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요절말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이전 감사 및 장로권사 취임 축하예배는

우리 모두의 기도와 섬김으로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교회가 꽉찬 것을 보면서

우리 교회의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가 그만큼 부흥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인걸요.

우리들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길 기도합시다.

모두모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멀리서 기도와 마음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

어젯밤에는 그 동안 밀렸던 급한 숙제를 했습니다.

미루어놓고 하지 못했던 이메일도 보내고,

글도 써서 답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7월 코스타에서

조장들의 멘토로 섬기게 되는데

제가 맡은 동부지역 조장 홈페이지에 가서 제 소개 글도 올려놓았습니다.

15 15답을 하라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밝고 창의적인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조심 조심 소개글을 올렸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요절인 마태복음 6 33절 상반절을 적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살기로

청년시절에 결심하고 이 말씀을 저의 평생 요절로 삼았습니다.

그때는 목회를 생각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인생을 살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최고의 핵심가치로 삼고

제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하나님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도 이 말씀을 붙잡고 삽니다.

마태복음 6 33절의 상반절만

제 인생의 요절로 삼은 이유가 있습니다.

후반절은 이렇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대부분 마태복음 6 33절을 묵상하면서

상반절 보다 후반절에 귀가 솔깃합니다.

모든 것을 더하고 얻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 설교처럼 주객이 전도된 것이지요.

또한 마태복음 6 33절 후반절은

하나님께서 해 주실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은혜의 삶입니다

후반절의 말씀이 저에게도 평안과 확신을 더해주지만

저는 상반절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서 제 할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설령 모든 것을 더해 주지 않으셔도

저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가 수행해야 할 최고의 사명이고

마땅히 실천해야 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들의

평생 요절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을 구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행여나 마태복음 6 33절을 읽고 묵상하면서도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을 욕심껏 구하면서 살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너무나 눈에 보이는 결과에 연연합니다.

그것을 두고 서로를 판단합니다.

오십보 백보요 도토리 키재기인데 말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딱 맞춰놓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살아봅시다.

성령 안에서 의와 기쁨과 화평을 누려봅시다.

인생의 축을

“나”에서 “하나님”께로 옮겨 놓읍시다.

4.

지난 주일 함께 불렀던 복음송가를 일주일 내내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형제(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여러분 모두를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년 6월 4메일 목회서신

행복한 사람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전에

한국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중고등부 교사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입시공부에 지쳐있는 아이들에게

영화제목을 소개하면서

성적이 곧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네들이 지금 어느덧 30대가 되어 있을 텐데

모두들 행복하게 살겠지요?

학창시절이야 성적이 제일 먼저라고 생각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이 모든 것들을 합쳐서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성공의 특징은

회사에서 받은 연봉, 사업에서 올리는 매출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가격과 같이

수치로 계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성공이 숫자로 비교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미련을 갖고 성공을 쫓아 갑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개를 푹숙이고

반대로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면서 살아갑니다.

2.

성공이라는 말은

우리들 신앙과 교회 안에도 슬며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면서

성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공이라는 말을 예수님께 적용해 보면

이것이 성경적인 개념이 아님을 금방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잣대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지 못하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핍박하고 급기야 십자가에 못박았던

사람들이 반대로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공이라는 말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저 역시 성공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제가 좋아하는 말은 행복(happiness)”입니다.

성공과 행복이 늘 비례하지 않습니다.

아니 행복은 성공이라는 세상의 잣대를 초월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성공을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어야 합니다.

그것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할 푯대입니다.

4.

수님께서 행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그 유명한 팔복(The Beatitude)”이 나옵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 복이 있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마카리오스에는

(blessed)이라는 뜻과 함께 행복(happy)”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팔복은

기독교인의 행복선언문입니다.

이 아침에 함께 묵상하고

오늘 하루를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갑시다.

제가 마태복음 5 3- 10절에서

행복으로 바꿔서 옮겨보았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합니다.

배불리 채움을 받을 것입니다.

자비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자비롭게 대해 주실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부르실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이라는 말을 행복으로 바꾸니

말씀이 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으십니까?

가능하시면 위의 팔복 말씀만 인쇄하셔서

중간 중간에 읽고 묵상하시면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삶이 더욱 행복해 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실 겁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뒷전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521일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때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서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때”라고 하면 무엇보다 시간의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적당한 시간을 포착하는 것이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간을 따라서 그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시간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때”라는 말 속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기회 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것을 잡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예배장소에 온 지 어느덧 3개월이 다가옵니다. 이제는 처음에 어색했던 분위기도 적응이 되었고 차분하게 교회가 재도약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있고 여기가 좋다고 안주한다면, 하나님의 때를 잡지 못하고 흘려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매일 밤 10시에 온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서 정해진 시간에 무릎을 꿇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할 때, 교회는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꿈꾸는“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 교회,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있는 교회”로 세워갈 줄 믿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세상에 밝히 드러내지 않고 소극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교회는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거듭 태어나야합니다. 5월 31일에 있을“교회 이전 감사 및 장로/권사 취임 축하예배”는 우리 교회를 세상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가능하면 많은 손님들을 초청해서 자리를 가득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함께 축하하고 기도해 주실 수 있는 분들을 모두 초청하고 싶습니다. 이번 주부터 지역신문에 게재되는 교회 광고를 이번 행사와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자료로 사용하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번에 취임하시는 임원들과 성도님들께서 장학금을 마련해 주셔서 우리 교회가 세워진 이래 처음으로 지역사회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장학금의 이름도 정하고 장학위원회도 구성해서 도움이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지급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밖에도 홈리스 돕기, 영어교실, 음악교실, 컴퓨터 교실 등 지역사회를 섬기는 프로그램들을 소개했

니다. 이 모든 일들이 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씩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선교지 한곳, 농촌교회 한 교회, 소년소녀 한 가정”을 매월 1천불씩 돕는 구제와 선교의 길도 활짝 열리길 바랍니다. 여기까지 이르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멋진 교회로 세워갑시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줄 믿습니다. -河-

Mother’s Day 를 보내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예배시간에 함께 부른

어머님의 은혜는 여느 복음송가만큼

우리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아무리 갚아도 모두 갚을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겠지요.

철이 들고 여유가 생겨서 갚으려고 하면

부모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저 역시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죄송스러운 마음과 그리운 마음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더군요.

2.

Mother’s day 다음 날에는

매년 그렇듯이 할머니 권사님들을 모시고

Calistoga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부부까지 12분이 하룻밤을 묶었고

세 분이 중간에 왔다 가셨습니다.

이번에 다녀오면서 기쁜 일은

우리 권사님들께서 아주 흥겹게 다녀오셨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Napa winery에 잠깐 들렸을 때는

마치 술에 취하신 듯(?) 노랫가락을 하시면서 개인기를 뽐내셨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옆에 있던 미국 분들도 박수를 쳐 주면서 흥을 돋았습니다.

첫날 밤에는 전도사님께서 미리 복사해 오신

성경목록가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은혜로운 찬양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실 때는

우리 교회를 지탱하는 뿌리가 바로 권사님들이심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네 번째 온천여행인데

우리 권사님들의 기력이 조금씩 약해 지심을 봅니다.

팔순에 수영복을 입으신 몸매는 여전하시고 멋지신데

어딘지 모르게 기운이 없어 보이실 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기도해야지요!

우리 교회가 이제 아름답게 부흥하는 것을

전도사님과 권사님들께서 보시기를

3.

저는 우리 교회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인생 길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눈으로 보면서 배웁니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들고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더욱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4 15일을 한국에서는 스승의 날로 지키는데

바로 우리 할머니 권사님들이 저의 인생 스승님들이십니다.

전도사님 그리고 권사님들,

부디 믿음 안에서 건강하셔서 합니다.

지금 곧바로 우리 교회의 어르신들을 위해서

1분 동안만 기도합시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 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라.

너희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19:32)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5 14메일 목회서신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LA에서 열린 감리교 연회가 있어서

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물 흐르듯이 쉬임없이 흘러서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이렇게 올 한 해도 빠르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난 주일 설교처럼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더 나가서

세상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아야겠습니다.

마음에 열정(passion)만 간직하고 있으면

분명히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저는 종종 좋은 책을 만나면

하루에 한 권을 모두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도 짐 월리스라는 분이 쓰신

회심이라는 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회심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동안 적당히 믿었다면 한번 제대로 믿어보기로 결심하는 것이 회심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지요.

짐 월리스는 이 책에서 회심을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세상,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신앙의 지경을 나 중심에서 세상으로까지 넓게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웅비를 펴는 것입니다.

회심한 사람의 특권이 기도입니다.

이에 대해서 짐 월리스의 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기준을 형성하는 틀을 바꾼다. 기도는 단지 활동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기도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 곧 세상의 가장 강력한 세력들에 대항하여 치르는 영적 전쟁에서

사용되는 강력한 무기임을 이해해야 한다

기도는 다른 활동을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행동의 토대이다.

우리들이 늘 기도합니다.

교회적으로 <?xml:namespace prefix = st1 />저녁 10시가 교회를 위한 기도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거나

다른 방법을 썼는데 안되어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거나

다른 일을 모두 하고 남는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등은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행동과 삶의 토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골방기도야 말로

우리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합시다.

임없이 기도하면서 하루를 살아냅시다.

그리고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므로

기도를 우리 삶의 영적토대(spiritual foundation)로 삼아 봅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선한 삶을 삽니다.예수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57일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의 비결 12가지

좋은 아침입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서 그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실제 삶 속에서 지키기 어려운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범사에 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범사를 풀어서 쓰면 모든 일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이라면 좋은 일만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생겨도

그것을 두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신앙잡지에

범사에 감사하는 비결 12가지가 실렸습니다.

저녁에 한 가지씩 읽고 저에게 적용해 보니

제 삶 속에 감사가 널려 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12가지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을 개발하십시오.

2. 지나치기 쉬울 만큼 작고 평범한 일들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3. 삶 속에 숨겨진 축복들(hidden blessings)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4. 고난 중에도 감사하십시오.

5. 삶 속에 엄습하는 두려움이나 염려를 바라보지 말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6.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예를 들면 불치병을 앓고 있는)을 돕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7. 하루 중에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감사의 기도만 드리십시오.

8. 이웃들이나 교인들과 감사의 제목들을 나누십시오.

9.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금함으로 그 속에서 잊고 살았던 감사를 찾으십시오.

   (, 금식을 통해서 먹을 수 있는 능력과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10. 하나님께 받은 기도응답이나 약속을 낱낱이 기록하십시오.

11.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건네십시오.

12.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넉넉한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 가운데 저는 숨겨진 축복(hidden blessing) 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 삶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숨겨진 축복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삶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4 23일 이메일 목회서신)

부활절 아침에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삼일 째 되던 날. 평소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료를 바르고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간 줄 알았습니다. 서둘러 베드로와 제자들을 무덤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상대로 예수님의 시체는 무덤에 없었습니다. 대신에 흰옷 입은 천사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생전에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제자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같아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어찌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성경에 예언한 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6장 4절에서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죄와 사망의 세력을 없애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지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체험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을 때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을 체험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전 것이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09년도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기에 부활절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죽음을 너머선 완전히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 들어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삶 속에 죽음의 세력을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생명을 힘입어야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의 모든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묵묵히 골고다 언덕을 올랐듯이 우리 교회에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말없이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봐야합니다. 골고다 언덕 너머에 부활의 아침이 밝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 모두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망권세를 물리치신 예수님을 꼭 붙잡고 앞으로 나갑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서! -河-

고난주간 묵상 – 혼자이신 예수님

좋은 아침입니다.

1.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맞는 고난주간이지만

미국에 온 이래 고난주간에는 늘 이런 저런 일이 생겨서

저절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을 봅니다.ㅠㅠ

미국에 와서 첫 번째로 맞은 고난주간에는

제 아내가 무척 아팠습니다.

갑자기 장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밤새도록 고생하고

결국 응급실에 가서 2 3일을 입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병원비가 무서워서 의사에게 아프지 않다고 말하고

일찍 퇴원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틀 후에 모두 회복되어서

뉴욕까지 내려가서 부활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부활의 능력을 몸소 체험했던 사건이었기에

10여년이 흘렀지만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2.

이번 주간도 예사롭지는 않았습니다.

Peace-making으로 교회의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었기에

이제 앞으로만 나가면 될 것이라고 믿고 준비하고 있는데

상대편 교회에서 신문광고를 내면서

전화도 여럿 받고

이런 저런 얘기도 들려오고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예사로운 약속도 아닌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증인들(Christian mediators) 앞에서

한 약속은 분명히 지켜야 온당한데 말입니다.

Christian Peace-making이라는 용어에 합당한

성숙함이 요청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고 거기에 다시 걸려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든지

우리가 그 동안 꿈꿔왔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역을 꼭 이뤄내야 합니다.

꿋꿋하게

한 마음으로

선한 뜻을 품고

3.

이번 주 큐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여정을

매일같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월요일 큐티에서 (18:1-14)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잡히셨습니다.

그 모습에 원통했던 베드로가 말고라는 군인의 귀를 자릅니다.

그때 예수님은 검을 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20:52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요일 큐티에서는 ( 18:15-27)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겠다던 베드로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가요?

힘 없고 두려우면 그렇게 되는건가요?

닭이 울기 전까지는

스스로 깨우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지요?

 

잡혀가신 예수님은

혼자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십니다.

3년간이나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떠났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던

빌라도도 군중들의 편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호산나를 부르면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왕으로 여겼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지르는 폭도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 능력과 권세를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세상의 극악무도한 강도보다 못하게 대우했습니다.

조롱하고,

침을 뱉고,

상상할 수 없는 언행을 예수님께 퍼 부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외롭게

우리가 당할 고초와 조롱과

우리의 죄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4.

저는 이번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혼자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그 모진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을 마음에 새겨보니

예수님께 괜시리 송구스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죄도 없으신 분이 우리 대신 그 길을 가셨으니까요!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들이 홀로/외롭게 인생길을 걸어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실테니까요

니 우리와 함께 걸어가실테니까요.

2009년 고난주간을

외롭게 보내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계십니까?

고난주간에 걸맞게(?) 힘겹게 보내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홀로 오르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서 꿋꿋하게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십자가 너머에

부활의 아침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49일 이메일 목회서신)

충성의 믿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사순절 마지막 주간을 맞으면서

책꽂이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서 다시 읽었습니다.

필립 얀시의 책인데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

얼핏 보면 하나님 앞에서 해서는 안될 말처럼

불경스럽게 들립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가면

예수님을 믿으면서 갖고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담백하고 실제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커다란 질문을 제기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가?

선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의 보상이 임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선하게 산 사람에게 큰 재앙이 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과 답변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속 시원하게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고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보여주시지 않는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고 나타나실 시간인데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때 초신자의 경우,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지에 대해서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공평성, 침묵, 숨어계심은

신앙의 회의가 찾아 왔을 때

우리들도 종종 갖는 질문들입니다.

2.

위의 세가지 질문과 관련해서

필립 얀시는 구약 성경의 욥기를 갖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사이의 엄연한 격차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줍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믿음을 언급합니다.

하나는,

기도하는 것들이 곧바로 응답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있으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구하는 편안한(?) 믿음입니다.

또 다른 믿음은,

충성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인생길에 뿌옇게 안개가 끼거나 먹구름이 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고

자꾸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 때에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묵묵히 따르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얀시는 충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깊은 차원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돌 사이에 피는 풀 한 포기와 같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3.

불경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이런 저런 뉴스를 접하면서/

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닥쳐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질문들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일수록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나님께 최고의 고백과 감사를 드리기 원합니다.

딱딱한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와서

결국에는 예쁜 꽃을 피우는 풀 한 포기와 같은

귀한 믿음을 소유하시는 서머나 식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 힘차고 꿋꿋하게 사시기를

샬롬

하목사 올림

하나님의 증인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

새 예배 장소에서의 첫 예배는

마이크 때문에 긴장했었지만

예배가 진행되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빠짐없이 오신 서머나 식구들께도

감사한 마음과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이번 주부터 새벽기도회가 없으니

마음이 꽤 허전합니다.

대신에 그 동안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잠이 쏟아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는데

하나님 사랑합니다라는 제 고백에 감격하셔서

요즘 저를 부쩍 많이 사랑해 주시나 봅니다.

지난 번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 뒷부분을 읽으면서 위로와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을 새벽마다 주시는지

제 마음에 받아 넣느라 힘겨울 정도였습니다.

요즘은 주보에 나오는 말씀을 갖고 (“생명의 삶말씀)

큐티를 하는데 또 다시 이사야서 뒷부분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이사야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힘차게 앞으로 나가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8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개역개정)

8절 한 가운데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You are my witness)”

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한 분 뿐이시고,

정말로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변호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증인은 정직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대변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각자의 삶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을 변호합시다.

하나님을 자랑하면서 하루를 살아 봅시다.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샬롬

하목사

p.s.1. 지난주에 교회계약을 하고 와서 그냥 잠들어버려서 이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

(2009년 3월 12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