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

1.

어제 저녁에

재흥이가 고민이 있다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자기가 주중에 참석하는 캠퍼스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약간의 갈등이 생겼답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아주 잘 도와주었답니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고마움이 없고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점점 더 대접만 받으려 한답니다.

그것이 남학생들 사이에 말이 되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말하기를

여학생들이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도와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고

그것을 두고 의견이 갈렸답니다.

대학생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들 주변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사랑하고

끝까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거기에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자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재흥이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흥이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상대방이 고마워하든지 안 하든지

예수님처럼 끝까지 도와주는 것은 옳단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를 늘 힘쓰고

그 정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단다.

그런데

우리들의 믿음이 예수님 수준에

올라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

아직은 믿음이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예수님처럼 도와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때때로 지칠 수 있단다.

신앙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앞으로 많이 경험하게 될 거야.

기회가 되면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함께 대화를 하기를 바란다.

여학생들도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해야지.

(예수님의 비유에서 열 사람이 병고침을 받았는데

한 명만 찾아 와서 감사한 것을 보면

도움을 요청할 때와 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많지)

도움을 주는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서로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

너도 힘닿는 대로 이웃을 도와주고

도움을 받았으면 꼭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도록 하렴.”

2.

아침에 컴퓨터에서 성경프로그램을 열면

그 날의 성경 구절이 화면에 뜹니다.

그것을 갖고 기도하고,

큐티 말씀과 더불어 하루 종일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이

황금률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7 12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만 잘 지켜도

온전한 신앙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엉뚱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자신을 대접해 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도 남을 대접해 주겠답니다.

공평해 보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맞지 않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무조건 자신만 대접해 달랍니다.

소위 왕자병, 공주병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재흥이의 경우처럼, 주변 사람들이 지칩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대에는

대접도 받지 않고, 대접도 하지 않겠답니다.

그런데 세상을 과연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황금률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남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랑을 베풀기를

서로 솔선하는 것이지요.

어제 저녁 재흥이가 겪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도

황금률만 서로 실천한다면 금방 해결될 듯싶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한결 밝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들 자신이 행복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더불어 사는 세상,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참 쉬워 보이지만, 아니

한 두 번은 할 수 있지만

황금률이 우리들의 신앙인격에 자리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우리들의 끈질긴 노력이 요청됩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황금률대로 살기 원합니다.

말씀을 실천할

힘과 의지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9 메일 목회서신)

하루에 5분씩만

한 소년이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우고 싶어서 목사님을 찾아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일부터 해야 합니까?” 목사님은 소년에게 친절하게 말해 주었습니다.“하루 24시간 중 한 시간만 내가 가르쳐 준대로 행동할 수 있겠니?”“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겨우 한 시간인데요.” 목사님은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습니다.“하루에 15분씩 기도하고, 15분씩 성경을 묵상하게, 그리고 15분씩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15분씩 사랑을 실천하게. 그러면 자네의 인생에 밝은 빛이 보일 걸세.” 이 소년은 목사님께 들은 말씀을 잘 실천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세상을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으니 바로 유명한 부흥사 빌리 선데이였습니다.

                                                                               -2009년 속회공과에서-

빌리 선데이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야구선수로 활동하다가 복음을 전하는 부흥사가 되었던 윌리엄 에슐리 선데이(1862-1935)를 가리킵니다. 그는 목사님 말씀대로 하루 15분씩 네 가지 일을 실천하면서 평생을 살았답니다.“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작은 것들이 모이면 나중에 큰 일이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작은 것들을 모으고, 지키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것이라서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작은 일을 매일같이 빼놓지 않고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목사님께서 빌리 선데이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에 한 시간을 넷으로 쪼개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에 품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과, 미리부터 포기하거나 “그 까짓 것”이라고 소홀히 생각하는 것과는 훗날 커다란 차이가 날 것입니다. 온전한 신앙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신앙은 하찮게 생각되는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고 그곳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일꾼들에게 한 말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게 됩니다.:“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이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25:21).

솔직히 바쁜 이민생활 가운데 하루에 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빌리 선데이의 15분을 5분으로 디스카운트해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5분 기도하고, 5분 말씀 읽고, 5분 누군가와 하나님 얘기하고, 나머지 5분을 사랑을 실천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실천해야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8월도 다 지나갑니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대신에, 아직도 네 달이나 남은 201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하면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발상의 전환’을 이룬 그리스도인들, 서머나 식구들의 모습입니다. 힘내십시요! -河-

힘내십시요!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경제가

더블 딥 (double dip)에 빠질 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쉽게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블 딥은 칩 같은 것을 캐찹이나 소스에 찍어 먹을 때,

한번에 찍어서 모두 먹지 않고,

중간쯤 먹은 다음에 다시 소스를 묻히는 경우를 가리킨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병균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기에

미국 사회에서는 커다란 금기라고 하네요.

우리들이 무심코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엊그제 캘 스테잇의 경영학 교수님과 통화하면서 배웠습니다. ^^]

불경기의 한파가 우리 서머나 식구들에게도

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2년여 경기가 좋지 않을 때도

성도님들의 사업장들이 잘 견뎠는데

요즘은 매출이 줄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직장이든 사업장이든

다른 대안이 없이 한 곳만을 의지하면서

생활하시는 성도님들은 더 힘이 드시지요?

실제로 물질로 쪼달리면

마음까지 힘드실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께서

서머나 식구들께

불경기를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

사실 힘들 때 힘들다고 불평하고 체념하면

마음이 더 힘겨워집니다.

마음까지 힘겹고 무너질 만큼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상의 어려움이 바이러스처럼

신앙에도 침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백성들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있어도

작은 빛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손을 내려뜨려서는 안됩니다.

정말 힘들 때도

(목사인 저도 곁에서 지켜 보면 마음이 정말 아퍼요)

그래도 신앙의 줄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하나님부르시고

지난 주에 드린 서신대로

하나님 나와 함께 하옵소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하고 꿋꿋하게 견디면서

앞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제가 아주 힘들 때

암송하고 묵상하는 시편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1)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 의 빛이 되시고 구원이 되어 주옵소서.

생명의 능력이 되셔서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견디고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삼아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8.26 메일 목회서신)

두 마디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다음(daum) 뉴스에 가보니

한국의 한 연예인이 신학을 하는 전도사와

결혼한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목사로서 클릭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기사 내용을 별 것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 밑에 수백 개의 댓 글이 달렸습니다.

거의 모든 댓글이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으로

소위 도배가 되어 있네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인터넷 댓글이라고 해도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일 목회서신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보석처럼 빛나고,

형통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드렸는데

매력적인 기독교!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하면

세상이 기독교를 그리 쉽게 보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의

멋지고 귀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

스가랴 10장을 공부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힘이 두 가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두 가지를 갖고

매일같이/순간순간

입술로, 마음으로, 삶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첫 번째 기도: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스가랴 10:5절에 의하면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 즉 (because the Lord is with them)”

주님의 백성들이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두번째 기도: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스가랴 10:6절에서

내가 그들을 긍휼이 여김으로 (because I have compassion on them)”

수백 년 동안 버림받고 잊혀졌던 요셉(북이스라엘)이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회복시키고, 새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 우리와(나와) 함께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들 각 개인의 평생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가장 귀한 두 마디 기도 속에 우리의 삶이 녹아 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작과

삶의 열매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과

함께 하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8.19 메일 목회서신)

복된 삶의 모습

좋은 아침입니다.

1.

말로만 좋은 아침 (good morning)이 아니라

우리들 삶 전체로 좋은 아침을 맞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도 솔직히 요즘은

매일같이 좋은 아침이라기 보다는

피곤한 아침을 맞습니다.

휴식 없이 책상에 앉아서 책과 씨름하고

말씀준비와 목회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정말 쉴 틈이 없습니다.

그래도

격려해 주시는 서머나 성도님들이 계시고

제 몸과 건강을 먼저 챙기고 생각해 주는 가족들이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2.

어제 수요일에는

스가랴 9장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종말론적인 말씀이 전반부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지중해 연안의 두로가 꽤 잘 살았나 봅니다.

9 2-3절에 의하면

그들은 지혜도 있었고, 성곽도 튼튼하게 건축했고,

은을 티끌처럼 정금을 거리의 진흙처럼 쌓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로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지식, 권력, 재물등과 같은 세상의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에 하나님이 빠져 있다면

단지 물거품에 불과한 것을 배웠습니다.

마태복음 6 33절의 예수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

스가랴 9장 마지막인 16-17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복이 나옵니다.

저는 그것을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빛나는 삶

형통한(선한)

아름다운(매력적인)

풍성한 삶

수요예배에 오지 않으신 분들은

스가랴 9 16-17절을 보면서

성경에서는 각각의 삶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찾아 보십시오.

물론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

모든 주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복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미 임했다고 하셨듯이

이 세상에 살면서도

비록 완전하지 않지만

위의 네 가지 복을 맛볼 수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델하우스가 되기 위해서는

위의 네 가지 복을 꼭 누려야 합니다.

네 가지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복된 모습이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스가랴 9 16-17절이 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가다듬고

하나님 백성의 복된 모습을 회복하고 누리기를

소망해 봅시다.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이

빛나는 삶,

형통한 삶 (선한 삶),

아름다운 삶 (매력적인 삶),

그리고 풍성한 삶을

이 세상에서부터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8.12 메일 목회서신)

“에메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스가랴를 한 장씩 살펴 보고 있습니다.

(메일 서신에 교재를 첨부해 드리지요.)

구약의 예언서는

젖과 같이 부드럽고 입에 단 말씀은 아닙니다.

어쩌면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단단한 음식에 속합니다(6:12-13)

어떤 때는 삶에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신

성도님들께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딱딱한 말씀을 조금 소프트하게 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이 단단한 말씀을 잘 받으시고

신앙 안에서 소화시키시는 것을 볼 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드럽고 입에 단 말씀만을 찾는 요즘 세상에

구약의 예언서를 한 절씩 살펴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엊그제 살펴본 스가랴 8장에는

두 가지 표현들이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은

조전도사님께서 열일곱 번 반복되었다고 하셨던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만군의 여호와 (the Lord of hosts)”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만군의 하늘 군대를 거느리고 계시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

직접 나서서 싸우실 때가 있는데

그때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스가랴 8장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여러 번 반복된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삶이 불안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기 위함이고

스가랴 8장에서 선포되는 약속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임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그 다음에

반복된 표현은

진리, 성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입니다.

히브리어 에메트

1) 하나님을 향하여 순전하고 온전한 믿음(faithfulness)

2) 거짓없이 진실된 것 (truth)

3)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것 (firmness)

을 뜻합니다.

요즘 세상은 거짓이 난무합니다.

쉽게 흔들리고 심지가 견고하지 못합니다.

믿음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물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진리, 진실, 성실로 해석되는

에메트임을 잊지 맙시다.

불경기가 계속됩니다.

미국 경제가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습니다.

엊그제도 비즈니스 심방을 하면서

사업체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힘겨운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에메트입니다.

진실된 믿음! 순전한 믿음! 흔들리지 않는 믿음!

하나님

우리 교회와 서머나 성도님들께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실 때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꼭 붙잡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8.5 메일 목회서신)

세 방향 성숙

좋은 아침입니다.

1.

성경에서는

신앙생활 또는

성도들이 모여있는 교회를

살아있는 유기체에 비유합니다.

교회를 두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성도들을 몸을 이루는 지체라고 합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자라가라는 권면도 합니다.

이처럼 신앙은 살아있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자라가야 하고,

역동적이어야 하고

생동감 있게 활동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라간다는 말씀과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 성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양적인 성장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성장입니다.

교회가 양적으로(수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에서도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숫자를 날마다 더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 상황을 고려하면

양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무작정 양적인 성장에 목숨을 걸었다가는

우리들은 물론 지역사회에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샌프란으로 이사오는 분들,

학업을 위해서 새로 오는 젊은이들,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황하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양적인 부흥을 조심스레 도모해야 합니다.

샌프란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교회가 조금씩 조금씩 양적으로 커가고 있음을 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신앙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분들,

교회를 함께 세워나갈 분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길 기도합시다.

2.

양적인 성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질적인 성장입니다.

한국 교회가 그 동안 양적인 성장에만 치중하다가

속 빈 강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공룡같이 거대한 교회보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작은 교회들이 많아지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질적인 성장을

다른 말로 신앙 성숙이라고 합니다.

신앙 성숙은

세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을 향해서 위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웃을 향해서 옆으로 넓게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달팽이처럼 오그라들지 않고

동심원처럼 물결치며 멀리 퍼져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깊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말씀에 비춰서 돌아봄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고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는

내면성찰의 작업을 끊임없이 하는 것입니다.

3.

세 방향의 성숙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세 방향의 성숙이 온전히 이루어진 상태를

거룩이라고 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세 방향의 성숙을 추구하는 모습이

성령충만입니다.

나이가 들었는지 (?)

제 자신을 돌아보고

성숙한 목회자가 되는 것을 두고 고민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요즘

정말 오랜만에 도서관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혼자서 씨름하는 시간도 제 내면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

서머나 식구들께서

하나님을 향해서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오르고

이웃을 향해서 소처럼 묵묵히 지경을 넓혀가고

자신을 향해서 비둘기처럼 온순하게

깊이 내면을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은은한 기쁨과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나이다. (딤전 4:5)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향해서

이웃과 자신을 향해서

멋지게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7.29 메일 목회서신)

“맛보아 알지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7월 들어서

지난 두 주 동안 목회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코스타에 가느라,

지난 주는 시간을 놓쳐서

그만 빼먹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정말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목요일도 참 빠르게 다가오는군요!

하여튼 지난 두 주 동안

목요일 이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한 것

(혹시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셨다면)

죄송한 마음을 먼저 전합니다.

2.

요즘 제가 우리 성도님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꽉붙잡히시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첫 단추를 올바로 꿰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던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다고 칭함받았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 아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됨을

머리로 이해할 뿐 아니라

온 몸으로, 삶 전체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해 놓았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전반부의 맛보아 알지어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맛보라 그리고 보라 (taste and see).

이처럼 본문에는 맛보다 (그것도 살짝 찍어서 맛을 보는 것)”

보다라는 감각적인 표현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 (히브리어: The Lord is good)임을

맛보고 눈으로 볼 만큼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맛볼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하나님을 피난처 삼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피하는 것도 복이라고 가르쳐주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느 정도로

귀하고, 감사하고,

또 가치가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 주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시고

영혼의 안목으로 바라보시고

삶의 길목 길목에서

하나님을 피난처 삼으시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삶 가운데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7.22 메일 목회서신)

담대함 그리고 귀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주일에 주시는 말씀이나

수요예배에서 공부하는 스가랴 말씀

게다가 구역속회에서 공부하는 말씀까지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들 속에 빠져들어가면

말씀이 의미가 깊고 풍성함을 체험합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 함께 공부한 스가랴 4장은

3장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정결케 하신 하나님께서

당시 총독이었던 스룹바벨을 회복시키시고 세워주시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4장을 공부하면서

두 가지 수사적인 질문을 살펴보았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7)

스룹바벨 당시에 성전의 건축을 방해하던 사람들과 상황을 두고

아무리 큰 산이 앞을 가로막아도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할 때에

산이 변해서 평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요즘 개인적으로 큰 산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을 만나서 많은 요구사항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방금 전 건강을 조심하라면서 염려해주시는 이메일을 읽으면서 힘도 얻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은 세상이나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때 앞을 가로막는 큰 산이 무너지는 체험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담대함이 나옵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10)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의 지휘하에

건축하고 있는 성전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학개 2:3절에서

보잘 것 없다라는 표현을 썼겠습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성전을 짓고 있는데

그 겉모습이 초라합니다.

내 세울 것도 없고, 스스로 보기에도 창피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성전이라도

하나님께서 빛으로 임재하신다면 귀한 성전이 될 것임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초라할 수도 있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빛으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면

우리도 겉모습과 상관없이 가장 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올해도 절반이 지나고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왠지 모르게 우리들의 삶이 자꾸만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큰 산이 여러분 앞을 막아서더라도

산을 바라보지 마시고

산을 부셔서 평지를 만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장 귀중한 일이 될 수 있음을 믿고

현재의 모습과 삶에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앞에 높은 산이 평지가 되고

작은 일이 가장 귀중한 일임을

믿음 안에서 체험하고 깨닫게 하옵소서.

서머나 식구들이

주님 손 굳게 잡고

담대하게 새달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71일 이-메일 목회서신)

거룩한 침묵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침에 일어나서[하나님]을 부르시고

하루에 꼭 5분 정도 하나님 앞에서 침묵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신앙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매 주일 주보를 통해서 부탁드리는 말씀입니다.

“침묵으로 기도하는 시간”

현대인들은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요즘은 셀폰이 나와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눕니다.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언어활동에도 정기적인 “쉼”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일정시간을 정해놓고

또는 가장 한가로운 시간에

반대로 가장 분주한 시간에

“침묵으로 기도하는” 습관이 생길 때까지 훈련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거룩한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는 시간,

– 세상과 구별된(거룩=구별/separation) 시간,

– 수많은 세상의 언어와 구별된 시간

– 자신과도 구별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 말씀가운데 생각나는 것,

아침에 읽은 성경말씀 가운데 마음에 남아 있는 것,

평소에 자신이 아끼고 외우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하나를 택해서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고요한 침묵의 시간!

오늘은 꼭 5분 이상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침묵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 마음 속에 샘솟는 하늘의 평안과

여러분 영에 임하는 하늘의 기쁨을 맛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세상의 소리들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침묵으로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의 하늘의 소리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6월 24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