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알자

좋은 아침입니다.

 

2018년 새해 첫 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해가 바뀌는 것은

달력으로 구분된 시간일 뿐인데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각오와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밋밋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보다

새해가 있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순서에 따라서

호세아 6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을 떠난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이라는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면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신실한지 보여줍니다.

 

호세아 5장에서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조목조목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벌을 주셨지만

결국에는 상처를 싸매 주시고,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인애(헤세드, 조건 없는 사랑)를 소개합니다.

 

2.

누구든지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절대로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백성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제물을 드립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넘어서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과 대화하고, 함께 지내고, 한마음이 되면서 서로를 알아갑니다.

그때 비로소 서로를 알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

Let us know; let us press on to know the LORD (Hos 6:3)

 

여기서 “힘써” 안다는 것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택과 집중입니다.

 

3

올 한 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데 힘쓰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경험하는데) 몰두하기 원합니다.

 

올해도 멋지게 하나님을 믿어봅시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

Let us know; let us press on to know the LORD (Hos 6:3)

 

하나님 아버지,

2018년에도 우리를 찾아오실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4이-메일 목회 서신)

송구영신

좋은 아침입니다.

 

2017년도 이제 3일 남았습니다.

 

올해는 정유년, 닭의 해였습니다.

새날이 밝았음을 알리는 닭의 노래처럼

한 해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전하신

참빛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함께 해주셔서

올 한해도 목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목회한 햇수보다

앞으로 목회할 햇수가 짧아지고 있지만

부족한 저의 모습은 점점 더 크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교회를 섬기고

매 주일 하나님을 예배하신 참빛 식구들이 계셔서

한 주 한 주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해 주신

참빛 식구들께 감사드리고,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목요일마다 제 이-메일 서신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2.

어제 수요예배에서는

마가복음 10장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 바디매오를 부르셔서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고

바디메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수요예배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는 권사님들의 기도 제목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면

제일 먼저 대답할 소원이 무엇인지 남은 사흘 동안 생각해 보시길 부탁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참빛 식구들께도 같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사흘 동안

간절한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간절한 믿음으로 새해맞이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마가 10:51-52)

And Jesus said to him,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And the blind man said to him, “Rabbi, let me recover my sight.”

And Jesus said to him,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Mark 10:51-52)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자녀로 열심히 살아온 참빛 식구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28이-메일 목회 서신)

그러든지/whatever

좋은 아침입니다.

 

뉴욕주에 위치한 마리스트 대학에서는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서

한 해 동안 가장 짜증나게 하는 말(annoying words)이 무엇이었는지 조사합니다.

 

올해도 천여 명을 조사했는데

1/3이상이 지난 9년 연속 1위였던

“그러든지(whatever)”를 꼽았답니다.

 

어깨를 으쓱하면서

약간 비아냥 조로 마음대로 하라거나,

자신과는 상관없으니 하든지 말든지하라는 뜻의

“그러든지/whatever”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짜증이 났다는 것입니다.

 

사춘기의 자녀가

부모를 향해서 종종 취하는 태도이자 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순식간에 섭섭함이 밀려옵니다.

 

화가 나거나,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사용합니다.

무엇보다 무책임한 태도이고

은연중에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흥미로운 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든지”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떤 정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정파였답니다.

 

정치나 사상에 뚜렷한 특징이 없는 사람이

종종 쓰는 말이 “그러든지/whatever”일 것 같은데

자신들이 쓰는 말을 스스로 싫어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두 번째로 짜증나게 하는 말은

“가짜 뉴스(fake news)”였습니다.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가 넘쳐도 시원치 않은 요즘 세상인데

가짜 뉴스가 판을 치니 서로를 향한 불신이 쌓여갑니다.

 

“기분 나쁘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그만/no offense, but”

“말 그대로(literally)” “내 말 알아들었지(you know what I mean”등이 뒤를 이었답니다.

 

진실성이 결여된 채 자기주장만 펼치는 태도와 말투를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2.

곧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성탄절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외롭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사랑을 베푸시고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벧전 4:8)

사랑은 무책임하게 “그러든지”라고 말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참된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을 맞으면서

이웃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삼가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Love is patient and kind; love does not envy or boast; it is not arrogant or rude.

It does not insist on its own way; it is not irritable or resentful;

it does not rejoice at wrongdoing, but rejoices with the truth.

Love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endures all things. (1Cor 13:4-7)

 

하나님 아버지,

진실한 사랑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21이-메일 목회 서신)

대강절을 보내며

좋은 아침입니다.

 

최근 며칠 동안

한인 언론은 물론 SNS에

월넛크릭에서 있었던 백인 여성의 언행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한인 학생들이 우리 말로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백인 여성이

이민자는 영어만 쓰라고 무례하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매장 직원들이 말리다가

결국은 경찰까지 동원되었지만

백인 여성은 끝까지 “아시안”

그것도 “코리안”을 들먹이면서 소동을 부렸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백인들의 유색인종 혐오와

백인 우월주의의 언행이 끊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미국은 원래

샐러드 보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이민자의 나라인데

인종간의 갈등이 자꾸만 불거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

다인종, 특히 아시안이 많은 베이 지역에서 발생했기에

더욱 예의주시하게 됩니다.

한인이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화가 납니다.

 

2.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 아시안들이나 유색인종들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기고,

약한 사람 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경우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또한,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역시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약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따라오도록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월넛크릭 스타벅스 사건을 보면서 몹시 화가 나지만,

엄밀히 살피면, 우리 자신을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전반의 민낯입니다.

 

3.

마음에 촛불을 두 개 켜고

대강절 둘째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원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고, 자신을 통째로 비우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자, 최고의 권위, 창조주,

피조물인 인간과 100% 다른 분이셨지만,

기득권이나 자신의 권위, 다름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고, 소외되어 외롭고,

힘없는 자들을 찾아가시고

그들의 편이 되셨습니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대강절을 맞으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행여나 자신만이 최고요 옳다는 우월 의식,

자기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배타성이 발견된다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늘의 평화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 5절)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s in Christ Jesus (Phil 2:5)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변에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14이-메일 목회 서신)

                   

정리정돈

좋은 아침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새해에 했던 결심과 계획을 되돌아봅니다.

늘 아쉬움이 남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저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목사인 저는 연초에 주신 참빛 식구들의 기도제목을

다시 차근차근 읽어봅니다.

기도하신 것이 이뤄진 것을 보면서 덩달아 기쁘고

이뤄 가시는 모습에 힘을 더하고

아직 깜깜한 기도 제목에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 해를 보내면서

인생 상자를 하나 꺼내서 그곳에 “2017년”이라는 레벨을 부치고

한 해를 정리정돈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생길이 한 해가 끝난다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2017년을 예쁘게 정리 정돈해 놓고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2.

한 해를 돌아보고

정리 정돈하는데

“영적 일기(spiritual journal)”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글로 한 해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깊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많은 분량의 글을 쓸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미사여구를 사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적 일기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히 써내려 가는 글쓰기입니다.

 

삶을 돌아보는 단상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이든지,

매일같이 기록하는 to-do-list의 변형이든지

아주 간단한 메모나 그림이든지

12월 한달 동안 영적 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정리정돈하시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일기 쓰기를 포함한 모든 영적인 훈련은 우리의 의식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현악기를 조율하듯이 우리 자신을 조율해서

때로는 주변에서 펼쳐지는 불협화음 속에서도

여전히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의 곡조를 알아듣는 것이다.

-내 영혼을 위한 일기쓰기(Journaling as a Spiritual Practice)-

 

3.

다윗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만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기록한 영적 일기

시편 8편을 묵상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편3-4절)

When I look at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and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Psalms 8:3-4)

 

올해 마지막 달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거나

세상 곡조에 맞춰서 춤을 추다가 몸과 영혼이 지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깔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영적 일기를 쓰면서…

 

하나님 아버지,

영적 일기를 쓰는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더욱더 깊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깊이 만남으로

신앙의 터가 굳어지고 삶이 풍성해 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7이-메일 목회 서신)

다니엘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

다니엘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를 거쳐서

다니엘까지 왔는데

앞의 세 예언서에 비교하면 훨씬 은혜롭습니다.

 

무엇보다 익숙한 말씀이 나오니

권사님들과 읽기도 편하고 나눔도 풍성합니다.

 

그렇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제국의 종교와 학문을 익히고

이름도 바벨론식으로 바뀌면서 살아가는

다니엘의 삶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낍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섬겨야 하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하고

때때로 안하무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광과 권력을 주셨다고 전할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 말 그대로 당시 최고의 왕입니다.

 

2.

내일 나누게 될 다니엘서 4장을 묵상하면서

머리가 쭈뼛 서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바벨론의 모든 술사를 동원하지만 아무도 답변하지 못합니다.

결국, 다니엘을 불러서 해석을 부탁하고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해 주는 본문입니다.

 

그 순간,

왕이 다니엘을

박수장 벨드사살아”라고 부릅니다.

 

벨드사살은 다니엘의 바벨론식 이름으로

“벨신이 왕의 생명을 보호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심판관”이라는 다니엘의 이름이

바벨론 신과 바벨론 왕을 찬양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 다니엘을 보고 “박수장(the chief of magician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바벨론 신들의 이름으로 점을 치고

세상을 판단하는 술사들의 대장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남았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3.

오늘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다니엘 정도는 아니지만

참빛 식구들 역시 하나님이 없는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상관없는 일을 앞장서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바벨론에서 살아남은 다니엘을 떠올리면서

끝까지 살아남고

결국에는 승리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조금 일이 잘 안 돼도 너무 상심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힘내십시오!

그리고 주일에 함께 모여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하시고

보호자와 안내자가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30이-메일 목회 서신)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  CNN인터넷판에

흥미로운 기사가 떴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콜로라도 볼더가 가장 행복한 도시였고,

우리 지역인 산타크루즈와 동부 버지니아의 샤롯츠빌이

각각 2위 3위를 차지했습니다.

산호세는 6위였고 샌프란시스코는 25위 안에 들지 못했습니다.

 

댄 뷰트너라는 분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갖고 행복지수를 매긴 결과였습니다:

만족도 (pride), 즐거움(pleasure), 삶의 목적 (purpose).

 

만족도는 자기가 사는 도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1-10의 수치로 표시하게 했답니다.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측정한 것입니다.

 

즐거움을 측정하는 방법이 흥미롭습니다.

지난 24시간 동안 얼마나 자주 미소 짓고, 깔깔 웃고,

기쁜 감정을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마지막 삶의 목적은

바로 전날 흥미로운 일을 행했거나

재미있는 삶을 위해서 배운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콜로라도 볼더에 사시는 분들이

위의 세 가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셈입니다.

 

샌프란에 사시는 분들의 경우

렌트비와 생활비가 너무 비싸서

첫 번째 행복지수에서 밀렸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웃음의 숫자나 빈도도 줄어들겠지요.

삶을 향한 목적 지수는 샌프란도 높았을 것 같습니다.

 

하여튼, 2시간여 떨어진

산타크루즈가 2위가 되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2.

세 가지 기준을 우리 각자에 적용해서

행복도를 생각해 보아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한 자부심, 행복감, 그리고 삶의 분명한 목적 추구.

 

여기에 한 가지

“감사”라는 덕목이 들어가면 더욱 좋겠습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인데,

어느 정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감사를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감사야말로

우리의 삶의 행복지수를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

가족에 대한 감사,

이웃과 주변 환경에 대한 감사,

거기에 한 해를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준 자신에 대한 감사!

 

남은 한 주간 넘치는 감사로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95편 2절)

Let us come into his presence with thanksgiving;

let us make a joyful noise to him with songs of praise! (Psalms 95:2)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으로 인해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23이-메일 목회 서신)

더불어 살기

좋은 아침입니다.

 

며칠 전, 한국과 미국에서는

짧은 영상 하나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아시안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화였습니다.

회의를 마치면서 참석한 정상들이

서로 교차해서 팔짱을 끼고

우정과 하나 됨을 보여주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교차에서 손을 잡는 대열입니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맨 끝에 위치해서

한 손은 한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에 섰습니다.

아시안 정상들이 많아서인지 체격이 눈에 띠게 컸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교차해서 손을 잡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당황했다기보다는

평생 그런 의식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정상이 트럼프의 손을 먼저 가져갔더니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손을 가져오려고,

아니면 자기 손만 잡으려는 듯 왼손을 갖다 댑니다.

자연히 왼쪽에 서 있던 분은 한 손이 놀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중에는 팔짱을 꼈지만

난생처음 왼편과 오른편 사람의 손을 잡은 듯이

어색하고 심지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어쩌면 이 분은 독불장군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과 손에 손을 잡아 본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악수할 때도 상대방을 확- 끌어당기는 습관이 있어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곤 하는데

역시 자기 위주의 행동 방식입니다.

 

2.

홀로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홀로서기 못지않게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손을 엇갈려 잡으면서 하나가 되고

마음과 삶을 나누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신앙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나 혼자만의 신앙을 고집하는 것은 절반의 성공입니다.

 

신앙은 공동체 속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때로는 갈등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서로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가정, 교회, 그리고 일터와 만남이

우리 신앙의 훈련소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리같이 조그만 교회는

공동체의 삶을 훈련하는데 안성맞춤입니다.

 

3.

손에 손을 잡는 방식과 행동이

어색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기본입니다.

대통령이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고 독불장군식이니

우리가 사는 미국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올해도 감사절을 맞습니다.

함께 하는 가족, 교우들, 이웃들, 잠시 잠깐의 돕는 손길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더불어 살아간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고 감사입니다.

 

손에 손을 잡고

더불어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Behold,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brothers dwell in unity! (Psalms 133:1)

 

하나님 아버지,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

주안의 형제 자매를 주심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16이-메일 목회 서신)

                   

경계선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읽고 있는 에스겔서는

마지막 40-48장에서 성전의 회복을 약속합니다.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성전의 모습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의 건축물입니다.

여러 개의 방과 구조물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질서와 균형의 절정입니다.

 

에스겔 성전은 실제로 건축되지 않았고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에 세워질 성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구약 성경이 서로 어우러지고

자세히 읽을수록 예사롭지 않은 하나님의 경륜(plan)을 발견합니다.

 

오늘 새벽에는 에스겔서 42장을 읽었는데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이 거하는 공간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사용하는 방은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구약의 거룩함은 정함(clean)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충분히 정결해야 합니다.

부정한 것들(unclean)이 들어오지 못해야 합니다.

 

에스겔서에서는

제사장들이 거하는 방을 거룩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담(wall)”을 쌓아서 영역을 구분했습니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

성스러운 것(Sacred)과 속된 것(secular)을 구분하는 담입니다.

 

2.

우리에게도 거룩함을 유지시켜주는 영역이 필요합니다.

부정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는 경계선입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떠나서 교회로 숨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으로 세상에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구별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임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경계선을 긋는 것입니다.

 

에스겔에 이어서 읽게 될 다니엘서를 통해서

우리가 정해야 할 경계를 발견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이름도 바뀌고, 바벨론 학문과 언어를 배우면서

그가 살아야 할 제국 바벨론에 녹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먹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부정한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먹거리가 다니엘이 쌓은 “담/경계”였습니다.

 

3.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경계선을 긋고

거룩한 영역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거룩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다니엘처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고

그 가운데 몇 가지에 “뜻을 정해서” 실천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지혜로울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담/경계”를 명확히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와 세상을 구별하는 경계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인답게 유지시켜주는 영역입니다.

 

잠시 멈춰서

각자가 세워놓은 경계를 점검해 봅시다.

 

세상에 살지만, 결코 세상에 속하지 않는

근사한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방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에스겔 42:20)

It had a wall around it, 500 cubits long and 500 cubits broad,

to make a separation between the holy and the common. (Ezek 42:20)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참빛 식구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고

세상에 맛과 신선함을 주는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9이-메일 목회 서신)

마른 뼈가 살아나다

좋은 아침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차례로 한 장씩 읽어가는

새벽기도회에서는 에스겔서를 읽고 있습니다.

 

예언서 말씀을 새벽에 읽기가 쉽지 않아서

거친 자갈길을 걷는 느낌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주로 등장하니

거리감도 느껴지고 말씀에 은혜를 더하기가 솔직히 어렵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에스겔서의 절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37장을 읽었습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신비롭고 감동적인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는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3절)고 물으십니다.

 

난감한 질문입니다.

다윗이 갖고 있던 믿음의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워낙 엄청나고 불가능한 일이니 답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에스겔이 지혜롭게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최고의 답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에 에스겔을 초청하시는 겁니다.

 

에스겔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마른 뼈들(dry bones)에게 명령하니

애니메이션을 보듯이

뼈들이 맞춰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피부가 복원되었습니다.

정말 신비로운 환상입니다.

(에스겔서에는 신비로운 일들이 많이 등장한답니다)

 

잘 맞춰졌고 복원은 마무리되었는데

그냥 “물체”입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 말씀대로 생기를 향해서 명령하니

사방에서 생기가 들어와서 마른 뼈가 살아났습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은

나라를 잃고 망연자실,

절망 가운데 이곳 저곳으로 흩어진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일으키시고

주님의 군대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2.

새벽에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에 벅차 오르는 감동과 은혜가 임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커졌습니다.

 

참빛 식구들의 마음과 삶 속에

마른 뼈처럼 내동댕이쳐진 것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죽음이 되살아나는 부활의 역사,

그 생명의 기운이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 가정과 교회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임하길 기도했습니다.

 

새 달을 맞이합니다.

올 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맞춰 주시고, 돋아나게 하시고, 복원시키시고

마지막에 사방에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것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

무한한 믿음의 상상력을 갖고 힘차게 새 달을 살아갑시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에스겔 37:14절 중에서)

And I will put my Spirit within you, and you shall live…

Then you shall know that I am the LORD (Ezekiel 37:14)

 

하나님 아버지,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우리 안에 있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의 기운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2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