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삼일절이었습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학창시절 삼일절이 되면 운동장에서 불렀던

삼일절 노래를 인터넷으로 클릭해 보았습니다.

삼일절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솔직히 이민생활을 하면서

3.1절을 되새길 틈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일상에 쫓겨서

또는 현재의 삶에 도취되어서

민족의 귀중한 역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국 근대사 가운데

삼일 운동을 마음에 품을 필요가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기미년(1919)

기독교인 숫자는 2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은 16명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주도했고

급기야 민족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제암리(감리)교회에서는

문이 잠긴 채로 교인 30명이

불에 타서 순교하는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은 물론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강인했습니다.

기독교인 숫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민족의 독립과 사회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2.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왔던 출애굽사건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서 물리쳐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을

후손 대대로 기념할 것을 권면합니다.

민족의 역사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지탱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자칫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에 지나온 역사를 곱씹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재구축(reconstruct)하는 민족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3.

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사도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온 인생의 여정 구비구비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의 크고 작은 손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하나님 체험이

현재의 어려움을 견딜 힘을 주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엊그제 삼일절을 그냥 지나치셨다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고,

무엇보다 20-25%나 되는 기독교인 숫자에도 불구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각자의 삶의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면서

삶의 여정 속에 간섭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마음 속 깊이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떠나온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의 수많은 교회가 역사 속에 부끄러움이 없을

바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우리들 각자의 삶에

신앙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뿌리와 같은 우리의 내면이 튼튼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2메일 목회서신)

새 힘을 얻으리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무슨 힘으로 살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서

안전의 욕구 (safety need)를 채우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힘이 되는 것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경쟁적으로 추구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대 초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면서

제 인생관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지

꾸준히 생각하게 되었지요.

목회 하기 전에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목회하면서는

어떻게 하면

진실된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 지

그리고

제 자신이 올바른 목회의 길을 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아침마다/순간마다 사모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40:31)

2.

그렇다고

우리가 늘 새 힘을 얻고

힘차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일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아니 제 목회든지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쉬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때는 쉬는 것이 상책인데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그냥 탱크처럼 밀고 나가곤 합니다.

알리스커 맥그레스라는 분이 쓴

The Journey (“내 평생 가는 길”)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을 차분하게 그리고 깊이 설명하고

제시한 책입니다.

그 책에 이사야 40 31절과 연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친 길손들은 쉼이 필요하다. 황량하고 적막한 땅을 지나 먼 길을 힘들게 걷고 나면, 누구나 휴식과 전환이 필요하다. 신앙여정에서 피곤이란 삶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피곤을 인정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소성케 하시며, 소망 중에 여행을 지속케하신다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신다는 이 놀라운 비전은 우리에게 큰 믿음과 확신을 준다.

맥그레스는

우리의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실 것을 믿고 확신할 때

새로운 날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신

주님의 자녀들이 쉴 수 있는 삶의 그늘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주와 함께 힘차게 날아오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24메일 목회서신)

게딩 베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말부터

감기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시간에 제 목소리는 거의 부흥강사 수준이었지요)

이번 감기의 특징은

처음에는 으슬으슬 추워지다가

목이 아프고, 머리가 아픕니다.

이쯤 되면

감기에 함락당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침, 콧물, 두통, 근육통, 불면증 등등의

독감증상이 돌아가면서

정신 없이 계속됩니다.

지난 가을에

Flu shot을 맞았는데도

예방주사가 이번에 유행인 바이러스를

적중하지 못했는지

감기에게 무장해제를 당할 만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부터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내일 있을 약속도 취소하고

쉬면서 주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2.

몸이 아플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상처가 나던지

아니면 감기처럼 몸이 아프던지 상관없이

일단 회복(getting better)의 기운만 감지되면

안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복, 좋아지는 것,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우리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디 우리들 몸만 그렇겠습니까?

신앙은 물론 우리의 삶도

좋아지는 표시가 보인다면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과 자기 관리의 여부에 따라서

언젠가는 온전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심각합니다.

Getting worse – 점점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육체의 건강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신앙과 삶의 문제라면

금식을 선포하면서라도 추락하는 자신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3.

구약성경에서 회복또는 회개를 말할 때

매우 간단한 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로 돌아오다라는 의미의 슈브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자기 신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한 후에

처절하게 드린 회개와 결단의 기도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1:12)

Restore to me the joy of your salvation

And grant me a willing spirit to sustain me.

전반부에 나오는 회복시키시고 (restore)”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바로 슈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회복은

하나님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향유하는 것입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인생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슈브 (turn back)] 돌아서기만 하면

그것이 모멘텀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발걸음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체험했을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getting better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오고

감기가 유행을 하고,

삶의 환경이 그리 좋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순간 순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17 메일 목회서신)

웃으면서 삽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구약성경 창세기의 이삭에 대한

연속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 뜻이 웃음이듯이

저 역시 연속 설교의 제목을

웃음 가득한 인생이라고 정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이삭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웃음 가득한 인생이 가능할 지를 생각합니다.

솔직히

살다 보면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고

급한 일들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민생활/유학생활 가운데

웃음 가득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심각한 상황은 늘 찾아 옵니다.

이것이 우리들 삶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이삭과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아온

삶의 여정도 웃음만이 가득하고

장밋빛 융단이 깔린 인생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웃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그들의 삶 속에서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한 때에 이삭이 태어났을 때

사라가 한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 21:6)

2.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멀리 이집트에서는 연일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됩니다.

그것이 중동의 다른 국가들은 물론

독재로 꼭 닫힌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한국에서는

구제역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나 봅니다

세 살 먹은 아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급기야 싱크대에 머리를 부딪치게 해서

목숨을 잃게 하고 쓰레기장에 유기하는 부모도 있답니다.ㅠㅠ

미국도 여전히 불경기에 허덕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예산 통과를 위해서

주지사가 나설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하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도 그리 밝지 않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삶도

물론 어둠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어둠이 드리운 세상 속에

참 빛(true light)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과

각자의 삶이 밝지 않아도

오늘도 변함없이

새 날을 주신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때 우리 삶에

빛이 들어옴을 깨닫습니다:

생명의 빛, 소망의 빛, 확신의 빛

그리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웃음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

정확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을 때

온 삶으로 웃어내는

전율할 정도의 깊은 웃음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 모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높고 푸른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바라면서

웃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S-mile!!!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케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요 간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10메일 목회서신)

새 날을 맞읍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음력 설날 입니다.

미국에 있으면

설날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날씨마저 한국의 겨울처럼 춥지 않아서

한국에 있을 때의 설 기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점심때

중국 음식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종업원들이

우리를 중국사람으로 생각했는지

해피 뉴 이어라고 인사했습니다.

미국 분들 가운데서도

우리가 음력을 세는지,

양력을 세는지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양(중국)사람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누리는

또 다른 혜택(?) 같습니다.

2.

이처럼 우리들은

신정과 구정

새해를 두 번 맞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설날에서 이라는 말은

새해의 처음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네요.

어릴 적에는

신정과 구정을 맞는 것이 이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설을 두 번 맞이하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정(설날)에 새해의 결심을

다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심삼일이라고

새해 초에 했던 결심들이 흐려질 때쯤 되면

꼭 음력 설을 맞이합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남은 1년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고 보니

설날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구약성경의 창세기 11절은
태초에 (In the beginning)”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1 1절도

태초에라는 말씀으로 똑같이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시작,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요한 복음의 시작이 맞물려 있는 셈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시작이 꽤나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신앙을 가진 것을

거듭남 (Born again)”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두고 중생(衆生)”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거듭남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삶 (new life)을 강조해서

신생(新生)”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매일같이 새롭게 펼쳐지는 경이로운 삶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고

내일도 오늘과 다른 새로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천지만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우리에게 성실함으로 임하십니다.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가 3:23)

우리들 안에 새로운 삶을 주시고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1:6)

오늘도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잠깐씩이라도

새로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손길을 느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서머나 식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날을 힘차게 시작하게 하옵소서.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성실과

결국에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마음에 품고 새 날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3 일 메일 목회서신)

내면의 성숙

좋은 아침입니다.

1.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새해의 첫 달도 이렇게 훌쩍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새해에 세워 놓은 계획들이 무색하고

주보에 나오는 성경일독 스케줄이 벌써부터 부담이 됩니다.

저는 이제 한국 나이로 오십이 되었습니다.

물론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도 미국 나이로는 48세입니다.

제게 있어서 앞으로 10년은 무척 중요해 보입니다.

남은 10년을 잘 잡으면

인생의 후반전 또는 연장전을

감사와 기쁨으로 보람 있게 보낼 것 같습니다.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50대를 훌쩍 넘으신 분들이 꽤 많으시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때라는 말을

여러분의 간증으로 만들어 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사무엘 울만이 70이 넘어서 썼다는 시구(詩句)

기억하시면 새로운 힘을 얻으실 것 같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2.

나이가 들면서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음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부리는 욕심을 노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를 입힙니다.

둘째는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해 왔던 일들 가운데,

또는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열리는 인생 가운데,

무엇보다 이웃과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은사를 찾고

그것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 후반전의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셋째는 내면의 성숙입니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육체는 힘을 잃습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외모나 가진 것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 노년을 아름답게 사는 비결일 것입니다.

연세가 들으셨지만

무척이나 곱고 아름다워 보이시는 어르신들을 만납니다.

그분들과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내면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말씀묵상과 기도는

내면의 성숙에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3.

젊은 청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들리시지요?

그런데 금방 그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세월을 막을 수가 없거든요.

무엇보다

세상 욕심을 절제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내면의 성숙을 이루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새해 첫 달이 빠르게 지나갔듯이

남은 열 한 달도 그렇게 지나갈 것입니다.

기차에 앉아서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듯이

인생을 살지 말고

모래를 품고 사는 조개가 아픔과 고난을 견디면서

갚진 진주를 만들어 내듯이

올 한해 서머나 식구들의 인생길에

감사와 기쁨의 열매가

내면 깊이 풍성히 맺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내면의 성숙과 풍성함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것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하루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30메일 목회서신)

“뜻을 정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이 질책만 받았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3:17)

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자” “부족함이 없는 부요함

축복으로 생각하면서

세상 것들을 정신 없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간의

차이점인 거룩함을 상실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성경이 가르쳐주는 진리에 깊이 뿌리를 박고

세상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요즘 큐티 본문인 다니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을 사는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이라는 당시 고대근동의

최대강국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왕궁에서 바벨론 언어와 문화를 습득했지만

뜻을 정하여”( 1:8)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킵니다.

자신들을 포로로 데려온

바벨론 왕들의 꿈을 해석해 주고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다가

친구들과 더불어 죽을 위기도 겪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세상에 지혜롭게 적응했으면서도

구별된 삶, 즉 거룩함을 잃지 않았고,

그의 신앙을 통해서 바벨론 왕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드는 영향력도 발휘했습니다.

3.

우리들도 세상에서 다니엘처럼 살아야 하는데

자꾸만 우리의 발걸음은 세상의 부유함을 추구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좇아가는 듯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데

도리어 우리들 신앙에 세상의 가치관이 들어와서

신앙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2011년 첫 달을 보내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다니엘 처럼 뜻을 정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거룩함을 잃지 않을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안에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세상을 좇는 마음과 습관이 있다면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올 한 해

미지근한 신앙이 아니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참된 신앙의 길로 나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한 해를 살면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에 두고

우리의 발걸음이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뜻을 정하고

굳건히 신앙의 길로 나가는

서머나 성도님들을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20메일 목회서신)

인도하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 가운데

인내와 신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신앙은 인내입니다. 신앙이 크고 적음은 바로 인내로 나타납니다. 처음과 끝이 시종여일하다면 이것이 곧 성경이 말하는 신실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즉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신실하시듯이 우리들도 그래야 합니다. 처음과 나중이 똑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래 참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곧바로 나와야 하고

적어도 잘 될 것이라는

(자기 생각대로 될 것이라는)

표징이 나타나야 안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거나,

중간에 포기하거나,

쉽게 낙심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기 뜻이 너무 강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사로잡혀서

뜻대로 되지 않거나

자기가 정해놓은 시간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불안해 하고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2.

온전한 믿음은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쫓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신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금방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내 생각대로 한다면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면 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에 자신의 삶을 맞추다 보면

인내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새해를 맞아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그것에 맞춰서 기도제목도 작성했습니다.

올 해만은 계획한 것을 모두 이루기 위해서

대단한 결심도 했습니다.

대부분 그렇게 한 해를 시작하지만

작심삼일입니다.

새해의 결심은 사라지고

적당히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그런데 한번쯤

우리의 생각을 바꿔볼 필요도 있습니다:

제가 세운 계획도 중요하지만

올 해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인생길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쫓아가겠습니다.”

를 조금 뒤로 밀어놓고

우리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쫓아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생각보다 인생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이 사라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곁눈질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걸어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9 7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올 한 해

우리에게 선하고 유익한 길을 보이시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신앙의 길로 나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이 주님 뜻대로 살게 하옵소서.

그른 길로 가면 바로잡아 주시고

서두르면 속도를 늦춰주시고

게으르면 발길을 재촉해 주옵소서.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해 주시고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면서

인내신실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13 메일 목회서신)

2011 새 해에는…

Happy New Year1

1.

2011년의 여섯 번째 날이 지나고 있습니다.

새해의 첫 주간을

말씀과 기도로 보내시기를 부탁 드렸는데

잘 지키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후기 기독교 시대(post-Christianity era)입니다.

기독교가 한창 힘을 쓰고

기독교의 진리와 신학이 서양철학과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던 시대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독교 없이도 세상이 잘 돌아갑니다.

아니 도리어 기독교가 거추장스러워져서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절대자 하나님이나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주장에 반기를 듭니다.

이 같은 후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젊은 청년들과 우리 자녀들은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 뿐만 아니라,

보통 결심과 믿음이 아니면

갖고 있는 신앙마저 빼앗길 지경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청년들과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로 돕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독교 아니 성경의 진리가 퇴색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쓰지 못하시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성경은 여전히 우리들 발의 등불이요

우리들 길의 빛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십니다.”

성경이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대와 사람들이 변했을 뿐입니다.

2.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 첫 주간에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께 조율하기 원합니다.

다시금 우리들 신앙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경의 진리 속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그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탁 드렸듯이

올 한해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짜는 가짜보다 세련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가짜가 더 요란한 법이거든요.

가짜는 자기를 변명하고 자랑하기에 급급하지만

진짜는 가만히 있어도

그 성품과 삶으로 진짜인 것이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진짜 그리스도인들

요한 계시록 말씀에 나오는 흰 옷 입은 자들”-

을 주목하시고, 그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고린도후서 6 1-10절에 잘 나옵니다.

그 가운데 9-10절만 옮겨왔습니다.

이름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표준새번역)

올 한해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진짜로 살기를 힘씁시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짜 그리스도인을 찾으시고

그들과 더불어 한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서머나 성도님들의

신앙과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되고

세상에서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빛을 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6 메일 목회서신)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아침입니다.

1.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

모레가 성탄절이군요.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도 기다리고,

성탄절 이브 발표회 준비와

새벽송 등등

거기에 하얀 눈까지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렸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무덤덤해 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샌프란에 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평생

볼 수 없겠지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훨씬 많이 변했습니다.

크리스마스하면

세일과 샤핑을 가장 먼저 생각한답니다.

이제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대신에

해피 할러데이가 대세인 듯 합니다.

2.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2010 12 25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과연 어디에 머무르실까?”

2천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이셨는데

오늘날 세상에 오셔도

거하실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분명 예수님이신데

이름만 성탄이지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배하는 모습은

더 이상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어김없이 성탄절이 돌아오듯이

예수님은 대강절을 지내온

우리들에게 구세주로

평화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들렸던

천사들의 음성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들려올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2:14)

내일이 성탄절 이브인데

차분하게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기 원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서머나 식구들과

한 해 동안 이메일 서신을 받고 함께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하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옵소서.

어려운 한 해를 살아온

서머나 식구들 위에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이 새로운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12.23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