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이제 4월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캘린더를 갖고

우리의 인생을 셈하고

하루, 한달, 그리고 한 해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곁에 두고 따라 살아야 할 캘린더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력입니다.

오래 전부터

교회가 지켜왔던 캘린더이지요.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인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됩니다.

성탄절을 맞은 후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3년간의 공생애 (public life)를 묵상하는

주현절이 두 달 이상 계속됩니다.

주현절이 끝나면

우리가 방금 지냈던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십자가의 고난을 넘어서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주현절과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사역과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부활절을 축제로 지낸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대하면서

7주간을 보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임재를 기도 가운데

아주 아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오순절이 지난 다음에는

11월의 대림절을 맞을 때까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의 삶을 살아 갑니다.

오순절 이후의 기간이 긴 것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 가운데 사는 것임을 깨우쳐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부활절 이후에는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우리의 신앙은 물론

교회, 즉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세워져야 할 지를

묵상하면서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2.

이제 우리는

부활절을 지내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향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 왔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오순절은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충만함이 꼭 필요함을 깨우쳐 줍니다.

성령은 보혜사(保惠師, the counselor)가 되십니다. ( 15;26)

우리를 도와주시고,

신앙과 인생 여저의 상담자가 되어 주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 16:13)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은 능력이십니다. (1:8)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고 그것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부활절을 지내고

새로운 생명의 은혜를 체험하신

서머나 식구들 모두

이제부터 오순절 성령강림을 향해서 나가시길 부탁 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교회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묵상하면서 한 해 한 해를 살아갑니다.

이것이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 앞으로 50여일 동안

서머나 식구들이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가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체험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28 메일 목회서신)

성 금요일에…

1.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

성금요일입니다.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서머나 식구들께도 금식하시면서

성금요일을 경건하게 보내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매년 맞는 사순절, 고난주간

성금요일과 부활절이기에

무덤덤하게 형식적으로 보내기 쉽습니다.

하지만

2011년 성금요일은 우리들 개인의 인생은 물론

인류 역사에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매년 맞는

교회력의 절기들을 소홀히 보낼 수 없습니다.

때마다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들 각자를 향하신 초청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저는 성금요일에

이사야 53편을 묵상합니다.

그가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이사야 53:4-6, 표준새번역)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

수치요 저주의 십자가에 맨 몸으로 달리신 예수님,

그리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신 예수님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이사야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읽으면서 묵상하는 것이지요.

무한 감사가 넘칩니다.

눈에 눈물도 흐릅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찬송가 가사와 함께

마음 속에 메아리처럼 퍼져옵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자꾸만 더 달라고만 졸라댑니다.

그 귀한 생명의 은혜를 받았건만

아침안개처럼 없어질 이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몸 버려 피 흘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로 결심하시는

2011년 성금요일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고,

우리들 대신 십자가에 달력 죽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서머나 식구들 위에

십자가의 은혜가 잔잔히 임하게 하옵시고

그 은혜를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20 메일 목회서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 막바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맞는 사순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새롭게 다가오십니다.

올해는 특별히

일본에 밀어닥친 쓰나미와

계속되는 원전의 방사능 유출을 보면서

인간이 쌓아놓은 문명과 우리의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실감하면서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염려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점검하고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을

하나님께 두기로 결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야 함도 기억합니다.

2.

지난 주 설교 제목 그대로

사순절은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무한한 은혜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라졌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승리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죄의 세력을 모두 이기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묵상할 때

십자가의 세로목(I)을 따라서 하나님께

제 마음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가로목 (-)을 따라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맨 나중에는

십자가의 세로목과 가로목이 만나는 한 가운데

제 마음을 고정시키고

나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온 세상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3.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A. W. Tozer The Radical Cross라는 책에서

십자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에게 나타난 일들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 때, 예수님은 분명히 살아 계셨습니다. 하지만 6시간 후,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렸을 때는 완전히 숨을 거두신 후였습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전한 것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제자들은 세상 어디를 가든지 십자가를 갖고 갔고, (십자가의) 획기적인 능력이 똑같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복음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다소 사람 사울을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의 사도로 변화시켰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모르던 세상을 뒤흔들었고, 사람들의 생각은 물론 양심과 삶을 완벽하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사순절 막바지를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십자가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고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하고

충만케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온 세상에 임하게 하옵소서.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서머나 식구들께 능력으로 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13메일 목회서신)

주의 말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여섯 번에

걸쳐서 수요예배에서는

<성경 바르게 읽기>라는 주제를 갖고 공부했습니다.

수요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조금 염려도 했지만,

기대한 것보다 더 훌륭하게

즐겁게 말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가운데

시편 119편은

매우 특이한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다 ( 119:105)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우선,

176절로 이루어진 시편 119편은

8절씩 22개의 연()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2개는 히브리어 알파벳 숫자와 같습니다.

또한 각 연의 8절은

같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연인1-8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인 알렙으로 시작되는데

첫 연을 이루는 8절은

모두 알렙으로 시작합니다.

그 뒤를 이어서

21개의 연이 같은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성경이 쓰여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경에서 가장 긴 장(chapter)

시편 119편을 암송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우리 식으로 하면

A 부터 Z까지 모두 들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2.

늘 강조하듯이

하나님 말씀에는 하나님의 영감

즉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20:31)

말 그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생명 책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앞에 인용한 시편 119 105절 말씀처럼

성경은 우리의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을 멀리 비춰주는 빛이 됩니다.

신앙은 물론 인생 여정의

지침서요 나침반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며,

암송 하고, 묵상 하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침마다 큐티하면서 말씀을 곱씹으시고

시간되는 대로 틈틈이 말씀을 읽으시고

첨부한 지난 주일 설교를 들으신다면

말씀에 뿌리를 내린 심지가 견고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실 줄 믿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시편 기자처럼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103)

는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 임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19:165)

Great peace have they who love your law;

And nothing can make them stumble.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서머나 식구들께서

주의 말씀을 대할 때에

눈을 열어 주의 법에 기이한 것들(wonderful things in your law)을 보게 하시고

그것으로 하루 종일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7메일 목회서신)

우물파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일예배에서는

창세기 26장을 연속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 사이에 낀 세대로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이삭에 대한 말씀은 아브라함과

야곱에 대한 말씀에서 겹쳐서 나오는데

창세기 26장만은

이삭에게 거의 모든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6장에서

특별하게 눈에 띠는 말은
우물입니다.

흉년을 피해서

블레셋 땅 그랄에 머문 이삭은

가는 곳 마다 우물을 팝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 놓았던 우물을

다시 팝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다니면서

이삭이 파놓은 우물을 자기들 것이라고

우겨댑니다.

이삭은 그때마다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옮겨 다니면서 우물파기를 계속합니다.

이렇게 이삭은

다툼과 대적함이 있던 에섹과 싯나를 지나서

넓은 곳 르호봇에 이르기까지

우물을 파고 또 팝니다.

2.

흉년이 지나서 고향 땅으로 돌아온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26:24)

(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I will bless you and will increase your descendents)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향한

약속을 다시금 확인한 이삭은

그 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삭은

종들을 시켜서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이처럼 창세기 26장은

이삭을 우물 파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우물을 팠습니다.

물을 얻어야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우리들도 삶의 현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우물을

끊임없이 파야 함을 배웁니다.

3.

이삭이 팠던 우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 (living water)였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이삭이 얻은 생명수는 단지 물(water)이 아님을 느낍니다.

그는

흉년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살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요한복음 7 38절의 예수님 말씀이 연상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7:38)

이삭은 땅 속에서

생수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은혜가

깊고 귀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오늘 하루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생수의 강이 흘러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우물을

꾸준하게, 끝까지

파고 또 파실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파이팅!!!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

마음 속에

삶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31메일 목회서신)

“깨어 있으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Newsweek의 헤드라인은

지금이 종말 (Apocalypse Now)”이었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누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혁명들,

거기에 계속되는 불확실한 경제위기 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나 봅니다.

뉴스위크에서는

이상한 기호 넷이 들어간

다음과 같은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What the #@%! Is Next?

다음에 일어날 것은

아무도 모르고

행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암시 같습니다.

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나친 종말론은 금물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을

종말이라는 잣대에 올려 놓고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지나치게 세상을 추구하면서

지나갈 것들에 목숨을 걸고 에너지를 사용했다면

이 참에 과감히 정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내어 보일 수 있는 삶의 모습과 내용으로

모두를 전환하는 것이지요.

아마 많은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정돈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신약의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마가복음 13장에서는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느니라 ( 13:33)

Be on guard! Be alert!

You do not know when the time will come.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삶을 미리 포기하면서

목을 쭉빼고

다시 오실 예수님만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은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무엇을 보여드릴 지

매일같이 준비하고 예비하는 삶입니다.

신앙 안에서

깨어서 기도하고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쭉정이 인생이 아니라

깨알처럼 가득 찬

알곡 같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것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기로

매일같이 점검하고 결단하게 하옵소서.

서머나 식구들께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24메일 목회서신)

현재 진행형

좋은 아침입니다.

1.

살다 보면

시계추를 뒤로 돌려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아니면 반대로

과거의 영광에 다시금 도취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엄습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길을

미리 살펴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합니다.

뒤로 갈 수도 없고

앞 길을 미리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현재뿐입니다.

2.

종종 삶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이 언제 지나갈 지 막연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의욕을 잃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마련입니다.

머리가 멍해 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금/여기(here and now)의 삶입니다.

현재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먼 것을 생각하지 말고

너무 많은 것들을 복잡하게 고려하지 말고

현재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잘게 잘게 쪼개서 한 가지씩 해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었을 때

후계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모세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명기 31:8)

오늘 하루

서머나 식구들 모두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삶 속에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나온 삶에 대한 미련이나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근심과 염려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이 약해지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더불어

현재 진행되는 모든 삶을 힘차게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17메일 목회서신)

행복이란…

좋은 아침입니다.

1.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선교를 하면서

아프리카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던

이태석 신부에 대한 영화와 자료화면들을

유트브로 보았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신부수업을 받고

한국의 노모를 뒤로 하고

아프리카 수단에 의료선교사로 가서

10년여를 살다가 마흔 여덟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난

어쩌면

친구였기에 더욱 마음이 찡했습니다.

그는 짧다면 짧은 삶을 살았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누렸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

내전으로 국토와 나라가 찢겨진 곳에서

삶으로, 아니 무엇보다 마음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던

우리 시대의 작은 예수였네요.

2.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세상이, 삶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작은 빛 줄기를 따라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말씀대로 라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제가 가는 목회의 길이든지

또한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삶이든지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삭처럼

(이태석 신부의 웃는 모습처럼)

웃음을 머금고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쉬워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 앞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선배들이 있기에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3.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날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동안

어떤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싶으십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과 삶에

진정한 행복을 보여주옵소서.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10메일 목회서신)

역사 속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삼일절이었습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학창시절 삼일절이 되면 운동장에서 불렀던

삼일절 노래를 인터넷으로 클릭해 보았습니다.

삼일절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솔직히 이민생활을 하면서

3.1절을 되새길 틈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일상에 쫓겨서

또는 현재의 삶에 도취되어서

민족의 귀중한 역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국 근대사 가운데

삼일 운동을 마음에 품을 필요가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기미년(1919)

기독교인 숫자는 2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은 16명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주도했고

급기야 민족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제암리(감리)교회에서는

문이 잠긴 채로 교인 30명이

불에 타서 순교하는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은 물론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강인했습니다.

기독교인 숫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민족의 독립과 사회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2.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왔던 출애굽사건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서 물리쳐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을

후손 대대로 기념할 것을 권면합니다.

민족의 역사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지탱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자칫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에 지나온 역사를 곱씹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재구축(reconstruct)하는 민족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3.

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사도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온 인생의 여정 구비구비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의 크고 작은 손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하나님 체험이

현재의 어려움을 견딜 힘을 주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엊그제 삼일절을 그냥 지나치셨다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고,

무엇보다 20-25%나 되는 기독교인 숫자에도 불구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각자의 삶의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면서

삶의 여정 속에 간섭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마음 속 깊이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떠나온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의 수많은 교회가 역사 속에 부끄러움이 없을

바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우리들 각자의 삶에

신앙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뿌리와 같은 우리의 내면이 튼튼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2메일 목회서신)

새 힘을 얻으리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무슨 힘으로 살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서

안전의 욕구 (safety need)를 채우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힘이 되는 것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경쟁적으로 추구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대 초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면서

제 인생관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지

꾸준히 생각하게 되었지요.

목회 하기 전에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목회하면서는

어떻게 하면

진실된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 지

그리고

제 자신이 올바른 목회의 길을 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아침마다/순간마다 사모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40:31)

2.

그렇다고

우리가 늘 새 힘을 얻고

힘차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일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아니 제 목회든지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쉬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때는 쉬는 것이 상책인데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그냥 탱크처럼 밀고 나가곤 합니다.

알리스커 맥그레스라는 분이 쓴

The Journey (“내 평생 가는 길”)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을 차분하게 그리고 깊이 설명하고

제시한 책입니다.

그 책에 이사야 40 31절과 연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친 길손들은 쉼이 필요하다. 황량하고 적막한 땅을 지나 먼 길을 힘들게 걷고 나면, 누구나 휴식과 전환이 필요하다. 신앙여정에서 피곤이란 삶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피곤을 인정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소성케 하시며, 소망 중에 여행을 지속케하신다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신다는 이 놀라운 비전은 우리에게 큰 믿음과 확신을 준다.

맥그레스는

우리의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실 것을 믿고 확신할 때

새로운 날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신

주님의 자녀들이 쉴 수 있는 삶의 그늘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주와 함께 힘차게 날아오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24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