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 : 섬기러 오신 예수님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성탄주일입니다. 지난 한달 여 대강절 기간동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성탄을 기다리면서 보냈습니다. 한 주간 한 주간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의 첫번째 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 (로고스) 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성탄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매 주일 고백하듯이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어둠과 죄에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달리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구약성경에서부터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곳입니다(미가5:2). 떡집이라고 불리는 매우 작은 마을입니다. 호적신고를 하러 온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숙소를 정하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은 짐승들이 사는 외양간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마가복음 10장은 작은 자와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혼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혼이라는 주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당시에 이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혼의 과정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성이 버려지는 이혼을 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질문했던 바리새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안수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이 어린이가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당시에 어린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약자였습니다.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께 가까이 올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제자들도 어린이가 자신들의 지경에 들어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맞아 주시고 무릎에 앉히십니다. 어린이가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두고 자칫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적용할 수 있는데 실제로 어린이들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와 같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주변인 즉 약한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낮고 약한 자를 환대하고 섬기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섬김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주셨고, 목숨까지 내어 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처럼 낮아짐과 섬김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8 : 산 위와 산 아래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스레 마음이 분주한 연말을 맞고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제일 먼저 아쉬움이 몰려오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대입해 보면 한 해의 삶에 주님의 손길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고 감사가 나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보름 남짓 남은 올 한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힘차게 새해를 맞으시길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향해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왕국을 세울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자신들을 예수님의 왼쪽과 오른쪽에 앉혀 주시길 바라는 인사청탁을 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종교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상이몽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장차 큰일을 해야 할 제자들인데 이들마저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기에 특별훈련을 시키시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광채 나는 흰옷을 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모하십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양쪽에 서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제사장들을 이겼고, 호렙산(시내산의 다른 이름)에서 미세한 음성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죽지않고 하나님께 들려 올라갔기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가 되면 엘리야가 먼저 와서 메시아의 도래를 알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엘리야에 비유하셨습니다 (막9:12).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세례받으실 때와 마찬가지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막9:7)라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얼떨결에 초막 세개를 짓고 산 위에 있겠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에게 산 위에서의 경험은 그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있을 곳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산 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때 확신이 생기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입장에서 돌아보게 됩니다. 훗날 흰옷 입은 성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은 산 위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산위에서의 놀라운 경험은 산 아래의 삶을 위한 준비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도 산 위의 경험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활동도 어떤 면에서 산위의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궁극적으로 산 아래 세상으로 흩어져서 그곳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지는 산 아래이기 때문입니다. -河-

마가복음 7 : 신앙고백

12월의 첫 번째 주일이자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두 개의 달력을 갖고 있습니다. 음력까지 합치면 세 개의 달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레고리력이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달력입니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주전 46년부터 지켜오던 율리우스 황제의 달력을 보완해서 만들었습니다. 1년을 365일로 삼고 4년 마다 2월에 윤달을 두는 체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력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서 일 년을 사는 방식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대강절 첫 번째 주일인 지난주부터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의 달력보다 한 달 일찍 시작하는 셈이지요.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대강절을 보내는 것은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서 우리들 마음에 촛불을 하나 더 밝히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방 땅 두로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신 말씀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방 지역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8장 전반부에는 사흘 동안 들판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굶주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보리 떡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나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행하셨지만,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이방 땅에서 행하셨습니다. 유대인들만 배불리 먹이러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 오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많은 기적을 베푸시지만, 눈이 감기고 귀가 닫힌 바리새인들과 적대자들은 여전히 표적을 구하면서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논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하십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어리둥절입니다. 배를 타고 가시면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니(8:15) 누룩이라는 말만 듣고는 사천 명을 먹이시고 남은 떡을 갖고 오지 않은 것을 책망하신다는 답답한 생각을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대적했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와중에도 쉬지 않고 복음은 전하셨습니다.

벳세다라는 곳에 가셔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고치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한 맹인을 고치신 사건은 7장에서 에바다(열려라)하시면서 귀를 열어주신 사건과 짝을 이룹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야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과 귀가 열리는 기적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십니다. 이어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8:29). 물론 베드로가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고백한 것은 아니기에 책망을 받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신앙고백 자체는 완벽합니다. 신앙 고백은 우리 신앙의 토대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참된 제자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6 : 대강절에

올 해가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달력이 한 장 남을 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이 납니다. 지나 온 한 해를 생각하면서 아쉬움에 젖기도 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갖게되고, 동시에 남은 한 달을 잘 지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12월은 어느 달 보다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길 원합니다.
12개월로 구성된 달력 외에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진 교회력을 갖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에 모여서 예배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모든 신앙의 근거를 부활에 두었고,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서 살려는 신앙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4세기 경부터 예수님의 생애에 맞춘 교회력으로 발전했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로 시작해서, 성탄절과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념하는 주현절(epiphany), 사순절(lent)과 부활절을 정점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절로 마무리됩니다. 일년 가운데 절반을 성령강림절 주간으로 지키는데, 강단 색깔이 초록색이듯이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신앙이 자라가는 기간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 (혹은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 4주 전부터 시작됩니다. 강단보는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보라색입니다.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켜가면서 대강절을 맞습니다. 우리 교회 강단에는 촛대가 없으니 온 교회가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 놓으면서 대강절 4주간을 보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12월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보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십니다. 마지막 때에,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온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만왕의 왕께서 오십니다.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심은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시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매 주일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빛되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이처럼 대강절은 기대와 소망의 절기입니다.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이지만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뜻깊게 대강절을 지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7장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일일히 트집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혜롭게 이들을 물리치십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수로보니게 출신의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리새인들과 달리 수로보니게 여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귀신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 개가 되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여인의 겸손한 마음과 믿음이 딸을 고쳤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河-

마가복음 5 : 둔한 마음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1620년 12월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해서 혹독한 겨울과 일 년 동안의 적응기간을 보낸 후에 첫 번째 추수를 한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축제를 벌인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왔지만, 추위와 풍토병으로 절반에 가까운 동지들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와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스콴토가 집을 짓고 사냥을 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은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감사의 잔치를 했습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 정신속에는 참된 신앙을 찾아서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의 신앙과 열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혹독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왔지만 그들 앞에 닥친 것은 가족과 신앙의 동지들을 잃는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이들은 꿋꿋하게 견뎠습니다. 돕는 손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신앙 가운데 힘차게 한 해를 시작했지만 지난 열한 달의 여정이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고, 몸과 마음이 힘든 말 그대로 순례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데 도움을 준 손길들과 함께 길을 걷는 동지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면부지의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을 도왔듯이 예상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심을 몸소 경험한 것입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해준 가족들과 참빛 식구들과 신앙의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하나님 앞에서 한 해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이웃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절기입니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우리가 여전히 살맛 사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6장에는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만 보면서 배척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6장 중간에는 세례요한의 죽음이 나옵니다.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옳은 소리를 한 세례요한을 죽게 한 헤로디아는 안하무인입니다. 마음이 완악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는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폭풍이 불어닥치자 두려움에 떱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고 바람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두고 마가는 제자들의 마음이 굳어져서 두려워했다고 일러줍니다.
행여나 우리 안에도 굳은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새 영으로 부드럽게 되길 원합니다(겔36:26). 굳은 마음이 있으면 감사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들의 사랑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4 : 기사와 이적

신약 성경의 복음서에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을 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표적(sign)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적 자체보다도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표적 이후에 그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마태, 마가,누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에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자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똑같이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서의 기적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시고, 병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의 표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기적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하면서 병 고침을 받거나 귀신이 쫓겨나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곤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이자 놀라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신앙에 확신이 생기고 역동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사와 이적에 매달리는 신앙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보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표적만을 구하고 집착하면 신앙이 왜곡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2천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는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고, 병에 걸리면 죄를 지은 결과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는 인구가 매우 적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풀어주고 대신 글을 기록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는 꼭 기적이 아니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의술을 통해서 병을 고치면서도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해 지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령하시니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의 세력이 침투해 있다면 달리다굼하고 일어나면서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3 : 감사하는 마음

어느덧 11월도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일 년 중에 11월은 어찌 보면 꽤 어중간해 보입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에 접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한 해가 다 갔다는 생각이 들고, 연말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세일 광고들이 우체통을 가득 채우고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한 해가 지나갔음을 알립니다. 그러다 보니 11월은 빠르게 때로는 없는 것처럼 훌쩍 지나갑니다.

저는 11월을 맞을 때마다, “감사”를 떠올립니다. 물론 우리 삶에 늘 감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감사보다 불평, 염려,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믿음으로 부정적인 마음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그런 마음마저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려 하지만 생각처럼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 그대로 받은 복을 세어 보면서 11월을 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올해 우리 교회를 돌아보니, 감사할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게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젊은이들도 힘껏 교회를 섬겨 줍니다. 물심양면으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도 태중에 생겼고 또 엊그제는 이재웅/조선미 가족에 승호가 태어났습니다. 여전히 빈자리가 있고 떠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채워가십니다. 찬양대와 찬양팀의 섬김, 여선교회와 남선교회의 꾸준한 섬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선생님들의 은밀한 섬김, 권사님들과 임원들의 기도와 섬김 등 감사할 뿐입니다.

남선교회 기도회, 참빛 보이스, 부부 세미나, 네팔 선교 음악회, 강찬 전도사 초청 등 올해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들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을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반면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 해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찬양대와 남성 중창단, 주일학교가 정성껏 추수감사 주일과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선교회에서도 예년과 같이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하시겠지요.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님들 각자의 삶도 한 해의 끝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늘 만족스러울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몸이 예전만 못하십니다. 몸이 약해지시니 마음도 때로는 신앙도 내려앉습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연약해지신 몸과 마음을 붙드시고 하늘의 평화를 깊이 누리셔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겹습니다. 이기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어려움을 훌쩍 뛰어넘어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힘차게 그리고 꿋꿋하게 부르심의 목적을 쫓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여정의 한가운데 감사가 임할 때 멋지고 근사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 속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밭의 네 가지는 우리의 마음을 표시합니다. 우리 안에 네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그중에 좋은 밭의 비중이 커져서 열매맺는 신앙과 삶이 되길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2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매우 빠른 진행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 마가복음의 특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갈릴리 지역은 물론 갈릴리 호숫가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과 같은 이방 지역까지 포함한 순회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에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까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지붕을 뚫고 구멍을 내서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 앞으로 내리는 방식입니다.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릴 생각을 한 것도 파격이고, 지붕이 뚫어지는 동안 소음과 먼지를 참으신 예수님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더 파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와서 지붕에서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5절). 병을 고치시기에 앞서, 죄를 사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 파격입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서기관들이 하나님도 아닌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신성모독 죄를 지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십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얻으라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쉬운지 물으십니다.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죄를 사하는 것이나, 일어나서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막1:1). 곧이어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향해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자리를 가지고 모든 사람 앞을 지나갑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하고 시기하는 서기관(당시의 엘리트이며 성경학자)들과 같은 적대세력이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보았고, 자신들의 지식과 신앙 전통에 매여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지붕을 뚫어서 중풍 병자를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과 대조적입니다.

믿음은 예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지붕을 뚫는 용기와 파격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일으키실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죄 사함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믿고 있습니다. 다음 한 주간 죄를 사하는 권세와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서 힘차게 걸어갑시다. -河-

마가복음 1 : 예수님의 하루

올해 속회공과는 마가복음입니다. 속회를 한 달에 한 번 모이다 보니 성경공부가 이어지기 힘들고, 앞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의 남은 주일에 속회에서 공부했던 마가복음 본문을 갖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속회에 참석하셨던 분들에게는 복습과 심화학습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속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님들은 뒤늦게나마 속회공부를 하실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마가복음을 마태와 누가복음과 함께 공관복음(共觀福音,Synoptic Gospels)이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내용과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부르는데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님을 로고스(말씀)로 설명하는 등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갈릴리에서의 순환사역과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크게 구분합니다.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직진사역도 물론 포함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간략하고 빠른 속도로 전합니다. 마태나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는 선포와 함께 복음서가 시작됩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서 시험받으신 사건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가 되면 메시아가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알리시면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일과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꽉 찬 일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본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기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는 데만 주력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들도 굴복하는 “권위 있는 새 교훈” (막1:27) 이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는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병자들을 밤늦도록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쁜 일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소화하신 비결이자 힘이었습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분주한 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쁠수록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조용한 시간을 갖고 거기서 힘과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河-

에베소서 (17) : 하나님의 전신갑주

에베소서를 갖고 지난 4개월 이상 연속해서 설교했습니다. 이번에는 차례대로 살펴보지 않고 몇 개의 주제로 나눠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 두 달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에베소서의 처음 여섯 구절을 설교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성도,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그다음에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성도의 신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을 발견하고, 지극히 큰 능력 가운데 살기를 소원한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속사람이 강건해 지고 모든 성도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기를 재차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와 우리들의 기도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없어질 것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될 진리를 구하는 기도가 되길 원했습니다.
세 번째 큰 주제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 자체가 기적이요 선물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믿은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다는 말씀 앞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지음 받았고, 그 선한 일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로부터 세상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들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작은 일부터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빛의 자녀들”이었습니다. 빛의 자녀들의 표시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은 이제 쉽게 기억하실 겁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서로 결합하고 연결되어서 모두 함께 예수님을 충분히 닮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빛의 자녀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셨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일상 속으로 파송하시고 그곳에서 빛으로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두 가지 영적인 세력의 충돌을 소개합니다. 빛과 어둠입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입니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에 갇혀서 죽음으로 치닫는 세상입니다. 어둠을 다스리는 세력을 공중 권세 잡은 자(엡2:2)라고 불렀습니다. 에베소서 마지막 장에서는 어둠의 통치자들을 마귀라고 부르면서 이들과 대항하기 위해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부탁합니다.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들 같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영적인 싸움입니다. 영적 전투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당시 로마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으로 무장하라는 권면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을 위해서까지 기도하라는 것을 보면 기도의 중요성은 물론 영적 전투의 심각함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군사로 잘 준비해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