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안에서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장까지 왔습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확인하고 돌아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고난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고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삶을 살아가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육체적인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기는 이전 것들과의 단절도 여기에 속합니다. 옛날 습관과 결별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로부터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과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했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이제는 자신들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여정입니다. 죽음을 넘어서 부활과 생명의 인생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지들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공동체를 이루는 근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공동체를 세워가라는 말씀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공동체를 이루는 대표적인 두 세대가 나옵니다. 우선, 장로 입니다. 장로는 “원로”라는 뜻입니다. 엄밀히 보면, 교회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고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부릅니다. 공동체를 이끄는 중에 받은 고난이 헛되지 않고 장차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지도자이지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주의 일에 참여하고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장로에 이어서 젊은이들에게 교훈합니다. 여기서 젊은이는 교회는 물론 세상에서 힘있게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킬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장로들에게 순종할 것을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것을 경험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세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겸손하게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원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같은 생각을 품고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기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것을 부탁합니다. “모든 염려”는 예수님을 믿는 여정 가운데 생기는 불안과 근심입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당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교회는 물론 각 개인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나그네 된 하나님 백성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河-

작은 사랑 나눔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연초에 표어를 정하면서 우리 교회에 사랑이 넘치길 원했습니다. 세대가 어울려 있고, 발걸음이 잦은 교회이니 늘 크고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교회 사역도 인생사와 비슷해서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인도의 손길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베드로전서에서 배운 대로 우리 모두 마음과 생각을 같이 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서 교회를 세워 나가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나그네의 삶은 외롭고 때로는 고달프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때 함께 걷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됩니다. 같은 처지에서 같은 고민을 하면서 인생길을 걷는 신앙의 동지들보다 더 귀한 분들이 세상에 없습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신앙의 동지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올해 표어를 “서로 사랑하라”로 정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켠이 아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사랑나눔>을 제안했습니다. 가족 또는 개인별로 20불 안에서 무명으로 헌금하고, 그것을 역시 무명으로 꼭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하기로 한 것입니다. 참빛 성도님들께서 제안해 주시는 곳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번에는 리치몬드에 있는 초등학교에 기부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이 워싱턴 DC를 다녀오는데 필요한 경비를 슬쩍 지원한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 두 번째 작은 사랑 나눔을 위한 헌금을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성도님께서 추천하신 과테말라의 께찰떼낭고에서 사역하시는 강순진 선교사님과 사랑을 나눕니다. 해발 2,400m 고지대에 위치한 화산 지역이라고 합니다. 고지대이지만 과테말라 농산물의 절반을 생산할 정도로 비옥한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찾아 모여들고 있답니다. 강선교사님(72세) 께서는 2006년부터 과테말라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교회는 물론 장애와 극빈 가정을 도우시고, 거리에서 무료급식, 의료와 교육 등 여러 기관들과 더불어 신실하게 사역하시는 분이십니다. 저희 작은 마음이 선교사님께 힘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두 번 정도 작은 사랑 나눔을 더 실천할 계획입니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가 있으면 안내 데스크에 있는 제안함을 통해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말 그대로 작은 사랑 나눔입니다. 한 주간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사랑 나눔에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河-

선한 청지기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을 “청지기”에 비유합니다. 청지기라는 개념은 오늘날 널리 사용되지 않습니다. 영어로 청지기는 “스튜어드”이니 항공사 직원을 가리키는 말 정도로 쓰일 뿐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쓰일 당시에는 청지기라는 직책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재산을 관리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믿고 그의 재산을 위탁했습니다. 선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했습니다. 반면에 악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거나 주인의 재산을 갖고 자신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등장합니다. 재산이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은사대로 은혜를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은혜를 관리하고 그것을 공동체와 세상에서 나눠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청지기로서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혼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고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각각에 맞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들입니다. 로마서 12장 6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의 목록이 나옵니다: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사를 맡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은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선한 청지기의 직무입니다.

주인은 때가 되면 청지기를 불러서 그가 행한 일을 보고받고 회계할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7절)라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른다면 청지기는 항상 허리띠를 동이고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청지기의 삶을 살기로 날마다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와의 일대일 관계라면, 사랑은 공동체와 세상 속에서 감당하는 청지기직입니다.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수많은 죄를 덮어주고 서로 대접하며 환대합니다. 이처럼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정신을 차리고 기도와 사랑의 실천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은사를 갖고 주님의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河-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미국을 기독교 국가라고 말합니다. 작년 갤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4%가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밝힌 것을 보면 맞는 말입니다. 물론 1970년대의 90% 이상에 비하면 낮은 비율이지만 여전히 다른 종교에 비해서 기독교인이 주류입니다. 미국에서 경계하는 무슬림은 미국 전체 인구의 1%도 안 됩니다. 날씨가 좋고 즐길 것이 많아서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지 않고 이곳 저곳으로 놀러 간다는 캘리포니아도 주일 예배출석률이 30%에 가깝습니다.

 

물론 세대별로 자세히 조사하면, 청년층의 기독교 인구 비율이나 교회 출석률은 급격히 떨어질 것입니다. 다른 종교의 비율은 여전히 낮아도 종교가 없는 젊은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임이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말하고, 기독교 용어를 쓰고, 기독교인으로 행동해도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베드로전서의 배경인 소아시아의 기독교인들은 정반대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인 회당에는 모세 율법을 믿는 유대인들이 주류였습니다. 황제를 숭배하고 신전을 출입하는 다른 종교의 비율이 기독교보다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는 물론 삶의 터전이 무너질 수 있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아시아의 기독교인들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 있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믿었기에 순교를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읽은 성도들이 이런 신앙에 뿌리를 내렸고, 그들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베드로전서에는 “고난”이라는 주제가 겹쳐서 나옵니다. 의를 위하여(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알려줍니다 (3:14).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도 배웠습니다(3:17). 이처럼 당시에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고난의 길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로 개종하고 신앙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들 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확실히 믿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기 원하십니다. 앞서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닦아 놓으셨기에 우리도 그 길을 넉넉히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남은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선을 행함으로

베드로전서는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사도 베드로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의 삶이 쉽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근사하게 살 것을 부탁합니다.

 

우선,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에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나 유대교에 비해서도 조그만 종파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세상을 축복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선교적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자신들을 저주하고 까다롭게 대하고 심지어 박해하는 사람들까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초청하고 도울 의무와 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살아남기도 힘든데 세상을 축복하고 감싸 안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지켜보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힘을 더해 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큰 힘이자 소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죽음이 판치는 세상을 견디고, 매사에 생명을 사랑하며 좋은 날 보기를 소망하면서 힘차게 살아갑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는 “선함(good)”과 관련된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악을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합니다(11절). 세상에서 열심히 선을 구하면 해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13절). 무엇보다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16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선하게 사는 것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선한 마음을 갖고 변함없이 행동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도 다반사입니다(17절). 그것도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선한 길을 걷습니다. 선한 양심을 갖고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선교적 삶을 살려는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히 요청되는 덕목입니다.

 

이처럼 세상 속에서 선하게 살다 보면,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은 이 세상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의 삶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영생의 소망을 갖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할 것을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부드럽고 신사적인 자세로 복음을 잘 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서 고난 받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최후 승리를 믿고 살아갑니다. 할렐루야! -河-

마음을 같이 하여

오늘 본문은 “마지막으로”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앞에서 나눴던 말씀에 대한 마무리임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육체의 원하는 바를 버리고 이방인 중에서 선하게 살라고 권면 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제국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시민의 의무를 다하길 부탁했습니다. 주어진 자유를 갖고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라는 말씀도 배웠습니다. 종은 상전에게 순종하고, 부부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비록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고, 핍박과 역경 속에서 지내지만, 최후 승리를 믿고 끝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저주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선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복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도 사랑으로 섬겨서 그들 역시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함께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이 공동체 의식입니다. 공동체는 같은 지역 또는 같은 관심사를 갖고 생각과 삶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성경에서는 헬라어 “코이노니아(성도의 교제)”가 공동체의 특성을 잘 설명해 줍니다. 믿음 안에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신앙과 삶을 나누고, 하나님 사역에 함께 참여하고,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 격려하며 함께 걷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섬김과 겸손함이 있다면 저절로 근사한 공동체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그 안에서 공동체의 힘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큰 복입니다.

 

그렇다고 공동체 안에 갇혀 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공동체가 주는 힘으로 세상에서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며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야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서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혼자 이 길을 걸으면 외롭고 쉽게 지치지만, 공동체 속에서 지체들과 함께 가면 해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능력을 구하면서 걷는 길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자라가고, 참빛 식구들께서 서로에게 의지와 힘이 되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