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아 알지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7월 들어서

지난 두 주 동안 목회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코스타에 가느라,

지난 주는 시간을 놓쳐서

그만 빼먹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정말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목요일도 참 빠르게 다가오는군요!

하여튼 지난 두 주 동안

목요일 이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한 것

(혹시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셨다면)

죄송한 마음을 먼저 전합니다.

2.

요즘 제가 우리 성도님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꽉붙잡히시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첫 단추를 올바로 꿰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던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다고 칭함받았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 아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됨을

머리로 이해할 뿐 아니라

온 몸으로, 삶 전체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해 놓았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전반부의 맛보아 알지어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맛보라 그리고 보라 (taste and see).

이처럼 본문에는 맛보다 (그것도 살짝 찍어서 맛을 보는 것)”

보다라는 감각적인 표현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 (히브리어: The Lord is good)임을

맛보고 눈으로 볼 만큼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맛볼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하나님을 피난처 삼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피하는 것도 복이라고 가르쳐주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느 정도로

귀하고, 감사하고,

또 가치가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 주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시고

영혼의 안목으로 바라보시고

삶의 길목 길목에서

하나님을 피난처 삼으시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삶 가운데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7.22 메일 목회서신)

담대함 그리고 귀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주일에 주시는 말씀이나

수요예배에서 공부하는 스가랴 말씀

게다가 구역속회에서 공부하는 말씀까지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들 속에 빠져들어가면

말씀이 의미가 깊고 풍성함을 체험합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 함께 공부한 스가랴 4장은

3장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정결케 하신 하나님께서

당시 총독이었던 스룹바벨을 회복시키시고 세워주시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4장을 공부하면서

두 가지 수사적인 질문을 살펴보았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7)

스룹바벨 당시에 성전의 건축을 방해하던 사람들과 상황을 두고

아무리 큰 산이 앞을 가로막아도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할 때에

산이 변해서 평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요즘 개인적으로 큰 산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을 만나서 많은 요구사항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방금 전 건강을 조심하라면서 염려해주시는 이메일을 읽으면서 힘도 얻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은 세상이나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때 앞을 가로막는 큰 산이 무너지는 체험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담대함이 나옵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10)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의 지휘하에

건축하고 있는 성전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학개 2:3절에서

보잘 것 없다라는 표현을 썼겠습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성전을 짓고 있는데

그 겉모습이 초라합니다.

내 세울 것도 없고, 스스로 보기에도 창피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성전이라도

하나님께서 빛으로 임재하신다면 귀한 성전이 될 것임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초라할 수도 있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빛으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면

우리도 겉모습과 상관없이 가장 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올해도 절반이 지나고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왠지 모르게 우리들의 삶이 자꾸만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큰 산이 여러분 앞을 막아서더라도

산을 바라보지 마시고

산을 부셔서 평지를 만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장 귀중한 일이 될 수 있음을 믿고

현재의 모습과 삶에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앞에 높은 산이 평지가 되고

작은 일이 가장 귀중한 일임을

믿음 안에서 체험하고 깨닫게 하옵소서.

서머나 식구들이

주님 손 굳게 잡고

담대하게 새달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71일 이-메일 목회서신)

거룩한 침묵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침에 일어나서[하나님]을 부르시고

하루에 꼭 5분 정도 하나님 앞에서 침묵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신앙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매 주일 주보를 통해서 부탁드리는 말씀입니다.

“침묵으로 기도하는 시간”

현대인들은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요즘은 셀폰이 나와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눕니다.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언어활동에도 정기적인 “쉼”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일정시간을 정해놓고

또는 가장 한가로운 시간에

반대로 가장 분주한 시간에

“침묵으로 기도하는” 습관이 생길 때까지 훈련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거룩한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는 시간,

– 세상과 구별된(거룩=구별/separation) 시간,

– 수많은 세상의 언어와 구별된 시간

– 자신과도 구별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 말씀가운데 생각나는 것,

아침에 읽은 성경말씀 가운데 마음에 남아 있는 것,

평소에 자신이 아끼고 외우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하나를 택해서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고요한 침묵의 시간!

오늘은 꼭 5분 이상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침묵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 마음 속에 샘솟는 하늘의 평안과

여러분 영에 임하는 하늘의 기쁨을 맛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세상의 소리들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침묵으로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의 하늘의 소리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6월 24일 이-메일 목회서신)

능히 도우시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월드컵 시즌이라고 할 만큼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도 축구얘기 일색입니다.

어제는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에

커다란 점수차로 패했습니다.

발로 하는 운동인데도

그 정도로 실력 차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오늘은 경기를 져서 그런지

만나는 분들 마다 기분이 약간 다운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쉽게 무너진 한국 축구만큼이나

우리들의 마음도 무너져 내린 듯 합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면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응원해서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한다 해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몫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특정 선수를 응원하지만

그 선수가 우리를 알아주지도 않고

평생 동안 그 선수와 악수 한번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좋아하는 팀이나, 국가대표들에게 마음을 줍니다.

그들이 승리하면 좋아하고,

경기에 지면 한없이 안타까워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감정이입(empathy)”라고 합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입장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그들과 더불어 승리를 즐기려는 마음입니다.

감정이입을 잘 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랑이 많습니다.

남들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이 크고 깊습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감정적인 변화가 클 수도 있습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마음을 쏟다 보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2.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감정이입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처럼 아파하시고, 피곤해하시고, 고통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2 18절에서 잘 가르쳐줍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느니라.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감정이입을 넘어서

우리의 삶을 실제로 체험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십니다.

우리를 가장 잘 도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도우실 충분한 능력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 앞에 제 삶을 내려놓습니다.

저의 모든 목회와 인생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십자가 아래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활짝 펴면

세상 욕심도, 집착도, 미련도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때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많이 바쁘고 힘드십니까?

십자가 밑에서 쉼을 누리시고

모든 인생의 짐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가장 아시는 예수님께서

능히 도우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서머나 식구들께서 겪으시는

인생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시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능히 도우실 줄 믿습니다.

눈동자처럼 서머나 식구들을 보호하시고 사랑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617일 이-메이 목회서신)

산자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오후에 TV에서

“Alive”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마지막 30분만 보았는데

눈이 쌓인 산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실화라는 자막이 올라가길래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1973년 우루과이 럭비팀과 가족을 실은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에서 추락한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였습니다.

한 겨울 눈 덮인 산맥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16(?)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무전기를 고쳐보려는 시도,

안테나를 만들어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고

서로 생일 파티를 해 주면서 격려하고

나중에는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으면서 생명을 지탱합니다.

안데스 산맥에 봄이 찾아왔을 때

두 명의 젊은이가 험난한 산을 넘고 넘어서

그들의 생존을 세상에 알리고

구조대가 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생존본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분명하게 대비되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2.

살아 있다는 것!

예삿일이 아닙니다.

병이 나면 건강의 중요성을 알듯이

생명이 위태로우면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문지방을 넘는 것만큼 낮습니다.

삶과 죽음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이 세상의 삶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영생을 더욱 사모합니다.

그렇다고 주어진 삶을 소홀히 하거나

절망가운데 자신의 삶을 소비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

살아있는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요!

어느덧 6월도 중순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올해의 절반을 사시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십니까?

저 역시 새달을 맞으면서

시간을 아껴 살기고 결심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만족할 만큼 규모있게 살지 못했습니다.

분발해야겠습니다!

하루 하루가 새로운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있으면

우리들은 언제나 생명을 누립니다.

영원한 생명이지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 20:38)

하나님,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께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산 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생동감 있게, 소망 가운데 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610일 이-메일 목회서신)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찌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베이지역에도

이상기온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5월 말이면

건기가 이미 시작되고

전형적인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어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비가 꽤 많이 내렸습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비롯해서

지구상에 서서히 몰려오는 이상징후들을

우리들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갑갑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한동안 지배하라는 뜻으로 알고

기독교인들마저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배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관리하라는 명령에 더 가까운데 말씀인데

각자 개인의 삶에 지쳐서

지구야 어떻게든지 신경 쓸 틈도 없었는데

비가 오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큰 세상이 신경 쓰이는 요즘입니다.

2.

수요예배시간에

소예언서 학개를 공부하면서

저 역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학개라는 선지자도 생소하고

단지 2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예언서이기에

소홀이 여기기 쉬웠습니다.

부흥회 같은 데 가면

교회를 건축할 때 학개서를 인용하면서

성전건축과 관련된

하나님의 질책과 축복에 대해서

약간(?) 겁을 주는 말씀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학개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상황을 무시한 채,

성경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추하게 해석한 소치입니다.

학개서가 기록될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은

꼭 성전이 필요했습니다.

나라도 잃고, 예루살렘 성전도 없어졌고

경제적으로도 피폐했기에

신앙의 구심점이 되는 성전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성전을 다시 짓던 공사는

18년간이나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신앙과 삶이 중도에 멈춰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맥이 풀렸고

소망이 없었고

신앙마저 흔들릴 즈음에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불러서

성전의 건축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먼저 살펴본 후에

그 말씀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지난 이메일 서신에도

학개서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1:14)

그 약속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달여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짓는 성전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짓는 성전이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성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성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가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이 빠졌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솔로몬 성전을 본 사람들은

이전의 영광과 비교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놓고 백성들 마음 속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때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Be strong and work for I am with you)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수요예배에서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2천 년도 훨씬 전에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2:5)

과거에 주신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는 하나님의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머물러있습니다.

여기에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을 확신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4.

우리들 역시 하나님을 믿으면서

삶의 열매나 결과가 초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 눈에 보잘것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할 말씀이 바로 학개 2:4-5절입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고 일할 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신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두려워 말라.

메일 서신을 준비하면서

어제 나누었던 학개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하니

말씀의 능력이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힘이 생깁니다. 왠지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오늘 하루 학개서 2:4-5말씀을 꼭 붙잡고

두려움을 능히 넘어가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행여나 자신의 삶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시는

서머나 식구들이 계시다면

그 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는데

삶의 열매가 초라하다고 느끼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꼭 붙잡고

하나님 말씀대로 힘차게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 27)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제가 골몰히 생각하는 단어가

자리라는 말입니다.

자리를 잡다라는 말은

우리들이 어디엔가 있을 곳에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은

욕심을 부리거나 미련을 갖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우리들은 자리가 필요합니다.

일 자리, 쉴 자리, 놀 자리, 잠자리 등등.

히브리어로 자리는 말은

앉다” “머무르다” “거주하다라는 뜻의 야샤브라는

동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거주지” “” “정착

이민비자를 갖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영어
“resident alien”이라는 말도 히브리어 명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자리는 우리가 현재 거하는 곳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어떤 자리에든지 있어야 합니다.

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2,

구약성경 창세기의 요셉을 생각해 봅니다.

요셉의 처음 자리는 꽤 괜찮았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형들이 그를 팔아버리면서

그의 자리가 외국으로 옮겨집니다.

경호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립니다.

요셉은 노예라는 신분으로 전락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을 책임 맡은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모함을 받고

다시 감옥에 갇힙니다.

그의 자리는 점점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감옥의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총무가 됩니다.

요셉이 이처럼 아버지 집에서,

이집트의 노예로,

감옥의 죄수로

그의 자리가 바뀌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늘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끌어올려져서

이집트의 총리라는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나중에는 자신을 판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불러서

화해의 잔치자리를 마련합니다.

3.

우리는 요셉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이집트의 총리가 된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온 가족과 화해한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출세지향적인 세상의 관점으로,

섣불리 결론부터 내리고 성경을 읽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셉에 대한 말씀에서 중요한 키워드(key word)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 39:2)

그의 자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려가는 자리든지, 올라간 자리든지,

웅덩이에 빠진 자리든지, 꿈을 해몽하는 왕궁이든지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요셉의 모든 삶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신앙이

요셉의 진정한 영성입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자리에 연연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리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자리가 사람들이 보기에 초라하다면

기가 죽고 손을 축늘어뜨리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신뢰하면

어떤 자리에 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입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도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학개 1:13)

오늘 하루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그 자리에서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너무 복에 겨워서 하나님을 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초라해 보여서 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자신들이 거하는 자리를 바라보지 않고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20일 이메일 목회서신)

강건하시기를…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고든 목사님과 점심식사를 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컴퓨터와 씨름했습니다.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에

실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라도 고장이 나는 날에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도리어 그립습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하루 하루를 맞이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알찬 삶임을 다시금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2.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칼리스토가로 경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여섯 번째 (작년에는 두 번) 똑 같은 장소로

경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장소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매번 갈 때 마다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이

거의 변함없이 같은 멤버로 참여하십니다.

경로여행의 프로그램도 매번 비슷합니다.

12시 경에 도착해서

간단히 점심 먹고 온천욕하기

5시경에 갈비 바비큐를 맛있게/많이 드시고

저녁에는 전도사님 방에 모여서 예배와 퀴즈 등등

피곤한 몸에 일찍 잠자리에 드신 후에

젊은(?) 권사님들께서 준비하신 아침 드시고 또 다시 온천욕하기,

점심을 간단히 먹고 중간에 와이너리나 근처 공원에서 한 두 시간 담소하고

오는 길에 이권사님댁에서

맛있는 햄버거를 대접받는 것으로 경로여행이 끝이 납니다.

매번 같은 장소 (심지어 방과 바비큐 장소도 똑 같은 곳을 예약함),

거의 같은 프로그램,

함께 가시는 권사님들도 거의 같은 멤버

이렇게 모든 것이 비슷하게 매년 경로여행을 다녀옵니다.

3.

그래도 연로하신 분들을 모시고 가기에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세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행여나 온천욕을 하시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으실까

저녁에 드신 갈비를 잘 소화시키실까

몸살이나 감기기운이 있는 분들은 없으신지

멋쟁이 수영복을 입으시고

온천욕을 즐기시는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은

꼭 아이들 같이 순수해 보이고

칼리스토가만 가면 기분이 업(up)-되심을 봅니다.

그런데 해마다 차이가 납니다.

조금씩 조금씩 온천욕을 하시는 시간이 줄어드십니다.

1-2년 전만 해도 저녁 식사 후에도 온천욕을 하셨는데

올 해는 낮에 한번으로 족하신 듯 합니다.

전도사님의 몸매는 지나치게(?) 날씬해지셨습니다.

오고 가는 길에 내년에 또 올까?”라고 말씀하시는

낸시 권사님의 말씀이 귓전을 타고 마음속까지 깊이 내려옵니다.

70대 권사님들은 10년은 젊어 보이시고

80대 전도사님과 권사님들도 예전이나 비슷해 보이시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애틋함이 밀려옵니다.

건강하십시오.

오래 사셔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지요.

우리 교회는 전도사님과 권사님의 기도로 세워집니다.

작은 건물이라도 우리 교회 갖는 것을 보셔야지요.

조심 조심 운전하면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내년에도 모든 분들을 그대로 모시고

경로여행에 다녀올 수 있기를 속으로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경로여행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이모저모로 섬겨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져 주옵소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꼭 붙잡고 살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전도사님과 권사님들을

하늘의 힘으로 강건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13일 이메일 목회서신)

봄날의 기도 – 속삭임

좋은 아침입니다.

1.

올 해는 늦게까지 비가 오더니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걸맞은 날씨를 되찾았습니다.

하늘이 푸르고 무척 높습니다.

19th ave에서 SFSU 를 지나면

도로 한가운데로 전차길이 있지요?

철길 가에 피어있는 들꽃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사시느라고 무척 바쁘시지만

종종 밖에 나와서 하늘도 쳐다보시고,

해가 길어졌으니 가까운 공원에 가서 걷기도 하시고,

그곳에 피어있는 꽃들과도 대화해 보심이 어떨지요?

2.

하나님의 꿈을 꾸는 교회라는 주제로

주일설교를 준비했던 지난 한달 동안

우리 교회를 마음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시간 외에도

자동차 안에서, 걷다가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가고,

시시때때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꿈을 꾸고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꿈을 꾸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그 꿈을 이루는 삶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도합니다.

모든 서머나 식구들께서 하나님의 꿈을 꾸시고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제가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와 서머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기쁨입니다.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으로 사는가?

교회가 무엇으로 건강하게 세워지는가?

어떻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 밖에 없습니다.

3.

예전에 수요예배에서

기도에 대한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듯이/속삭이듯이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시시때때로 하나님과 대화로 기도하면서

하루를 지내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경치에 비길 데 없는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

일터에서, 가정에서, 자동차 안에서, 거리에서

하나님과 속삭이시면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은밀한 데이트를 즐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서머나 식구들이

기도가운데

주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 6일 이메일 목회서신)

사슴의 발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1.

집에서 자동차로 10분여만 가면

280번 하이웨이 너머에 호숫가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옵니다.

오후 늦게 그곳에 운동을 갈 때면

거의 어김없이 사슴가족을 만납니다.

많으면 네댓 마리가 함께 어울려서

풀을 뜯어 먹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사슴 앞에서 발을 구르면

깜짝 놀란 사슴이 산등성이로 뛰어올라갑니다.

몸을 거의 피했다 싶으면 고개를 돌려서

빤히 저를 쳐다보는 눈빛은

처량하기도 하고 때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그런가요?

사슴의 발걸음은 사뿐사뿐 무척 가볍습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하박국 강해를 모두 마쳤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질문도 많았고

자기가 사는 세상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

자신의 생각과 신앙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고백한 말씀이 바로

마지막 3장입니다.

하박국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17-19)

하박국을 모두 공부하고 나니

이 말씀이 예사로운 말씀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굳게 믿은 하박국의 신앙고백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온 천지가 개벽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순간에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꼭 붙잡습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을 만큼

무시무시한 심판 앞에서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마지막 19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거닐

자신의 미래 모습을 눈에 그리면서 드리는

하박국의 찬양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

하박국의 말씀을 단지

이 다음에 누릴 미래의 모습으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 반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삶 속에서 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

이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변함없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인생의 산등성이를

사슴처럼 가볍게 뛰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4월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부터 새로운 달 5월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슴처럼 한 달을 한 숨에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4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마무리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갖고

힘차게 새달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4 29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