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되시는 주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성경은 두 가지로 정리해 줍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는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창3:18)고 했습니다. 가시덤불은 우리를 얽어맵니다. 엉겅퀴는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리 뽑아내도 자꾸만 나옵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고 발을 얽어매는 사건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신약성경 빌립보서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그러지고 뒤틀렸다고 표현합니다. 세상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바른 것을 찾기는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어그러지고 뒤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선한 사람이 세상 속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어려움이 닥칩니다. 세상자체가 뒤틀려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타락하고 보기 흉하게 변한 것은“죄”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영역인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서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온 세상을 망쳐놓았습니다.

죄는 마치 암세포와 같습니다. 건강한 육체에 암세포가 생기면 건강한 세포를 오염시킵니다. 그리고 급기야 생명을 빼앗아갑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죄가 침투하면 건강한 영혼도 어그러집니다.

이렇듯 죄 많은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늘 힘겹습니다. 시편기자도 의인에게 고난이 많다고 했습니다.(시34:19) 바르게 살면 살수록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뒤틀린 세상이 그를 억누르고 괴롭혀서 그렇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들이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시14:6)

세상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피난처라는 말 속에는 1) 우리가 그 품속으로 달려가면 우리를 맞아주시는 하나님, 2) 산성이 되어 주셔서 어떤 세력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3) 안전하게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어있습니다.

다음 한 주간동안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서 하늘의 위로를 경험하시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능히 승리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말씀대로 사는 삶

천국백성들인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살다보면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습니다. 그래서“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라는 가사의 복음성가가 생겼나 봅니다. 그렇다고 세상살이를 푸념과 실의에 가득 찬 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세상에 보내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아무리 깜깜절벽이라도 작은 촛불 하나면 어두움은 힘을 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마다 어두운 세상이 밝아져야 합니다. 더럽고 썩어져가는 세상이 신선함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들은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합니다. 남을 돕거나 세상을 밝히는 것 이전에 우리들 자신부터 부족합니다. 정리할 것이 많습니다. 자신이 바로 서있지 못하니 남을 돕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변화무쌍한 세상 풍조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때로는 유혹에 빠져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도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무력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시편 37:31절에서는 세상살이에서 실족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비결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제합니다. 길을 가르쳐줍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깨우쳐줍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는 비결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 큐티(Quite Time:QT경건의 시간)입니다. 하루 가운데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도록 돕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일상의 삶에서 실족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시작될 큐티학교를 통해서 말씀을 마음에 품고 실족하지 않는 삶을 사는 비결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생길을 비추는 빛입니다.-河-

여호와께서 붙드심이로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진실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두고 신명기 33장 29절에서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Happy are you, Oh Israel!)”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들은 행복자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니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37:23-29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된 천국백성들에게 임하는 복을 다섯 가지(五福)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23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정해주시고 그대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셨다면 그 길은 최선의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그 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붙드심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24절). 마치 엄마가 아기의 손을 붙잡고 길을 가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손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넘어지지만 완전히 엎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손을 붙잡고 있는 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셋째는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과 선행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돌아갑니다(26절). 우리들이 뿌린 신앙의 씨앗이 후손들에게 복으로 임한다는 축복선언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28절). 변덕쟁이 우리들이 종종 하나님 곁을 떠날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지켜주십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복은 땅을 기업을 받는 입니다. 물론 여기서 땅은 이 세상의 부동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들은 천국에 땅을 상속받은 복덩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삽시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받은 복은 이처럼 세상의 복과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의 복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이 복을 누리는 비결은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배운 천국백성의 삶의 규칙을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행복에 겨운 그리스도인으로 삽시다! -河-

여호와께 맡기라

시편 37:1-9절 말씀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 마디도 요약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trust in the Lord)가 거친 세상에서 승리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또한 오늘 배운 대로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 염려와 근심 그리고 앞길까지도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의미가 “굴리다”이듯이 우리의 모든 짐을 하나님께 굴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길을 홀가분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생길을 맡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시편 37편7-9절에 나옵니다.

째는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린다고 두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만나야 합니다. 실력을 키워야 한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탁월한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오의 빛처럼 높이실 것입니다.

셋째로,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상에 대해서 분노하지 말아야 합니다.세상에 대해서 분노하면 저절로 불평이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짓고 때로는 세상 유혹에 넘어갑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나, 실패한 경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분노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다는 표시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분함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때 상황에 관계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나옵니다. 하늘의 평안을 경험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맡깁시다. 작은 것부터 커다란 인생의 문제까지 하나님 손에 얹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 주간을 시작합시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책임져 주실 겁니다.-河-

여호와를 기뻐하라

지난주부터 시편37편을 갖고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거장들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지 배웠다면, 이번에는 시편37편이 가르쳐주는 믿음의 길과 그 안에서 임하는 축복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시편37편은 한 편의 설교입니다. 히브리어 본문 역시 두 구절씩 쌍을 이루어서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기록되었습니다. 그것은 본문을 아름답고 특별하게 기록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본문을 쉽게 암송할 수 있도록 첫 글자에 알파벳으로 운(韻)을 떼어준 것입니다. 아마 예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편 37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파벳에 맞춰서 한 목소리로 암송하면서 그 속의 교훈을 곱씹었을 것입니다.

시편 37편의 교훈은 잠언과 비슷합니다. 악한 사람들의 끝은 부질없이 허무하게 될 것이고, 힘들더라도 선한 길을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절마다 악인과 의인이 번갈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37편의 축복과 소망은 이 세상에서 모두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다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최종적으로 받을 수 있는 은혜요 복들입니다.“의인이 땅을 차지한다.”(9,29절)는 말씀이 바로 그 의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마5:5)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땅은 하늘나라를 의미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깃(portion)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3-9절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설교시간에 언급한 것 외에 본문 속에서 일곱 가지 명령을 뽑았습니다. 다음 한 주간 요일마다 한 가지씩 기억하면서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월요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화요일) 여호와만 의지하라. (수요일) 불평하지 말라 (목요일) 선을 행하라. (금요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토요일) 여호와를 기다리라. (주일) 여호와를 기뻐하라.

말씀대로 살려는 우리 서머나 식구들을 하나님께서 정오의 빛같이 높이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河-

믿음의 경주

지난 3개월 동안‘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을 갖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에 말씀을 준비할 때는 끝까지 잘 끝낼 수 있을 지, 중간에 혹시 지루해하시지는 않을 지, 말씀이 너무 딱딱하지는 않을 지 염려가 되었지만 성령의 도우심과 성도님들의 말씀을 사모하시는 마음 덕분에 은혜 가운데 말씀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음이 빠지면 신앙의 핵심이 상실된 것입니다. 다른 것은 조금씩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대신에 믿음이 견고하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대상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믿음은 또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종착지는 바로 하늘나라, 영생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그동안 살펴본 믿음에 대한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수시로 되새기시길 바랍니다.

1)믿음은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아벨)                          
2)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에녹)

3)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는 순종입니다.(노아)
4)믿음은 약속을 믿고 앞으로 나가는 추진력입니다.(아브라함)
5)믿음은 신앙의 가문을 이루는 역사입니다.(이삭, 야곱, 요셉)
6)믿음은 앞을 가로막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통과하는 체험입니다. (모세)
7)믿음은 난공불락의 여리고성도 무너뜨리는 능력입니다.(여호수아)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설렁설렁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들은 깜깜할수록 더욱 빛을 발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믿음의 빛은 더욱 선명하게 빛날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믿음의 길로 나가시고 믿음의 경주에서 꼭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거장들이 되시길 뒷전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돕겠습니다.-河-

믿음의 거장들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의 아벨부터 아브라함, 모세와 사사들 그리고 선지자들에게 이르기까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음의 인물들이었습니다.“믿음으로”순종했고,“믿음으로”앞으로 나갔고,“믿음으로”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by faith)”가 핵심구절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열전을 써내려가다가 32절에 와서는 이름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도 많아서 그들의 믿음을 일일이 열거하기에 공간이 부족했을 것입니다.“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선지자들”- 이 밖에도 믿음의 인물들을 모두 기록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믿음으로 삽니다.”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증거가 될 줄로 믿고 삽니다.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될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힘과 지혜와 은혜를 체험할 줄로 확신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입니다.

저는 설교시간에 유한양행을 설립하신 유일한 회장을 소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믿음의 본이 될 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유일한 회장을 소개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믿음을 생각할 때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신비적인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믿음과 현실의 삶에 커다란 괴리를 초래합니다. 말로만 믿을 뿐 행함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반(反)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마5:16). 행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품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일한 회장은 요란하지 않았지만 그의 삶을 통해서 신앙을 가르쳐주신 믿음의 선배이십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이웃을 살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河-

하나님의 승리 (2007.8.26)

여호수아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여리고성을 함락시킨 말씀은 언제 읽어도 통쾌합니다. 여리고성은 인근에서 가장 강한 성이었기에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공격하기에 앞서서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두 명의 정탐꾼까지 적진에 보내서 여리고성의 상황을 살피게 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방법을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군인들을 데리고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6일 동안 돌라는 것입니다. 일곱 명의 제사장이 일곱 개의 양각 나팔을 들고 여호와의 법궤를 중심으로 도는 것입니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성을 일곱 바퀴 돌아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바퀴를 돈 후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아주 크고 길게 불면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온 백성들이 크게 함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쩌면 어리석어 보이는 일입니다. 성을 돈다고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일곱 번째 날에 일곱 번을 도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나팔소리에 백성들이 함성을 질러서 성이 무너진다는 것도 믿기 힘듭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난공불락이었던 여리고성이 한 번에 무너졌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상식과 세상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기 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모험입니다. 특히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닥쳤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계획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려는 겸손함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삶 속에 멋진 승리로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그리스도인의 인내 (2007.8.19)

히브리서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시작될 무렵에 쓰였습니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실로 인해서 로마제국이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고 심하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개종했던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유대인들이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갔습니다. 바로 그 상황에서 기록된 말씀이 히브리서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합니다. 힘들수록 더 열심히 모이고 믿음위에 굳게 서 있으라고 합니다. 특히,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는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신앙의 열조들처럼 우리들 역시 “믿음으로”살 것을 교훈합니다.

편안할 때는 누구나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서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신앙 여정이 늘 장밋빛 융단이 깔린 아스팔트는 아닙니다. 힘겨울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피해도 입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고난이 찾아와서 마음과 몸이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때 꼭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집트 군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나자 미디안 광야로 피신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40년은 모세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세월입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양을 치면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면서 또 다시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도 하나님께 부름을 받습니다. 모세는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하나님께 가장 귀하게 쓰인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믿으면서 끝까지 참았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인내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신앙의 끈을 놓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지켜주시고 최후승리를 약속하십니다. 믿음가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河-

두려움 극복 (2007.8.12)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이 잘되고 직장이 아무리 튼튼해도 미래는 늘 불확실합니다. 거기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요즘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두려워 말라!”

성경에서 많이 반복되는 말씀가운데 하나가 “두려워 말라”입니다. 실제로 신구약 성경에서“두려워 말라”는 명령은 개역성경에만 79번 나옵니다. 거기에 “무서워 말라”까지 합치면 90번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모두 명령형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무조건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뱅겔이라는 신학자는 두려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위의 말 속에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비결이 나옵니다. 두려움을 물리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두렵습니다. 삶이 아슬아슬해지고 염려와 근심이 자꾸만 밀려옵니다. 두려움의 대상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의 일들이나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들 뜻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두려움은 모두 없어집니다.

모세의 부모님이 바로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길 수 있었던 것도 믿음 때문입니다. 바로를 두려워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왕보다 더 위대하신 전능자 하나님을 믿었을 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