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는

성령 강림 후 둘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성령강림 주일이 27주동안 계속됩니다.

반년을 성령 강림주일로 지키는 셈입니다.

 

강단 색깔은 초록입니다.

한주 한주

성령강림주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이 푸르게 자라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성령 하나님을 두고

“생명을 주는 분(life-giver)”으로 믿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삶 속에 계십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힘과 권세를 주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저는 성령 하나님을 떠올리면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그 만큼 친밀하고

우리와 깊이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요한복음 7장에 의하면

초막절을 지낸 예루살렘 백성들을

예수님께서 초청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요 7:37-38)

“If anyone thirsts,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Out of his heart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John 7:37-38)

 

솔직히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 목이 마릅니다.

갈증을 갖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기에

자신에게 와서 목마름을 해소하라고 초청하십니다.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가 아니라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이야 말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

잠시 일손을 멈추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느껴보십시오.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십시오.

 

마음과 삶 그리고 신앙 가운데 있는 갈증에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깊이 느끼고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Out of his heart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생명을 주시고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을 흐르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도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27 이-메일 목회 서신)

신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번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신호등에 서 있는데

아내가 후드 앞쪽에서 연기가 난다기에

서둘러 차를 길옆 상가에 세우고

후두를 얼어보니 기름이 다 흐르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상가의 Auto Zone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니

서둘러 정비소로 가랍니다.

자동차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펌프(water pump)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문을 연 Sears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곳까지 2마일 여를 운전하는데

운전석 앞 계기판이 1분만 지나면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몇 번을 가고 서고를 반복한 끝에

정비소에 도착해서 거금을 주고 수리했습니다.

 

일찍 발견했기에 다행이지

모르고 계속 운전했다면

엔진까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답니다.

 

엔진을 시켜주는 냉각수가 그렇게 중요한지 처음 경험했고

지금은 운전하면서 계기판을 보는 습관까지 생겼습니다.

 

2.

어제로 수요예배에서

잠언과 전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열 달 가까이 계속된 긴 여정이었습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의 양식을 구체적으로 배웠고

전도서에서는

시간의 축을 인생의 끝에 옮겨 놓았을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portion)을 누리고,

사라질 것을 영원한 것과 바꾸지 말고

젊어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잠언과 전도서를 마치면서

제 마음에 깊이 다가온 표현이 있다면 “신중함”입니다.

 

신중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쉬킬”은

잠언이나 전도서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사에 서둘지 않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차근차근

그렇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행하는 것이 신중함입니다.

 

3.

자동차에 냉각수가 작동하지 않으니

1분도 되지 않아서 엔진이 과열되고 연기가 났습니다.

 

신중함은

쉽게 열을 받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근심과 염려가 밀려오면 균형을 잃고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신중함은

그것까지도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지럽고

빠르게 진행되기에

당황스럽고 허둥대기도 합니다.

 

그때도 중심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주어진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께

세상을 사는 지혜와

세상의 이치를 분별하는 명철을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을 명철하다 한다 (잠언16:20-21, 새번역)

Whoever gives thought to the word will discover good, and blessed is he who trusts in the Lord.

The wise of heart is called discerning. (Proverbs 16:20-21)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이 작은 것에 흔들리 않고

오늘 하루도 차분하게 주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20 이-메일 목회 서신)

부르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얼마 전 한국에서는

특수부대 군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실제로 웬만한 국가들은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 해군의 특수부대

네이비 씰(Navy Seal)이 유명합니다.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판에는

특수 부대 요원이 되기 위해서

훈련을 하던 세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명은 수영 훈련 중에 사고를 당했고

나머지 두 명은

중간에 훈련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들 가족과 인터뷰한 내용도 기사에 있었는데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세 명 모두 아주 어렸을 때부터 특수부대 요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수부대 요원으로 부르셨음을 확신한 병사도 있었습니다.

 

미국 명문 대학을 나온 재원들도

네이비 씰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독한 훈련을 받는답니다.

 

훈련을 받다가 중간에 탈락한 이들을 세심하게 관리야 한다는 의견과

특수부대 요원이 된다는 것 자체는 목숨을 담보로 한 활동이기에

훈련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특수부대라고 해도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애끓게 기도하는 가족들이 있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충성을 다하려는 마음이 있으니

철저하게 돕고 관리해 주는 것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수부대로 부르셨다는 대목에서

지난 두 주 동안 살펴본

오바댜와 아리마대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이들은 세상 한가운데서

악한 왕을 섬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단체의 회원이었습니다.

 

마음고생이 상당했을 텐데,

그 속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세상에서

오바댜와 아리마대 요셉의 삶을 살고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선교사로 보내셨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만만치 않으니

네이비 씰 요원들처럼

세상에서의 생존 훈련과 그곳에서의 작전 수행 능력을 키워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여나 안일하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허리띠를 꽉 묶고

각오를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

보냄 받은 곳에서

하나님 나라 특수요원으로 살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Psalms 23:4)

 

하나님 아버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참빛 식구들과 함께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살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13 이-메일 목회 서신)

그가 주셨으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5월 5일 한국으로 하면

어린이 날입니다.

 

일제가 통치하던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비롯한 색동회 회원들이

어린이 날 행사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답니다.

 

어린이들의 권리도 찾아주고

꿈도 심어주면서,

그들이 장차 민족의 주역이 되길 기대하면서

해방 이후부터 5월 5일을 어린이 날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린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뛰노는 것을 보면

교회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합니다.

 

저도 어린시절을

교회에서 뛰놀며 지냈고

그러는 와중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스며들어왔기에

아이들이 교회에서 지내는 것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기대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 같아야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처럼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놓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냥 현재를 바라보고, 현재를 즐깁니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지요!

 

또한 어린이들은

낮고 작은 자들입니다.

아이들을 아무리 귀하게 여겨도

그들은 여전히 약자들입니다.

부모님들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돌봐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3.

매달 제게 배달되는

<Table Talk>이라는 경건의 일기 책자가 있습니다.

 

5월 주제가 “요한복음 3:16(John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이 책자에서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잘게 잘라서 한 단어 또는 짧은 구절들로 설명해갑니다.

그 중에 “하나님이..주셨으니 (He gave)”에 대한 해설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사건이

“하나님이..주셨으니”의 절정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가운데 최고라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복음의 심장부입니다.

우리의 죄를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The cross stands at the heart of the gospel not because of what it tells us of sin,

But because of what it tells us about the grace of God”

 

어른들인 우리는

교리에 익숙해서

십자가를 보면서 죄를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죄를 회개할 때

십자가의 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 크게 보일 것 같습니다.

 

죄를 덮어버리는 사랑,

허물을 용서해주는 사랑,

우리의 연약함을 감싸주는 손길,

십자가 앞에서 느끼는 편안함,

그냥 사랑해 주시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

 

지나 온 과거는 께름칙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염려와 두려움 투성이지만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그 약속,

그 능력을 의지해서 오늘을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푹- 잠기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녹아 내리고

(지난 주일에 나눴던) <오바댜> 주님의 종으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만큼…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무척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서

머리끝까지 그 사랑에 잠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6 이-메일 목회 서신)

그 모습 그대로

좋은 아침입니다.

 

휴가를 얻어서

가족과 함께 그랜드 캐년을 다녀왔습니다.

 

인디애나에서 샌프란으로 오는 길에

그랜드 캐년을 들렸으니

11년 만에 같은 장소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그때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던

두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어느 덧 50대 중반이 되었고요.

 

11년 만에 다시 찾을

그랜드 캐년이 어떤 모습일지

떠나기 전부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큰 기대를 갖고

한국에서 오신 누님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랜드 캐년 진입로에 들어서니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공원에서 점심을 해 먹고,

일몰을 보겠다고 저녁 늦게까지 버텼지만

막판에 먹구름이 몰려와서 허탕쳤던 생각도 났습니다.

 

차를 주차해 놓고

캐년(“협곡”이란 뜻임)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눈 앞에 그랜드 캐년이 웅장하게 펼쳐집니다.

 

자연의 거대함, 아름다움, 신비로움

그리고 다양함까지

감히 우리 인간이 다가서기 힘들 정도로 웅장합니다.

 

아이들도 크고

우리 부부도 조금 나이가 들어서 변한 보습으로 다시 찾아왔지만,

그랜드 캐년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제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고

아니 아주 천천히 변하는 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하고 왜소해 보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웅장한 자연 앞에서 감탄할 것입니다.

찾는 사람들은 바뀌어도

그랜드 캐년은

언제나 그곳에 웅장하게 서있겠지요.

 

지난 11년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그곳에 계실 우리 주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찬송이 나왔습니다.

 

자연처럼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처럼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제가 되고 참빛식구들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9)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Psalms 8:9)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영원하심을 찬양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29 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에 둘지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수요일에는

20년 동안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프로 농구 선수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올해 서른일곱 살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열일곱 살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지난 20년 동안 3만 점이 넘는 골을 넣었고

중간에 못된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있지만

어제 경기에서 혼자 60점을 넣으면서

그의 농구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팀을 옮기지 않고

20년을 한 팀에서 지낸 것도 대단하고

틴 에이저에 프로선수가 되어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2.

수요예배에서 읽고 있는 전도서 7장에는

시작보다 끝을 강조하는 말씀이 연거푸 나옵니다.

 

출생한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을 중시합니다.

 

7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살아 있는 자는 <이것을> 마음에 둘지어다.

 

여기서 “이것”은

<만사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계속될 것 같은 어려움에도 끝이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이처럼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3.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의 시작이

저녁의 감사로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 (Phil 1:6)

 

하나님 아버지,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5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는

교회력으로 부활절 둘째 주일입니다.

 

강단 색깔은 흰색이고,

오순절(50일) 성령강림전까지

부활 절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두려움과 실의에 가득 차 있던 제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셨고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40일 동안 세상에 계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오순절에

약속대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2.

부활절 이후, 한 달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간입니다.

 

“평안하뇨”라고 인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 번 부인한 후에

고향 갈릴리로 내려가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면서

그를 회복해 주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새로운 소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부활절기를 보내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 답하고

다시금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사순절과 부활절에

예수님과 가까워졌다면,

부활절 이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오순절 성령 충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부활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기가 오순절까지 계속되는 교회력을 따라서

부활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생명을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 21:15)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He said to him,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He said to him, “Feed my lambs.”(John 21:15)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You know that I love you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우리가

이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고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 이-메일 목회 서신)

고난 주간에

1.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성금요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뜻에서

각자 정한 대로 경건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금식이 보편적입니다.

육신에 즐거움을 주는 식욕을 억제한 채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세상 것들에 매이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교만과 고집스러운 자아를

십자가에 매달기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2.

영어로 성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Good”이라고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합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Good에 해당하는 영어가 옛날에는 holy와 유사하게 쓰였답니다.
그래서 Good Friday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성 금요일”이라고 합니다.

 

Good과 하나님을 뜻하는 God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God’s Friday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Good Friday를 의미 그대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만 생각하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마냥 슬퍼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아니 온 세상을 향한
“선한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야 말로
악을 선으로 이긴 최고의 사건입니다.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은
말 그대로 Good Friday입니다.

 

은혜가 임하고 힘이 생깁니다.

 

3.

올해 성금요일에는

지난 월요일

벨기에 폭탄테러에서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은 분들을 마음에 품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며 보내도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온 세계가 하나님 앞에서 화해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올해 부활주일에는

성만찬과 세례예식

찬양대가 준비한 특별찬양,

찬양팀과 온 성도님들이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은혜를 묵상하면서

고난 주간을 마무리합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Isaiah 53:5)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 안에 생명이 임했음을  깊이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25 이-메일 목회 서신)

봄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베이지역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참 좋습니다.

 

올겨울에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비가 충분히 왔기에

어느 해보다 만물에 생기가 돕니다.

 

아기 손처럼 연두색으로 나온 새싹들을

손끝으로 만져보면 촉촉한 생명의 기운을 느낍니다.

 

저는 사계절 가운데

봄을 참 좋아합니다.

 

겨울잠을 깨고

새싹이 돋고, 새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살아 있었구나”라는 탄성과 함께

생명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봄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낮과 밤이 같다는 춘분(春分)이 지나고

첫 번째 보름까지 지난 후에

맞이하는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창문 틈으로

맑은 밤하늘에 반을 조금 넘긴 달님이 보입니다.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도 봄이 주는 축복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부활절이 봄에 있다는 것이

커다란 은혜입니다.

 

3.

늘 그렇듯이

분주한 일상에 빠져있으면

봄이 우리 곁을 지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 잠시 시간을 내서

베이지역의 봄을 만끽하시면 어떨까요?

 

봄 길을 걸으면서

자연 속에서 일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입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저는 이 시를 읽으면

예수님이 생각나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봄길을 걸으시는

참빛 식구들을 눈에 그려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11)

You mak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in your presence there is fullness of joy;

at your right hand are pleasures forevermore. (Psalms 16:11)

 

하나님 아버지,

봄 길을 걸으면서

부활의 주님을 묵상하고

우리 안에 생명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17 이-메일 목회 서신)

사는 동안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이틀 동안,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AI)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와

지난 10여 년 정상을 지켜온 한국의 이세돌 9단과의 바둑 시합이 있었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가 두 번 모두

대국에서 승리했습니다.

더욱 속상한 것은

앞으로 남은 세 번의 대국에서도

이세돌 구단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두 번 모두 패하면서

이번 대국 자체에 대한 반론이 여기저기서 제기됩니다.

거대자본 구글이 지원하고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거의 모든 바둑의 기보를 학습시킨 알파고를

이세돌 구단 혼자서 대항하는 것은 불공평한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알파고(Alpha-Go)라는 이름대로

이제 “첫 번째로 시작하는 바둑”이라면

앞으로 어떤 인공지능의 시대가 펼쳐질지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듯이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 같아 염려되고,

앞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의료는 물론 지구환경과

세계평화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니 기대도 됩니다.

2.

호기심에

국내외 기사를 검색해보니

아직은 그리 위험할 단계는 아니랍니다.

게다가

기계는 사람이 장착해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 그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의적인 의도나 목적을 갖고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만드는 것은 금지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일을 로봇이 대신하게 되면

사람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청년 실업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로봇까지 뛰어들어서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거기서 생기는 수입을 고스란히 로봇의 주인들인 초대형 회사들이 가져간다면

서민들의 삶은 한없이 피폐해 질것입니다.

직업윤리는 물론

부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원칙들도 세워놓아야겠습니다.

이런 일에도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많은 묘책을 만들어낼 수 있겠네요.

3.

어제 수요예배에서 전도서 3장을 읽었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으니 때에 적합하게 행동해야 하고

세상일은 수고의 연속임을 인정하고

현재의 삶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전도서 3장 12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

I perceived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them than to be joyful and to do good as long as they live;

(Ecclesiastes 3;12)

앞으로 과학 문명의 발달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악이 아니라 선을 베푸는 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하늘의 기쁨을 마음에 간직하고 (be joyful)

선을 베풀면서 (do good)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본분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급하게 변하는 세상에 살지만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꼭 붙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10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