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 충성 (1): 하나님 앞에서/ 시편 51:10-17
찬양: 주 손길
작은 일에 충성 (1): 하나님 앞에서/ 시편 51:10-17
찬양: 주 손길
2018년 새해 첫째 주일입니다. 올해는 무술년 개띠해입니다. 일반적으로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견(忠犬)으로 불립니다. 특별히 무술년과 연관시킨 것은 아닌데 2018년 우리 교회 표어가 “작은 일에 충성하라”입니다.
우선, 작은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가리킬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크고 작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십보백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또한, 작은 일은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입니다. 적당히 지나쳐도 될 것 같은 일입니다. 챙기지 않아도 될법한 일입니다. 행여나 열심히 해도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을 일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소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행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은 해야 하는 일/과업뿐만 아니라 관계도 포함합니다. 소홀하기 쉬운 관계, 지나치기 쉬운 관계, 관심을 가져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관계들을 챙기고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작은 일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참빛 공동체 안에서 행여나 소외되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분이 우리 교회에서 신나게, 주인의식과 소속감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속회, 남선 교회, 여선 교회, 청년부, 성경공부 모임 등을 통해서 “공동체성”을 경험하고, 말씀과 기도로 서로 연결되기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의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신앙 안에서 교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주일 친교 시간에도 서로 챙기고, 삶과 은혜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워 가기 원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작은 일과 연관됩니다. 우리 교회는 늘 그랬듯이 어떤 일을 강제하지 않고 자원해서 섬기고 여력이 있는 한에서 사역을 펼쳐왔습니다. 받은 은사대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마음과 손길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올해에도 작은 일, 궂은일,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말없이 은밀하게 섬기는 손길들을 기대합니다.
은밀하게 구제하는 일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분기마다 작은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고국의 소년소녀가장 돕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이밖에도 우리 교회를 통해서 세상의 작은 자들에게 사랑과 소망을 전할 할 수 있다면 성심껏 그 일에 참여하겠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이기에 더욱더 진실한 믿음이 요청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인정하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참빛 가족이 되기 원합니다.-河-
2017년을 보내고, 2018년 새해를 맞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감사와 기쁨입니다.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이 시간 기억하며 예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로 2017년을 보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표어를 갖고 한 해를 살았는데, 과연 우리가 주님께 받은 사랑을 온전히 전하고 실천했는지 돌아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 내 것을 더 챙기려는 욕심, 남들 보다 더 많이 갖고 높아지려는 교만이 살아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기로 결심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바르게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2018년 새해에는 아주 작은 일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소홀하기 쉬운 것에도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주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시고, 주변의 이웃들을 찾아가서 손잡아 주고,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올 해가 다갔을 때,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새해에는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사는 미국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해서 서로 미워하고, 파당을 짓고, 다투는 일이 줄어들게 하옵소서.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전쟁, 테러, 총기 사고를 주님께서 통제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주님의 뜻대로 유지되는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올 한해도 우리 교회 어르신들을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아이들이 주님의 아들과 딸로 신앙 안에서 자라게 하시고,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인생 여정에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정오의 빛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찾아오시는 예수님: 엠마오로 가는 길/누가 24:13-35
송구영신예배
2017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 개인은 물론 교회로도 감사와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삶의 구비구비에서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서로 사랑하라”는 표어를 갖고 한 해를 보냈습니다. 가족 같은 교회로 함께 세워가고, 받은 사랑을 서로 나누면서 한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길 원했습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한 해를 지내셨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서로를 마음에 품고 기도해주고 배려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작은 사랑 나눔을 세 번에 걸쳐서 실천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조국에 있는 30여 명의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지만, 꼭 필요한 곳에 은밀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참빛 식구들께서 많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내년에도 작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의 마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대강절과 성탄절을 맞으면서 <찾아오시는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찾아가신 말씀을 나눕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을 두루 만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신비로운 몸을 입으셔서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시지 않으면 제자들이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직후의 상황입니다. 열두제자에 속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두 명의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와 동행하시는 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슬며시 말을 거시니 사흘 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죽으심과 최근에 들은 부활 소식을 전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자신이 메시아이고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알리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비로소 이들의 눈이 떠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웠던 순간을 회고하면서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마지막 주일을 맞으면서 한 해 동안 우리를 찾아오시고 동행하신 예수님을 떠올리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河-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내고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물론 부활절이 유대교에서 지키는 유월절과 맞물려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실제 날짜에 가깝지만, 성탄절은 로마 시대에 태양을 섬기던 날과 관련이 있습니다.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지나고 낮이 길어지는 시점이 태양을 섬기던 절기였는데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바뀐 후에는 빛 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태양을 섬기던 날을 태양은 물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탄생일로 바뀐 뜻 깊은 날입니다.
요즘은 성탄 인사가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메리 크리스마스”로 인사했습니다. 영어의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를 예배 (Christ’s mass)”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메리 크리스마스”로 인사하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예배하고 기억하자는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빠르게 바뀌면서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성탄절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타클로스입니다. 어린시절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양말에 선물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때는 진짜로 산타 할아버지가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산타클로스의 유래를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주후 300년 경에 오늘날 터키에 해당하는 곳에 니콜라스라는 사제가 있었습니다. 니콜라스는 재산이 많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산타클로스의 원조가 된 사연이 있습니다. 니콜라스가 사는 지역에 세 명의 딸을 둔 가난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딸을 시집보내고 싶었지만, 신랑에게 챙겨줄 지참금이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니콜라스는 금덩어리를 주머니에 넣어서 굴뚝으로 내려보냈고, 그것이 집안에 걸어놓은 양말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직접 전해주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은밀히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처럼 세 명의 딸을 결혼시킬 수 있는 자금을 굴뚝을 통해서 전해 준 것이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온다는 전통이 되었답니다. 그러니 오늘날도 은밀하게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산타클로스가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올해도 여선교회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굴뚝을 통해서 양말에 넣어주지는 않지만, 선물을 받는 아이들의 마음은 똑같이 기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아서 모든 참빛 식구들 위에 하늘의 기쁨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찾아오시는 예수님 (7): 마리아 찬가/누가 1:46-55
사랑이 예 오셨네
실버벨
봉헌송
찾아오시는 예수님(7): 삭개오/누가 19:1-11
힘들고 지쳐서 하나님께 나올 수 없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나인성 과부가 좋은 예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여인을 향해서 불쌍한 마음이 동하시니 관에 손을 대시는 등 율법을 파괴하시면서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예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도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고 믿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걷는 구도자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한 순례길입니다.
힘이 없을 때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손잡고 함께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을 찾아갈 힘이 있을 때는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이처럼 신앙은 예수님과 우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거기서부터 발전하고 성숙합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는 여리고 세무서의 최고 관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를 위해서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기에 자기 백성으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대부분 세리들은 로마가 책정한 세금보다 많이 걷어서 여분을 자기가 착복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세리들도 있었습니다. 삭개오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삭개오라는 이름에는 그의 직업과 달리 “의롭다”는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면 답답함과 삶의 무의미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군중 틈에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정이 삭개오로 하여금 옆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가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보시고 그를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시면서 그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삭개오 역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착취한 것을 보상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여리고 세무서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먼저 뽕나무에 올라갔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원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고 찾아오셔서 그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찾는 구도자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河-
찾아오시는 예수님 (5): 나인성 과부/ 누가 7: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