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s Day 를 보내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예배시간에 함께 부른

어머님의 은혜는 여느 복음송가만큼

우리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아무리 갚아도 모두 갚을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겠지요.

철이 들고 여유가 생겨서 갚으려고 하면

부모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저 역시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죄송스러운 마음과 그리운 마음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더군요.

2.

Mother’s day 다음 날에는

매년 그렇듯이 할머니 권사님들을 모시고

Calistoga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부부까지 12분이 하룻밤을 묶었고

세 분이 중간에 왔다 가셨습니다.

이번에 다녀오면서 기쁜 일은

우리 권사님들께서 아주 흥겹게 다녀오셨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Napa winery에 잠깐 들렸을 때는

마치 술에 취하신 듯(?) 노랫가락을 하시면서 개인기를 뽐내셨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옆에 있던 미국 분들도 박수를 쳐 주면서 흥을 돋았습니다.

첫날 밤에는 전도사님께서 미리 복사해 오신

성경목록가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은혜로운 찬양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실 때는

우리 교회를 지탱하는 뿌리가 바로 권사님들이심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네 번째 온천여행인데

우리 권사님들의 기력이 조금씩 약해 지심을 봅니다.

팔순에 수영복을 입으신 몸매는 여전하시고 멋지신데

어딘지 모르게 기운이 없어 보이실 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기도해야지요!

우리 교회가 이제 아름답게 부흥하는 것을

전도사님과 권사님들께서 보시기를

3.

저는 우리 교회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인생 길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눈으로 보면서 배웁니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들고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더욱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4 15일을 한국에서는 스승의 날로 지키는데

바로 우리 할머니 권사님들이 저의 인생 스승님들이십니다.

전도사님 그리고 권사님들,

부디 믿음 안에서 건강하셔서 합니다.

지금 곧바로 우리 교회의 어르신들을 위해서

1분 동안만 기도합시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 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라.

너희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19:32)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5 14메일 목회서신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LA에서 열린 감리교 연회가 있어서

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물 흐르듯이 쉬임없이 흘러서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이렇게 올 한 해도 빠르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난 주일 설교처럼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더 나가서

세상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아야겠습니다.

마음에 열정(passion)만 간직하고 있으면

분명히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저는 종종 좋은 책을 만나면

하루에 한 권을 모두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도 짐 월리스라는 분이 쓰신

회심이라는 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회심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동안 적당히 믿었다면 한번 제대로 믿어보기로 결심하는 것이 회심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지요.

짐 월리스는 이 책에서 회심을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세상,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신앙의 지경을 나 중심에서 세상으로까지 넓게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웅비를 펴는 것입니다.

회심한 사람의 특권이 기도입니다.

이에 대해서 짐 월리스의 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기준을 형성하는 틀을 바꾼다. 기도는 단지 활동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기도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 곧 세상의 가장 강력한 세력들에 대항하여 치르는 영적 전쟁에서

사용되는 강력한 무기임을 이해해야 한다

기도는 다른 활동을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행동의 토대이다.

우리들이 늘 기도합니다.

교회적으로 <?xml:namespace prefix = st1 />저녁 10시가 교회를 위한 기도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거나

다른 방법을 썼는데 안되어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거나

다른 일을 모두 하고 남는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등은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행동과 삶의 토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골방기도야 말로

우리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합시다.

임없이 기도하면서 하루를 살아냅시다.

그리고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므로

기도를 우리 삶의 영적토대(spiritual foundation)로 삼아 봅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선한 삶을 삽니다.예수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57일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의 비결 12가지

좋은 아침입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서 그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실제 삶 속에서 지키기 어려운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범사에 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범사를 풀어서 쓰면 모든 일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이라면 좋은 일만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생겨도

그것을 두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신앙잡지에

범사에 감사하는 비결 12가지가 실렸습니다.

저녁에 한 가지씩 읽고 저에게 적용해 보니

제 삶 속에 감사가 널려 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12가지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을 개발하십시오.

2. 지나치기 쉬울 만큼 작고 평범한 일들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3. 삶 속에 숨겨진 축복들(hidden blessings)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4. 고난 중에도 감사하십시오.

5. 삶 속에 엄습하는 두려움이나 염려를 바라보지 말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6.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예를 들면 불치병을 앓고 있는)을 돕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7. 하루 중에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감사의 기도만 드리십시오.

8. 이웃들이나 교인들과 감사의 제목들을 나누십시오.

9.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금함으로 그 속에서 잊고 살았던 감사를 찾으십시오.

   (, 금식을 통해서 먹을 수 있는 능력과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10. 하나님께 받은 기도응답이나 약속을 낱낱이 기록하십시오.

11.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건네십시오.

12.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넉넉한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 가운데 저는 숨겨진 축복(hidden blessing) 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 삶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숨겨진 축복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삶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4 23일 이메일 목회서신)

부활절 아침에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삼일 째 되던 날. 평소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료를 바르고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간 줄 알았습니다. 서둘러 베드로와 제자들을 무덤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상대로 예수님의 시체는 무덤에 없었습니다. 대신에 흰옷 입은 천사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생전에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제자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같아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어찌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성경에 예언한 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6장 4절에서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죄와 사망의 세력을 없애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지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체험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을 때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을 체험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전 것이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09년도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기에 부활절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죽음을 너머선 완전히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 들어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삶 속에 죽음의 세력을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생명을 힘입어야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의 모든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묵묵히 골고다 언덕을 올랐듯이 우리 교회에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말없이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봐야합니다. 골고다 언덕 너머에 부활의 아침이 밝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 모두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망권세를 물리치신 예수님을 꼭 붙잡고 앞으로 나갑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서! -河-

고난주간 묵상 – 혼자이신 예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맞는 고난주간이지만

미국에 온 이래 고난주간에는 늘 이런 저런 일이 생겨서

저절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을 봅니다.ㅠㅠ

미국에 와서 첫 번째로 맞은 고난주간에는

제 아내가 무척 아팠습니다.

갑자기 장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밤새도록 고생하고

결국 응급실에 가서 2 3일을 입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병원비가 무서워서 의사에게 아프지 않다고 말하고

일찍 퇴원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틀 후에 모두 회복되어서

뉴욕까지 내려가서 부활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부활의 능력을 몸소 체험했던 사건이었기에

10여년이 흘렀지만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2.

이번 주간도 예사롭지는 않았습니다.

Peace-making으로 교회의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었기에

이제 앞으로만 나가면 될 것이라고 믿고 준비하고 있는데

상대편 교회에서 신문광고를 내면서

전화도 여럿 받고

이런 저런 얘기도 들려오고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예사로운 약속도 아닌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증인들(Christian mediators) 앞에서

한 약속은 분명히 지켜야 온당한데 말입니다.

Christian Peace-making이라는 용어에 합당한

성숙함이 요청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고 거기에 다시 걸려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든지

우리가 그 동안 꿈꿔왔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역을 꼭 이뤄내야 합니다.

꿋꿋하게

한 마음으로

선한 뜻을 품고

3.

이번 주 큐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여정을

매일같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월요일 큐티에서 (18:1-14)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잡히셨습니다.

그 모습에 원통했던 베드로가 말고라는 군인의 귀를 자릅니다.

그때 예수님은 검을 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20:52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요일 큐티에서는 ( 18:15-27)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겠다던 베드로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가요?

힘 없고 두려우면 그렇게 되는건가요?

닭이 울기 전까지는

스스로 깨우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지요?

 

잡혀가신 예수님은

혼자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십니다.

3년간이나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떠났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던

빌라도도 군중들의 편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호산나를 부르면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왕으로 여겼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지르는 폭도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 능력과 권세를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세상의 극악무도한 강도보다 못하게 대우했습니다.

조롱하고,

침을 뱉고,

상상할 수 없는 언행을 예수님께 퍼 부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외롭게

우리가 당할 고초와 조롱과

우리의 죄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4.

저는 이번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혼자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그 모진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을 마음에 새겨보니

예수님께 괜시리 송구스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죄도 없으신 분이 우리 대신 그 길을 가셨으니까요!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들이 홀로/외롭게 인생길을 걸어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실테니까요

니 우리와 함께 걸어가실테니까요.

2009년 고난주간을

외롭게 보내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계십니까?

고난주간에 걸맞게(?) 힘겹게 보내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홀로 오르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서 꿋꿋하게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십자가 너머에

부활의 아침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49일 이메일 목회서신)

충성의 믿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 마지막 주간을 맞으면서

책꽂이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서 다시 읽었습니다.

필립 얀시의 책인데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

얼핏 보면 하나님 앞에서 해서는 안될 말처럼

불경스럽게 들립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가면

예수님을 믿으면서 갖고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담백하고 실제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커다란 질문을 제기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가?

선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의 보상이 임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선하게 산 사람에게 큰 재앙이 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과 답변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속 시원하게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고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보여주시지 않는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고 나타나실 시간인데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때 초신자의 경우,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지에 대해서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공평성, 침묵, 숨어계심은

신앙의 회의가 찾아 왔을 때

우리들도 종종 갖는 질문들입니다.

2.

위의 세가지 질문과 관련해서

필립 얀시는 구약 성경의 욥기를 갖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사이의 엄연한 격차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줍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믿음을 언급합니다.

하나는,

기도하는 것들이 곧바로 응답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있으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구하는 편안한(?) 믿음입니다.

또 다른 믿음은,

충성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인생길에 뿌옇게 안개가 끼거나 먹구름이 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고

자꾸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 때에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묵묵히 따르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얀시는 충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깊은 차원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돌 사이에 피는 풀 한 포기와 같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3.

불경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이런 저런 뉴스를 접하면서/

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닥쳐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질문들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일수록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나님께 최고의 고백과 감사를 드리기 원합니다.

딱딱한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와서

결국에는 예쁜 꽃을 피우는 풀 한 포기와 같은

귀한 믿음을 소유하시는 서머나 식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 힘차고 꿋꿋하게 사시기를

샬롬

하목사 올림

하나님의 증인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

새 예배 장소에서의 첫 예배는

마이크 때문에 긴장했었지만

예배가 진행되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빠짐없이 오신 서머나 식구들께도

감사한 마음과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이번 주부터 새벽기도회가 없으니

마음이 꽤 허전합니다.

대신에 그 동안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잠이 쏟아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는데

하나님 사랑합니다라는 제 고백에 감격하셔서

요즘 저를 부쩍 많이 사랑해 주시나 봅니다.

지난 번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 뒷부분을 읽으면서 위로와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을 새벽마다 주시는지

제 마음에 받아 넣느라 힘겨울 정도였습니다.

요즘은 주보에 나오는 말씀을 갖고 (“생명의 삶말씀)

큐티를 하는데 또 다시 이사야서 뒷부분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이사야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힘차게 앞으로 나가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8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개역개정)

8절 한 가운데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You are my witness)”

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한 분 뿐이시고,

정말로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변호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증인은 정직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대변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각자의 삶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을 변호합시다.

하나님을 자랑하면서 하루를 살아 봅시다.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샬롬

하목사

p.s.1. 지난주에 교회계약을 하고 와서 그냥 잠들어버려서 이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

(2009년 3월 12일 이-메일 목회서신)

주님의 나의 방패

좋은 아침입니다.

어떤 일을 빼놓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갑자기 LA를 다녀오게 되어서

목회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 자신을 방어해 주고

막아주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방패막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어느 정도 컸을 때는 친구끼리 서로를 방어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사십 대 후반이 되다 보니

제 자신이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보호해 줄 분들은 점점 사라지고,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들은 점점 늘어갑니다.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이것이 인생이겠지요?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시편 7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깨우쳐줍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My shield is God Most High

Who saves the upright in heart.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견디는 것이 능력입니다.

경솔하게 앞으로 나가는 것 보다

현재의 자리를 잘 지키는 것도 지혜입니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방패 속에 들어가는 비결은

정직한 삶입니다. 투명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모든 서머나 식구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샬롬

하목사

(2009년 2월 26일 이-메이 목회서신)

온전한 믿음

지난주까지 수요예배에서는 신약 속에 나타난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작년 연말까지 연속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교했고 새해 들어서 신약 속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 본 것입니다. 구약만 생각하면 아브라함은 영락없는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신약에서 비로소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인물로 재해석하면서 아브라함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이 되고 우리들 역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3장 6-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아브라함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등장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 우리 안에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단순히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행하고, 하나뿐인 아들이삭을 바친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그의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고 가르쳐줍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걸맞은 행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신행(信行)이 일치했던 인물이었고 결국 하나님의 벗(God’s friend)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에서 말씀드렸듯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후에 지나치게 믿음이 강조되었습니다. 물론 로마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율법의 행위나 각자의 행동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믿음”속에 행함이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과 삶 속에 믿음의 행위가 없는 것은 야고보의 말대로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 뒤에는 반드시 신앙의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위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한 주간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기사가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장식했습니다. 종교와 신분, 당파와 성별을 떠나서 40만에 이르는 추모객은 물론 국내외의 모든 국민들이 그 분의 소천을 추모했습니다. 그것은 그 분께서 신앙과 삶을 통해서 성직자의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개신교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릅니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런 세간의 비판에 일일이 변명하기보다 삶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일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확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선한행실로 신앙과 삶 속에 선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임 꼭 기억합시다. -河-

여호와 닛시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에 불경기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치솟는 것을 보면서

직장에 다니시는 서머나 식구들과 자녀들을 위해서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말씀 드렸듯이

경제가 안 좋을 때는 잘 견디는 것도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또한 이럴 때 일수록 불평보다 감사의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이번 주 뉴스위크에는 흥미로운 기사들이 몇 가지 실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사회주의자들이 되고 있다(We are all socialists now)”

약간의 파격적인 커버스토리와 붉은 손과 푸른 손이 서로 악수하는 삽화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한참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몇 장을 넘기니 요즘 신학교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신학교들이 전반적으로 10% 정도의 입학신청서가 늘었답니다.

불경기 때나 세상이 뒤숭숭할 때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랍니다.

한계를 느꼈을 때 절대자를 찾는 것은 인간의 회귀본능 같습니다.

그렇다고 신학교 졸업생들이 모두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예일대학 신학대학원을 예로 들면서

절반 정도가 목회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선단체나 비영리단체 등에서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생을 설계한다는 색다른 조사결과도 보도했습니다.

어려울 때, 한번쯤 멈춰 서서

자신이 걸어 온 인생길을 돌아보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신학교 기사에서 한 장을 더 넘기니

이번에는 이야기하기(story-telling)”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

예전에 할머니나 부모님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를 기억해 보자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우리 부모님 세대들도 모두 겪으셨습니다.

아니 더 심한 전쟁과 환난도 이겨내셨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들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힘을 얻고,

우리들 역시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서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남겨 주어야겠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멈춰 있으면 그것은 말 그대로 패배입니다.

차분하게 어려움에 대처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면서 격려해야 합니다.

어제 아침에 묵상했던 이사야서 62 10절이

불경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Pass through, pass through the gates!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Prepare the way of the people.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Build up, build up the highway!

돌을 제하라                           Remove the stones.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Raise the banner for the nations.

힘들수록 멀리보고 넓게 생각하고

신 하나님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여호와 닛시,

하나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주어진 인생길을 힘차게 걸어갑시다.

샬롬

하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