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에서는

그동안 수요예배에서는 잠언 말씀을 매주 한 장씩 살펴보았습니다. 32주에 걸친 대장정이었습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으로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이번 수요일부터 전도서를 공부합니다. 잠언이 하나님 백성의 구별된 삶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라면, 전도서는 하나님 백성이 세상을 또는 인생을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한 교훈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왕으로서 부귀영화를 모두 누린 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기록한 말씀이라고 전해집니다. 왕으로 한평생을 살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헛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헛된 것은 인생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한탄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별반 특별하지 않다는 조망입니다. 왕으로 사나 보통 백성으로 사나,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오십보백보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젊어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복(分福)을 누리길 부탁합니다.

 

수요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서를 함께 읽어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의미 있게 살기로 결단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면 주일날 안내 데스크나 목요서신에 첨부된 수요예배 해설지를 참고해서 개인적으로 전도서를 읽어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올 사순절에는 전도서와 더불어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길 원합니다.

 

새벽기도회에서는 욥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1:8)라고 칭찬하십니다. 욥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정도로 온전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열 명의 자녀들과 자신이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거두어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으니 화를 주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대단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욥을 통해서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실한 신앙으로 나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말씀에서 배운 대로 살기로 애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로마서 5장 5-6절에는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이 매우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거룩하지도 않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환난을 참아내고 연단을 거친 후에 갖게 된 소망은 우리를 절대로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들어갈 때 저절로 진실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근사하고 멋진 주님의 백성들로 하나님과 세상에 나가실 참빛 식구들을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河-

사순절을 맞으며

올해 목회 계획 가운데 하나가 참빛 식구들께서 교회력에 따라 사시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대강절부터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마음에 촛불을 밝히며 대강절을 보냈습니다. 성탄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할 구세주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탄절이 지나고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시작으로 주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하면서 복음서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과 사역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교회력에서 대강절부터 주현절까지는 두 달 남짓 짧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까지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일 년 중 10분의 1을 경건의 훈련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절기입니다. 교회사에 보면 사순절에는 말씀 묵상, 금식과 기도,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훈련에 힘썼습니다. 올해 사순절은 이번 주 수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각자에게 맞는 사순절 묵상과 훈련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고 이웃을 섬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올해의 첫 달에 시편 63편을 통해서 광야를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삶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한 달여 신약성경의 로마서 5장 전반부 말씀을 통해서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가 하나님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롬1:16)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살펴볼 로마서 5장 1-11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하나님 백성의 확신과 소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로마서의 첫 번째 네 장에서 믿음이 강조되었다면, 다음 네 장은(5-8장) 소망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끝은 장차 임할 영광에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영광입니다. 은혜 속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 서 있을 때 갖게 되는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됩니다. 창조주되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연약함과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의 은혜로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게 되었고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기뻐하는 척하거나 억지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을 견디고 그 과정에서 단단한 신앙과 성숙한 성품을 갖게 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어떤 환난이 닥쳐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고 주의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河-

주님의 오른 손

작년 이맘때 무명의 목적헌금이 씨앗이 되어서 추진했던 본국 대학생 초청 행사가 열매를 맺어서 오늘 두 분의 젊은이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짧은 일정이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앞으로의 삶에 힘이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깊이 체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프로그램을 주관해 주신 초청팀과 숙박과 식사, 안내와 기도로 함께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일에 더욱 앞장설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지난 주일에 임원회가 있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가 집중할 사역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7-8월경에 멕시코 단기 선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이 나오면 따로 공지를 하겠습니다. 8월에 전교인 야외예배를 남선교회 주관으로 가게 됩니다. 2년에 한 번 갖는 야외예배를 통해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도의 교제가 있을 것을 기대하니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참빛 보이스도 성도님들의 재능기부에 힘입어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3월에는 새로 오신 성도님들이나 예수님을 믿기 원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신앙 터잡기 성경공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 11월에는 새 교회로 이전한 지 5주년이 됩니다. 감사의 예배도 준비할 예정입니다.

주일 설거지 당번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주일 식사분량이 많아지면서 설거지가 늘어나고, 속회마다 돌아가는 설거지 횟수가 빨리 돌아와서 설거지 조를 따로 구성하자는 논의였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기쁨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교회가 배려하고 지혜를 모으기로 했습니다. 이 밖에도 교회학교와 속회 등 교회가 해야 할 사역들이 있습니다. 지혜롭게 조절해 가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행사가 많지 않습니다. 대신에 성도님들의 신앙이 자라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힘을 모으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 집중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사역에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안내 데스크 건의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그랬듯이 올해도 교회나 성도님들의 삶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표어 그대로 은혜로 사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월 한 달 동안 릴레이 금식을 하면서 성도님들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참여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고백과 믿음을 갖고 올 한 해 은혜로 살아갑시다.

시편 63편의 마지막 시간을 맞았습니다. 유다 광야의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성소에서 보았던 권능과 영광을 광야에서 보았습니다. 손을 펴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기쁜 입술로 주를 찬양하고 주의 날개 아래서 쉼을 가졌습니다. 광야에서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모두 누린 셈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주의 오른손이 자신을 붙들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광야를 사는 다윗의 신앙이자 삶이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앞에 펼쳐진 광야를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능히 걷기 원합니다.-河-

주의 날개 그늘에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의무 가운데 하나는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어떤 곳에 놓인 물체나 고인 물이 아닙니다. 신앙은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자라가는 유기적인 활동입니다. 여기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은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생각과 삶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얼마나 구별된 삶을 사는 지가 곧 신앙의 성숙을 가늠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알려주는 신앙의 성숙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길을 우리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답다고 말하는 지가 신앙 성숙의 척도가 됩니다.

이렇게 각자의 신앙이 자라가고, 거룩하고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가정 그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행하고 서로 협력할 때 신앙의 힘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처럼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세상으로 흘러갈 때 그 물이 세상을 살리는 생명수가 됩니다. 고여 있는 우리만의 신앙이 아니라 세상으로 흘러들어 가는 살아있고 함께 나누는 신앙이 됩니다.

신앙의 성숙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모습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동안 살펴본 시편 63편을 갖고도 성숙한 신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광야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맡깁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려는 삶에 집중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까지 이른다면 꽤 성숙한 신앙입니다.

오늘 살펴보는 말씀에서도 성숙한 신앙에 대해서 배웁니다. 첫째는 감사와 찬송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광야의 삶이 척박한데도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과 같은 만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찬송이 나옵니다. 기쁨의 찬송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둘째로 주의 말씀을 읊조리는 습관입니다. 광야의 다윗은 침상에서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면서 묵상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지가 신앙성숙을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고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셋째로 광야의 삶에서 지치고 외롭고 두려울 때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주님을 피난처 삼고 그다음 일을 도모합니다. 사람들, 상황, 세상의 즐거움, 행운 등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어려울 때 주님을 먼저 찾고 주님께 나와서 무릎 꿇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올 한해 참빛 식구들 모두에게 신앙의 성숙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河-

주의 인자하심

교회가 진행하는 대학생 초청 프로그램이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1년 동안 차근차근 기도하면서 추진해 왔습니다. 또한 두 학생이 함께할 프로그램도 준비되었습니다. 온 교회가 같은 마음으로 이들을 환영하고, 특별히 두 학생의 숙식과 안내를 원하시는 분들은 초청팀(정은숙권사)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월 한 달 동안 교회가 릴레이로 금식하고 있습니다. 금식 기도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물론 온 교회가 한 해를 기도로 시작하기 원합니다. 특별히 이번 금식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타적 금식기도입니다. 금식하시면서 기도할 때, 올 한해 우리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잠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소에 임할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시길 원합니다. 또한 성도님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생각나시는 성도님들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을 우리 교회가 금식으로 기도하면서 은혜로 사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유다 광야에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는 시편 63편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광야의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그의 영혼이 주를 갈망하고, 그의 지친 육체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소에서 경험한 주님의 힘과 영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난 두 주간 시편 63편 1-2절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가는 바른 태도를 배웠습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갑니다. “주의 인자하심”은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을 일컫는 말입니다. “헤세드”라는 히브리어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 “아가페”와 같은 뜻입니다. 다윗은 주님의 사랑이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삶을 능가하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주님의 사랑이 더 귀함을 발견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니 광야에서 죽어도 아쉬움이 없다는 최고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깊이 잠긴 경험을 하였던 다윗의 멋진 고백입니다.

그 사랑이 광야에서 임하니, 목마르고 배고프고 외롭고 추운 광야에서 찬양이 나옵니다. 힘이 없어 큰 소리로 찬양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윗의 찬양은 광야에 울려 퍼졌고, 하늘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운 광야에 있으면서도 평생에 주님을 송축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송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에는 무릎꿇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평생에 하나님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보장되지 않은 광야이건만 다윗의 시선은 이처럼 미래를 향합니다. “바라크”라는 동사를 하나님을 향해서 쓰면 송축하다가 되지만, 우리를 위해서 쓰면 “축복하다”가 됩니다. 광야의 다윗에게 복이 임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을 송축하고, 주님의 이름 앞에 손을 드는 축복입니다.

올 한해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주님의 변치 않는 사랑이 임하고, 그 사랑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향해서 손을 들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河-

내 주의 교회와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후 첫째 주일입니다. 주현절(Epiphany)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처럼 교회력은 성탄절 이후에 주현절로 빠르게 달려갑니다. 기독교 최고의 축제인 부활절에 맞추기 위함입니다. 주현절 기간에는 마가복음에서 배웠듯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으로 옷을 입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시편 63편을 갖고 올 한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가고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라는 표제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시편 63편은 다윗이 마르고 황폐한 광야에 있을 때 주님을 찾은 기도이고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삶도 광야길이기에 다윗의 고백이 실제로 다가옵니다. 삶이 평탄해도 우리의 마음이 마르고 황폐할 때가 있으니 유다 광야에서 주님을 찾은 다윗의 마음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지난주에는 1절 말씀을 통해서 간절히, 의도를 갖고, 집중하면서 하나님을 찾은 다윗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의 영혼이 하나님을 목말라했습니다. 자신의 육체가 지칠 정도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광야 길을 걸을 때는 주변에 펼쳐진 환경을 둘러보거나 자신의 마음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고 바라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2016년 새해를 걸어가기 원합니다.

오늘은 시편 63편 2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유다 광야의 다윗은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보던 때를 회상합니다. 여기서 “바라보다”라는 뜻에는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 임하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것을 뜻합니다. 성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다윗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해서 성소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기대하면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유다 광야의 다윗은 성소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때 주셨던 비전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광야에 있으면서도, 성소에 임했던 주의 권능과 영광을 눈앞에 그리면서 성소를 향해서 기도하고 그때 만났던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구약의 제사나 성소 또는 성전이 사라진 오늘날, 우리에게 다윗이 회상했던 성소는 무엇보다 교회일 것입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우리 예배처소가 있기에 성소라는 말이 더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성소는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곧 교회요, 성도의 예배가 주님의 영광과 권능을 경험하는 통로입니다. 가정과 우리 자신도 주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삶 속에 주의 권능과 영광이 임하길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예배가 꽤 중요합니다. 이곳에 주님의 권능과 영광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으면서 회상하고 바라보아야 할 곳이 곧 우리 교회이고 예배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河-

은혜로 사는 한 해

2016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은혜로 사는 한 해”입니다. 작년 말에 기도하면서 정한 새해 표어입니다.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지만 특별히2016년 새해에, 참빛 식구들과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야 할 한 해임이 틀림없습니다.

어르신들의 건강에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건강이 예전같이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최고 연장자이신 박재순권사님부터 모든 어르신께서 올해도 영육간에 강건하시길 바라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은 여전히 힘겹기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에게도 주님의 세심한 인도하심의 은혜가 요청됩니다. 젊은이들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생활비가 큰 부담입니다. 학업, 직장, 연구 위에 하나님께서 힘과 지혜를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오면서 주일학교 아이들도 늘어나고 교회 사역도 예전보다 활기찼습니다. 올해에도 새로운 분들로 빈자리가 채워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잡아 주시고, 친히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지키시고 친히 세우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한 해를 은혜로 살기 원하면서 내일부터 1월 한 달 동안 온 성도님들이 자원해서 릴레이 금식에 참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싸인해 주시고 하루 중 편한 시간에 금식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금식 기도는 위력이 있습니다. 온 교회가 한 달 동안 금식으로 기도하면서 새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금식 가운데 교회는 물론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을 눈에 그리면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또한, 새해 첫 달에 교회가 기도하면서 준비할 것은 본국에서 대학생을 초청하는 행사입니다. 초청된 두 청년이 우리 교회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교회가 그들을 환영하고, 앞으로 초청팀에서 요청하는 것을 자원해서 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부터 주일예배 순서도 약간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지만 금방 적응될 것입니다. 변화된 예배에 대한 피드백도 기다립니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건의함 상자에 여러분의 의견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도 우리 주일 예배에 성령의 임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의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참된 예배자로 주 앞에 나가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찬양팀과 찬양대를 비롯해서 예배를 돕는 모든 손길에 주님께서 더욱 큰 은혜를 더해 주시길 바랍니다.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참빛 식구들께 하나님께서 힘을 공급해 주시고 하늘의 복으로 갚아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살펴볼 시편 63편 말씀을 통해서 신앙과 삶이 하나님께 이르고, 말씀을 통해서 은혜로 살기로 결단하기 원합니다. 2016년 새해에도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면서 은혜로 살아갑시다. 할렐루야!-河-

마가복음 10 : 열매 맺는 삶

2015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해도 우리 각자의 삶은 말 그대로 다사다난 했습니다. 평생동안 경험하는 삶의 굴곡이 한 해의 삶에도 그대로 나타나서 파도타기 하듯이 인생의 정상과 골짜기를 번갈아 경험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조마조마 했고 어김없이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다가도 좋은 일이 생기면 금세 얼굴이 활짝 펴졌습니다. 이렇게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면서 한 해를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올 한해 무척 복잡했습니다. 온 세계가 테러의 공포 속에서 평화를 기원해야 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총기사고도 골칫거리입니다. 세상이 하나가 되기보다 종교와 인종 그리고 각각의 이해관계로 점점 갈라지는 양상입니다. 엘니뇨로 인해서 올겨울에는 샌프란에 비가 많이 내리지만,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온 현상이 나타납니다. 미국 경제가 좋아졌다는데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치솟는 렌트비가 걱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니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을 휘두르고, 성전을 찾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보다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느라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더럽혀진 것을 두고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십니다.

날이 저물면서 예수님 일행이 베다니 숙소로 갑니다. 시장하신 예수님께서 한 무화과 나무에 다가가셔서 열매를 찾으시지만, 잎만 무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튿날 제자들과 함께 무화과나무 옆을 지나는데 제자들이 보니 나무가 뿌리까지 말라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저주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신앙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심판의 때가 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여기에 쓰인 때(시간)는 단순히 달력에 따라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시간을 가리키는 “카이로스”라는 헬라어가 쓰였습니다. 때가 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날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고 있으라는 교훈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신앙은 소용없습니다. 잎보다 열매가 우선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으실 때, 주님 앞에 내어 드릴 열매를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했습니다. 장사꾼으로 가득 찬 예루살렘 성전이 대표적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도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길을 계획하지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로 살면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곧 열매 맺는 삶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앞에 드릴 열매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 잇속대로 살았던 잎만 무성한 신앙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삶의 열매로 감사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河-

마가복음 9 : 섬기러 오신 예수님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성탄주일입니다. 지난 한달 여 대강절 기간동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성탄을 기다리면서 보냈습니다. 한 주간 한 주간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의 첫번째 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 (로고스) 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성탄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매 주일 고백하듯이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어둠과 죄에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달리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구약성경에서부터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곳입니다(미가5:2). 떡집이라고 불리는 매우 작은 마을입니다. 호적신고를 하러 온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숙소를 정하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은 짐승들이 사는 외양간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마가복음 10장은 작은 자와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혼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혼이라는 주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당시에 이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혼의 과정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성이 버려지는 이혼을 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질문했던 바리새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안수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이 어린이가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당시에 어린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약자였습니다.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께 가까이 올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제자들도 어린이가 자신들의 지경에 들어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맞아 주시고 무릎에 앉히십니다. 어린이가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두고 자칫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적용할 수 있는데 실제로 어린이들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와 같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주변인 즉 약한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낮고 약한 자를 환대하고 섬기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섬김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주셨고, 목숨까지 내어 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처럼 낮아짐과 섬김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8 : 산 위와 산 아래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스레 마음이 분주한 연말을 맞고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제일 먼저 아쉬움이 몰려오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대입해 보면 한 해의 삶에 주님의 손길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고 감사가 나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보름 남짓 남은 올 한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힘차게 새해를 맞으시길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향해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왕국을 세울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자신들을 예수님의 왼쪽과 오른쪽에 앉혀 주시길 바라는 인사청탁을 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종교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상이몽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장차 큰일을 해야 할 제자들인데 이들마저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기에 특별훈련을 시키시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광채 나는 흰옷을 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모하십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양쪽에 서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제사장들을 이겼고, 호렙산(시내산의 다른 이름)에서 미세한 음성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죽지않고 하나님께 들려 올라갔기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가 되면 엘리야가 먼저 와서 메시아의 도래를 알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엘리야에 비유하셨습니다 (막9:12).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세례받으실 때와 마찬가지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막9:7)라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얼떨결에 초막 세개를 짓고 산 위에 있겠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에게 산 위에서의 경험은 그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있을 곳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산 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때 확신이 생기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입장에서 돌아보게 됩니다. 훗날 흰옷 입은 성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은 산 위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산위에서의 놀라운 경험은 산 아래의 삶을 위한 준비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도 산 위의 경험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활동도 어떤 면에서 산위의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궁극적으로 산 아래 세상으로 흩어져서 그곳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지는 산 아래이기 때문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