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기도 – 속삭임

좋은 아침입니다.

1.

올 해는 늦게까지 비가 오더니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걸맞은 날씨를 되찾았습니다.

하늘이 푸르고 무척 높습니다.

19th ave에서 SFSU 를 지나면

도로 한가운데로 전차길이 있지요?

철길 가에 피어있는 들꽃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사시느라고 무척 바쁘시지만

종종 밖에 나와서 하늘도 쳐다보시고,

해가 길어졌으니 가까운 공원에 가서 걷기도 하시고,

그곳에 피어있는 꽃들과도 대화해 보심이 어떨지요?

2.

하나님의 꿈을 꾸는 교회라는 주제로

주일설교를 준비했던 지난 한달 동안

우리 교회를 마음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시간 외에도

자동차 안에서, 걷다가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가고,

시시때때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꿈을 꾸고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꿈을 꾸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그 꿈을 이루는 삶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도합니다.

모든 서머나 식구들께서 하나님의 꿈을 꾸시고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제가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와 서머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기쁨입니다.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으로 사는가?

교회가 무엇으로 건강하게 세워지는가?

어떻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 밖에 없습니다.

3.

예전에 수요예배에서

기도에 대한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듯이/속삭이듯이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시시때때로 하나님과 대화로 기도하면서

하루를 지내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경치에 비길 데 없는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

일터에서, 가정에서, 자동차 안에서, 거리에서

하나님과 속삭이시면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은밀한 데이트를 즐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서머나 식구들이

기도가운데

주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5 6일 이메일 목회서신)

사슴의 발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1.

집에서 자동차로 10분여만 가면

280번 하이웨이 너머에 호숫가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옵니다.

오후 늦게 그곳에 운동을 갈 때면

거의 어김없이 사슴가족을 만납니다.

많으면 네댓 마리가 함께 어울려서

풀을 뜯어 먹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사슴 앞에서 발을 구르면

깜짝 놀란 사슴이 산등성이로 뛰어올라갑니다.

몸을 거의 피했다 싶으면 고개를 돌려서

빤히 저를 쳐다보는 눈빛은

처량하기도 하고 때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그런가요?

사슴의 발걸음은 사뿐사뿐 무척 가볍습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하박국 강해를 모두 마쳤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질문도 많았고

자기가 사는 세상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

자신의 생각과 신앙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고백한 말씀이 바로

마지막 3장입니다.

하박국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17-19)

하박국을 모두 공부하고 나니

이 말씀이 예사로운 말씀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굳게 믿은 하박국의 신앙고백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온 천지가 개벽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순간에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꼭 붙잡습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을 만큼

무시무시한 심판 앞에서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마지막 19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거닐

자신의 미래 모습을 눈에 그리면서 드리는

하박국의 찬양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

하박국의 말씀을 단지

이 다음에 누릴 미래의 모습으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 반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삶 속에서 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

이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변함없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인생의 산등성이를

사슴처럼 가볍게 뛰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4월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부터 새로운 달 5월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슴처럼 한 달을 한 숨에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4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마무리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갖고

힘차게 새달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4 29일 이메일 목회서신)

고난을 함께 나누는 가정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East bay의 안티옥에서는

어떤 부부가 아기를 자동차 안에 두고

자신들만 집안에 들어 갔다가

아기가 그만 목숨을 잃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젊은 부부가

인터넷 도박에 빠져서 3개월 된 딸을 방치해서

굶어 죽게 했다는 신문보도도 있었습니다.

안티옥에서의 TV뉴스와

한국의 신문보도를 읽으면서

가정의 가장 귀한 부분인 부모 자식간의 사랑마저

금이 가고 있는 현실이

망원렌즈를 통해서 보여지는 듯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2.

잠언 17 1절에서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물론 가정 안에서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잠언 말씀처럼 마른 떡 한 조각밖에 없다면

그것은 매우 어려운 지경입니다.

말 그대로 극심한 어려움 속에 처한 가정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른 떡 한 조각만 갖고도 어떻게 화목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이번 주 속회 공과(“고난을 함께 나누는 가정”)에서 가르쳐 줍니다.

지난 번 위로에 대한 설교를 할 때

함께 나누었던 본문이기도 하지요 (고후 1:3-10).

이번 주 속회공과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 왔습니다.:

고난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찾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부끄러워할 것도,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나누어야 합니다.특히 가정은 모든 고난의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공급되는 원천입니다. 만일 가족 안에서 이러한 위로와 격려가 이루어지면, 고난을 극복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고난은 누구와 함께 이겨 나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가족 안에서 두세 사람이 모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잇는 힘을 주시며, 사랑의 중보기도를 통해 큰 위로를 받게 하십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때, 그 어느 곳에서도 받을 수 없는 성령의 풍성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빵 한 조각밖에 없는 데도 화목할 수 있는 비결은

가정 안에서

서로를 위로해 주고,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에 성령의 풍성한 위로가 임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빵 한 조각밖에 남겨지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화목한 가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가정이 무너지듯이 교회들도 흔들거립니다.

아기를 자동차 안에 방치해 둔 부부처럼 무관심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습니다.

인터넷 도박에 정신을 팔려 딸을 잃어버린 젊은 부부처럼

교회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을 팔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지난 주부터 교회에 대해서 설교를 시작했는데

우리 교회가

가족 같은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가족이 된

신앙공동체로 자라가기를 기도하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 안에

사랑이 있고, 위로가 있고, 서로를 향한 신뢰와 격려가 있다면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진실되게 기도해 주는 기도의 손들이 있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항상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의 모든 가정과 우리 교회를

주님의 넓으신 품에 품어 주시고

능하신 주의 오른손으로 확실히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 4 22일 이메일 목회서신)

좋아하다 vs 사랑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이-메일 홍수입니다.

저 역시

이곳 저곳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이 옵니다.

대부분은 정성껏 읽고 저장해 놓지만

광고성 메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열어 보지도 않고 삭제해 버립니다.

제가 매주 목요일(금요일 아침)에 보내드리는 메일이

“버려지는 메일” “쌓아놓다가 한꺼번에 정리되는 메일”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메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제게 오는 메일이 있습니다.

대전 침례교 신학교에서 상담을 가리키는

제 친구인 유재성 교수의 메일입니다.

3년 전인가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한 적도 있지요.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저에게도 보내주는 것 같은데

짧고 유익한 글을 보내줍니다.

지난 부활절 즈음에 보냈던 메일은

국민일보 칼럼을 인용한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는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두 단어는 반대말일 수 있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고양이는 쥐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아프든, 상처 나든, 피가 나든 상관없이
나의 욕심 대문에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프고, 상처 나고, 피가 나더라도
상대에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유관재, 국민일보 ‘로뎀나무’ 칼럼 중에서—————-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좋아하고 있습니까?
나의 욕심이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주님을 선호하고, 바라보고 있다면
주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며
나를 따라오시도록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라는

말이 좋아하다와 사랑하다의 차이를 아주 잘 설명해 주는군요.

무슨 일이든지 좋아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쉽습니다.

내 마음대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에 “진정한”이라는 말을 붙이면 더더욱 어렵지요.

사랑은 ,

허다한 죄를 덮어 주어야 하고 (벧전4:8),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일3:18)

좋아함을 너머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진실됨이

우리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의 손길로 세상에 다가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4월 15일 이-메일 목회서신)

이제는 겸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부활절은 우리 교회로서

매우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를 얽어 매며

힘들게 했던 그 모든 일에서

새가 올무에서 벗어나듯이

완전히 해방된 것을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하실 지 기대가 됩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우리 교회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자리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마음껏 쓰실 것입니다.

2.

지난 주일 친교 시간에는

새로 조직된 구역속회 별로 식사를 했습니다.

지난 두 달여 기도하면서

구역속회를 구성했는데

각 속회마다 아주 잘 모이셔서 감사했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서 각 속회들을 어떻게 축복하시고

그 안에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실 지 또한 기대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라는 표현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멋지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때 속회와 같은 소그룹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소그룹을 (cell, 세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몸에 건강한 세포가 있으면 나쁜 세포가 사라지듯이,

또한 세포가 분할을 하면서 몸이 자라가듯이

교회 안의 소그룹이 건강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건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온 교우들이 참여한 우리 교회 모든 소그룹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부활주일을 보내고

지난 3일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겸손의 훈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은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제일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쏙드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훈련하는 것이 곧 순종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2) 성도들 간의 겸손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의 형편을 돌아보는 배려라고 했습니다.

제가 요즘 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

서로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고,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4월 셋째 주일부터 시작하게 될

그리스도인의 관계 세우기성경공부가

정확히 20명 정원을 채웠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열심히 교제를 만들면서

성경공부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 간의 관계,

가정 안에서의 부부, 자녀 관계,

세상 속에서의 인간관계까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건강해 지기를 기대합니다.

4.

기쁜 일이 생기고

분위기가 좋을수록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겸손하게 차근차근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이름의 권세가 우리 교회를 덮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지켜주옵소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순종,

성도간의 사랑과 배려로

겸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 모두를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Good Friday

좋은 아침입니다.

Good morning!

1.

부활주일 전 주일을

종려주일(Palm Sunday),”

종려주일 이후 한 주간을

고난주간(Passion Week)”

고난주간이 끝나고

부활주일(Easter Sunday)”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고난 주간 마지막에는

성금요일이 있습니다.

성금요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뜻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루 동안 금식합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주는 식욕을 억제한 채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세상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교만과 고집스런 자아를

십자가에 매달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인생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2.

영어로 성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Good”이라고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합니다.

이에 대해서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Good에 해당하는 영어가 옛날에는 holy와 유사하게 쓰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Good Friday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성 금요일(Holy Friday)”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는, Good과 하나님을 뜻하는 God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God’s Friday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견해입니다.

셋째는, Good Friday를 오늘날 의미 그대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만 생각하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마냥 슬퍼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 설교한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선한(good)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은

말 그대로 Good Friday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세 번째 견해를 마음에 품고

올 해 Good Friday를 보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너무 거룩하게 형상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Good이라는 말에서 God을 연상하는 것은 왠지 임의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야 말로 악을 선으로 이긴 최고의 사건이기에

Good! Friday – 은혜가 넘치고 힘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견해를 택하시겠습니까?

3.

2010년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서머나 식구들과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믿음이 깊어질 때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속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고,

화평케 하는 자로 세상에 나갈 때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음에 품고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신앙의 여정/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박힌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우리를 위해 쓰셨네

(찬송가 147 1,2,3)

깊은 은혜를 체험하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목사 올림

(2010년 4월 1일 이-메일 목회서신)

소망의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밖에 나가면 봄기운이 감도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사는 bay 지역은 사시사철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나뭇가지에 새로운 잎이 돋아나고,

들에는 예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봄!

겨울이 가고 또 한번의 사계절이 새로 시작되는 때입니다.

겨울잠을 자던 동식물들이 잠에서 깨서 기지개를 켜는 계절입니다.

농부들이 가을의 수확을 눈에 그리며 씨앗을 뿌리는 계절입니다.

봄!

봄이라는 영어 표현이 spring입니다.

힘차게 점프하는 계절입니다.

한 해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샘과 같은 계절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짬을 내서 공원이나 들로 나가보십시오.

출퇴근 길에

길 옆에 핀 꽃들과 가로수를 보면서 봄을 느껴보십시오.

봄기운이 온 몸으로 쏵-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실 겁니다.

2.

오늘 오후에

다음 달 속회 강사님들께 드릴 공과 해설지를 만들면서

4월 마지막 주에 공부할 성경본문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로마서 14장 13절 말씀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하나님”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은혜는

모든 기쁨과 평강”그리고 “소망”이라고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배웁니다.

파란 색으로 된 단어들을 가만히 묵상해 보십시오.

추운 겨울을 지내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올 것입니다.

봄과 같은 인생!

봄과 같은 신앙!

봄과 같은 소망!

하나님!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하루하루가

소망의 하나님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봄과 같은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25일 이-메일 목회서신)

숨은 사람 가꾸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미국에 온지 열두 해가 다가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커네티컷의 한 형제께서

이민목회를 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셨습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공부 끝내고 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한 치 앞길을 알 수 없듯이

그때부터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고

저는 지금 이민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는 좋아하던 실내축구도 내려놓고

젊었다고 생각하면서 지고 다니던 가방도 내려놓을 때가 되는가 봅니다.

앞 일을 두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제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서 배웁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동안(童顔)이라는 얘기를 줄곧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한편으로는 좋고,

또 한 편으로는 제 나이가 있는데 은근히 무시당하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 나이를 그대로 알아봅니다.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10년을 위로 볼 것 같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습을 보아도

올해 들어서 바짝- 얼굴이 망가진(?) 듯 합니다.

탄력을 잃었습니다.

머리 숫자도 줄어들고 이마가 반들반들 해지면서 넓어집니다.

이것이 인생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우리 권사님들은 제가 젊어서 좋답니다.

저에게 청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청춘예찬(靑春禮讚)을 외치면서 살 생각입니다.

2.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주는 교훈을 하면서

우리의 외모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베드로서가 쓰여질 초대교회 당시에도

외모를 꾸미는 일들이 꽤 많았나 봅니다.

이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숨은 사람(the hidden person)”을 꾸미라고 가르쳐줍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겉 사람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겉 사람은 급격하게 아름다움을 잃어갑니다.

반면에 숨은 사람을 꾸미는 것은

겉 사람과 상관없이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precious in sight of God)”입니다.

숨은 사람을 꾸미는 비결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우스”는

“넉넉함” “부드러움”과 더불어 “겸손함”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둘째로, “안정된 심령(quiet spirit)”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매우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온유함이나 평온함 모두

삶의 깊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모신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온유하고 평온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움(imperishable beauty)이랍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이기에

얼핏 봐서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귀면 사귈수록

그윽한 인간미와 신앙의 향기가 드러나는 아름다움입니다.

3.

사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겉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10년 젊어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숨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온유함”과 “평온함”으로 가꾸어지는 “숨은 사람”입니다.

사순절의 막바지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무엇보다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숨은 사람”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가꾸기 원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겉모습도 아름다우십니다.

젊은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성도님들도 모두 10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아침 저는

서머나 성도님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하나님,

우리 서머나 성도님들은

내면이 아름다우신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임을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18일 이-메일 목회서신)

나를 들으시는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경제가 좋아지는 것 같은데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고 힘이 듭니다.

한간에서는 더블딥(다시 한번 경제위기가 찾아 올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예측은 아주 크게 빗나갈수록 박수칠 일입니다.

경제가 얼른 회복되어서

서머나 식구들의 살림살이는 물론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필 날이

하루속히 찾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한국에 막- 노래방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의 18번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였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요즘도

마음이 답답할 때는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비록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아니어도 마음이 찡–해 집니다.

힘이 들거나 반대로 생활이 안이해 질 때

즐겨 읽는 시(詩)도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랍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시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독자의 입장에서 시를 읽어 내려가면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

우리의 길 되신 사랑의 예수님이 마음 속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봄 길을 걷는 인생!

길이 끝난 곳에 길이 되고

사랑이 끝난 곳에 사랑으로 남아있는 인생!

한번뿐인 인생길을 가면서

우리들 마음 속에 그려볼 만한 인생 아닐까요?

신앙과 목회의 여정을 가면서

“봄 길”을 걸어가고 싶은 소망을 마음에 늘 품어봅니다.

2.

어제는 수요예배에서

“미가서” 공부를 모두 마쳤습니다.

1장부터 7장까지 함께 통독하는 시간도 가졌지요.

미가서 7장은

하나님의 구원메시지입니다.

백성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그리고 찬양으로 미가서가 끝이 납니다.

그 가운데 미가서 7장 7절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는 듯할 때,

“강물이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이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길도 끝난 것처럼 생각될 때,

아니 어려움 없이 인생이 잘 펼쳐질 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언제나 마음에 품고 그대로 고백해야 할 말씀입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But as for me, I will look to the Lord)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 I will wait for the God of my salvation)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My God will hear me)

요즘 출판된 개역개정이나 표준새번역은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도다”(개역개정)

“내 하나님께서 내 간구를 들으신다” (표준새번역)

그런데 히브리어 본문은

개역성경의 번역이나 영어번역과 똑같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들으시리로다!!!

(My God will hear me)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는 물론이고

우리의 몸짓, 신음, 감사, 찬양, 마음 등등 우리의 삶 전체/존재 전체를

통째로 들어주신다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할렐루야!

봄이 찾아 왔습니다.

우리 모두 미가 선지자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길을 힘차게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걸어갑시다.

하나님,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기도와

그 삶과 모든 것을 주께서 들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11일 이-메일 목회서신)

사순절을 지내면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lent)이 시작되고

보름이 지났습니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시작된 사순절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부활절이 오기 전 40일 동안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사순절은 아주 일찍부터 초대교회에서 지켜졌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순절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려는 성도들이

부활절 아침에 받게 될 세례 예식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기 위해서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신앙을 갖는 것은 그 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new life)으로 들어가는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것은 생명의 위협도 불사해야 하는

비장한 결단이었기에 40일 동안 기도하면서 준비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영아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사순절 동안이 세례 교육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순절은 기존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다시금 새롭게 하는(renewal) 절기로 바뀌게 됩니다.

2.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기도” “금식”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40일은 1년 365일의 10분의 1이 조금 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을 경건하게 지내는 것은

한 해의 삶 가운데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십일조”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의 사순절 신앙을 본받아서

예수님을 처음 믿던 때를 기억하고

첫사랑의 설렘과 뜨거움 속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또한 사순절을 보내면서

서머나 식구들 각자

하나님 앞에서 경건의 훈련 덕목을 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시고

신앙이 새롭게 되는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사순절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신앙 훈련의 기회요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면서

그 은혜 속으로 깊이 잠기는 시간임을 꼭 기억합시다.

하나님,

2010년의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 교회와 서머나 식구들의 삶이 정결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뜨겁게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3.4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