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도우시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월드컵 시즌이라고 할 만큼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도 축구얘기 일색입니다.

어제는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에

커다란 점수차로 패했습니다.

발로 하는 운동인데도

그 정도로 실력 차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오늘은 경기를 져서 그런지

만나는 분들 마다 기분이 약간 다운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쉽게 무너진 한국 축구만큼이나

우리들의 마음도 무너져 내린 듯 합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면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응원해서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한다 해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몫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특정 선수를 응원하지만

그 선수가 우리를 알아주지도 않고

평생 동안 그 선수와 악수 한번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좋아하는 팀이나, 국가대표들에게 마음을 줍니다.

그들이 승리하면 좋아하고,

경기에 지면 한없이 안타까워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감정이입(empathy)”라고 합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입장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그들과 더불어 승리를 즐기려는 마음입니다.

감정이입을 잘 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랑이 많습니다.

남들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이 크고 깊습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감정적인 변화가 클 수도 있습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마음을 쏟다 보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2.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감정이입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처럼 아파하시고, 피곤해하시고, 고통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2 18절에서 잘 가르쳐줍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느니라.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감정이입을 넘어서

우리의 삶을 실제로 체험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십니다.

우리를 가장 잘 도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도우실 충분한 능력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 앞에 제 삶을 내려놓습니다.

저의 모든 목회와 인생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십자가 아래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활짝 펴면

세상 욕심도, 집착도, 미련도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때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많이 바쁘고 힘드십니까?

십자가 밑에서 쉼을 누리시고

모든 인생의 짐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가장 아시는 예수님께서

능히 도우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서머나 식구들께서 겪으시는

인생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시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능히 도우실 줄 믿습니다.

눈동자처럼 서머나 식구들을 보호하시고 사랑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617일 이-메이 목회서신)

산자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오후에 TV에서

“Alive”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마지막 30분만 보았는데

눈이 쌓인 산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실화라는 자막이 올라가길래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1973년 우루과이 럭비팀과 가족을 실은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에서 추락한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였습니다.

한 겨울 눈 덮인 산맥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16(?)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무전기를 고쳐보려는 시도,

안테나를 만들어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고

서로 생일 파티를 해 주면서 격려하고

나중에는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으면서 생명을 지탱합니다.

안데스 산맥에 봄이 찾아왔을 때

두 명의 젊은이가 험난한 산을 넘고 넘어서

그들의 생존을 세상에 알리고

구조대가 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생존본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분명하게 대비되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2.

살아 있다는 것!

예삿일이 아닙니다.

병이 나면 건강의 중요성을 알듯이

생명이 위태로우면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문지방을 넘는 것만큼 낮습니다.

삶과 죽음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이 세상의 삶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영생을 더욱 사모합니다.

그렇다고 주어진 삶을 소홀히 하거나

절망가운데 자신의 삶을 소비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

살아있는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요!

어느덧 6월도 중순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올해의 절반을 사시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십니까?

저 역시 새달을 맞으면서

시간을 아껴 살기고 결심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만족할 만큼 규모있게 살지 못했습니다.

분발해야겠습니다!

하루 하루가 새로운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있으면

우리들은 언제나 생명을 누립니다.

영원한 생명이지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 20:38)

하나님,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께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산 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생동감 있게, 소망 가운데 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610일 이-메일 목회서신)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찌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베이지역에도

이상기온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5월 말이면

건기가 이미 시작되고

전형적인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어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비가 꽤 많이 내렸습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비롯해서

지구상에 서서히 몰려오는 이상징후들을

우리들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갑갑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한동안 지배하라는 뜻으로 알고

기독교인들마저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배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관리하라는 명령에 더 가까운데 말씀인데

각자 개인의 삶에 지쳐서

지구야 어떻게든지 신경 쓸 틈도 없었는데

비가 오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큰 세상이 신경 쓰이는 요즘입니다.

2.

수요예배시간에

소예언서 학개를 공부하면서

저 역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학개라는 선지자도 생소하고

단지 2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예언서이기에

소홀이 여기기 쉬웠습니다.

부흥회 같은 데 가면

교회를 건축할 때 학개서를 인용하면서

성전건축과 관련된

하나님의 질책과 축복에 대해서

약간(?) 겁을 주는 말씀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학개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상황을 무시한 채,

성경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추하게 해석한 소치입니다.

학개서가 기록될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은

꼭 성전이 필요했습니다.

나라도 잃고, 예루살렘 성전도 없어졌고

경제적으로도 피폐했기에

신앙의 구심점이 되는 성전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성전을 다시 짓던 공사는

18년간이나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신앙과 삶이 중도에 멈춰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맥이 풀렸고

소망이 없었고

신앙마저 흔들릴 즈음에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불러서

성전의 건축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먼저 살펴본 후에

그 말씀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지난 이메일 서신에도

학개서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1:14)

그 약속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달여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짓는 성전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짓는 성전이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성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성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가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이 빠졌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솔로몬 성전을 본 사람들은

이전의 영광과 비교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놓고 백성들 마음 속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때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Be strong and work for I am with you)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수요예배에서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2천 년도 훨씬 전에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2:5)

과거에 주신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는 하나님의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머물러있습니다.

여기에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을 확신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4.

우리들 역시 하나님을 믿으면서

삶의 열매나 결과가 초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 눈에 보잘것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할 말씀이 바로 학개 2:4-5절입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고 일할 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신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두려워 말라.

메일 서신을 준비하면서

어제 나누었던 학개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하니

말씀의 능력이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힘이 생깁니다. 왠지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오늘 하루 학개서 2:4-5말씀을 꼭 붙잡고

두려움을 능히 넘어가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행여나 자신의 삶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시는

서머나 식구들이 계시다면

그 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는데

삶의 열매가 초라하다고 느끼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꼭 붙잡고

하나님 말씀대로 힘차게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 27)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제가 골몰히 생각하는 단어가

자리라는 말입니다.

자리를 잡다라는 말은

우리들이 어디엔가 있을 곳에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은

욕심을 부리거나 미련을 갖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우리들은 자리가 필요합니다.

일 자리, 쉴 자리, 놀 자리, 잠자리 등등.

히브리어로 자리는 말은

앉다” “머무르다” “거주하다라는 뜻의 야샤브라는

동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거주지” “” “정착

이민비자를 갖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영어
“resident alien”이라는 말도 히브리어 명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자리는 우리가 현재 거하는 곳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어떤 자리에든지 있어야 합니다.

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2,

구약성경 창세기의 요셉을 생각해 봅니다.

요셉의 처음 자리는 꽤 괜찮았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형들이 그를 팔아버리면서

그의 자리가 외국으로 옮겨집니다.

경호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립니다.

요셉은 노예라는 신분으로 전락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을 책임 맡은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모함을 받고

다시 감옥에 갇힙니다.

그의 자리는 점점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감옥의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총무가 됩니다.

요셉이 이처럼 아버지 집에서,

이집트의 노예로,

감옥의 죄수로

그의 자리가 바뀌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늘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끌어올려져서

이집트의 총리라는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나중에는 자신을 판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불러서

화해의 잔치자리를 마련합니다.

3.

우리는 요셉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이집트의 총리가 된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온 가족과 화해한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출세지향적인 세상의 관점으로,

섣불리 결론부터 내리고 성경을 읽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셉에 대한 말씀에서 중요한 키워드(key word)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 39:2)

그의 자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려가는 자리든지, 올라간 자리든지,

웅덩이에 빠진 자리든지, 꿈을 해몽하는 왕궁이든지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요셉의 모든 삶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신앙이

요셉의 진정한 영성입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자리에 연연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리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자리가 사람들이 보기에 초라하다면

기가 죽고 손을 축늘어뜨리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신뢰하면

어떤 자리에 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입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도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학개 1:13)

오늘 하루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그 자리에서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너무 복에 겨워서 하나님을 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초라해 보여서 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자신들이 거하는 자리를 바라보지 않고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20일 이메일 목회서신)

강건하시기를…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고든 목사님과 점심식사를 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컴퓨터와 씨름했습니다.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에

실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라도 고장이 나는 날에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도리어 그립습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하루 하루를 맞이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알찬 삶임을 다시금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2.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칼리스토가로 경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여섯 번째 (작년에는 두 번) 똑 같은 장소로

경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장소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매번 갈 때 마다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이

거의 변함없이 같은 멤버로 참여하십니다.

경로여행의 프로그램도 매번 비슷합니다.

12시 경에 도착해서

간단히 점심 먹고 온천욕하기

5시경에 갈비 바비큐를 맛있게/많이 드시고

저녁에는 전도사님 방에 모여서 예배와 퀴즈 등등

피곤한 몸에 일찍 잠자리에 드신 후에

젊은(?) 권사님들께서 준비하신 아침 드시고 또 다시 온천욕하기,

점심을 간단히 먹고 중간에 와이너리나 근처 공원에서 한 두 시간 담소하고

오는 길에 이권사님댁에서

맛있는 햄버거를 대접받는 것으로 경로여행이 끝이 납니다.

매번 같은 장소 (심지어 방과 바비큐 장소도 똑 같은 곳을 예약함),

거의 같은 프로그램,

함께 가시는 권사님들도 거의 같은 멤버

이렇게 모든 것이 비슷하게 매년 경로여행을 다녀옵니다.

3.

그래도 연로하신 분들을 모시고 가기에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세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행여나 온천욕을 하시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으실까

저녁에 드신 갈비를 잘 소화시키실까

몸살이나 감기기운이 있는 분들은 없으신지

멋쟁이 수영복을 입으시고

온천욕을 즐기시는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은

꼭 아이들 같이 순수해 보이고

칼리스토가만 가면 기분이 업(up)-되심을 봅니다.

그런데 해마다 차이가 납니다.

조금씩 조금씩 온천욕을 하시는 시간이 줄어드십니다.

1-2년 전만 해도 저녁 식사 후에도 온천욕을 하셨는데

올 해는 낮에 한번으로 족하신 듯 합니다.

전도사님의 몸매는 지나치게(?) 날씬해지셨습니다.

오고 가는 길에 내년에 또 올까?”라고 말씀하시는

낸시 권사님의 말씀이 귓전을 타고 마음속까지 깊이 내려옵니다.

70대 권사님들은 10년은 젊어 보이시고

80대 전도사님과 권사님들도 예전이나 비슷해 보이시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애틋함이 밀려옵니다.

건강하십시오.

오래 사셔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지요.

우리 교회는 전도사님과 권사님의 기도로 세워집니다.

작은 건물이라도 우리 교회 갖는 것을 보셔야지요.

조심 조심 운전하면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내년에도 모든 분들을 그대로 모시고

경로여행에 다녀올 수 있기를 속으로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경로여행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이모저모로 섬겨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져 주옵소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꼭 붙잡고 살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을

하늘의 힘으로 강건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13일 이메일 목회서신)

봄날의 기도 – 속삭임

좋은 아침입니다.

1.

올 해는 늦게까지 비가 오더니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걸맞은 날씨를 되찾았습니다.

하늘이 푸르고 무척 높습니다.

19th ave에서 SFSU 를 지나면

도로 한가운데로 전차길이 있지요?

철길 가에 피어있는 들꽃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사시느라고 무척 바쁘시지만

종종 밖에 나와서 하늘도 쳐다보시고,

해가 길어졌으니 가까운 공원에 가서 걷기도 하시고,

그곳에 피어있는 꽃들과도 대화해 보심이 어떨지요?

2.

하나님의 꿈을 꾸는 교회라는 주제로

주일설교를 준비했던 지난 한달 동안

우리 교회를 마음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시간 외에도

자동차 안에서, 걷다가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가고,

시시때때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꿈을 꾸고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꿈을 꾸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그 꿈을 이루는 삶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도합니다.

모든 서머나 식구들께서 하나님의 꿈을 꾸시고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제가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와 서머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기쁨입니다.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으로 사는가?

교회가 무엇으로 건강하게 세워지는가?

어떻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 밖에 없습니다.

3.

예전에 수요예배에서

기도에 대한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듯이/속삭이듯이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시시때때로 하나님과 대화로 기도하면서

하루를 지내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경치에 비길 데 없는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

일터에서, 가정에서, 자동차 안에서, 거리에서

하나님과 속삭이시면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은밀한 데이트를 즐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서머나 식구들이

기도가운데

주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 6일 이메일 목회서신)

사슴의 발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1.

집에서 자동차로 10분여만 가면

280번 하이웨이 너머에 호숫가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옵니다.

오후 늦게 그곳에 운동을 갈 때면

거의 어김없이 사슴가족을 만납니다.

많으면 네댓 마리가 함께 어울려서

풀을 뜯어 먹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사슴 앞에서 발을 구르면

깜짝 놀란 사슴이 산등성이로 뛰어올라갑니다.

몸을 거의 피했다 싶으면 고개를 돌려서

빤히 저를 쳐다보는 눈빛은

처량하기도 하고 때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그런가요?

사슴의 발걸음은 사뿐사뿐 무척 가볍습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하박국 강해를 모두 마쳤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질문도 많았고

자기가 사는 세상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

자신의 생각과 신앙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고백한 말씀이 바로

마지막 3장입니다.

하박국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17-19)

하박국을 모두 공부하고 나니

이 말씀이 예사로운 말씀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굳게 믿은 하박국의 신앙고백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온 천지가 개벽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순간에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꼭 붙잡습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을 만큼

무시무시한 심판 앞에서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마지막 19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거닐

자신의 미래 모습을 눈에 그리면서 드리는

하박국의 찬양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

하박국의 말씀을 단지

이 다음에 누릴 미래의 모습으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 반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삶 속에서 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

이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변함없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인생의 산등성이를

사슴처럼 가볍게 뛰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4월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부터 새로운 달 5월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슴처럼 한 달을 한 숨에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4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마무리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갖고

힘차게 새달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4 29일 이메일 목회서신)

고난을 함께 나누는 가정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East bay의 안티옥에서는

어떤 부부가 아기를 자동차 안에 두고

자신들만 집안에 들어 갔다가

아기가 그만 목숨을 잃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젊은 부부가

인터넷 도박에 빠져서 3개월 된 딸을 방치해서

굶어 죽게 했다는 신문보도도 있었습니다.

안티옥에서의 TV뉴스와

한국의 신문보도를 읽으면서

가정의 가장 귀한 부분인 부모 자식간의 사랑마저

금이 가고 있는 현실이

망원렌즈를 통해서 보여지는 듯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2.

잠언 17 1절에서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물론 가정 안에서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잠언 말씀처럼 마른 떡 한 조각밖에 없다면

그것은 매우 어려운 지경입니다.

말 그대로 극심한 어려움 속에 처한 가정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른 떡 한 조각만 갖고도 어떻게 화목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이번 주 속회 공과(“고난을 함께 나누는 가정”)에서 가르쳐 줍니다.

지난 번 위로에 대한 설교를 할 때

함께 나누었던 본문이기도 하지요 (고후 1:3-10).

이번 주 속회공과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 왔습니다.:

고난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찾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부끄러워할 것도,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나누어야 합니다.특히 가정은 모든 고난의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공급되는 원천입니다. 만일 가족 안에서 이러한 위로와 격려가 이루어지면, 고난을 극복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고난은 누구와 함께 이겨 나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가족 안에서 두세 사람이 모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잇는 힘을 주시며, 사랑의 중보기도를 통해 큰 위로를 받게 하십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때, 그 어느 곳에서도 받을 수 없는 성령의 풍성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빵 한 조각밖에 없는 데도 화목할 수 있는 비결은

가정 안에서

서로를 위로해 주고,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에 성령의 풍성한 위로가 임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빵 한 조각밖에 남겨지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화목한 가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가정이 무너지듯이 교회들도 흔들거립니다.

아기를 자동차 안에 방치해 둔 부부처럼 무관심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습니다.

인터넷 도박에 정신을 팔려 딸을 잃어버린 젊은 부부처럼

교회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을 팔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지난 주부터 교회에 대해서 설교를 시작했는데

우리 교회가

가족 같은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가족이 된

신앙공동체로 자라가기를 기도하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 안에

사랑이 있고, 위로가 있고, 서로를 향한 신뢰와 격려가 있다면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진실되게 기도해 주는 기도의 손들이 있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항상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의 모든 가정과 우리 교회를

주님의 넓으신 품에 품어 주시고

능하신 주의 오른손으로 확실히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4 22일 이메일 목회서신)

좋아하다 vs 사랑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이-메일 홍수입니다.

저 역시

이곳 저곳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이 옵니다.

대부분은 정성껏 읽고 저장해 놓지만

광고성 메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열어 보지도 않고 삭제해 버립니다.

제가 매주 목요일(금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메일이

“버려지는 메일” “쌓아놓다가 한꺼번에 정리되는 메일”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메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제게 오는 메일이 있습니다.

대전 침례교 신학교에서 상담을 가리키는

제 친구인 유재성 교수의 메일입니다.

3년 전인가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한 적도 있지요.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저에게도 보내주는 것 같은데

짧고 유익한 글을 보내줍니다.

지난 부활절 즈음에 보냈던 메일은

국민일보 칼럼을 인용한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는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두 단어는 반대말일 수 있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고양이는 쥐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아프든, 상처 나든, 피가 나든 상관없이
나의 욕심 대문에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프고, 상처 나고, 피가 나더라도
상대에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유관재, 국민일보 ‘로뎀나무’ 칼럼 중에서—————-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좋아하고 있습니까?
나의 욕심이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주님을 선호하고, 바라보고 있다면
주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며
나를 따라오시도록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라는

말이 좋아하다와 사랑하다의 차이를 아주 잘 설명해 주는군요.

무슨 일이든지 좋아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쉽습니다.

내 마음대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에 “진정한”이라는 말을 붙이면 더더욱 어렵지요.

사랑은 ,

허다한 죄를 덮어 주어야 하고 (벧전4:8),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일3:18)

좋아함을 너머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진실됨이

우리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의 손길로 세상에 다가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4월 15일 이-메일 목회서신)

이제는 겸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부활절은 우리 교회로서

매우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를 얽어 매며

힘들게 했던 그 모든 일에서

새가 올무에서 벗어나듯이

완전히 해방된 것을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하실 지 기대가 됩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우리 교회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자리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마음껏 쓰실 것입니다.

2.

지난 주일 친교 시간에는

새로 조직된 구역속회 별로 식사를 했습니다.

지난 두 달여 기도하면서

구역속회를 구성했는데

각 속회마다 아주 잘 모이셔서 감사했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서 각 속회들을 어떻게 축복하시고

그 안에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실 지 또한 기대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라는 표현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멋지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때 속회와 같은 소그룹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소그룹을 (cell, 세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몸에 건강한 세포가 있으면 나쁜 세포가 사라지듯이,

또한 세포가 분할을 하면서 몸이 자라가듯이

교회 안의 소그룹이 건강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건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온 교우들이 참여한 우리 교회 모든 소그룹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부활주일을 보내고

지난 3일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겸손의 훈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은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제일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쏙드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훈련하는 것이 곧 순종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2) 성도들 간의 겸손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의 형편을 돌아보는 배려라고 했습니다.

제가 요즘 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

서로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고,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4월 셋째 주일부터 시작하게 될

그리스도인의 관계 세우기성경공부가

정확히 20명 정원을 채웠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열심히 교제를 만들면서

성경공부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 간의 관계,

가정 안에서의 부부, 자녀 관계,

세상 속에서의 인간관계까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건강해 지기를 기대합니다.

4.

기쁜 일이 생기고

분위기가 좋을수록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겸손하게 차근차근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이름의 권세가 우리 교회를 덮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지켜주옵소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순종,

성도간의 사랑과 배려로

겸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 모두를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