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윗 스팟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설교에서 잠깐 언급했던
스윗 스팟(sweet spot)은 스포츠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테니스 라켓에서 힘을 많이 쓰지 않고도
강하고 정확하게 공을 보낼 수 있는 지점을 가리킵니다.
테니스는 물론 골프와 야구에도 스윗 스팟이 있답니다.

 

스윗 스팟이라는 용어는
스포츠뿐 아니라 다양하게 확대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가장 잘 관람할 수 있는 자리를
스윗 스팟이라고 부릅니다. 뒤에서 3분의 1지점이랍니다.
상점에서도 상품이 가장 잘 팔리는 곳이 스윗 스팟입니다.

 

거래에서도 사고 파는 사람의 이해관계나 가격대가
정확히 맞았을 때, 그 지점을 스윗 스팟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스윗 스팟은
어떤 일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로
두루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스윗 스팟(sweet spot)의 문자적 의미는
“달콤한 지점”입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한군데로 모여서
달콤하고 기쁘고 경이로운 지점이 형성될 때
그곳이 바로 스윗 스팟입니다.

 

신앙의 스윗 스팟은 어디일까요?
신앙에 대한 지식/교리 (머리, head)
하나님을 경험하는 체험, (가슴, heart)
배우고 느낀 것을 실천하는 삶, (손, hands)
– 세 개의 H가 모이는 곳이 신앙의 스윗 스팟일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
– 세 가지 사랑이 모이는 곳이 스윗 스팟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활동과 관계가
하나님 사역의 스윗 스팟이 될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주일에 함께 모이는 예배와 친교가
때때로 힘겹고 지루한 일상에
달콤함을 주는 스윗 스팟이길 바랍니다.

 

3.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기도 방식과 내용
즉 기도의 스윗스팟을 개발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억지로 기도하는 것,
일이 잘못된 것을 두고 기도하지 않았거나 덜해서 그렇다고 자책하는 것
기도 응답에만 연연하는 것
남에게 보이려는 기도 등
– 이런 식의 기도가 절대로 스윗 스팟이 될 수 없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로
시작하는 찬송가 364장의 제목이
“Sweet hour of prayer/달콤한 기도 시간”이듯이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길 바랍니다.

 

기도가 우리 신앙과 삶의 스윗 스팟이 되길 원합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고, 기도가 즐겁고 기쁘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어지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4:2)

 

하나님,
우리의 기도 시간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경이로 채워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6. 23 이-메일 목회 서신)

그러나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2022년 기도에 대한 연속 설교는
누가복음의 겟세마네 기도가 본문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습관대로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계획)이라면
앞에 있는 잔을 옮겨주시길 요청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 22:42)

 

2.
저는 주일 설교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그러나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께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듯이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Abba)”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구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러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최선이라는 믿음에서 “그러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기도를 예수님처럼
“그러나 기도”로 마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신앙입니다.

 
3.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의 응답 여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신앙이 좌에서 우로 크게 움직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의 기도가 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의 계획도 나의 계획에 맞춰서 조정되길 바라는
이기심이 우리 기도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 여부, 신앙의 확신이
하나님이 아닌
내가 드린 기도의 응답에 매이게 됩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신앙은 나에서 하나님께 중심축을 옮기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기도에 대한 연속 설교를 나누면서
기도가 습관이 되고
참빛 식구들께 “그러나 기도”가 온전히 장착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 22:42)

 

하나님,
우리의 기도와 신앙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6. 16 이-메일 목회 서신)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찬송가 288장을 작사한
시각장애인 패니 크로스비에 대한 말씀을 지난번에 나눴더니
아내가 우연히 재미 금융인 신순규씨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유튜브에서 보았다고 알려줍니다.

 

신순규는 녹내장과 망막 바리라는 질병으로
아홉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에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갖는 직업이었던
안마사가 되는 것보다 피아니스트가 되길 바라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점자책을 손수 만들어서 아들에게 주었고
어머니의 수고에 감사한 아들은 그것을 갖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열다섯 살에 홀로 미국에 유학와서 피아노 수업을 하다가
일반 학교로 전학해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만난 미국 양부모님의 격려와 도전이 큰 힘이 되었고,
일반 학교 선생님들도 신순규라는 학생을 위한 특별 교재를 만들고
양궁 수업까지 시켜 주었답니다.

 

앞을 못 보지만 활달하고 도전적인 성격 덕분에
학생회장도 하고, 결국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에 입학했고
MIT에서 석사과정을 밟다가 월스트리트와 연결되어서
27년째 세계적인 금융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2.
이분에 대해서 검색해 보니
이미 한국에서 두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가운데 2021년 팬데믹 기간에 출판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을 전자책을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대단한 분입니다.
헬렌 켈러와 패니 크로스비가 그랬듯이
결코 자기의 장애(disability)를 장애가 아닌 능력(ability)으로 바꿨습니다.
앞에 있는 세 가지 철자 dis를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겠다는 결심(determination),
장애인이 아닌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정체성 (identity)
자신만의 기술(skill)로 바꾸면서 가능성의 문을 열었습니다.

 

눈이 두 개를 넘어서 세 개 네 개여야 하고
쏟아지는 정보를 읽고 분석해서 투자를 결정하는 월스트리트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인 신순규씨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감사”라고 했습니다.

 

불평하고 절망하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이분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감사하면서
앞에 놓은 과제와 삶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았습니다.

 

3.
신순규씨는 특별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두 신순규씨가 될 수 없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장애와 역경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삶과 직업을 개척한 분을 보면서
인간의 가능성이 무한함을 발견합니다.
은근히 부끄러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때때로
의기소침하고 주춤거릴 때가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이 쉽지 않고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느낌도 듭니다.
그때, 장애를 이기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분들의 삶이 도전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줍니다.
앞으로 나갑시다.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 갑시다.
길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10)

 

하나님,
어려움과 방해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훌쩍 뛰어넘을 힘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6. 9 이-메일 목회 서신)

예외가 없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과 올 초에
고난에 관해서 공부했습니다.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햇볕이 비치고 비가 내리듯이
고난도 맥락 없이 찾아옴을 배웠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만 고난에서 면제된다면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자연법칙은 망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크고 작은 고난에서 면제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면제되는 곳(시간)은
이다음 완성된 하나님 나라뿐입니다.
그곳에는 의와 기쁨과 평화만 있고 고난은 없습니다.

 

고난이 면제되는 곳이
이다음 완성될 하나님 나라뿐이라면,
세상을 살면서 고난에서 면제되길 기도하기보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고난을 이길 힘과 지혜를 주시길 구해야겠습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마주하고, 파도를 타듯이 뛰어넘어야겠습니다.

 

2.
저도 예외 없이
5월 초에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2-3일은 열도 오르고 목도 아프고
두통과 몸살기로 몸이 무거웠습니다.

 

심한 증세는 아니었지만,
작은 집에서 세 식구가 격리해서 지내는 것이나
주일 예배를 저 혼자 온라인으로 전송하는 등 한 차례 큰일을 겪었습니다.

 

코로나를 앓으면서,
세상에 예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고, 아무리 조심해도
언제 어떤 경로로든 감염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이겨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3.
다시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그동안 감염되지 않은 분들을
도미노를 쓰러뜨리듯이 차례로 감염시키는 느낌입니다.
이토록 끈질긴 팬데믹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지요!

 

저는 교회에 다음과 같이 광고했습니다:
“가능하면 조심하셔서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행여나 감염되면 너무 겁내지 말고, 코로나와 마주하시고,
증세가 심하고 기저 질환이 있으시면 의사에게 코로나 치료제를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맥락 없이 코로나가 찾아옵니다.
까닭 없이 고난도 닥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백성답게
담대하게 마주하고, 싸우고, 넉넉히 이겨내야 합니다.
그 힘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주시는 힘으로
찾아오는 삶의 파도를 훌쩍 뛰어넘기를 원합니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시편 34:17)

 

하나님,
예외 없이 닥치는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이길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6.2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 형상 (2)

1.
지난주 목요 서신에서
버팔로와 남가주 총기사고를 보면서
하루속히 총기 규제가 이뤄지길 촉구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이 귀하기에,
사람에게 총을 쏘는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텍사스의 한 초등학교에서
19명의 아이들과 두 명의 선생님이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012년 코네티컷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20명의 아이들과
8 명의 어른이 희생당한 사고가 있은 지
정확히 10년 만에 발생한 사고였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그때 모든 정치인이
총기 규제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엄격한 총기 규제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총기 협회(NRA)의 로비를 비롯한
정당과 정치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좇느라
실제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입니다.

 

총기를 구입하는 사람의 배경(background)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총기 거래 과정을 명확하게 추적하려는 법안들이
민주/공화 양당 간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총기 규제가 상대적으로 엄격하지만,
블랙마켓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총기가 워낙 많고
아직도 법에 허점(loopholes)이 많기에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
미국은 수정 헌법 2조에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무기 소지를 허용하기에 총기 규제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헌법을 고쳐서라도
강력한 총기 규제를 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18세 이상의 성인에게 총기 구입을 허용하는 것에 연령을 높이거나,
불법으로 총기를 거래하는 것을 엄격히 단속하고,
위험한 총기는 GPS 추적 장치를 탑재하도록 의무화하거나
요즘같이 AI가 발달한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도의 확실한 규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3.
살기 좋은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모든 어른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지혜를 모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해야겠습니다.
행동해야겠습니다.

 

희생된 아이들의 천진난만했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아픔은 오죽하겠습니까?
주님의 위로와 소망을 구합니다.

 

이 땅을 회복시켜 주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93:13)

 

하나님,
하루속히
강력한 총기 규제가 이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5. 26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 형상 (1)

1.
요즘 연거푸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뉴욕주 버펄로에서는
인종 차별주의자인 18세 청년이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생중계까지 시도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엊그제 주일에는
남가주에 있는 대만 회중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친교 하던 중에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같은 대만 출신 60대 남성이
교회에 모여 있던 연로한 성도님들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산호세에서도 총격 사건이 있었고
쉬지 않고 총기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엇보다 인종차별과 연결된
혐오 범죄여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2.
우크라이나에서는
80여 일 이상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임시 매장지에서 슬프게 우는 병사의 어머니,
도심에 나뒹구는 시신들,
–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의 목숨과 인간의 존엄성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언론이나 유튜브 영상을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넘어서 허무할 정도입니다.

 

3.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비록 죄로 인해서 그 형상이 망가지고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서 형상이 지워졌지만,
본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성경은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열외 또는 배제는 없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 은혜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미리 은혜를 주셨고
그 은혜에 반응하면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존귀합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한 번뿐인 생명은
그 누구도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성 모독입니다.

 

그러니 총격 사건과 전쟁이
귀한 생명을 무차별 앗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요 반항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반인륜적 행위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탄식이 나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손으로 회복시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5. 19이-메일 목회 서신)

5월은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한국식으로
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올해는
100번째 맞이하는 어린이날이랍니다.

 

어린이날 노래가 생각납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팬데믹이 물러가고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오길 기도합니다.

 

2.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가 Mother’s Day입니다.

 

자녀들 선물에 부모님 선물 또는 용돈까지
젊은 부모님들은 허리가 휘는 5월초가 되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자녀들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하고 큰 선물이니
기꺼이 기쁘게 섬기는 어린이날이요 어버이날입니다.

 

Mother’s day에 우리 교회에서 부르는

어머니 마음이라는 노랫말은 늘 감동을 줍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특별히, 팬데믹 동안 얼굴을 뵙지 못한
조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3.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기까지 많은 스승이 계셨습니다.
꼭 학교 선생님이 아니어도,
우리를 빚어주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스승의 노래도 기억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람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4.
베이지역에서 5월이 되면 건기가 시작되지만,
한국의 5월은 온 세상이 찐한 초록으로 물드는
하늘까지 맑은 청록의 계절입니다.

 

부활절 이후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생명이 넘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죄짐을 모두 지신 친구요,
따라야 할 스승이요,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아버지) 이시니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푸르른 계절 5월을 맞아서
우리 주변을 사랑으로 섬기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변함없이 푸른 초록 색깔이길 바랍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시 92:13)

 

하나님,
5월을 맞는 참빛 식구들에게
변치 않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5. 5이-메일 목회 서신)

사이 잇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루스드라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바울의 후계자가 된 디모데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 인이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신실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유대인으로
헬라인과 결혼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가운데는
다른 민족과 결혼한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유대인 가정의 신앙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딤후 1:5)

 

구약 성경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었기에
바울이 설명하는 예수님을 금방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로 믿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사전지식, 기초지식,
신앙도 초기 교육이 중요함을 디모데를 통해서 배웁니다.

 

2.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디모데의 몸에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피가 함께 흘렀습니다.
유대인의 밭에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의 씨가 뿌려졌으니
신앙적으로 두 종교가 섞여 있습니다.
어쩌면 경계선에 서 있던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디모데는
유대인은 물론 헬라인을 위한 전도에 딱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제안으로 몸에 할례까지 받음으로
유대인의 비난도 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문화 가정들이 보편화되었고
부모들이나 자녀들이 제한 없이 자기 인생을 펼쳐 나가지만,
바울과 디모데 시절에는 쉽지 않은 선택이고 삶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디모데를 선택하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 선교 사역을 이뤄 가셨습니다.
경계선에 있는 인물이 아닌,
두 민족과 종교를 통합하는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간격과 차이를 이어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3.
사실 우리도 경계선에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말 그대로 어중간한 모습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거나,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놓고도
딱 부러지게 잘하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처하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걷는 인생길 자체가 경계선이요
모호한 길을 걷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 여정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사이를 잇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디모데처럼 우리를 사용하시길 기대합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의 장점이 발휘되고,
여기저기, 이것저것을 통합하고 화평케 하는 삶을 살고
우리의 모든 삶이 결국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써 가실 것입니다.

 

하나 되게 하시고, 사이를 잇게 하시고,
모든 것을 들어서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4월을 마감하고 새달 맞읍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께 드려지고
주께서 쓰시는 것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4. 28 이-메일 목회 서신)

 

앞을 향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부활절을 보내고
이제 부활 이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요
진리였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은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2.
살아생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 자
제자들이 모두 흩어지고
두려움에 떨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을 향하는 열린 세상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세력을 이기신
우주적인 승리였습니다.
과거의 청산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었습니다.
미래를 향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아담의 죽음을 해결하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었습니다 (고전 15:21).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죽으심은 과거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은 십자가 죽으심의 완성입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은혜를 알려준다면
부활은 영원히 펼쳐진 희망을 살게 합니다.

 

4.
이제 우리도 부활을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소망 가운데
앞을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버릴 것, 정리할 것,
미련을 갖고 양손에 쥐고 있던 욕심과 집착 등등
과거를 청산하고
앞을 향해서 부활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하나님,
소망 가운데
부활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4. 21 이-메일 목회 서신)

2022년 고난주간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도 어김없이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함께 나눴듯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습니다”
– 행복한 순간은 잠시일 뿐,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는 에덴 이후의 세상은
크고 작은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물론, 파도가 밀려오지 않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어려움에서 제외된다면
그것은 자연법칙 위반이자 지나친 이기주의입니다.

 

어려움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밀려오는 파도를 어떻게 마주하고 넘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어려움을 현명하게 풀어나갈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를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더욱 깊이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
사도 바울이 자기가 개척한 교회들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겪게 될 것이니
단단히 준비하고 믿음 안에 거하라고 부탁한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물론, 초대 교회의 어려움과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다를 수 있고
우리의 어려움이 꼭 예수님을 믿는 데서 오는 특별한 어려움이기보다
인생길을 가면서 마주치는 일반적인 어려움일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행복, 완전함, 위로와 소망을
꼭 간직하면서 세상을 사는 것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2022년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아사셀의 염소”라는 구약의 전통이 있습니다(레16장).
염소 하나를 정해서 그곳에 이스라엘의 죄를 모두 얹고
광야로 내보내는 예식입니다.

 

혹자는 여기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대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셨기에
십자가 앞에서 괴로워하시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뤄지길 원하십니다.

 

절대 쉽지 않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

 

4.
팬데믹 막판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멀리서 들려오는 전쟁의 참상 때문인지
게다가 “쉬운 것이 없다”는 우리 각 개인의 현실까지 겹치니
올해 고난주간에는 아세살 염소와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보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우리 주님을 의지하고,
단지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 자신과 삶을 얹어 놓고
말 그대로 공짜로/은혜로 생명의 부활절을 기다립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하나님,
우리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구하며
오늘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4. 1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