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4: 시편 123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Song of Ascent) 열다섯 편을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번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와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거룩하고 신비롭고 귀한 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전에서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가정과 일터 그리고 골방에서 각자 드리는 예배의 귀함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일 설교에서 함께 살펴본 시편을 주중에 여러 번 읽고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시편 120편부터 시작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으시고, 예습하듯이 앞으로 살펴볼 말씀도 읽으시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깊어지고 하나님께 이를 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묶여진 시편 자체가 기도이고 찬양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우리의 마음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네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편 123편은 짧지만 꽤 은혜롭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세 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도 은혜로웠지만 오늘 우리가 만난 시편이야말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 매우 적합합니다. “하늘에 계신 주”로 시작되는 서두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고백은 모든 것을 아시고, 세상을 뛰어넘으시는 초월자이자 창조주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산을 향해서 눈을 들었지만 결국 도움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시편 121편의 고백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와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경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선과 악을 심판하실 하나님이십니다.

 

123편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았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하나님께 오는 중입니다. 심한 멸시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잘난 사람이 멸시하더니 이번에는 자기보다 못해 보였던 사람까지 나서서 조롱하니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내세울 것이 없어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보면서 성전에 올라오는 길입니다.

 

그때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키리에 엘레이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반복해서 기도합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것은 주님께 나오는 사람이 갖는 최고의 겸손이고 간절함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는 교회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간절하고, 솔직하고 깊은 기도였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3: 시편 122편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로 성경이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되심을 선포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과 혼돈의 세상에 빛과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를 소개합니다. 하늘과 땅을 구별하시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 공중을 나는 새들, 바다의 물고기를 차례로 만들어 가십니다. 공간을 먼저 만드신 후에 살아있는 생물들로 공간을 채워 가시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다스릴 책임과 권리를 부여하십니다.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흡족하고 선한 창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6일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의 창조는 6일의 일하심과 마지막 일곱 번째 날의 안식으로 이뤄집니다. 6일의 창조 끝에 안식이 있는 것은 십계명에 있듯이 하나님께서 안식의 본을 보여주신 셈입니다. 어떤 학자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목적이 안식일에 있다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제 7일에 안식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표지(mark)였습니다. 안식일을 중심으로 삶의 리듬과 싸이클을 맞춰 놓은 것입니다. 우리도 6일 동안 세상에 살다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합니다. 온 교회가 함께 예배함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맞추고, 다시 세상에 나가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의 영광을 맛봅니다. 하나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는 신비롭고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122편은 주의 집에 올라갈 것을 서로 격려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누군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말했을 때, 마음이 기뻤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기쁨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 보니 모든 백성이 감사함으로 성전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성전에 올라올 때 우리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거룩한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기쁨입니다. 감사와 기쁨은 함께 갑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6일 동안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시고,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심이 감사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합니다. 샬롬 – 평안은 개인으로 말하면 몸과 마음은 물론 영이 온전한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다툼과 시기와 갈등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평안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임하는 평안입니다. 감사와 기쁨, 평안과 복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빛 식구들 위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2: 시편 121편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배의 범위는 꽤 넓습니다. 주일에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물론 수요 예배와 새벽 기도회, 속회예배까지 공동체의 모임을 모두 예배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는 시간은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침마다 주님을 만나는 경건의 시간도 예배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예배입니다. 생각과 말로부터 모든 움직임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 앞에 전부 예배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태도는 “영과 진리”(요 4:23)입니다.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예배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성령의 함께하심을 바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이시니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거룩과 신비가 예배 속에 있습니다.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거짓과 위선을 몰아내고 진실되게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 이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의지하면서 예배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두 번째 말씀은 시편 121편입니다. 시편기자는 산으로 둘려 있는 길을 지나서 성전에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뜬금없을 수 있지만 스탠포드에서 올라오는 280 고속도로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차로 올라오지만, 시편 기자는 산길을 걸어서 성전에 오고 있습니다다. 도움이 어디서 올지 산을 향해서 질문합니다. 산을 향해서 소리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소리만 메아리 칠 뿐입니다.

 

시편 기자의 상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산 길을 걸어 성전에 가면서 자신을 휘감고 있는 산을 향해서 도움이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때 시편 기자의 마음 속에 울려 퍼지는 대답이 있습니다:”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 자신이 걷고 있는 산길은 물론, 저 멀리 우뚝 서있는 산까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자신의 도움이 되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으니 신이 납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서둘러 가서 성도들과 함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집니다.

 

신앙은 함께 걷는 길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축복하면서 걸어가는 순례길입니다. 3-8절까지는 성전에 올라가서 서로를 향해서 축복하는 말씀입니다. 각자가 만난 하나님을 서로에게 소개하면서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밤낮없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출입을 지켜 주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인생의 순례길이 기대가 되고 발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 시편 120편

구약 성경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은 물론 가족 단위로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히브리어 “카보드”)으로 임재하신 성전에 직접 가서 제물을 바치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의무이자 특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가는 순례길은 벅차 오르는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양을 잡아서 속제물로 드리고 죄사함의 은혜를 구하기 원했습니다. 양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는 제사를 드리고 나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등이나 다툼으로 인해서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가 깨진 경우에도, 성전에 가서 화목 제물을 드리고 그 제물을 함께 나누면서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면 제사장들이 이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던 레위인들의 인도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했습니다. 성전에 올라온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과 소리는 아름답고 웅장했을 것입니다. 개인 또는 가족 단위로 성전에 올라가지만, 성전에 들어오면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누리는 특별한 은혜가 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열다섯 편으로 구성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매 주일마다 한 장씩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예배에 오다 보면 습관적으로 교회에 올 때도 많이 있고 아주 가끔은 “왜 예배에 가지?”라는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바쁜 세상에 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예배에 오는 동기를 상실한 경우입니다. 그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편이 우리의 신앙과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주일 아침, 함께 나눈 말씀을 묵상하면서 온 가족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입니다. 온 성도님들이 하나가 되어서 주님을 예배합니다. 개신교 예배에서는 설교를 강조하지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부터 마지막 축도까지 예배의 모든 순서가 중요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각각의 순서에 참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참된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읽어가면서, 우리 교회 예배와 찬송이 더욱 풍성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찬양대는 물론 모든 성도님들이 화음을 맞춰서 아름다운 하모니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악기로 주님을 찬양할 날도 기대하겠습니다. 주일예배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자체가 예배입니다. 삶 속에서 찬양이 끊이지않고, 주일에 함께 나눈 말씀을 묵상하면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노래가 되고, 함께 모이는 공동체 예배에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16장 – 부활 하시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교회는 마가복음을 공부했습니다. 청년부에서 먼저 공부했고, 이어서 속회에서도 마가복음을 공부했습니다.“공부”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말씀이 더욱 선명하게 우리 안에 아로새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세한 내용을 잊어버립니다. 반복 학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성경은 평생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외우고 묵상할 하나님 말씀이지만, 배울 때 집중해서 살펴보면 학습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두 차례에 걸쳐서 마가복음을 주일에 설교했습니다. 작년 말에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이번 여름에는 예루살렘 사역을 나눠서 살펴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파편처럼 널려 있으면 신앙이 허술하게 형성됩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신앙의 정보들을 잘 꿰어서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어 놓으면 보기도 좋고, 신앙을 삶 속에 올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작은 것에 연연하기보다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무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앞서서 숲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듬성듬성 한 장씩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의 신앙이 바르게 조직되고, 하나님 앞에서 각자 신앙의 집을 근사하게 지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런저런 말이나 이벤트, 프로그램에 휩싸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거나 심하게 의존하지 않고 줏대 있는 신앙을 만들어 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배운 내용은 잊어버려도 그것들이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에 베어 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가복음은 신약성경의 사복음서 중에서 분량이 가장 짧고, 진행되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나 광야 시험 없이 곧바로 갈릴리 사역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참뜻을 밝히 알지 못하고 늘 동상이몽입니다. 결국 한 명의 제자가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으며,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음을 로마 군병의 확인과 아리마대 요셉의 장례를 통해서 알려줍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는 주일인,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부활 소식을 들은 베드로가 제일 먼저 달려갔다고 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과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먼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음식을 먹고 있던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것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길 부탁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되고 기독교 자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도 부활에 근거합니다. 부활로 죽음의 세력이 물러가고 새로운 생명과 세계가 임했듯이,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도 생명이 임했기에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