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위한 기도

기도에 대한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저는 이번 시리즈 설교를 통해서 기도가 개인의 소원이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됨을 강조했습니다. 기도응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이 원하는 대부분의 기도응답은 세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기도제목 대부분은 먹고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일용할 양식도 중요하지만, 성숙한 믿음은 세상의 일들을 뛰어넘어서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발은 세상을 딛고 있지만 기도를 통해서 세상 저 너머에 펼쳐진 은혜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보았던, 한나, 야베스, 아사, 다윗 그리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서머나 식구들께서 기도의 중심을 “나”에서 “하나님”으로 이동하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그때에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함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백미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라면, 기도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군병들을 위해서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입니다.:“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얼마나 깊고도 넓은 기도입니까? 범인의 옅은 믿음으로는 따라 하기조차 힘든 기도입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조롱하면서 급기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웬만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넓이가 그만큼 넓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기도는 대개 내 삶의 주변에서 맴돕니다.“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종착점은 이웃을 위한 기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거기까지 나가지 못해도 우리들의 기도 속에는 이웃을 위한 기도가 꼭 포함되어야 합니다. 가족과 교회 식구들을 위한 기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금요심야기도회에서 중보하듯이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들, 선교사들, 기도가 필요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의 날개를 활짝 펼쳐야 합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기도할 때 누군가 또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기도의 체인으로 서로 서로 엮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河-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물었을 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밤새도록 홀로남아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서 속의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백미는 오늘 우리가 살펴본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시고 하나님 앞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미리 보여줍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음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의 길까지 경험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삶과 죽음의 여정을 모두 도우실 수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셨던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 경내에 있었습니다. 겟세마네는“기름짜는 기계”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겟세마네는 올리브기름을 짜던 장소를 가리킬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겟세마네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요18:2). 즙을 짜내듯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교제하시던 예수님의 골방이 바로 겟세마네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9절)라고 기도를 마치십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 손 들고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항복의 기도입니다. 여기까지 이르기를 예수님은 세 번 기도하러 나가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여전히 잠에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요.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처절한 영적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괴로움의 기도, 외로움의 기도, 죽음의 기도, 그러나 영광과 능력의 기도라고 정리해드렸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은 의연하게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할렐루야!-河-

골방에서

연속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연속설교를 통해서 기도에 대한 성경적이고 바른 교훈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기도를 단지 세상에서 복을 받고 인생길을 형통케 만드는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옛날 우리 조상들이 뒤꼍 장독대위에 냉수를 떠놓고 집안의 안녕과 자녀들의 출세를 비는 주술행위정도로 전락시켜도 안 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를 왜곡시키는 주범들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입니다. 기도 응답의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기뻐할 수 있어야합니다.

제가 이번 연속설교를 통해서 강조한 기도의 자세는 한나에게서
배운
간절함입니다. 고난 가운데 태어났지만 기도로 운명을 바꾼 야베스의 영적씨름입니다. 아사왕을 통해서
한결같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처음이 좋아도 끝이 나쁘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아사가 기도를 잊어버렸을 때 그의 인생은 추락했습니다.

시편 51편에 나타난 다윗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상한심령의 기도 기뻐하심을 배웠습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의 심령이 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나 외부의 환경 때문에 마음이 산산조각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서진 마음을 기뻐 받으시고, 새롭고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십니다. 기도는 이처럼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만져주심과 새롭게 하심을 경험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이 모든 기도들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이 단둘이 만나는 골방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외선적인 사람들은 회당이나 거리에서 기도합니다.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임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만 진실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골방기도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만 드리는 은밀한 기도입니다. 골방기도의 매력은 하나님 역시 은밀하게 응답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복잡하고 바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골방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밀하신 손길과 마음을 체험하는 영적 오아시스와 같은 장소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한 주간 여러분들의 삶 속에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자신만의 골방을 꼭 준비하시고 하나님과의 은밀한 데이트를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河-

상한 마음의 기도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윗도 실수를 합니다. 아니 보통 사람이 범하기 힘든 죄를 범합니다. 왕의권력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범죄였습니다. 그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 마저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 죄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51편은 이토록 큰 죄를 범한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지적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가 아니면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새로운 영을 창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달라는 기도입니다.:”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절)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상한 마음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상한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부서진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함으로 그의 영혼이 부서졌습니다.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힘들게 된 것은 물론 그의 영혼까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때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한 심령까지 받아 주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부서지고 깨진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이것을 17절에서는“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한나가“나는 슬픈 여자라”고 했듯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울음입니다. 서러움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통회 자복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여기저기서 상처받은 부서진 마음(broken heart)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통회하는 마음을 솔직히 아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기다리시고 그것을 멸시치 않으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의 상한 마음이 온전하고 새로운 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을 우리 안에 창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河-

기도의 능력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5장 14절에서 기도는 우리들을 담대하게 만들어준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에, 제자들을 향해서 그와 같은 능력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막9:29). 그만큼 기도의 힘은 강력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 속에는 아사왕이 나옵니다. 그가 왕이 되고 십여 년 동안 유다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 동안 아사는 나라를 새롭게 세우고 우상을 타파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때 구스(이디오피아)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유다를 위협합니다. 당시 아사에게는 58만 명의 군사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디오피아의 군사는 백만이었고 300승의 전차부대도 있었습니다. 양쪽의 군사력만 비교하면 아사왕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위기에 닥쳤을 때, 아사는 하나님께 나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나와 야베스 그리고 아사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문제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먼저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나오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 역대하 14장 11절은 아사가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은 기도입니다. 아사가 드린 기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 아사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다른 도움은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께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둘째로
, 아사는 믿음을 갖고 이디오피아 군사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갖고 앞으로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 아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권자이심을 믿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 보다 크고 강한 것이 없음을 확실히 알았습니다.“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세상 속에서 힘겨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아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이디오피아 군대를 멋지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기도 속에는 어떤 문제라도 부딪쳐서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강합니다.-河-

야베스의 기도

8년여 전에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저자 브루스 윌킨스는 역대상 4장 9-10절에 나타난 야베스의 기도를 소개하면서 누구나 야베스의 기도문을 갖고 반복해서 기도하면 야베스에게 임한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주문처럼 외우는 우스운(?)일이 벌어졌었습니다.

기도는 어떤 문장이나 내용을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요 대화입니다. 또한 기도를 개인의 출세나 성공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수요일 주기도문 강해에서 배웠듯이 기도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과 우리들 삶 속에 이뤄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복이 두 배로 임합니다 (실제로 히브리어 본문의 뜻은 “꼭 복을 주세요”임). 기도해서 삶의 지경이 넓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의 손이 늘 함께 하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야베스는 이렇게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서머나 식구들에게도 같은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가서 야베스가 드린 기도의 내용보다 기도하는 마음자세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야베스는 가장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운명을 바꿔주실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꼭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야베스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즉 하나님 뜻에 따라서 기도했다는 증거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문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을 보시고 응답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요즘 세대에 야베스와 같은 기도의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인생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신앙과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도의 사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河-

장막을 거둬내는 기도

한 평생을 살면서 달팽이처럼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달팽이와 같은 인생은 자꾸만 안으로 움츠려듭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몸을 숨기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끝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또한 달팽이와 같은 인생은 자신을 겉껍질로 꼭꼭 싸매고 삽니다. 보는 이도 답답하지만 정작 힘든 것은 본인 자신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야베스 역시 달팽이와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야베스는 성경에서 흔히 듣는 명칭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베스라는 히브리어는“고통(pain)”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인물은 이름이“야베스”입니다. 그것도 어머니가 그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극심한 산고 끝에 야베스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이처럼 구사일생으로 태어났고 고통이라 뜻의 이름을 갖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10절에는“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야베스의 기도가 나옵니다. 추정컨대, 야베스는 어렵게 태어난 것 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길도 환난과 근심에 쌓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 달팽이 인생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달팽이 속에 던져진 저주받은 인생으로 태어났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고통스러웠고 힘겨웠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때 야베스가 택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가 자신에게 드리운 인생의 장막, 고난과 저주의 장막을 거둬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인생의 달팽이 껍질이 벗겨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와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역시 좋으신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들 인생을 돌아보면, 장막처럼 자신을 꼼짝 못하도록 발을 묶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달팽이집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할 것 같은 굴레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멈추면 안 됩니다. 인생길을 가로막는 장막을 거둬내야 합니다. 그 비결이 바로 기도인 것을 오늘 야베스를 통해서 배웠습니다.-河-

응답하는 기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가장 확실한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재(實在)하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자연만물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를 느끼고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 밖에서 일어나는 경험이고 계시입니다. 반면에 기도는 우리들 안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확신하게 만듭니다.

기도에 대한 오해도 많습니다. 기도를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우리들의 소원을 이루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기도의 주체는 우리들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산신령(?)과 비슷합니다. 물론 처음에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내가 주체가 되어서 기도를 합니다. 무조건 달라고 조르는 갓난아이와 같은 신앙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살펴본 한나가 온전한 기도를 드린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렸고 실제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어떻게 얻은 아들입니까? 가진 설음을 겪은 끝에 기도해서 얻은 믿음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미련 없이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2장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는 한나의 찬양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고백입니다.

기도의 주체는 우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법에 그쳐도 안 됩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기도입니다. 온전한 기도는,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듯이 응답된 기도를 다시금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를 들면, 건강을 위해서 기도했고 응답을 받았다면, 건강한 몸을 갖고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섬겨야합니다. 사업이나 직장을 놓고 기도해서 응답받았다면, 그것을 갖고 어떻게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의 주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나가면 기도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나 처럼 자유함 속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습니다. -河-

심정을 통하는 기도

앞으로 주일 예배에서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도문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기도의 내용을 설교할 예정입니다. 수요예배에서 진행 중인 주기도문 강해와 맞물려서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실천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첫 번째로 살펴 본 한나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기도의 인물입니다. 한나라는 이름의 뜻은“은총을 입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나는 은혜를 입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막으셔서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살던 당시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여자로서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태가 열려야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나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지 않은 셈입니다.

게다가 한나는 남편의 또 다른 부인인 부닌나로부터 심한 구박과 핍박을 받습니다. 브닌나는 한나와 달리 아들과 딸을 여러 명 낳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고 그녀를 배려해 주었지만 한나의 괴로움과 상한 마음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나는 하나님의 성소인 실로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갑니다. 당시에는 성소를 찾은 사람들이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한나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소리를 내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기도하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한나는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개역성경은“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심정(心情)- 하나님은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여기서 심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목숨”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다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녀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고, 사무엘은 훗날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심정이 통하는 간절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풀어주셔야 할 문제를 안고 있을 때는 목숨을 바칠 정도의 간절한 기도가 요청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음을 기억합시다.-河-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오늘로 감사하는 삶이라는 주제의 연속설교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지난 두 달여 동안“감사”에 대한 말씀을 듣고, 감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실천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감사(感謝)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발에 쇠사슬이 묶인 채로 빌립보의 깊은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했듯이 우리들 역시 범사에 감사하고 찬양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이 닥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는 더 크고 귀한 신앙을 사모했었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는 구체적인 방법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비교하는 마음이 시기와 질투로 발전하고, 때로는 열등감으로 이어져서 감사를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빌립보서 4:6-7절 말씀 속에도 감사의 비결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실만큼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 시간에 감사의 비결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속의 갈렙처럼 꿈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믿음의 보고를 한 인물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도,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의 나이 85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러 올라갑니다.“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팔순 노인 갈렙의 청원은 언제 들어도 우리들로 하여금 힘과 용기를 갖게 합니다.

감사의 비결을 생각하면 과거를 떠오르기 쉽습니다. 감사는 지난 세월에 대한 감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갈렙이 40년 동안 마음에 품었던 꿈을 성취했듯이,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마음에 품으시고 그것을 성취해 가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