 같이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도다/it is finished.

물론 이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종착역인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외롭게

십자가 위에서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춰 주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입었고

허물과 죄로부터 구원받았고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온 인류를 살린 것입니다.:

그런즉 한[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5:18)

Consequently, just as the result of one trespass was condemnation for all men, so also the result of one act of righteousness was justification that brings life for all men.

게다가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He is risen!).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죽으심과 부활!

유한한 인생길을 가는 우리들이

마음에 꼭 품고 있어야 할 믿음이요 확신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과 삶에

깊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0.6 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의 사랑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도 이제 정확히 세달 남았네요.

종종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냥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낼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달 한 달이 모여서 한 해가 되는

시간개념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나이에 대한 개념도 없겠지요.

그런데

인간이 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서

도리어 시간에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닌지

2.

시간뿐 아니라

우리들은 무엇엔가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스스로 홀로서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

고린도후서 5장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사도바울의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의 사랑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그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가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옮겼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 잡습니다.

참 리얼한 번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휘어 잡힌 그리스도인!

얼마자 멋진 고백입니까?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휘어잡으려고 유혹하고 접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휘어 잡혀서 살아가야 합니다.

3.

이 아침에 바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 이길 원합니다.

9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하루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그 안에 흠뻑 빠져봅시다.

그리고 세상에 그 어떤 것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통제 받기를 기도합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하나님

참빛 교회 식구들의 신앙과 삶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휘감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29 메일 목회서신)

청춘 합창단

좋은 아침입니다.

1.

저희 집에 위성방송 안테나를 달고 나서는

한국 방송으로 채널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요즘 한국 방송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연세가 꽤 되신 분들이 모여서

합창 연습을 합니다.

자세히 보니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제외하면

합창 단원들이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이십니다.

합창단 이름도 청춘 합창단입니다.

이 분들은 연습도 열심히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질문을 받으시면

자신들의 생각을 쭉풀어 놓으십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마치 초등학교 어린이들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노래하시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 꽤 되시는데

어르신들 합창단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2.

합창에는 특별한 묘미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화음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운 음색에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합쳐진 화음!

소프라노부터 베이스까지

각 파트가 어울려서 내는 화음!

합창대원의 숨소리까지 하나로 합쳐지고

그 안에 마음까지 합쳐졌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합창이 완성됩니다.

인생살이가 합창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불장군으로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도 인생의 화음이 깨집니다.

너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인생의 합창에 힘이 빠집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소리를 내지만

그것이 합창으로 어우러질 때

가정이나 교회나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엊그제 읽었던 전도서 말씀이 생각납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도서 4:9-12)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도우미가 되어야 합니다.

목소리가 합해지고

마음이 합해져서 우리의 삶이

합창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온 세상에 퍼져 나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참빛 교회가

한 마음으로 어우러진

신앙 공동체로 굳건히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22 메일 목회서신)

No! 변덕쟁이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보에 나오는 큐티 말씀이

마태복음의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오늘은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는 말씀으로 쭉이어지겠지요.

복음서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십자가위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절정(클라이맥스)으로 삼고

거꾸로 소급해 가면서 바둑 복기하듯이

복음서가 기록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십자가와 부활이 중요하지요.

2.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면서 제자들이 모두 흩어집니다.

흩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도망갔다고 원색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 26:56)

Then all the disciples deserted him and fled.

예수님께서 잡히자

제자들이 예수님만 홀로 남겨놓고

모두 도망간 것입니다.

두려워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잡히시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다가 막상 잡히시니까 줄행랑을 친 것이지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엊그제 큐티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베드로에 이어서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똑같이 말했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들 이와 같이 말하니라.( 26:35)

But Peter declared, “Even if I have to die with you, I will never disown you.”

And all the other disciples said the same.

그러고 보니

제자들은

상황이 급변하자

불과 몇 시간 만에 자신들이 했던 말을

뒤엎은 셈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예수님만 남겨놓고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바깥 뜰에 머물렀지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3.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많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변하면 한 순간에 마음을 바꿉니다.

예수님 혼자 내버려두고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신앙은 상록수처럼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서 또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등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외로이 계시는 순간들입니다.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기 원합니다.

행여나 예수님만 홀로 남겨두고

도망간 적은 없는지요?

신앙이 조변석개

변덕스러움의 극치를 달린 적은 없는지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신앙이

상황을 따라서 변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만 바라보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15 메일 목회서신)

고난이 주는 세가지 유익

좋은 아침입니다.

수요예배에서

고린도후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첫 번째 장부터 고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당시에 고린도라는 세속도시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타락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까지

세상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잔잔한 파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아니 파도타기를 하면서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인생의 파도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앞 길이 깜깜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나오는

환난도 웬만한 쓰나미급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 속에서

세가지 유익이 들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훗날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4)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have received from God.

둘째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크고 깊은 위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넘친다는 바울의 고백이고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For just as the sufferings of Christ flow over into our lives, so also through Christ our comfort overflows.

고난이 주는 마지막 세번째 유익은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앞에 밀려오는 어려움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것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회로 역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바울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죽음의 순간에

생명을 주관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의지했습니다.

이쯤 되면

어떤 인생의 쓰나미가 밀려와도

능히 맞닥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힘이 나옵니다.

p.s.

9.11 1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고 어려운 기간을 견뎠던

많은 분들께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우리 앞에

크고 작은 인생의 파도가 밀려 올 것입니다.

어려움을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능히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8 메일 목회서신)

변화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을 믿는 것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변화입니다.

신약 성경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육신의 질병이 고침 받고 건강해 지는 변화,

평생 구두쇠로 살았던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변화

제자들은 세상 직업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인생의 변화!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떤 모양이든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변화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증표(sign)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변화되지 않았다면,

아직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신앙에서 변화가는 중요합니다.

생각의 변화.

마음과 성품의 변화

삶의 변화,

인생을 내다보는 인생관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전반적으로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9월의 첫 번째 날이 지나고

두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새달을 맞으면서

이번 한달 동안

예수님을 믿는 우리 각자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임을 닮은

진정한 그리스도인(Christian)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 5: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

하나님 아버지

또 한번 새 달을 맞는

참빛 교회 식구들에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날마다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9.1 메일 목회서신)

땅에 묻고 다시 시작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의 삶이

어렸을 적 눈덩이 굴리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점점 커집니다.

커져서 좋지만

나중에는 눈덩이에 지저분한 물질들도 붙게 되고

눈덩이를 굴리는 것이 힘에 부칩니다.

그때는 적당한 곳에

눈덩이를 놓고

새로운 눈덩이를 굴리곤 했습니다.

2.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21년간의 종살이를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하지만

딸 디나가 낯 모르는 지방에서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여동생이 치욕을 당한 것에 분노한 오빠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인 복수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야곱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처음 고향을 떠날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돌아가서 예배자의 삶을 살 것을 부탁하십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모으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방 신앙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5:2)

Get rid of the foreign gods you have with you,

And purify yourselves and change your clothes.

하나님 말고

그들이 의지하던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내적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겉모습을 치장하던 옷도 갈아입으라는 부탁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출발입니다.

야곱은 가족들이 가져온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등 장식품들을

자식들이 죄를 지은 그곳

세겜 땅에 묻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35:4)

So they gave Jacob all the foreign gods they had and the rings in their ears, and Jacob buried them under the oak at Shechem.

이제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자신들의 잘못과 과거를 땅에 묻었기 때문입니다.

벧엘로 향하는 야곱 일가의 여정을

우리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35:5)

Then they set out, and the terror of God fell upon the towns all around them so that no one pursued them.

3.

우리들도 종종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 굴려왔던 눈덩이를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 동안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을 점검하고,

하나님과 관련 없는 것들을

땅에 묻는 결단과 행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땅에 묻는 시도를 해 봅시다.

그리고 야곱처럼

우리의 인생길을 새롭게 발행(to set out)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옛 것을 땅에 묻고

새로운 길을 발행하는

참빛 교회 식구들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친히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8.25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