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야곱 (4)

에서

 

야곱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에서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서로 싸웠습니다. 장자가 되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정황상 야곱이 형 에서를 이기려고 애썼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에서는 장자의 자리를 뺏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태중에서 먼저 나온 것을 보면 에서가 힘이 셌고, 야곱은 집념이 강했을 것 같습니다. 야곱이 힘으로는 에서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는 들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조용하고 장막에 있기를 좋아하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장자권은 아버지의 상속을 두 배로 받는 특권입니다. 이삭의 가정에서는 아브라함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축복까지 얻게 됩니다. 그런데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렸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눈앞에 보이는 먹거리와 바꾼 셈입니다. 가치보다 물질을 추구했습니다.

 

성경은 야곱을 “조용한 남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조용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완전한”이라는 뜻과 “단순한”이라는 뜻이 있고 대부분 번역자는 “단순한”을 택했습니다. 야곱에게 완전하다는 별칭을 붙여 주기에는 단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야곱보다 단순해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계획대로 야곱은 형 에서로 분장하고 연기하면서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아버지의 축복을 놓친 에서는 아버지 앞에서 대성통곡합니다. 에서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버지 이삭이 축복을 해주지만, 에서가 자기 힘으로 살게 되고 그의 후손이 야곱을 앞설 수 없다는 예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절대 아닙니다. 그때부터 에서는 동생 야곱에 대한 원한을 품고 삽니다. 아버지만 계시지 않으면 동생을 죽이려는 생각까지 합니다.  쌍둥이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은 온데간데 없고 긴장만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에서가 세상에서 어렵게 산 것은 아닙니다. 에서와 그의 후손 에돔 민족은 하나님을 잊었을 뿐 세상에서 자기 영역을 탄탄히 구축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는 기준이 아니면 에서도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도리어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에게 더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에서를 보면서 마치 오답 노트를 점검하듯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약삭빠른 동생에 치인 형의 모습도 발견되니 애잔함도 느껴집니다. 아버지를 속인 야곱에게 어려움이 연거푸 생기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인생길은 다양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느냐가 중요한데, 야곱과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알기에…-河-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야곱 (3)

이삭의 축복

 

이삭이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생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축복할 작정입니다. 고대 사회에서의 축복은 대개 장자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니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창세기에서 축복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후대에 전수하는 사건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 후손이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고 세상에서 복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속이 이삭에게 전수되었고, 이제 이삭은 자신이 사랑하는 맞아들 에서에게 전하려는 순간입니다.

 

이삭이 에서를 불러서 사냥해서 별미를 가져오면 자신이 축복하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부인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을 나간 틈에 서둘러 야곱을 부릅니다. 염소 두 마리를 갖고 오면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준비할 테니 에서인 척하고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축복을 가로채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나이가 들고 눈이 어두워졌어도 자신을 알아 볼 것입니다. 게다가 형은 털이 많고 자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발각되면 야곱은 저주받고 집에서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리브가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질 테니 서둘러서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가서 축복받으라고 재촉합니다.

 

야곱이 리브가가 준비해 준 음식을 갖고, 에서의 옷을 입고, 목과 팔에 염소 털을 붙이고 이삭에게 갑니다. 자기가 에서인 척하면서 아버지를 속입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은 의심하면서도 에서라고 생각하고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팥죽을 주고 장자권을 산 야곱이 실제로 형 에서에게 가는 축복까지 가로챈 것입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가 아버지 이삭을 찾아 가지만, 축복은 이미 야곱에게 돌아갔습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만큼 축복이 중요했습니다. 에서가 분노합니다. 아버지 이삭은 몸을 떨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죽으면 야곱의 목숨을 빼앗겠다고 말합니다. 축복은 기쁜 일인데 그것이 이삭의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습니다.

 

야곱이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은 불편한 사건입니다. 게다가 네 식구의 입장이 제각각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부인 리브가와 둘째 야곱에게 철저히 속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서 장자권을 팔아버렸던 에서는 장자에게 돌아오는 축복도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리브가는 창세기 본문에서 등장해서 활동하지 않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몸을 피하고 험한 세월을 삽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할 수 있고, 작은 자가 큰 자를 다스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에 전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의 입장이 되어서 본문을 꼼꼼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라는 질문이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 같습니다. -河-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야곱 (2)

장자권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난 야곱은 장자권을 형에게 빼앗겼다는 마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당시의 장자권은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는 권리를 가리켰습니다. 장자에게는 다른 자식들에 비해서 두 몫을 주었으니, 에서는 아버지 재산의 3분의 2를 갖고 에서는 3분의 1만 갖게 됩니다. 자식이 많으면 커다란 차이가 없지만, 야곱과 에서처럼 자식이 둘인 경우 두 배를 갖는 장자의 몫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첫째 아들은 가족을 대표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삭이 늙어서 자식을 축복하려고 할 때 야곱이 아니라 에서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형과 싸웠는데 태어나보니 자신은 둘째였고 실제로 형 에서에 비해서 자기 몫이나 권한이 작은 것에 늘 아쉬워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태어나 보니 그 차이가 너무 큰 것입니다.

 

에서는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서 사냥에 능숙한 들사람이 됩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했기에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대개  장막에 거주했고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조용한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탐>은 흠이 없고 완전하다(integrity)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에게 흠이 없다는 말을 붙이기가 어려워서 조용한(quiet) 사람 또는 단순한(simple) 사람이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들사람인 에서와 대조해서 온순한 집사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야곱과 에서의 성품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야곱이 장막에서 죽을 쑤고 있는데 사냥하느라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에서가 거의 죽게 되었으니 죽(soup)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우리 성경은 “붉은 것”이라는 표현에서 팥죽이라고 번역했습니다(34절). 또한 붉다는 것은 에서가 태어났을 때 그의 몸이 붉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훗날 에서의 후손들이 에돔(“붉다)”)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 붉은 것”이라는 구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본문을 그대로 옮기면 “붉은 것, 붉은 것 바로 그것”이 되는데 에서가 허겁지겁 죽을 달라고 부탁하는 행동이 그의 말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서두르는 에서와 달리 야곱은 매우 침착합니다. 에서의 요청을 잠깐 멈추게 하고 “형의 장자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31절)고 형과 거래를 시작합니다. 이 시간을 기다리며 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서는 당장 음식을 먹고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차 그에게 유익을 끼칠 장자의 명분을 무시합니다:“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32절). 지금 죽는다면 장자의 명분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 에서의 말이 맞지만, 사냥해서 굶어 죽는 법이 없기에 오늘 본문은 에서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다고 깔끔하게 정리합니다(34절). 에서는 맹세까지 하면서 장자권을 야곱에게 팝니다.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河-

하나님과 겨루워 이긴 자, 야곱 (1)

야곱의 탄생: 발꿈치를 잡고

 

우리는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탄생부터 어린 시절을 거쳐서 인생의 모든 여정과 죽음까지 자세히 기록된 인물은 야곱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걸었던 인생길을 천천히 되짚어가고 함께 걸어갈 예정입니다.

 

야곱에 대한 말씀은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형 에서와 장자권을 갖고 벌이는 경쟁,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속고 속이는 피난살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겪는 고초까지 나중에 야곱 자신이 말하듯이 그의 인생은 절대 평탄치 않았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야곱의 인생에서 두 가지 큰 경험을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갈 때,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길에서 노숙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외삼촌 집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깊이 그리고 확실하게 경험한 두 가지 사건이 그의 인생길에 큰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었습니다.

 

야곱은 타고난 싸움꾼이요 자기 목적을 이루고 마는 집요한 인물입니다. 세속적인 면도 있습니다. 물질에 집착합니다. 도덕적으로 결코 존경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권을 얻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부족함을 들어서 쓰십니다. 인간이 잘 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심을 야곱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우리 역시 야곱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지만,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속에서 희망을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았지만, 20년 동안 아기가 없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은 신의 저주로 여겼습니다. 리브가와 이삭의 마음고생이 컸을 것입니다. 그때 이삭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쌍둥이 아들이었습니다.

 

복중에서 너무 심하게 싸우는 것을 느낀 리브가 역시 하나님께 나와서 “내가 어찌할꼬”라고 탄식합니다. 리브가의 복중에서 두 민족이 싸우고 있답니다. 훗날 이스라엘과 에돔의 갈등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쌍둥이 아들이 태어났는데 야곱이 에서의 발 뒤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야곱에게는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별칭을, 몸에 털이 많고 붉은 첫째에게 에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河-

너 근심 걱정 말아라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찬송가 382장)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성에 염려(sorge)가 깃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외부에 구체적인 대상을 갖고 있다면, 염려는 우리 존재 안에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존재의 불안함입니다. 죽음이 그 끝에 있으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마지막을 의식하면서 불안해하고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염려는 우리가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모든 사람이 염려를 갖고 삽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깃든 염려를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하느냐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냅니다. 광야야말로 불안과 두려움, 미래에 대한 염려로 가득한 삶의 현장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셔서 먹거리에 관한 염려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길을 인도하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불안했습니다. 약속의 땅이 눈앞에 있는데도 염려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앞서 가셔서 길을 만드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시빌라 마틴(Civilla Martin, 1866-1948)과 그의 남편이자 목사인 월터 마틴(Walter Martin, 1862-1935) 부부가 각각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서 탄생했습니다. 마틴 목사가 시골의 작은 교회에 설교하러 가는 날, 부인이 갑자기 아파서 설교를 취소할 생각을 합니다. 그때 아홉 살 먹은 아들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설교하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마틴 목사는 설교하러 떠났고, 그사이 부인 시빌라 마틴이 시를 씁니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세 가족이 만든 찬송이 바로 <너 근심 걱정 말아라>입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의 영어 제목은 <하나님이 당신을 돌보실 것입니다 God will take care of you>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데 왜 근심하고 걱정하느냐는 찬송입니다. 매일 같이 그리고 항상 하나님께서 지키고 돌보실 것이라는 찬송입니다. 아홉 살 먹은 아들의 말을 따라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을 전하러 갔던 마틴 목사 부부의 신앙 고백입니다.

 

새달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앞길을 알지 못하니 우리를 지키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존재 한 가운데서 생기는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걷는 새달이 되기를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