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우리 교회는 지난 3년여 어려움을 겪으면서 꿋꿋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두 가지 결단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에 간직한 교회를 세우고, 온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큰 대형교회를 세우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분량에 맞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실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 바른 교회를 세우기 원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정성스런 구제의 손길을 펼치고 싶은 꿈입니다.

등산을 해 보신 분들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처음에 시작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간에도 웬만해서는 견딜 만합니다.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마음속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상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힘이 듭니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힘도 들고 의외의 복병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 고비를 잘 넘겨야 정상에 설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꿈에 그리던 교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훌쩍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자리요 모습입니다.

마지막 스퍼트는 기도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이 앞서면 혼란스러워집니다. 세상의 방법을 동원하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겸연쩍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도로 교회를 세울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예배처소로 옮겨오면서 새벽기도와 금요 심야 기도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처소를 놓고 이런저런 방도를 생각하지만, 미국 교회를 임대한 우리의 한계를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10시를 우리 교회의 기도시간으로 정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함께 모여서 기도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을 두고 기획위원들과 임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10월 정기 기획위원회에서 두 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수요 기도회: 수요일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7-9시까지입니다. 수요예배를 7시 30분에 시작하기에 예배 전 30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수요일 7시부터 세미나실에서 30분간 기도회를 갖습니다. 우선 교회의 기도제목을 드리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필요하면 제가 30분 동안 기도회를 인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수요기도회가 우리 교회의 기도의 불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부흥을 위한 세미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목사 또는 기획위원들의 생각보다 임원들과 교회 부흥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교회 부흥을 위한 아이디어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장(場)을 마련하였습니다. 11월 14일 저희 집에서 저녁 6시에 모입니다. 임원들은 모두 참석하시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실 분들은 누구나 환영입니다. 지금부터 두주 동안, 기도하면서 순간순간 교회를 떠올리면서 부흥의 아이디어를 생각하시고 함께 나눠봅시다. 참신하고 실제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거기서 논의된 내용들은 2011년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예정입니다.

우리 모두 힘든 기간을 지내고 있지만, 어려움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시다. 기도하고 생각을 모으며 하나님의 꿈을 꾸어봅시다.-河-

“무례한 기독교 (Uncommon Decency)”

좋은 아침입니다.

1.

전에 목회하던

인디애나 교회에서는

수요예배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저는

수요일마다

교회 홈페이지에

“수요단상”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요일 저녁 이-메일 서신을 준비해서

보내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인디애나 교회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올렸던 수요단상의 제목이

“무례한 기독교”였습니다.

풀러 신학교 총장님이신

리처드 마우께서 쓰신 책을 소개한 글이었습니다.

개척해서 5년동안 애지중지했던

교회와 그곳의 청년들이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상에 나가기를 기도하면서

글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
생각이나 삶이 매력적이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자꾸만 창피하고 무례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속이 많이 상합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너무 교만해 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지난 번 설교처럼

상처를 받아서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인지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 그대로 예수님을 닮은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기 원합니다.

2.

오늘은 5년 전에 써 놓았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보냅니다.

조금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시고

행여나 우리 안에 추한(ugly) 모습이 있다면 회개하고

멋진(attractive) 모습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합시다.

“무례한 기독교”

이 책의 영문 제목은 “uncommon decency”입니다.

Common decency는 “일상적인 예의”로 번역되는

흔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uncommon decency“라니요?

직역하면 “특별한(비일상적인) 예의범절/품위“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적 교양과 예의 범절에 관한 책입니다.

믿음이 너무 좋으면

세상 속에 작 섞이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자신만이 천국백성이고,

세상 사람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정죄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무례함” 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나 신실함은 뒤로하고

세상 속에서 단지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인지 종종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예의범절은 지켰는지 모르지만

기독교인의 정체성인 “특이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세 번째 경우는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에서 전혀 구별됨 없이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얼른 회개하셔야 한다고 매번 말씀 드립니다.

이에 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믿음과 교양을 두루 갖춘 근사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uncommon decency”라는 책 제목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무례하게 행해서는 안됩니다.

친절과 온유함에서 우러나온

예의 범절을 갖추고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던…안 믿던…

우리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친절해야 할 이유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예술작품이다. 그분이 우리 각자를 정교하게 만드셨으므로 우리는 모두 ‘특별한 피조물’이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분의 작품을 망가뜨렸을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무례한 기독교-, 31쪽)

3.

세상 사람들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무례하다고 합니다.

배타적이라고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 앞에 서 계셨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그렇게 말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자기를 낮춰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죄인들의 친구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급기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누구도 예수님을 향해서 “무례하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핀잔을 들어야 할까요?

마우 총장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들에게 기독교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을 잃지 않고

뭔가 다르게 사는 특별함,

거기에 온유함친절 그리고 너그러움으로 대표되는 예의범절 –

이런 소양들이 우리들의 신앙인격에 베어있다면,

세상 사람들 입에서

“무례한 기독교”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세상 속에 우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함을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예의범절을 갖춘

멋지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 (마 5:16)

하나님

신앙과 삶이 하나가 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알고 있지만 자꾸만 넘어지고

세상살이가 힘겹기에

적당히 믿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서머나 식구들이 꿋꿋하게

예수님을 닮는 신앙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멋지고 근사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상을 놀래키게 하옵소서.

하나님

순간순간 실패하고 넘어져도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매 순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28 이-메일 목회서신)

천국 백성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들의 마음은 늘 고국에 가 있습니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입니다.

2년 전에 위성방송을 신청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 TV 방송이

끼어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로 TV를 틀면 먼저 한국방송으로

채널을 옮기는 것을 보면 저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고향의 힘,

민족의 힘,

아니 핏줄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 20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우리를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곧 하늘나라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당시에

로마 시민권의 특혜와 비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 시민이라고

그 지위와 소속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을 읽고 있던

당시의 그리스도인들

많은 경우 로마시민권이 없어서

신분상의 불이익과 천대를 받고 있었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위안과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하늘나라 백성으로

아니 하늘나라의 대사(ambassador)로 살아갑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누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들입니다.

3.

엊그제는 아내와

천국백성,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녀들이 잘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폼을 재는 것이 축복일까?

하늘나라에 소망이 있으니

이 세상과 담을 쌓고

인생의 정거장을 서성대면서

빨리 하늘나라에 가기만을 기다리는 지루한 모습일까?

이런 것이

천국 백성의 삶이 아니라는 데

부부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천국 백성의 삶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지나치게 금욕을 하고

세상 것을 억제하면서

수도승과 같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비록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보내시면서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라는 사명입니다.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 속에서도

천국 백성답게 살아내라는 명령이십니다.

빛은 자체발광입니다.

소금 역시 맛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빛 되신 예수님을 품고 있기에 저절로 빛이 나야 하고

소금의 맛을 내야 합니다.

가진 것이나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아니라

삶 또는 성품이 바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들이 누리는

다음의 네 가지 표지들(marks)로 나타납니다.:

내적평안, 기쁨, 감사, 자유함.

이 네 가지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누리고

그것을 통해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위의 네 가지 표지들을 누리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 안에 거한다는 증거이고

세상에 자랑해 보일 수 있는 천국백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께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

천국백성으로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살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안, 기쁨, 감사, 자유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14 메일 목회서신)

“한 길 가는 순례자”

1.
오늘 저녁에는
안타까운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모든 장례가 마음이 아픈 가운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20대 젊은 자매의 장례식은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이었고,
매주 보내는 이-메일 서신을 계속 받아 보고 싶다고 해서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간직했던 자매였습니다.

모든 것이 안타깝고
목사로서
책임감과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
집에 돌아와서
목요서신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이
책상에 놓여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라는 책입니다.
영어 제목은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이지요.
이 책의 번역자는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냥 “한 길 가는 순례자”라는
우리말 제목도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길을
순례길이라고 여깁니다.

순례길은
관광길이 아니기에 힘이 듭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때로는 참으로 외롭습니다.

그래도 순례자는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니다.
그 길이 어떤 모양이든지,
아무리 힘이 들고 지치더라도
순례자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지난 주일 설교본문인
시편 88편이 가르쳐주듯이
순례길이 고난으로 점철될 수도 있습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가슴으로 부르짖으면서
꿋꿋하게 그 길을 걸어갑니다.

정말 말 그대로 순례길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입니다.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그때 함께 가는 순례자가 곁에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동행(同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아니
동행을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다른 순례자의 동행이 되어주는 것도
순례길에 임하는 행복이고 멋입니다.

5.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9편을 갖고
“인내”라는 글을 써내려 갑니다.

인내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꾸준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직 미숙하고 우리 앞에는 여전히 긴 여정이 남았음을 느낄 때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인내는 그들이 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무조건 견뎌 내면서 세월이 흘러도 판에 박힌 듯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거나, 스스로를 사람들이 신발에 묻은 흙먼지나 털고 가는 발깔개로 취급하는 체념의 상태가 아니다. 필사적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서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사야에게서 지친 기색이나 무료함을 발견할 수 없고 예수님에게서 바울에게서 무미건조한 기색을 찾아 볼 수 없다. 인내는 의기양양하고 생동적인 것이다.

시편 129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시 129:2)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그 무엇이/그 누군가 있더라도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라고 시편기자처럼 선포하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붙어 있으셔야 합니다.
능력에서 능력으로
의기양양하고 생동감 있게
각자에게 주어진 순례길을 걸어가셔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순례길을 걸어가시는
서머나 식구들 한 분 한 분과 동행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젊은 청년들이
그들 앞에 펼쳐진 순례길을
신앙 가운데 끝까지
능력에서 능력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7 이-메일 목회서신)

은혜의 단비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 해도 10월이 되면서

(rain)가 그립습니다.

어렸을 적 마루에 앉아서

뒤뜰 처마를 따라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

마음이 시원해지곤 했습니다.

작년과 올 초 우기 때

비가 많이 왔지만

어느덧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본지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내일부터 10월이 되니

곧 우기로 접어 들겠지요.

비가 오는 날은 창문을 열고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봐야겠습니다.

올해도

여름 동안 쌓였던 먼지를 모두 씻어내고

산천을 초록으로 물들이기 충분할 만큼

비가 내리기를 기대합니다.

2.

이제 건기가 끝나고

우기로 접어드는 캘리포니아의 가을!

올 가을에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은혜의 단비가

촉촉히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반기에는

큐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읽고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에

은혜의 단비로 임하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있던

모세가 그곳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 가운데

자신이 선포하는 말씀을 비에 비유했습니다.

나의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 32:2)

Let my teaching drop as the rain,

My speech distill as the dew,

As the droplets on the fresh grass and the showers on the herb.

10월의 첫날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이슬비처럼 촉촉히 임하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듯이 때에 맞게 임하길 바랍니다.

한달 동안 아니 올 가을에

온 몸과 삶을

소낙비처럼 생명으로적셔주는

말씀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하나님!

올 가을에 말씀의 은혜가

서머나 식구들 위에

이슬비처럼, 소낙비처럼,

단비처럼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30 메일 목회서신)

기도! 기도! 그리고 또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큐티는

골로새서 4 1-9절이었습니다.

문맥을 생각하면서

자세히 읽어보면

4 1절은 3장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나면

4 2절이 오늘 본문의 첫 번째 구절이 됩니다.

아침에 성경을 펼쳐서 큐티하면서

저는 4 2절만 갖고 묵상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 드리면

뒤로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만큼

4 2절 한 구절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ves to prayer,

keeping alert in it with an attitude of thankdgiving.

이 말씀은 교회에 주셨습니다.

너희들(yourselves)”에 해당하는

복수형 동사가 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가 부족합니다.

장소 때문에 새벽기도,

금요 심야기도를 갖지 못한 지 꽤 되었습니다.

이제 미국교회 목사님께서

이번 주에 부임하시는데

교회를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처가 생기기를 간절히 간구합시다.

오늘 말씀에서

기도에 온 힘을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기도에 온 교회가 헌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교회의 힘이고,

복음 안에서 바르게 세워지는 비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

우리 각자에게도 마찬가지로

기도는 생명줄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말씀에 뿌리를 내리면 건강해 지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 위에

기도가 합쳐지면

신앙이 하늘로 이어집니다.

신앙이든, 세상에서의 삶이든

갈팡질팡한다면

우리의 길을 비춰주는

말씀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힘이 들고 축쳐져 있다면

하늘로 연결되는

기도가 끊기거나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가르쳐줍니다.

기도에 우리의 목숨을 걸라(devote yourselves)는 말씀입니다.

기도에 깨어있으랍니다.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는데

호흡을 멈추면 생명을 잃어버리듯이

기도를 멈추면 영적 생명이 다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랍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을 때,

세상의 눈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눈을 가졌을 때

비로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깨우침입니다.

기도합시다.

영혼의 호흡을 멈추지 말고 기도합시다.

무릎 꿇고 골방에서 기도하고,

잠시 일손을 멈추고 기도하고,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운전하면서 앞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기도 기도 그리고 또 기도합시다.

우리의 호흡을 따라서 기도하고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도록 만듭시다.

할렐루야!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의 삶의 모습이 힘겹습니다.

때로는 신앙을 지탱하기도 힘들만큼 어렵습니다.

그때도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기도가 살아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23 메일 목회서신)

어떤 힘으로 사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설교에서

주보에 있는 성경구절을 갖고

꼭- 큐티하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샘물(根源)이고,

다른 것은 대부분 지류(支流)일 뿐입니다.

말씀과 기도라는

기본을 망각하거나

소홀히 하면

믿음의 빛이 희미해 지고

신앙과 삶이 시들해 지기 마련입니다.

2010년의 남은 날들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큐티로

멋지게 장식해 봅시다.

2.

오늘 큐티를 하다가

맨 마지막 절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29절은 앞 구절과 더불어

바울 사도의 이어지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많은 어려움을 견디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고

초대교회와 이방인 선교를 시작한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직접 택해서 쓰신 사도입니다.

29절은

바울이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근거/힘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줍니다.

29절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영어와 비교해서 읽으셔도 좋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For this purpose also I labor, striving according to His power,

which mightily works within me.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가 “코피아오”인데

이 단어를 외울 때, “코피 터지도록 수고하다”라고 외웠었답니다)

그런데 그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바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능력으로” “역사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에서

영어의 “에너지”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바울 안에서 역사하시는 에너지가 있었고

바울은 그 에너지를 갖고

지치지 않고 끝까지 수고했습니다.

우리 성경 “힘을 다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애고니조마이”인데

여기서 영어의 “애고니/agony”가 나왔습니다.

바울에게 힘을 주는 원천이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제자들, 동역자들,

또한 바울이 개척해 놓은 각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성자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는 도움들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보다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오늘 큐티를 하면서

목사인 저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정말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능력을 따르기 위해서

애쓰고 그 힘으로 목회하고 있었는지…

말씀을 곱씹어 볼수록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 힘으로 목회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제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서 목회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모두 내려놓기로 기도했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자유했습니다.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무슨 힘으로 사십니까?

혹시 여러분들 안에서 역사하는

그 능력을 감지하지 못한 채

금방 방전되고 말 것들을

의지해서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우리들 각자 안에서

그리고 우리 서머나 교회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그 능력을 감지하고

그 능력으로 오늘 하루 멋지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16 이-메일 목회서신)

황금률

1.

어제 저녁에

재흥이가 고민이 있다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자기가 주중에 참석하는 캠퍼스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약간의 갈등이 생겼답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아주 잘 도와주었답니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고마움이 없고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점점 더 대접만 받으려 한답니다.

그것이 남학생들 사이에 말이 되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말하기를

여학생들이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도와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고

그것을 두고 의견이 갈렸답니다.

대학생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들 주변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사랑하고

끝까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거기에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자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재흥이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흥이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상대방이 고마워하든지 안 하든지

예수님처럼 끝까지 도와주는 것은 옳단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를 늘 힘쓰고

그 정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단다.

그런데

우리들의 믿음이 예수님 수준에

올라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

아직은 믿음이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예수님처럼 도와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때때로 지칠 수 있단다.

신앙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앞으로 많이 경험하게 될 거야.

기회가 되면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함께 대화를 하기를 바란다.

여학생들도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해야지.

(예수님의 비유에서 열 사람이 병고침을 받았는데

한 명만 찾아 와서 감사한 것을 보면

도움을 요청할 때와 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많지)

도움을 주는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서로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

너도 힘닿는 대로 이웃을 도와주고

도움을 받았으면 꼭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도록 하렴.”

2.

아침에 컴퓨터에서 성경프로그램을 열면

그 날의 성경 구절이 화면에 뜹니다.

그것을 갖고 기도하고,

큐티 말씀과 더불어 하루 종일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이

황금률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7 12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만 잘 지켜도

온전한 신앙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엉뚱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자신을 대접해 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도 남을 대접해 주겠답니다.

공평해 보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맞지 않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무조건 자신만 대접해 달랍니다.

소위 왕자병, 공주병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재흥이의 경우처럼, 주변 사람들이 지칩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대에는

대접도 받지 않고, 대접도 하지 않겠답니다.

그런데 세상을 과연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황금률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남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랑을 베풀기를

서로 솔선하는 것이지요.

어제 저녁 재흥이가 겪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도

황금률만 서로 실천한다면 금방 해결될 듯싶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한결 밝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들 자신이 행복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더불어 사는 세상,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참 쉬워 보이지만, 아니

한 두 번은 할 수 있지만

황금률이 우리들의 신앙인격에 자리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우리들의 끈질긴 노력이 요청됩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황금률대로 살기 원합니다.

말씀을 실천할

힘과 의지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9 메일 목회서신)

하루에 5분씩만

한 소년이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우고 싶어서 목사님을 찾아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일부터 해야 합니까?” 목사님은 소년에게 친절하게 말해 주었습니다.“하루 24시간 중 한 시간만 내가 가르쳐 준대로 행동할 수 있겠니?”“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겨우 한 시간인데요.” 목사님은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습니다.“하루에 15분씩 기도하고, 15분씩 성경을 묵상하게, 그리고 15분씩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15분씩 사랑을 실천하게. 그러면 자네의 인생에 밝은 빛이 보일 걸세.” 이 소년은 목사님께 들은 말씀을 잘 실천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세상을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으니 바로 유명한 부흥사 빌리 선데이였습니다.

                                                                               -2009년 속회공과에서-

빌리 선데이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야구선수로 활동하다가 복음을 전하는 부흥사가 되었던 윌리엄 에슐리 선데이(1862-1935)를 가리킵니다. 그는 목사님 말씀대로 하루 15분씩 네 가지 일을 실천하면서 평생을 살았답니다.“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작은 것들이 모이면 나중에 큰 일이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작은 것들을 모으고, 지키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것이라서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작은 일을 매일같이 빼놓지 않고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목사님께서 빌리 선데이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에 한 시간을 넷으로 쪼개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에 품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과, 미리부터 포기하거나 “그 까짓 것”이라고 소홀히 생각하는 것과는 훗날 커다란 차이가 날 것입니다. 온전한 신앙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신앙은 하찮게 생각되는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고 그곳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일꾼들에게 한 말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게 됩니다.:“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이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25:21).

솔직히 바쁜 이민생활 가운데 하루에 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빌리 선데이의 15분을 5분으로 디스카운트해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5분 기도하고, 5분 말씀 읽고, 5분 누군가와 하나님 얘기하고, 나머지 5분을 사랑을 실천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실천해야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8월도 다 지나갑니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대신에, 아직도 네 달이나 남은 201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하면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발상의 전환’을 이룬 그리스도인들, 서머나 식구들의 모습입니다. 힘내십시요! -河-

힘내십시요!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경제가

더블 딥 (double dip)에 빠질 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쉽게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블 딥은 칩 같은 것을 캐찹이나 소스에 찍어 먹을 때,

한번에 찍어서 모두 먹지 않고,

중간쯤 먹은 다음에 다시 소스를 묻히는 경우를 가리킨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병균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기에

미국 사회에서는 커다란 금기라고 하네요.

우리들이 무심코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엊그제 캘 스테잇의 경영학 교수님과 통화하면서 배웠습니다. ^^]

불경기의 한파가 우리 서머나 식구들에게도

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2년여 경기가 좋지 않을 때도

성도님들의 사업장들이 잘 견뎠는데

요즘은 매출이 줄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직장이든 사업장이든

다른 대안이 없이 한 곳만을 의지하면서

생활하시는 성도님들은 더 힘이 드시지요?

실제로 물질로 쪼달리면

마음까지 힘드실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께서

서머나 식구들께

불경기를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

사실 힘들 때 힘들다고 불평하고 체념하면

마음이 더 힘겨워집니다.

마음까지 힘겹고 무너질 만큼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상의 어려움이 바이러스처럼

신앙에도 침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백성들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있어도

작은 빛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손을 내려뜨려서는 안됩니다.

정말 힘들 때도

(목사인 저도 곁에서 지켜 보면 마음이 정말 아퍼요)

그래도 신앙의 줄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하나님부르시고

지난 주에 드린 서신대로

하나님 나와 함께 하옵소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하고 꿋꿋하게 견디면서

앞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제가 아주 힘들 때

암송하고 묵상하는 시편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1)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 의 빛이 되시고 구원이 되어 주옵소서.

생명의 능력이 되셔서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견디고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삼아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8.26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