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단상

월드컵 단상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어느새 4년이 훌쩍 지났고 러시아에서 또다시 월드컵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9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여섯 번째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미국 팀은 물론 전통적인 강호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도 본선에 나가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했으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을 꿈처럼 여겼습니다. 열심히 해서 아시아 예선을 통과해도 호주를 비롯한 다른 대륙의 팀들과 최종전을 벌여야 했고 번번이 본선 진출 길이 막혔습니다. 당시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선수들이 꽤 있었는데 월드컵 본선 진출이 쉽지 않았습니다. 흑백텔레비전 앞에 숨을 죽이고 앉아서 월드컵 예선전을 시청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아나운서의 익숙한 멘트도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2002년에는 월드컵을 주최하는 국가가 되고 아무리 안방에서 열린 대회였어도 히딩크 감독의 지도하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일으켰으니 대한민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진출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처음부터 최약체로 평가받았습니다. 본선에 진출한 서른 두 개 팀 가운데 맨 밑에서 두세 팀에 들 정도였습니다. 공은 둥글다는 뻔한 표현(cliché)이 현실이 되어야 16강에 올라갈 실력이었으니 다음을 기약하면서 격려할 뿐입니다.

 

월드컵은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가 되기도 하지만 가슴 아픈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는 아이슬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페널티킥에 실패했습니다. 메시는 페널티킥을 실축한 후에 “매우 고통스럽다. 내가 페널티킥에 성공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답니다.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천하의 메시이지만 페널티킥에 약한 편입니다. 그는 지난 시즌에 여섯 번 페널티킥을 시도해서 절반만 성공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공을 다루고 슛을 성공시키는 실력은 신기(神技)에 가깝지만, 상대편 골키퍼와 마주 대하는 페널티킥에서는 지나치게 긴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한 선수가 모든 것에 완벽하면 그것도 싱겁습니다. 한 두 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야 동정심도 생기고 더 열심히 응원할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기록한 아이슬란드도 흥미로운 팀입니다. 북대서양 한 중간에 떠있는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전체 인구가 34만 명밖에 되지 않은 국가로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아이슬란드 팀의 감독은 치과의사 출신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어쩌다가 치과의사가 되었고, 우연치 않은 기회에 축구 감독까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되새겨줍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아이슬란드의 골키퍼는 영화감독 출신입니다. 이번 월드컵동안 자신의 조국 아이슬란드에서 방영하는 코카콜라 광고를 연출했답니다. 수비수 가운데 한 명은 소금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하면서 대표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슬란드는 말 그대로 축구를 즐기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인데 첫 경기에서 강호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거뒀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듯합니다.

 

이처럼 개인은 물론 국가의 명예를 걸고 한판 대결을 벌이는 월드컵이기에 보는 이의 마음도 승패에 따라 춤을 춥니다. 멋진 승부가 펼쳐지고, 마지막 순간에 골을 넣어서 승패가 뒤바뀌는 것을 보며 짜릿함을 느낍니다.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죽기 살기로 뛰지만, 끝나면 곧바로 악수를 하고 땀 냄새 가득한 유니폼을 교환하는 선수들이 참 멋집니다. 보란 듯이 예상을 뒤엎고 의외의 승리를 거두는 팀들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열심히 하려다 보니 실수도 하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 있는데 의기소침하지 말고 더욱더 힘을 내기 바랍니다. 기회는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월드컵이 막바지로 달려갈수록 스포츠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과 미담이 쏟아지길 기대합니다. (2018년 6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