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을 맞으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 해의 마지막 달을 살고 있습니다.

한 해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요!

우리말로 나이가 드는 것을 두고

나이를 먹는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먹는 것으로 비유한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음식을 먹어 치우듯이

지나간 시간은 사라집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에 유익이 되고

삶 속에 열매로 남습니다.

시간도 먹으면 (나이를 먹듯이)

그것이 우리 삶에 귀한 열매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나쁜 음식을 먹으면

도리어 몸에 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옳게 사용되지 않은 시간은

우리의 삶과 인생길에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이를 먹는 것이나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시간을 잘 선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척 부끄럽고 창피할 것입니다.

2.

11월의 수요예배에서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를

차례로 살펴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이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어지는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첫 번째

열처녀의 비유에서는

기름과 등을 준비한 다섯 처녀만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기름과 등을 준비하고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종말을 맞는데

제일 먼저 해야 하는 필수사항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맞을 준비 첫 번째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이것은 남에게 꾸어줄 수도 없고

꿀 수도 없는

우리 각자가 준비해야 할 믿음입니다.

두 번째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각각 종들에게 나눠준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이지요.

구원에 만족하고 멈춰있다면

그것은 자칫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에 걸맞은,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맡겨주신 달란트가

크던 작던 (작을 때는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

예수님이 오셨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자기 관리라면

세 번째 양과 염소의 비유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웃사랑입니다.

비유 속의 양들은 세상에 헐벗고, 외롭고, 힘겨운

지극히 작은 이웃을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깜짝 놀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25:40)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실제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특별히

세상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3.

올 해의 마지막 달을 살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에

우리 인생의 끝을 맞춰놓고

우리의 신앙과 삶을 점검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맞을 기름은 확실하게 준비하셨습니까?

맡겨주신 달란트를 잘 관리하고 계십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예수님을 대접하듯이 사랑합니까?

2010년 한 해 동안

336일을 먹고

이제 29일이 우리 앞에 남겨져 있습니다.

남겨진 날들 하루하루,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이웃을 섬기면서 살아봅시다.

하나님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지

기쁨으로 주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12.2 메일 목회서신)

추수감사절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 한국일보 칼럼에도 썼듯이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해서

인디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는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이 함께 어울려

감사의 축제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디언들과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원주민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끝까지 선한 길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은가 봅니다.

관계를 끊어놓고, 선한 것을 없애려는

악한 세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2.

옛날 체로키 인디안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인디안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인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싸움은 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란다..

그것은 네 안에 두 마리의 늑대가 들어있는 것처럼 아주 심각하단다.

한 마리는 악(evil)인데 이 놈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일으킨단다: 분노,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자만심, 자기연민, 죄책감, 열등감, 거짓, 그릇된 교만, 우월의식, 회의, 이기심.

다른 한 마리는 선(good)인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이 나오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평온, 겸손,

친절함, 자선, 동정심, 관대함, 진실, 긍휼, 신뢰.

두 마리의 늑대가 네 안에서 아주 격렬하게 싸움을 한단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도 마찬가지란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손자가 1분 정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러면 결국 어떤 늑대가 승리를 거두나요?”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네가 먹이를 준 늑대지 (the one you feed).”

3.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관심을 선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입니다.

선한 마음을 갖고

그것이 인격으로 삶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 가운데 힘쓰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의 생각이 옛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안에 추한 것들이 자꾸만 생겨날 것입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4:23-24)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우리 안에 있는 선한 것들을

감사함으로 먹이고, 사모하고,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우리 모두는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도

두 가지 마음이 늘 갈등을 일으킵니다.

선한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이 우리 자신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범사에 감사하는 서머나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11.25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2)

지난 주일 저녁, 스무 명에 가까운 임원들과 성도님들이 교회 부흥을 위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희 집에 여섯 시에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고 일곱 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부흥을 위한 아이디어를 허심탄회하게 나누었습니다. 작년 수요예배 시간에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별도로 시간을 내서 모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두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 가운데 모든 서머나 식구들께서 함께 기도하고 실천하기 원하는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부족한 모습을 지적하는 얘기가 먼저 나왔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을 더욱 반갑게 맞이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서머나 식구들께서 마음은 있는데, 선뜻 다가가지 못하시고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서툴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야 상대방이 알아줍니다. 교회적으로는 환영 팀을 활성화하겠습니다. 온 성도님들께서 새로 오신 분들을 반갑게 맞이함으로 따뜻하고 가족 같은 교회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배 후, 친교시간에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우리 성도님들끼리도 깊은 교제를 나누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성도님들의 좌석을 추첨으로 배치해서 골고루 친교하실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좋은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미국교회에 간판을 달지 못하지만 예배시간동안 교회 배너를 크게 만들어서 입구에 세워놓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국제수퍼와 지역 신문에 교회 광고를 하고 있는데, 교회 홍보를 위한 전단지나 자체 홍보물의 제작 등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의 전도를 위해서 교회가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지역에서 직장을 갖고 있는 30대 청년들과 젊은 가정을 위한 전도에 힘쓰기로 했습니다. 교회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교회 홈페이지의 활성화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교회 홈페이지에 관심을 가지시고 방문하셔서 글도 남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장기적으로 교회 부흥을 위해서 주일 예배가 오전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오후 예배가 전도에 장애가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공간의 제약이 전도와 부흥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입니다. 우리 교회가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도록 기도하면서 열심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이 밖에도 교회학교의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교회를 정하지 못하신 이웃 분들을 우리 교회로 모셔오는 것이 가장 빠른 부흥임을 공감했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한 사람씩 전도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것입니다. 온 성도님들이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마음과 몸으로 헌신하신다면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조만간 세워질 것도 확신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임원들과 성도님들이 함께 모여서 교회 부흥을 위해서 생각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사람이 계획하지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또한 현재 우리가 부족해도능력의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기에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河-

순전한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저는 주일과 수요일 말씀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서머나 성도님들께 전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때로는 제가 전하는 말씀이

버거울 수도 있고

소위 축복만을 전하는 말씀에 비해서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번 무례한 기독교라는

목요 서신을 보낸 이후에

그리고 에베소서 큐티 본문을 지나오면서

온전한 신앙” “멋진 신앙” “매력적인 신앙

무엇인지를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큐티 본문이

요한 계시록으로 넘어갔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주제는

아멘,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마지막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과 삶을 종말이라는 시간대로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종말은 세상의 끝을 가리키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시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을 삽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기에

지나갈 것들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애를 쓰려면

세상을 등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지나갈 것들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욕심부리거나

지나갈 것을 두고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겸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곧 성령충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향해서 진정으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멋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순전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정말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저와 우리 서머나 식구들이

이 길로 나가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이 아니라

삶으로 우리의 신앙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형식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합니다고백하는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11.18 메일 목회서신)

“더 넘치도록”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토요일 큐티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 3:20-21)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Immeasurab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하나님은 능력의 주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는

우리의 기도와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넘치도록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어떻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재 그의 상황은 더 넘치도록이 아니라

극도의 초라함입니다.

편지를 받는 에베소 교인들 역시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핍박과 환난 게다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속에서 더 넘치도록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물질, 출세 등 세상에서의 형통함을

뛰어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누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바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성하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늘의 능력이요 은혜입니다.

이 아침에

바울이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더 넘치는 은혜와 능력이

믿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서머나 성도님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이

더 넘치도록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꼭 체험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1.11 메일 목회서신)

지나갈 것에 대한 미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우리 교인들 외에

다른 분들과 만나는 시간은 거의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내성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힘이 생기고 내적인 기쁨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은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만나야 힘이 생긴답니다.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그 시간에 대부분 하나님 말씀과 책을 읽습니다.

근래 몇 달은 논문과 씨름하면서 보냈구요.

그 일들을 하면서 괜히 혼자 기뻐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군요.

커다란 목회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우리 서머나 교회가 그저 좋습니다.

서로 아껴주는

가족 같은 교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바른 교회,

세상을 돕는

구제와 선교에 힘쓰는 교회만

우리의 분량 것 세워가길 소원할 뿐입니다.

수요 예배 전에

30분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드린 기도제목을 갖고

각자 알아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하기를 바라고

기도의 불꽃이 우리 안에 은은하게

그렇지만 깊이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

2.

미국의 중간 선거가 끝났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이 참패했습니다.

신문에는 침울한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이

연일 보도됩니다.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는

30년 만에 다시 브라운 주지사가 당선됐습니다.

정치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못한다지만

정치만큼 부침이 심한 것도 없습니다.

정치인들의 입장과 퇴장은

인기와 권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인기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잘 봐줄 때 생깁니다.

철저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삶입니다.

권력은

반대로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대부분 권력을 손에 넣으면 인기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진흙탕 싸움도 불사합니다.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히브리어 뜻에는

모든 일들이 거기서 거기라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별차이가 없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3.

엊그제 수요예배에서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공부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간단히 정리됩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빼앗기지 않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시편기자처럼 아주 간절히/기쁨으로 고백하는 삶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시편 18:1)

이웃 사랑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들 역시 도움을 실천할 때 다른 이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영생의 삶을 조금이라도 살아낸다면

천국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지나갈 것에 미련을 두고 살면

이 다음 하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 뵐 면목이 없을 것입니다.

올 해도 이제 두 달 남았습니다.

두 달 훌쩍 지나갈 것입니다.

지난 열 달도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서

우리의 삶을 중간 점검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 저녁에

책상(식탁)앞에 앉아서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흰 종이를 꺼내놓고

지나갈 것 vs. 영원할 것

을 차례로 써 내려가 보십시오.

그리고 남은 올해의 두 달은

영원한 것에 올인하기로 결단해 보십시오.

전도서 기자의 말씀을 마음에 곱씹으면서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뿐이다. (전도서 3:12-14, 표준새번역)

하나님,

우리 서머나 성도님들이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1.4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우리 교회는 지난 3년여 어려움을 겪으면서 꿋꿋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두 가지 결단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에 간직한 교회를 세우고, 온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큰 대형교회를 세우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분량에 맞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실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 바른 교회를 세우기 원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정성스런 구제의 손길을 펼치고 싶은 꿈입니다.

등산을 해 보신 분들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처음에 시작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간에도 웬만해서는 견딜 만합니다.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마음속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상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힘이 듭니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힘도 들고 의외의 복병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 고비를 잘 넘겨야 정상에 설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꿈에 그리던 교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훌쩍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자리요 모습입니다.

마지막 스퍼트는 기도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이 앞서면 혼란스러워집니다. 세상의 방법을 동원하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겸연쩍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도로 교회를 세울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예배처소로 옮겨오면서 새벽기도와 금요 심야 기도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처소를 놓고 이런저런 방도를 생각하지만, 미국 교회를 임대한 우리의 한계를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10시를 우리 교회의 기도시간으로 정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함께 모여서 기도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을 두고 기획위원들과 임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10월 정기 기획위원회에서 두 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수요 기도회: 수요일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7-9시까지입니다. 수요예배를 7시 30분에 시작하기에 예배 전 30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수요일 7시부터 세미나실에서 30분간 기도회를 갖습니다. 우선 교회의 기도제목을 드리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필요하면 제가 30분 동안 기도회를 인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수요기도회가 우리 교회의 기도의 불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부흥을 위한 세미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목사 또는 기획위원들의 생각보다 임원들과 교회 부흥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교회 부흥을 위한 아이디어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장(場)을 마련하였습니다. 11월 14일 저희 집에서 저녁 6시에 모입니다. 임원들은 모두 참석하시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실 분들은 누구나 환영입니다. 지금부터 두주 동안, 기도하면서 순간순간 교회를 떠올리면서 부흥의 아이디어를 생각하시고 함께 나눠봅시다. 참신하고 실제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거기서 논의된 내용들은 2011년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예정입니다.

우리 모두 힘든 기간을 지내고 있지만, 어려움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시다. 기도하고 생각을 모으며 하나님의 꿈을 꾸어봅시다.-河-

“무례한 기독교 (Uncommon Decency)”

좋은 아침입니다.

1.

전에 목회하던

인디애나 교회에서는

수요예배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저는

수요일마다

교회 홈페이지에

“수요단상”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요일 저녁 이-메일 서신을 준비해서

보내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인디애나 교회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올렸던 수요단상의 제목이

“무례한 기독교”였습니다.

풀러 신학교 총장님이신

리처드 마우께서 쓰신 책을 소개한 글이었습니다.

개척해서 5년동안 애지중지했던

교회와 그곳의 청년들이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상에 나가기를 기도하면서

글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
생각이나 삶이 매력적이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자꾸만 창피하고 무례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속이 많이 상합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너무 교만해 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지난 번 설교처럼

상처를 받아서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인지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 그대로 예수님을 닮은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기 원합니다.

2.

오늘은 5년 전에 써 놓았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보냅니다.

조금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시고

행여나 우리 안에 추한(ugly) 모습이 있다면 회개하고

멋진(attractive) 모습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합시다.

“무례한 기독교”

이 책의 영문 제목은 “uncommon decency”입니다.

Common decency는 “일상적인 예의”로 번역되는

흔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uncommon decency“라니요?

직역하면 “특별한(비일상적인) 예의범절/품위“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적 교양과 예의 범절에 관한 책입니다.

믿음이 너무 좋으면

세상 속에 작 섞이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자신만이 천국백성이고,

세상 사람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정죄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무례함” 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나 신실함은 뒤로하고

세상 속에서 단지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인지 종종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예의범절은 지켰는지 모르지만

기독교인의 정체성인 “특이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세 번째 경우는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에서 전혀 구별됨 없이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얼른 회개하셔야 한다고 매번 말씀 드립니다.

이에 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믿음과 교양을 두루 갖춘 근사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uncommon decency”라는 책 제목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무례하게 행해서는 안됩니다.

친절과 온유함에서 우러나온

예의 범절을 갖추고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던…안 믿던…

우리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친절해야 할 이유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예술작품이다. 그분이 우리 각자를 정교하게 만드셨으므로 우리는 모두 ‘특별한 피조물’이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분의 작품을 망가뜨렸을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무례한 기독교-, 31쪽)

3.

세상 사람들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무례하다고 합니다.

배타적이라고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 앞에 서 계셨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그렇게 말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자기를 낮춰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죄인들의 친구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급기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누구도 예수님을 향해서 “무례하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핀잔을 들어야 할까요?

마우 총장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들에게 기독교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을 잃지 않고

뭔가 다르게 사는 특별함,

거기에 온유함친절 그리고 너그러움으로 대표되는 예의범절 –

이런 소양들이 우리들의 신앙인격에 베어있다면,

세상 사람들 입에서

“무례한 기독교”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세상 속에 우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함을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예의범절을 갖춘

멋지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 (마 5:16)

하나님

신앙과 삶이 하나가 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알고 있지만 자꾸만 넘어지고

세상살이가 힘겹기에

적당히 믿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서머나 식구들이 꿋꿋하게

예수님을 닮는 신앙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멋지고 근사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상을 놀래키게 하옵소서.

하나님

순간순간 실패하고 넘어져도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매 순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28 이-메일 목회서신)

천국 백성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들의 마음은 늘 고국에 가 있습니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입니다.

2년 전에 위성방송을 신청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 TV 방송이

끼어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로 TV를 틀면 먼저 한국방송으로

채널을 옮기는 것을 보면 저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고향의 힘,

민족의 힘,

아니 핏줄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 20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우리를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곧 하늘나라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당시에

로마 시민권의 특혜와 비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 시민이라고

그 지위와 소속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을 읽고 있던

당시의 그리스도인들

많은 경우 로마시민권이 없어서

신분상의 불이익과 천대를 받고 있었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위안과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하늘나라 백성으로

아니 하늘나라의 대사(ambassador)로 살아갑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누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들입니다.

3.

엊그제는 아내와

천국백성,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녀들이 잘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폼을 재는 것이 축복일까?

하늘나라에 소망이 있으니

이 세상과 담을 쌓고

인생의 정거장을 서성대면서

빨리 하늘나라에 가기만을 기다리는 지루한 모습일까?

이런 것이

천국 백성의 삶이 아니라는 데

부부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천국 백성의 삶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지나치게 금욕을 하고

세상 것을 억제하면서

수도승과 같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비록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보내시면서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라는 사명입니다.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 속에서도

천국 백성답게 살아내라는 명령이십니다.

빛은 자체발광입니다.

소금 역시 맛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빛 되신 예수님을 품고 있기에 저절로 빛이 나야 하고

소금의 맛을 내야 합니다.

가진 것이나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아니라

삶 또는 성품이 바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들이 누리는

다음의 네 가지 표지들(marks)로 나타납니다.:

내적평안, 기쁨, 감사, 자유함.

이 네 가지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누리고

그것을 통해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위의 네 가지 표지들을 누리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 안에 거한다는 증거이고

세상에 자랑해 보일 수 있는 천국백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께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

천국백성으로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살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안, 기쁨, 감사, 자유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14 메일 목회서신)

“한 길 가는 순례자”

1.
오늘 저녁에는
안타까운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모든 장례가 마음이 아픈 가운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20대 젊은 자매의 장례식은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이었고,
매주 보내는 이-메일 서신을 계속 받아 보고 싶다고 해서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간직했던 자매였습니다.

모든 것이 안타깝고
목사로서
책임감과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
집에 돌아와서
목요서신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이
책상에 놓여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라는 책입니다.
영어 제목은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이지요.
이 책의 번역자는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냥 “한 길 가는 순례자”라는
우리말 제목도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길을
순례길이라고 여깁니다.

순례길은
관광길이 아니기에 힘이 듭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때로는 참으로 외롭습니다.

그래도 순례자는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니다.
그 길이 어떤 모양이든지,
아무리 힘이 들고 지치더라도
순례자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지난 주일 설교본문인
시편 88편이 가르쳐주듯이
순례길이 고난으로 점철될 수도 있습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가슴으로 부르짖으면서
꿋꿋하게 그 길을 걸어갑니다.

정말 말 그대로 순례길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입니다.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그때 함께 가는 순례자가 곁에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동행(同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아니
동행을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다른 순례자의 동행이 되어주는 것도
순례길에 임하는 행복이고 멋입니다.

5.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9편을 갖고
“인내”라는 글을 써내려 갑니다.

인내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꾸준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직 미숙하고 우리 앞에는 여전히 긴 여정이 남았음을 느낄 때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인내는 그들이 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무조건 견뎌 내면서 세월이 흘러도 판에 박힌 듯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거나, 스스로를 사람들이 신발에 묻은 흙먼지나 털고 가는 발깔개로 취급하는 체념의 상태가 아니다. 필사적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서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사야에게서 지친 기색이나 무료함을 발견할 수 없고 예수님에게서 바울에게서 무미건조한 기색을 찾아 볼 수 없다. 인내는 의기양양하고 생동적인 것이다.

시편 129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시 129:2)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그 무엇이/그 누군가 있더라도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라고 시편기자처럼 선포하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붙어 있으셔야 합니다.
능력에서 능력으로
의기양양하고 생동감 있게
각자에게 주어진 순례길을 걸어가셔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순례길을 걸어가시는
서머나 식구들 한 분 한 분과 동행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젊은 청년들이
그들 앞에 펼쳐진 순례길을
신앙 가운데 끝까지
능력에서 능력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7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