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의도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이 계속되면서
아무래도 신앙의 끈이 점점 느슨해집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안간힘을 쓰지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신앙이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립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하도 많아서 신앙이 치고 올라 틈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신앙의 집에 물이 새고, 흔들거리고
여기저기 부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알면서도 당하는 것입니다.

 

2.
엊그제 목사님 모임에서
“순수한 의도 a single intention”라는 제목의
웨슬리 설교 한 편을 읽고 생각을 나눴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의도”라고 옮기고 싶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는
두 가지 마음을 품는 것을 경고하고
한 가지 의도만 꼭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산상수훈 말씀을 본문으로
우리의 눈이 한 곳을 바라보길 부탁합니다.
눈이 바라보는 곳,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우리 생각의 목적지라는 것입니다.
그곳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
세상일도 하나님 안에서 실행하고,
먹는 것, 말하는 것, 심지어 오락의 영역에서도
하나님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고 생각하든지
혹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 한 분만이 여러분의 목적이 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 만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 만을 사랑하십시오. (웨슬리 설교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하나님 만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 만을 사랑하십시오.

 

3.
웨슬리 시대와 우리 시대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 삶이 훨씬 복잡해서
생각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니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참빛 식구들께 부탁하고 싶습니다.
“처음 믿음, 순수한 믿음”을 마음에 품고 한 가지 의도에 집중합시다.
“의도(intention)”라는 말을 기억합시다.

 

웨슬리가 부탁하듯이
한 가지 의도(a single intention)로부터
신앙은 물론 삶을 정돈하고 그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분산된 우리 생각을(의도를)
하나님께 모으고 그 힘으로 살아갈 때입니다.

 

여러분의 눈을 하나의 의도에 고정시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온 몸은 빛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더 그분의 도우심의 빛을 여러분 위에 비치실 것입니다 (웨슬리 설교 본문에서)

 

 

하나님,
우리에게 당신을 향한
한 가지 마음, 생각, 의도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4.7 이-메일 목회 서신)

 

뚜벅뚜벅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까지 수요예배에서는
구약성경 사사기부터 사무엘상하를 거쳐서
다윗의 마지막과 솔로몬의 등극을 전하는
열왕기상 1-2장을 모두 읽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맞먹는 1년 반 이상 걸린 여정이었습니다.

 

수요예배에 빠지지 않고 오시는
권사님들께 감사드리고
나중에 영상으로 함께 하는 참빛 식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어제 수요일부터는
신약성경으로 넘어와서 누가복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탄생부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까지 역사가로 불릴 정도의 누가가
조목조목 차례로 자세히 기록한 말씀입니다.
앞으로 반년 정도 수요예배에서 누가복음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2.
누가복음을 ‘소’에 비유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소에 걸맞게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여정을
누가복음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길게 기록했습니다(9-19장)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장차 자신이 겪을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도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허투루 들었습니다.

 

길을 가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고치시니
제자들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소처럼 뚜벅뚜벅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셨습니다.
그 자체가 십자가를 지고 오르신 골고다 언덕길이었습니다.

 
3.
우리도 뚜벅뚜벅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고 싶지만,
대부분 인생길은 소처럼 묵묵히 걸어갑니다.
아니 그렇게 걸어가야 합니다.

 

지나 온 길을 가슴에 품고
기대를 갖고 앞을 향해서 걸어가지만,
꼭 좋은 일만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길에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끝에 부활이 있음을 믿기에
우리는 부활의 능력, 생명을 생각하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인생길을 차근차근, 힘을 다해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를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눅 9:57)

 

하나님,
오늘도 주의 길을 걷고 계시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시고 힘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 31 이-메일 목회 서신)

 

세 가지 믿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말씀에서
루스드라에 간 바울과 바나바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는 장면을 나눴습니다.

 

예배 후에 교회 집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할 경우는 의학상 쉽지 않고
태어나는 과정 또는 어렸을 때 사고나 질병으로 걷지 못한 것을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으로 표현했을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평생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걷는 것도 현대 의학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이 이 사람에게 임했다고 봐야겠습니다.

 

이처럼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자세한 내용을
현대 과학이나 오늘날 상식에 맞춰서 꼼꼼히 살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석이 필요한 “하나님 말씀”이고
올바르고 건전한 그리고 우리에게 타당한 해석이 되기 위해서
성경이 기록될 당시와 우리 시대 사이의 간격(gaps)을 잘 메워야 합니다.

 

대충 읽으면 별일이 없지만
세심하게 읽다 보면 성경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데
그래도 그 길을 가야 성경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설교 후에
집사님들과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함께 배워가는 과정이요,
그런 대화 속에서 일하실 성령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2.
바울과 바나바는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보고 그를 걷게 했습니다.

 

구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속에는
구원받다와 더불어 회복되다는 뜻도 있으니
“걸을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람은 걷는 것을 구원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말할 때도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마커스 보그라는 신학자가 그의 책에서
리처드 니이버가 소개한 세 가지 유형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확신(assurance)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식, 교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머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신실함(fidelity)입니다.
앞에서 말한 자신감이 지적인 동의라면
신실함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삶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신뢰(trust)입니다.
니이버는 신뢰를 믿음의 가장 깊은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넘어서 우리 삶을, 관계를,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연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니이버는 신뢰로 대표되는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doubt), 회의(skepticism), 불신(unbelief)이 아니라
불안(anxiety), 염려(worry), 두려움(fear)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불안, 염려,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신뢰로 표현되는 믿음이 부족한 표시입니다.

 

3.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삶이
니이버가 제시한 세 가지 믿음에 근접하길 바랍니다.

 

불안, 염려,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정말 멋진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주여, 믿음을 주옵소서.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행14:9)

 

하나님,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 24 이-메일 목회 서신)

인구조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수요일에 마무리한
구약 성경 사무엘하 마지막 말씀(24장)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무엘하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일으켜서 인구조사를 했다고 말하고
같은 사건을 기록한 역대상 21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다윗에게 시켰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시킨 것으로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았듯이,
다윗 역시 사탄에 무너진 것입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해서
자기 세력을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숫자로 계산해 보고 싶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하는데 9개월 20일이 걸렸으니
다윗 왕국이 엄청나게 강해졌습니다.
당장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용맹한 자가80만이었고,
그 가운데 50만은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 병력이었습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수많은 병력과 백성을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이 되었으니
스스로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했을까요!

 

2.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인구 조사를 끝낸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잘못을 크게 뉘우칩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종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삼하24:10)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신의 공로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숫자로 정리해서 온 세상에 자기 이름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다윗은 곧바로 회개합니다. 큰 죄라고 고백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사흘 전염병이 임하고 무려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잘못으로 백성들에게 화가 임한 것을 두고
차라리 자기와 자기 가족이 벌을 받았어야 한다고 한탄합니다.

 

안타까운 사건이 사무엘하 맨 뒤에 위치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라는 사람의 타작마당을 제 값(은 50세겔)에 사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니 역병이 그칩니다.
다윗이 돈을 주고 산 타작마당이 훗날 솔로몬이 지은 성전터가 됩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다윗의 인구조사는 나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3.
다윗뿐이 아닙니다.
우리도 숫자의 유혹에 걸려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으로
다윗이 범한 인구 조사의 실수와 잘못을 늘 마음 한쪽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숫자를 갖고 자랑하고, 숫자에 얽매이고
때로는 숫자로 인해서 기가 죽을 수 있습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디지털 세상이고
모든 것을 데이터가 말해주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니
숫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신, 숫자에서
자랑, 교만, 얽매임, 열등의식, 집착 등과 같은 불순한 요소를 제거하고
숫자는 숫자로 대할 수 있는 대범함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리는 숫자를 넘어서 더 중요한 가치인
믿음, 은혜, 소망, 사랑, 생명을 붙잡고 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편 24절)

 

하나님,
오늘도 숫자가 판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을
주님의 손으로 꼭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17 이-메일 목회 서신)

2022 사순절

좋은 아침입니다.

 

1.

2022년 사순절을 맞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세 번째 맞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기독교의 오랜 전통으로

초기에는 부활절에 세례받을 교인들이

금식하고 세례 문답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가

주후 4세기경에 기독교의 연례 절기가 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로 시작해서

부활절 전 주간까지 40일을 가리킵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을 금식하신 것부터, 모세의 시내산 금식까지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거룩한 기간입니다.

 

교회사 속의 사순절 전통에서

금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금식을 통해서 우리 안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본능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단지 금식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하면서 절약한 양식이나 물질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알려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도 묵상했을 것입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공의가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58:6-9)

 

2.

2022년 사순절을 맞이하는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순절을 의미 있게 보내길 바랍니다.

한두 가지라도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정하면 좋겠습니다:

말씀읽기, 기도하기, 삶 속에서 경건의 연습하기,

이웃 돕기,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등등

 

새해 결심과 마찬가지로

사순절 결심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죄책감에 쌓이거나

그것을 두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너무 바빠서 그냥 넘어가도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과도한 의무감에 휩싸일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기준(목표)을 정하고, 운동선수들이 꾸준히 연습하듯이

각자의 사순절 결심을 훈련하고

가능한 대로 지켜나가면 됩니다.

 

사순절이 끝나고 부활절을 맞을 때,

누가 알아주지 않고, 아무에게 보이지 않았어도

스스로 뿌듯한 마음이 든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3.

40일은 일 년 365일의 10분의 1에 가깝습니다.

교회력을 따라 살면서,

일 년 가운데 40일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이미 사순절이 일주일 정도 지나갔지만,

지키고 싶고, 지킬 수 있는 사순절 결심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단둘이 또는 부부와 가족 안에서 지켜나가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부활절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58:9)

 

하나님,
사순절을 보내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시고
깊은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10 이-메일 목회 서신)

 

어떤 인생

좋은 아침입니다.

 

1.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으로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전쟁터로 변한 우크라이나에
하루 속회 좋은 아침이 찾아오길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이번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올해 70세인 푸틴은
2000년에 러시아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헌법까지 바꾸면서 22년 동안 총리와 대통령 자리를 오가며 장기 집권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다시 법을 바꾸어서 임기를 2036년까지 연장했으니
평생 대통령직을 수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쟁에서 장애인이 된 아버지와 기독교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푸틴의 어린 시절은 유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장애를 일으킨 독일 병사들을 미워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전쟁의 비극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푸틴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체구가 크지 않았던 푸틴은 유도를 배워서 자신을 방어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KGB 요원에 자원했고
정치에 입문해서 2000년 옐친에 이어서 러시아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과거 소련으로 불리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것에 불만을 느꼈답니다.

 

2.
초기에는 서방 세계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 경제 회복에 힘을 쏟았기에
러시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광, 독재자, 미친 사람(mad-man)으로 변합니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체첸, 우크라이나 등을 침공하고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점령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2018년 네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면서
“강한 러시아”를 외친 그의 속셈을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푸틴은 정기적으로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 출석한답니다.
북한의 김정일에게 정교회 성화상을 선물하면서
북한에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세워지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벌이는 전쟁이나, 개인적인 탈선, 부정부패를 생각할 때
푸틴에게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을 달아 줄 수 없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전해지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얼른 전쟁을 그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하고
더 이상 세상의 평화를 깨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4.
우리는 지난 두 주간,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를 공부하면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바나바와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지도자들과 성도들로 인해서 교회가 굳게 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헤롯의 젖동생(친한 친구) 마나엔은 헤롯 왕궁에서 자랐지만,
예수님을 믿고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반면,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는 탐욕스러운 지도자가 되었으니
같은 성장 배경을 갖고 있어도 그 끝이 전혀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마음과 삶 한가운데 가졌는지 여부가
인생의 진로와 결과를 결정한 것입니다.

 

5.
다시금 지도자의 품격과 자질을 생각합니다.

 

조국 대한민국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높은 선거도 없었다지만
경제는 물론 정치와 외교 등 매우 중요한 시기에
대한민국을 옳게 세울 대통령이 선출되길 기도할 뿐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147:3)

 

하나님,
전쟁과 탐욕,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로 인해서 망가진
이 땅을 고쳐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3.3 이-메일 목회 서신)

폴 파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월요일(21일)
21세기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의사이자 인류학자였던 폴 파머(Paul Farmer) 교수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미국은 물론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폴 파머는
아이티에서 시작해서 페루와 아프리카까지
지구상의 가난한 사람들의 폐결핵, HIV/AIDS,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서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공평한 의료 혜택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Partners in Health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서
하버드 병원의 의료수준을 아이티와 아프리카 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제공하려는 꿈을 갖고 실제로 실천하신 아주 큰 나무, 거목이십니다.

 

2.
폴 파머는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서 플로리다에서 자랐습니다.
여섯 형제 가운데 둘째였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버스에서 온 가족이 생활해야 했습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이티로 가서 현지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폴 파머의 가슴에 아이티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무치게 파고들었습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불공평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해방신학을 접하게 됩니다.
현지 신부님을 통해서 행동이 있는 신앙의 중요함을 배운 것입니다.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는데,
수업이 끝나는 금요일에 아이티로 날아가서 주일 저녁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3.
폴 파머는 하버드 대학에서 그의 평생 동지를 만납니다.
다트머스 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한국인 2세 김용 교수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비영리 단체가 Partners in Health입니다.
현재는 저개발국의 의료와 보건을 지원하는 매우 큰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폴 파머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퇴치와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게이트 재단과 협업하는 등
국제 보건의 아버지답게 전염병과도 싸웠습니다.

 

인류학을 전공한 사회학자인 그는
국제 보건과 가난한 국가의 의료 개선에 평생을 바침과 동시에
세계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 애쓴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4.
세상에는 예수님 말씀대로
빛과 소금의 삶을 사시는 훌륭한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작은 예수로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비치고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전파됩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원했던
폴 파머의 정신과 삶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곳 저곳에서 크고 작은 빛으로 온 세상을 밝힐 것입니다.

 

5.
폴 파머의 삶과 사역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의 활짝 웃는 모습, 모든 사람을 살리지 못해서 근심하는 얼굴,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그의 삶을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지난 화요일 큐티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신앙의 선배가 계셨고
폴 파머만큼 유명하지도, 큰 업적을 펼치지 못해도
지금도 어디선가 참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실 테니
희망이 생겼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닮는 주의 제자로 살기 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나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작은 빛으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24 이-메일 목회 서신)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동네를 산책하면서
사거리 길을 건너는데
4 way stops에 대기하던 승용차가 제 앞으로
우회전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횡단보도 사고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조심해서 건너길 다행이지 서둘러 도로로 뛰어들었다면
자칫 사고를 당할 뻔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급해지고 여유를 잃어가는 듯합니다.
팬데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꼬박 2년을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갇혀 있으면서
마음이 좁아지고 불안함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2.
엊그제
LA 공항을 떠나서 워싱턴 DC로 향하던 여객기가
캔자스 시티에 비상 착륙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승객 중에 한 사람이 조종석에 들어가려 하더니
갑자기 비행기 문을 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승무원들이 신속하게 이 사람을 제압했고
비상 착륙한 후에 FBI에 넘겼답니다.

 

어쩌면, 비슷한 사고가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팬데믹과 연결시키게 됩니다.

 

3.
얼마 전까지 아시안 혐오로 인해서
아시안이 많이 사는 샌프란까지 바싹 긴장했었습니다.
엊그제 뉴욕에서는 노숙자가 30대 한인 여성을 집까지 따라가서
살해하는 어이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자동차 유리를 깨서 물건을 훔쳐가거나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에 있는 물건을 가져갔다는 글이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경찰에 신고해도 작은 절도나 손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분도 있습니다.

 

4.
저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까지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 샬롬을 구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안정되고 차분해지길 기대합니다.

 

팬데믹 막바지로 오면서
그동안 숨어 있던 사람들의 분노와 그릇된 본성이 터져 나올 수 있는데
서로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차분하게 일상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사라져야 합니다.
치안 당국의 더 현명한 대처를 기대합니다.

 

5.
저는 셀폰이나 지갑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을 싫어해서
지갑을 차에 두고 다닐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꼭 주머니에 챙겨서 갑니다.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화롭고
더불어 사는 협력과 사랑이 임하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16:33)

 

하나님,
여호와 샬롬,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17 이-메일 목회 서신)

 

루지(Luge)

좋은 아침입니다.

 

1.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4년 전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남북대화의 물고가 트였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4년이 지났습니다.

 

베이징 올림픽도 지난 동경 하계 올림픽처럼
팬데믹 가운데 열리는 올림픽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 외교 사절을 파송하지 않는 등
최근에는 판정 논란까지 크고 작은 이슈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4년을 준비한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고
스포츠를 통한 올림픽 정신이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2.
동계 올림픽 종목 가운데 “루지(Luge)”가 있습니다.

 

루지는 프랑스어로 “썰매”라는 뜻입니다.
썰매를 타고 80마일 이상의 속도로 곡선 주로를 타고 내려옵니다.
선수가 썰매에 몸을 맡기고 누워서 내려오는데
워낙 속도가 빠르니 부상 위험이 큰 위험한 스포츠랍니다.

 

루지는
19세기 중반 스위스에서 벌어진 썰매 경기에서 유래했고,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네 일반인들은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썰매 경주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올림픽에
네 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은발의 여성 선수가 눈에 띕니다.

 

한 남자 선수는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썰매가 전복하면서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대회에 출전했답니다.

 

이 선수의 최종 성적은 34명 가운데 33위였습니다.
비록 순위는 거의 최하위였지만
큰 부상을 딛고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도 정신 승리입니다.

 

3.
올림픽이
점점 정치에 이용되거나 패권 분쟁에 휘말리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어릴 때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올림픽에 참가했었습니다.
올림픽이 상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본격적으로 허용되더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남자 농구 dream team까지 등장했습니다.
프로가 존재하면서도 아마추어 선수들의 출전만
허용하는 종목은 복싱뿐이랍니다.

 

무엇이든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올림픽 정신이 그대로 유지되고 인류 평화를 위한 축제가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루지를 비롯한
인기 없는 종목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도 응원합니다.

 

올림픽 근처에 갈 수 없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각자의 길을 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분을 응원하고,
오늘도 일상을 살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실
참빛 식구들도 힘껏 응원합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16)

 

하나님,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10 이-메일 목회 서신)

초점 맞추기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충 또는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또는 장차 가게 될 천국만 소망하는 식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놓칠 가능성이 큽니다.

 

참빛교회 목사로서
말씀과 예배, 성경 공부, 대화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맛보는 것을 안내하고
참빛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실제로 간증하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릴 적 돋보기를 태양에 비추고
작은 초점을 맞추면서 검은 종이를 태웠던 놀이를 소개했습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인데
그 빛이 돋보기를 통해서 종이에 작은 초점으로 모이면
열이 나고 종이를 태우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제 손바닥에도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아서
아주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았더니
금세 손바닥이 뜨거워서 얼른 치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모시기 위해서는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으듯이
밀도 있게 작은 초점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아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사모함과 구도자의 태도,
때로는 자연 속에서, 일상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심지어 책을 통해서 등등 하나님의 사랑을 모으고 그것을 느끼는
통로를 각자 개발하길 부탁드렸습니다.

 

2.
제가 예전에 선물했던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에서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끼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단순하게,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미세한 손길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려면 우리는 자주 그분을 생각하는
거룩한 습관을 길러야만 한다네 (61)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듯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시고 경험하는 신비로운 과정입니다.

 

3.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세상 것을 통제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봅시다.
아니 하나님을 우리 안에 돋보기의 작은 점으로 모시는 겁니다.

 

이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일 때,
우리도 예레미야 애가 기자처럼 주께서 가까이 함께 하시는 것과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애3:56)라는 고백이 가능할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8)

 

하나님,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3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