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제가 골몰히 생각하는 단어가

자리라는 말입니다.

자리를 잡다라는 말은

우리들이 어디엔가 있을 곳에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은

욕심을 부리거나 미련을 갖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우리들은 자리가 필요합니다.

일 자리, 쉴 자리, 놀 자리, 잠자리 등등.

히브리어로 자리는 말은

앉다” “머무르다” “거주하다라는 뜻의 야샤브라는

동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거주지” “” “정착

이민비자를 갖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영어
“resident alien”이라는 말도 히브리어 명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자리는 우리가 현재 거하는 곳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어떤 자리에든지 있어야 합니다.

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2,

구약성경 창세기의 요셉을 생각해 봅니다.

요셉의 처음 자리는 꽤 괜찮았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형들이 그를 팔아버리면서

그의 자리가 외국으로 옮겨집니다.

경호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립니다.

요셉은 노예라는 신분으로 전락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을 책임 맡은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모함을 받고

다시 감옥에 갇힙니다.

그의 자리는 점점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감옥의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총무가 됩니다.

요셉이 이처럼 아버지 집에서,

이집트의 노예로,

감옥의 죄수로

그의 자리가 바뀌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늘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끌어올려져서

이집트의 총리라는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나중에는 자신을 판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불러서

화해의 잔치자리를 마련합니다.

3.

우리는 요셉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이집트의 총리가 된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온 가족과 화해한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출세지향적인 세상의 관점으로,

섣불리 결론부터 내리고 성경을 읽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셉에 대한 말씀에서 중요한 키워드(key word)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 39:2)

그의 자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려가는 자리든지, 올라간 자리든지,

웅덩이에 빠진 자리든지, 꿈을 해몽하는 왕궁이든지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요셉의 모든 삶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신앙이

요셉의 진정한 영성입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자리에 연연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리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자리가 사람들이 보기에 초라하다면

기가 죽고 손을 축늘어뜨리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신뢰하면

어떤 자리에 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입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도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학개 1:13)

오늘 하루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그 자리에서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너무 복에 겨워서 하나님을 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초라해 보여서 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자신들이 거하는 자리를 바라보지 않고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20일 이메일 목회서신)

강건하시기를…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고든 목사님과 점심식사를 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컴퓨터와 씨름했습니다.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에

실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라도 고장이 나는 날에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도리어 그립습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하루 하루를 맞이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알찬 삶임을 다시금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2.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칼리스토가로 경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여섯 번째 (작년에는 두 번) 똑 같은 장소로

경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장소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매번 갈 때 마다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이

거의 변함없이 같은 멤버로 참여하십니다.

경로여행의 프로그램도 매번 비슷합니다.

12시 경에 도착해서

간단히 점심 먹고 온천욕하기

5시경에 갈비 바비큐를 맛있게/많이 드시고

저녁에는 전도사님 방에 모여서 예배와 퀴즈 등등

피곤한 몸에 일찍 잠자리에 드신 후에

젊은(?) 권사님들께서 준비하신 아침 드시고 또 다시 온천욕하기,

점심을 간단히 먹고 중간에 와이너리나 근처 공원에서 한 두 시간 담소하고

오는 길에 이권사님댁에서

맛있는 햄버거를 대접받는 것으로 경로여행이 끝이 납니다.

매번 같은 장소 (심지어 방과 바비큐 장소도 똑 같은 곳을 예약함),

거의 같은 프로그램,

함께 가시는 권사님들도 거의 같은 멤버

이렇게 모든 것이 비슷하게 매년 경로여행을 다녀옵니다.

3.

그래도 연로하신 분들을 모시고 가기에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세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행여나 온천욕을 하시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으실까

저녁에 드신 갈비를 잘 소화시키실까

몸살이나 감기기운이 있는 분들은 없으신지

멋쟁이 수영복을 입으시고

온천욕을 즐기시는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은

꼭 아이들 같이 순수해 보이고

칼리스토가만 가면 기분이 업(up)-되심을 봅니다.

그런데 해마다 차이가 납니다.

조금씩 조금씩 온천욕을 하시는 시간이 줄어드십니다.

1-2년 전만 해도 저녁 식사 후에도 온천욕을 하셨는데

올 해는 낮에 한번으로 족하신 듯 합니다.

전도사님의 몸매는 지나치게(?) 날씬해지셨습니다.

오고 가는 길에 내년에 또 올까?”라고 말씀하시는

낸시 권사님의 말씀이 귓전을 타고 마음속까지 깊이 내려옵니다.

70대 권사님들은 10년은 젊어 보이시고

80대 전도사님과 권사님들도 예전이나 비슷해 보이시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애틋함이 밀려옵니다.

건강하십시오.

오래 사셔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지요.

우리 교회는 전도사님과 권사님의 기도로 세워집니다.

작은 건물이라도 우리 교회 갖는 것을 보셔야지요.

조심 조심 운전하면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내년에도 모든 분들을 그대로 모시고

경로여행에 다녀올 수 있기를 속으로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경로여행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이모저모로 섬겨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져 주옵소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꼭 붙잡고 살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을

하늘의 힘으로 강건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13일 이메일 목회서신)

봄날의 기도 – 속삭임

좋은 아침입니다.

1.

올 해는 늦게까지 비가 오더니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걸맞은 날씨를 되찾았습니다.

하늘이 푸르고 무척 높습니다.

19th ave에서 SFSU 를 지나면

도로 한가운데로 전차길이 있지요?

철길 가에 피어있는 들꽃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사시느라고 무척 바쁘시지만

종종 밖에 나와서 하늘도 쳐다보시고,

해가 길어졌으니 가까운 공원에 가서 걷기도 하시고,

그곳에 피어있는 꽃들과도 대화해 보심이 어떨지요?

2.

하나님의 꿈을 꾸는 교회라는 주제로

주일설교를 준비했던 지난 한달 동안

우리 교회를 마음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시간 외에도

자동차 안에서, 걷다가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가고,

시시때때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꿈을 꾸고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꿈을 꾸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그 꿈을 이루는 삶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도합니다.

모든 서머나 식구들께서 하나님의 꿈을 꾸시고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제가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와 서머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기쁨입니다.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으로 사는가?

교회가 무엇으로 건강하게 세워지는가?

어떻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 밖에 없습니다.

3.

예전에 수요예배에서

기도에 대한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듯이/속삭이듯이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시시때때로 하나님과 대화로 기도하면서

하루를 지내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경치에 비길 데 없는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

일터에서, 가정에서, 자동차 안에서, 거리에서

하나님과 속삭이시면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은밀한 데이트를 즐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서머나 식구들이

기도가운데

주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 6일 이메일 목회서신)

사슴의 발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1.

집에서 자동차로 10분여만 가면

280번 하이웨이 너머에 호숫가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옵니다.

오후 늦게 그곳에 운동을 갈 때면

거의 어김없이 사슴가족을 만납니다.

많으면 네댓 마리가 함께 어울려서

풀을 뜯어 먹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사슴 앞에서 발을 구르면

깜짝 놀란 사슴이 산등성이로 뛰어올라갑니다.

몸을 거의 피했다 싶으면 고개를 돌려서

빤히 저를 쳐다보는 눈빛은

처량하기도 하고 때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그런가요?

사슴의 발걸음은 사뿐사뿐 무척 가볍습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하박국 강해를 모두 마쳤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질문도 많았고

자기가 사는 세상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

자신의 생각과 신앙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고백한 말씀이 바로

마지막 3장입니다.

하박국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17-19)

하박국을 모두 공부하고 나니

이 말씀이 예사로운 말씀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굳게 믿은 하박국의 신앙고백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온 천지가 개벽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순간에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꼭 붙잡습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을 만큼

무시무시한 심판 앞에서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마지막 19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거닐

자신의 미래 모습을 눈에 그리면서 드리는

하박국의 찬양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

하박국의 말씀을 단지

이 다음에 누릴 미래의 모습으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 반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삶 속에서 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

이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변함없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인생의 산등성이를

사슴처럼 가볍게 뛰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4월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부터 새로운 달 5월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슴처럼 한 달을 한 숨에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4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마무리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갖고

힘차게 새달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4 29일 이메일 목회서신)

고난을 함께 나누는 가정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East bay의 안티옥에서는

어떤 부부가 아기를 자동차 안에 두고

자신들만 집안에 들어 갔다가

아기가 그만 목숨을 잃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젊은 부부가

인터넷 도박에 빠져서 3개월 된 딸을 방치해서

굶어 죽게 했다는 신문보도도 있었습니다.

안티옥에서의 TV뉴스와

한국의 신문보도를 읽으면서

가정의 가장 귀한 부분인 부모 자식간의 사랑마저

금이 가고 있는 현실이

망원렌즈를 통해서 보여지는 듯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2.

잠언 17 1절에서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물론 가정 안에서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잠언 말씀처럼 마른 떡 한 조각밖에 없다면

그것은 매우 어려운 지경입니다.

말 그대로 극심한 어려움 속에 처한 가정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른 떡 한 조각만 갖고도 어떻게 화목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이번 주 속회 공과(“고난을 함께 나누는 가정”)에서 가르쳐 줍니다.

지난 번 위로에 대한 설교를 할 때

함께 나누었던 본문이기도 하지요 (고후 1:3-10).

이번 주 속회공과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 왔습니다.:

고난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찾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부끄러워할 것도,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나누어야 합니다.특히 가정은 모든 고난의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공급되는 원천입니다. 만일 가족 안에서 이러한 위로와 격려가 이루어지면, 고난을 극복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고난은 누구와 함께 이겨 나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가족 안에서 두세 사람이 모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잇는 힘을 주시며, 사랑의 중보기도를 통해 큰 위로를 받게 하십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때, 그 어느 곳에서도 받을 수 없는 성령의 풍성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빵 한 조각밖에 없는 데도 화목할 수 있는 비결은

가정 안에서

서로를 위로해 주고,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에 성령의 풍성한 위로가 임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빵 한 조각밖에 남겨지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화목한 가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가정이 무너지듯이 교회들도 흔들거립니다.

아기를 자동차 안에 방치해 둔 부부처럼 무관심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습니다.

인터넷 도박에 정신을 팔려 딸을 잃어버린 젊은 부부처럼

교회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을 팔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지난 주부터 교회에 대해서 설교를 시작했는데

우리 교회가

가족 같은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가족이 된

신앙공동체로 자라가기를 기도하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 안에

사랑이 있고, 위로가 있고, 서로를 향한 신뢰와 격려가 있다면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진실되게 기도해 주는 기도의 손들이 있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항상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의 모든 가정과 우리 교회를

주님의 넓으신 품에 품어 주시고

능하신 주의 오른손으로 확실히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4 22일 이메일 목회서신)

좋아하다 vs 사랑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이-메일 홍수입니다.

저 역시

이곳 저곳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이 옵니다.

대부분은 정성껏 읽고 저장해 놓지만

광고성 메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열어 보지도 않고 삭제해 버립니다.

제가 매주 목요일(금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메일이

“버려지는 메일” “쌓아놓다가 한꺼번에 정리되는 메일”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메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제게 오는 메일이 있습니다.

대전 침례교 신학교에서 상담을 가리키는

제 친구인 유재성 교수의 메일입니다.

3년 전인가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한 적도 있지요.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저에게도 보내주는 것 같은데

짧고 유익한 글을 보내줍니다.

지난 부활절 즈음에 보냈던 메일은

국민일보 칼럼을 인용한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는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두 단어는 반대말일 수 있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고양이는 쥐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아프든, 상처 나든, 피가 나든 상관없이
나의 욕심 대문에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프고, 상처 나고, 피가 나더라도
상대에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유관재, 국민일보 ‘로뎀나무’ 칼럼 중에서—————-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좋아하고 있습니까?
나의 욕심이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주님을 선호하고, 바라보고 있다면
주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며
나를 따라오시도록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라는

말이 좋아하다와 사랑하다의 차이를 아주 잘 설명해 주는군요.

무슨 일이든지 좋아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쉽습니다.

내 마음대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에 “진정한”이라는 말을 붙이면 더더욱 어렵지요.

사랑은 ,

허다한 죄를 덮어 주어야 하고 (벧전4:8),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일3:18)

좋아함을 너머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진실됨이

우리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의 손길로 세상에 다가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4월 15일 이-메일 목회서신)

이제는 겸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부활절은 우리 교회로서

매우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를 얽어 매며

힘들게 했던 그 모든 일에서

새가 올무에서 벗어나듯이

완전히 해방된 것을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하실 지 기대가 됩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우리 교회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자리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마음껏 쓰실 것입니다.

2.

지난 주일 친교 시간에는

새로 조직된 구역속회 별로 식사를 했습니다.

지난 두 달여 기도하면서

구역속회를 구성했는데

각 속회마다 아주 잘 모이셔서 감사했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서 각 속회들을 어떻게 축복하시고

그 안에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실 지 또한 기대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라는 표현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멋지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때 속회와 같은 소그룹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소그룹을 (cell, 세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몸에 건강한 세포가 있으면 나쁜 세포가 사라지듯이,

또한 세포가 분할을 하면서 몸이 자라가듯이

교회 안의 소그룹이 건강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건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온 교우들이 참여한 우리 교회 모든 소그룹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부활주일을 보내고

지난 3일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겸손의 훈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은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제일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쏙드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훈련하는 것이 곧 순종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2) 성도들 간의 겸손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의 형편을 돌아보는 배려라고 했습니다.

제가 요즘 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

서로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고,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4월 셋째 주일부터 시작하게 될

그리스도인의 관계 세우기성경공부가

정확히 20명 정원을 채웠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열심히 교제를 만들면서

성경공부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 간의 관계,

가정 안에서의 부부, 자녀 관계,

세상 속에서의 인간관계까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건강해 지기를 기대합니다.

4.

기쁜 일이 생기고

분위기가 좋을수록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겸손하게 차근차근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이름의 권세가 우리 교회를 덮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지켜주옵소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순종,

성도간의 사랑과 배려로

겸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 모두를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Good Friday

좋은 아침입니다.

Good morning!

1.

부활주일 전 주일을

종려주일(Palm Sunday),”

종려주일 이후 한 주간을

고난주간(Passion Week)”

고난주간이 끝나고

부활주일(Easter Sunday)”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고난 주간 마지막에는

성금요일이 있습니다.

성금요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뜻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루 동안 금식합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주는 식욕을 억제한 채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세상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교만과 고집스런 자아를

십자가에 매달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인생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2.

영어로 성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Good”이라고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합니다.

이에 대해서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Good에 해당하는 영어가 옛날에는 holy와 유사하게 쓰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Good Friday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성 금요일(Holy Friday)”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는, Good과 하나님을 뜻하는 God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God’s Friday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견해입니다.

셋째는, Good Friday를 오늘날 의미 그대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만 생각하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마냥 슬퍼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 설교한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선한(good)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은

말 그대로 Good Friday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세 번째 견해를 마음에 품고

올 해 Good Friday를 보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너무 거룩하게 형상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Good이라는 말에서 God을 연상하는 것은 왠지 임의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야 말로 악을 선으로 이긴 최고의 사건이기에

Good! Friday – 은혜가 넘치고 힘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견해를 택하시겠습니까?

3.

2010년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서머나 식구들과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믿음이 깊어질 때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속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고,

화평케 하는 자로 세상에 나갈 때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음에 품고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신앙의 여정/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박힌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우리를 위해 쓰셨네

(찬송가 147 1,2,3)

깊은 은혜를 체험하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목사 올림

(2010년 4월 1일 이-메일 목회서신)

소망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밖에 나가면 봄기운이 감도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사는 bay 지역은 사시사철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나뭇가지에 새로운 잎이 돋아나고,

들에는 예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봄!

겨울이 가고 또 한번의 사계절이 새로 시작되는 때입니다.

겨울잠을 자던 동식물들이 잠에서 깨서 기지개를 켜는 계절입니다.

농부들이 가을의 수확을 눈에 그리며 씨앗을 뿌리는 계절입니다.

봄!

봄이라는 영어 표현이 spring입니다.

힘차게 점프하는 계절입니다.

한 해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샘과 같은 계절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짬을 내서 공원이나 들로 나가보십시오.

출퇴근 길에

길 옆에 핀 꽃들과 가로수를 보면서 봄을 느껴보십시오.

봄기운이 온 몸으로 쏵-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실 겁니다.

2.

오늘 오후에

다음 달 속회 강사님들께 드릴 공과 해설지를 만들면서

4월 마지막 주에 공부할 성경본문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로마서 14장 13절 말씀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하나님”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은혜는

모든 기쁨과 평강”그리고 “소망”이라고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배웁니다.

파란 색으로 된 단어들을 가만히 묵상해 보십시오.

추운 겨울을 지내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올 것입니다.

봄과 같은 인생!

봄과 같은 신앙!

봄과 같은 소망!

하나님!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하루하루가

소망의 하나님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봄과 같은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25일 이-메일 목회서신)

숨은 사람 가꾸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미국에 온지 열두 해가 다가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커네티컷의 한 형제께서

이민목회를 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셨습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공부 끝내고 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한 치 앞길을 알 수 없듯이

그때부터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고

저는 지금 이민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는 좋아하던 실내축구도 내려놓고

젊었다고 생각하면서 지고 다니던 가방도 내려놓을 때가 되는가 봅니다.

앞 일을 두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제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서 배웁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동안(童顔)이라는 얘기를 줄곧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한편으로는 좋고,

또 한 편으로는 제 나이가 있는데 은근히 무시당하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 나이를 그대로 알아봅니다.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10년을 위로 볼 것 같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습을 보아도

올해 들어서 바짝- 얼굴이 망가진(?) 듯 합니다.

탄력을 잃었습니다.

머리 숫자도 줄어들고 이마가 반들반들 해지면서 넓어집니다.

이것이 인생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우리 권사님들은 제가 젊어서 좋답니다.

저에게 청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청춘예찬(靑春禮讚)을 외치면서 살 생각입니다.

2.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주는 교훈을 하면서

우리의 외모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베드로서가 쓰여질 초대교회 당시에도

외모를 꾸미는 일들이 꽤 많았나 봅니다.

이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숨은 사람(the hidden person)”을 꾸미라고 가르쳐줍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겉 사람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겉 사람은 급격하게 아름다움을 잃어갑니다.

반면에 숨은 사람을 꾸미는 것은

겉 사람과 상관없이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precious in sight of God)”입니다.

숨은 사람을 꾸미는 비결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우스”는

“넉넉함” “부드러움”과 더불어 “겸손함”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둘째로, “안정된 심령(quiet spirit)”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매우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온유함이나 평온함 모두

삶의 깊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모신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온유하고 평온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움(imperishable beauty)이랍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이기에

얼핏 봐서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귀면 사귈수록

그윽한 인간미와 신앙의 향기가 드러나는 아름다움입니다.

3.

사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겉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10년 젊어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숨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온유함”과 “평온함”으로 가꾸어지는 “숨은 사람”입니다.

사순절의 막바지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무엇보다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숨은 사람”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가꾸기 원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겉모습도 아름다우십니다.

젊은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성도님들도 모두 10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아침 저는

서머나 성도님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하나님,

우리 서머나 성도님들은

내면이 아름다우신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임을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18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