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신(Renewal)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계약이나 약속을

갱신(renewal)해야 합니다.

그동안 해 왔던 것을

같은 조건으로

또는 조건을 변경해서 다시 계약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벽기도회에서

구약 요시야 왕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요시야는 여덟살에 왕이 되어서 31년 간 다스리다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요시야는 다윗 이후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하고

무엇보다 종교개혁을 단행한 멋진 임금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장에서는

요시야가 모든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전을 고치다가 발견한 언약의 책(신명기 말씀으로 알려짐)에 있는 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에 만연해 있던 우상들과, 산당을 부수고 (실천적 회개)

사사기 이후 700여년 동안 잊고 살았던

유월절을 지킬 것을 선포했습니다 (예배의 회복).

2.

우리들 삶에도

갱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면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으로 나가길 원하십니다.

6년을 일하면

7년 째는 사람은 물론 토지까지 쉼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50년 째는 희년을 선포해서

모든 것을 새로 돌려 놓고(reset)

다시 시작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기득권을 지키려는 권력자들과

욕심쟁이 인간들이 희년을 지킨 적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많이 어그러지고

다시 회복할 기회를 자꾸 놓치고 있습니다.

3.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하면서

요시야 왕처럼

실천적 회개와 예배의 회복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주일을 계기로 갱신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침 마다

하나님 앞에서 갱신(renewal)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매일 아침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새 날을 맞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700년 동안 제대로 지키지 않던 절기를 지켰듯이

우리들에게도 오래동안 지키지 않고 묻어 놓았던

각자의 결심, 신앙과 삶의 숙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지키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속에서

근사하고 멋진 참빛 식구들 되시길

뒤에서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열왕기하 23:3)

And the king stood by the pillar and made a covenant before the Lord, to walk after the Lord and to keep his commandments and his testimonies and his statutes with all his heart and all his soul, to perform the words of this covenant that were written in this book. And all the people joined in the covenant. (2King 23: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갱신(renewal)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20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들 인생길이 늘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언제나 장미빛 융단이 깔린 탄탄대로일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왜 저입니까?(why me?)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how long?)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What can I do?)

구약성경의 시편은
개인과 민족의 어려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실망감을
탄식이라는 문학 유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시편 89:46)
How long, O LORD? Will You hide Yourself forever? Will Your wrath burn like fire? (Ps 89:46)

2.
하나님 앞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기거나,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듯
유난히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필립 얀시는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라는 책에서
구약 성경의 욥기를 갖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알려줍니다.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들 생각에 일이 잘못되는 것 같아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끝까지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합리주의와 이해력을 뛰어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 순간에도 현재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소처럼 묵묵히 자신의 인생 밭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얀시는 이것을 ‘충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충성이라고 부르는 깊은 차원의 믿음은 모순과 갈등의 시간에 꽃 피운다. 마치 돌 사이에 피는 풀 한 포기처럼 말이다. 인간은 불투명하면서 자란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해답이 아니라 문제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261)

셋째는, 좋으신 하나님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이 역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믿음은 미래에 이루어질 사실을 미리 믿는 일을 의미한다”(253)

하나님이 섭섭하게 느껴질 때도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감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탄식할 수 있습니다.

뒤로 숨기고 안그런척 하는 것보다 도리어 솔직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좋으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 분을 응시합니다.
한참 동안 말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3.
신앙이나 인생이 매일반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참빛 식구들만은
아주 아주 특별하게 대우해 주시길 바라지만,
그것 역시 저의 욕심인 것을 금세 발견합니다.

우리들도
겪을 것을 다 겪고 넘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허허벌판 한 가운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때 임하는 감사와 기쁨,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이 바로 예수 믿는 행복입니다.

필립 얀시가
다음과 같이 그의 책을 마무리하듯이 말입니다.

“거기에 누군가 계시다는 사실을 난 깨달았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내 인생을 모두 보고 계셨다. 또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거기에 살아 계셨다. 그것은 소망을 갖게 하는 놀라운 감정이었기 때문에 내 인생을 거기에 걸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323-24)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사43:1)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Isa 43:1)

하나님
행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때도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받아주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꿋꿋하게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13 이-메일 목회서신)

부르심의 소망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여성 성경 공부 마지막 시간에
소명(부르심,calling)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은 삶의 근거이자 목적입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가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주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을 때는 부르심에 목적이 있고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을 밝혀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2.
오스 기니는 소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결정적으로 부르셨기에, 그분의 소환과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모든 소유가 헌신적으로 역동적으로 그분을 섬기는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오스 기니 <소명>, 21)

또한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을 구분하면서
일차적 소명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소명이고
이차적 소명은 각자의 직업, 가정 등 세상 속으로 부르신 소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명을 따라 산 사람들은
불꽃같은 열정을 갖고 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은 삶에서 가장 깊은 성장과 최고의 영웅적 자질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비결이다”(소명, 137)

파스칼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 기쁨을 양피지에 적어서 가슴 속에 간직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소명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소명” “부르심의 목적”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차 오르는 일입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 속에 있듯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내일 있을 청년부 금요모임에서
특강을 부탁해서
오늘 공부했던 <소명>에 대해서 한번 더 나누기로 했습니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장차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떻게 부르심의 삶을 살지 꿈을 꾸고 서로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누구든지 오셔도 됩니다.^^

3.
어느 덧 7월도 지나고
8월을 맞습니다.

매번 맞이하는 날(day)이고
달(month)이어서
매일, 매달, 매년이라는 말을 씁니다.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고
소명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일 매일의 삶이 사건이고, 은혜이고,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자리에서 부르심을 쫓아 사시길 바랍니다.
그 속에서 주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흔들리지 않는 소망으로 이어지기 원합니다.

내가 발걸음을 당당하게 내딛도록 주께서 힘을 주시고, 발을 잘못 디디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시18:36, 새번역).
You gave a wide place for my steps under me, and my feet did not slip (Psalms 18:36)

하나님 아버지,
참빛교회 식구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부르심을 따라 살게 하시고
그 속에서 기븜과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7.30 이-메일 목회서신)

무엇을 어떻게 왜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오늘부터 내일까지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리더쉽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아는 자매가 예약을 해 주어서
참 오랜만에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정보를 얻고, 느끼고,
또 우리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 생각중입니다.

원래 세미나는 시카고 윌로우 클릭 교회에서 진행하고
북미와 캐나다 800(?)여 곳에서 영상으로 강연을 듣는 식인데
샌프란에만 200여명 이상 모인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과 초청연사들이 수준급이지만
교회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2.
첫번째 강의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시작하셨습니다.

리더쉽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세가지 의문사들(what, how, why)을 커다란 세 개의 원으로 설명하시고
한 가운데 “why(왜)”를 두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what) 할까,
어떻게(how) 할까에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무슨 결과가 나왔는가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 또는 어떻게 하느냐보다
“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왜(hot why)”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할 때 올바른 리더쉽이 발휘될 수 있답니다.

“왜”는
에베소서 바울의 기도에 있었듯이
“부르심의 목적”과 관련이 깊은
가장 우선적인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목회의 부르심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지금 이 자리에 계시고
왜 이 일을 하시고
왜 어떤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계획하시는지요?

3.
하이벨스 목사님은 리더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남들은 모두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영역,
자기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놓치기 쉽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들입니다.

저는 스윗 스팟(sweet spot)이라는 용어를 종종 쓰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과 타이밍을 강조했는데
블라인드 스팟의 중요성을 새로 배웠습니다.

무심코 넘어가지만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블라인드 스팟을 감지해 내는 세심함이 필요하군요.

여러분 삶의 블라인드 스팟은 어디인지요?

왜 라는 질문은
우리들을 핵심가치 속으로 인도합니다.
블라인드 스팟을 잡으면서
삶 속의 위험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4.
미국에서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재정이 꽤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이나 만남
또는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배우는 편인데
오랜만에 세미나에 참석해서 많이 배워갑니다.
(저 혼자여서 외롭고, 영어로 진행되는 강연을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고 자라가는 교회”라는
작년 우리 교회 표어도 생각나는군요.
우리 모두 배우면서 자라갑시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께 이를 때 까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Speaking the truth in love, we are to zgrow up in every way into him who is athe head, into Christ,(Eph 4:15)

하나님 아버지,
하루 하루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우리를 부르셨는지
“hot why”를 찾고
날마다 부르심을 쫓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6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능력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공부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3장에 나오는

바울의 두번째 기도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첫번째 기도 가운데 눈에 띠는 구절은

1장 19절이었습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what is the immeasurable greatness of his power toward us who believe,

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great might.

이 한 구절에 능력에 대한 단어가 넷이나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기 위해서

네 가지 각기 다른 단어를 갖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매우 구체적으로 또한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첫번째 “능력의 지극히 크심”에는 <뉘나미스>라는 헬라어가 쓰이면서

로켓트처럼 높이 쏘아올릴 정도의 능력,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에베소 교회가 알기를(인정하고 체험하길) 기도했습니다.

둘째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great might)”에는

하나님 능력을 표현하는 세 가지 유사한 표현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구체적으로

에베소 교회에 임하길 기도한 것입니다.

“그의 힘<이스퀴스>”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길을 또한 주어진 인생길을 끝까지 완주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힘이 우리 안에 임했습니다

“위력<크라토스>”은 하나님께만 있는 힘입니다.

그 힘이 임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겠지요.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신 능력이 떠오릅니다.

“역사하심<에네르게이야>”는 실제로 일하는 힘입니다.

에너지를 연상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킨 그 힘(역사하심)입니다.

활동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19절에서 쓰인 네 가지 표현들은

우리들에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능력입니다.

이 엄청난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이 사실을 깨닫고

이 능력을 따라 살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2.

요즘 주변에 힘든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필요한 경우를 봅니다.

일을 이루시고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로 요청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 능력의 활동하심을 기대하면서 살아갑시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고백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봅시다.

능력의 주님을 말입니다 ^^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9)

and what is the immeasurable greatness of his power toward us who believe,

according to the working of his great might. (Eph 1:19)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능력 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7.23 이-메일 목회서신)

더 귀한 가치

좋은 아침입니다.

1.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절대적인 가치의 실종입니다.

상대주의가 등장하면서
절대적으로 올바른 가치는 무너졌고
제각각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질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예전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의미들이나 가치들이
눈에 보이는 물질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고
물질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이 자리잡을 틈이 적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상대화되어서 어떤 생각도 다 맞을 수 있다고 보거나
물질화되면서 이 세상의 복을 쫓는 것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2.
그러던 차에
우리는 에베소서 1장의 처음 여섯 구절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금 돌아보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알려주는 말씀은
지나칠 정도로 절대적이고 영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삼위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고백이
에베소서 1장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들 자신을 두고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자라고 깨우쳐줍니다.

은혜와 평강을 입은 성도요
예수 그리스도 안의 신실한 자들입니다.
미리 예정하셔서
창세부터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나 혜택을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3.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성경이 말하는 세상과 많이 다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으로 미국에 살면서
새로운 의미의 박해(persecution)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는 사람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조롱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재차 질문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하늘의 신령한 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가치를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요일 잠언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의 성품인 “인자와 진리”를 따를 때,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멋진 그리스도인이라는 평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서로 격려하면서
이 길로 나갑시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3:3-4)
Let not steadfast love and faithfulness forsake you; bind them around your neck; write them on the tablet of your heart. So you will find favor and good success in the sight of God and man.  (Pro 3:3-4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근사하게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7.9 이-메일 목회서신)

메뉴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음식점에 가면
메뉴판에 칼로리 표시를 해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무심코
주문해서 먹던 것들에
천 이상의 칼로리 표시가 되어 있으면
군침은 돌지만 웬만해서는 쉽게 주문하지 못하고
낮은 칼로리의 메뉴를 찾게 됩니다.

맥도날드에서 아이들에게 파는
해피 밀 메뉴판에 소다(soda)를 빼버렸더니
소다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줄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후렌치 후라이즈(French fries)인데
맥도날드의 경우 샐러드 메뉴를 제시했지만
2-3% 세일에 그치고
여전히 후라이즈가 인기를 끌고 있답니다.

사실 맥도날드나 인앤아웃에
후렌치 후라이즈가 없다면
몸에 안 좋은 튀김음식인 줄 알면서도
왠지 섭섭하고 허전할 것입니다.

2.
메뉴판에 칼로리를 제시하고
인기 있는 메뉴는 올려놓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은 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영업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 시간 동안
에베소 1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즉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도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요
은혜와 평강을 입은 자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을 규정해 주는
메뉴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사니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길에 동참하시길
세상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여나
우리들 메뉴판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나
세상에 손해를 끼치는 것들이 있다면 얼른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는 것들만 올려놓아야겠습니다.

정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길이
얼마나 고귀하고, 근사하고,
넓고, 높은 지 세상에 보여주기 원합니다.

믿음의 길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여정이 참되고 선하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올려드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빌1:11, 새번역)
Having been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which comes through Jesus Christ,
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Phi 1:11 NAU)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자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25 이-메일 목회서신)

챔피언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지난 목요일부터 시작된
NBA 챔피언십으로 동네가 떠들썩 합니다.
거리에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깃발을 단 자동차들과
노란 색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주목 받는 선수는
단연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와
워리어스의 스티븐 커리입니다.

르브론 제임스는 클리블랜드가 있는 오하이오 출신입니다.
2010년부터 4년 동안 마이애미서 뛰다가
작년에 다시 고향 팀으로 복귀했습니다.

농구를 위해서 태어난 선수라고 할 정도로
체격이나 기술이, 스피드까지
마이클 조단과 견줄만한 최고의 선수입니다.

그런 제임스도 불후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6세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적 축구 코치의 집에 들어가서 살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농구선수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코치가 그에게 농구를 권했고
2003년에 NBA에 들어와서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선수입니다.

워리어스의 스티븐 커리는
체격은 작지만 하프라인에서 던져도 골이 들어갈 정도의 슛도사입니다.
게다가 매우 빠른 동작으로 슛을 쏘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올해 NBA정규리그 MVP답습니다.

커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까지 참석했답니다.
중학교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고,
자신이 농구 코트에서 경기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부상을 당해서 경기에 나갈 수 없던 어려운 시기를 믿음으로 견뎠고
그 기간 동안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간증합니다.

또한
이번 시리즈에서 유독 눈에 띠는
한 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매튜 델라베도바(8번)입니다.
이 선수는 호주에서 왔습니다.
NBA 선수가 되는 첫 번째 관문인 드래프트에 들지 못해서
클리블랜드에서 여름리그를 뛰면서 NBA에 들어오게 된 무명의 선수입니다.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기회를 잡아서 세 경기를 소화했는데
그의 악착 같은 수비와 몸을 사리지 않는 열심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어떤 때는 코트에 이 선수만 보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움직입니다.
기술은 조금 부족해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3.
챔피언십 경기를 보고 있으면
경기도 흥미롭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는 선수들의 숨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 선수 한 선수마다 각자의 스토리가 있을 겁니다.
NBA 파이널에 오른 팀에서 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이 선수들은 농구에 인생을 건 사람들일 겁니다.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얼마나 반복해서 훈련했으면
그 멀리서 던져도 골이 되고
넘어지면서 던져도 공이 림으로 빨려 들어갈까요!

올해 NBA 파이널에서 어느 팀이 우승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든 선수들이 다 챔피언임에 틀림없습니다.

땀과 훈련, 열심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끈기!
우리들의 신앙과 인생길에도 요청되는 덕목들입니다.

오늘 하루
참빛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챔피언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갑시다.(히12:1, 현대인의 성경)
let us also lay aside every encumbrance and the sin which so easily entangles us, and let us run with endura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Heb 12:1 NAU)

하나님 아버지,
주님 보여주시는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11 이-메일 목회서신)

오바댜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기도회에서는
열왕기상 18장을 읽었습니다.

아합와 그의 아내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독하고
온 나라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 숭배로 몰아넣은 왕입니다.

그때 활동한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합과 엘리야외에
<오바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예언자 오바댜와 동명이인입니다.

오바댜는
아합의 궁정에서 왕과 왕비에 이어서
세 번째 서열에 들었던 고위관리였습니다.

아합처럼 못된 왕의 신하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 특별한 것은
오바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
/Now Obadiah feared the LORD greatly (왕상18:3)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최고로 모셨고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아합왕의 신하가 된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서로 상극인데
오바댜는 동과 서가 만나듯이 두 가지 일을 멋지게 해냈습니다.

무엇보다 오바댜는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오십 명씩 나눠서 백 명의 선지자들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알았다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바댜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서도
꿋꿋하게 견디고 자신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2.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오바댜의 신앙과 삶이 요청됩니다.

세상을 등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함몰되어도 안됩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능력을 갖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돕고
무엇보다 자신의 신앙을 견고하게 지켜내야 합니다.

오바댜 역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갈등했고, 지칠 때도 많았고
무엇보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기도했겠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음의 길을 걷기로
재차 다짐했을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이 살아가시는
삶의 자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바댜의 신앙과 삶을 묵상하고 닮기 원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믿음, 지혜, 용기와 능력을 하나님께 구하면서
세상 속에서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5-17)
 I do not ask that you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you keep them from the evil one.  They are not of the world, just as I am not of the world.  Sanctify them in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Joh 17:15-17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세상 속에서 지켜주시고
오바댜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18 이-메일 목회서신)

축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기도회에서는
열왕기상 8장에 있는
솔로몬 왕의 성전 봉헌 기도와
백성들을 향한 축복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백성들이 힘이 들거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거나
나라에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부탁합니다.

전쟁에 나갔거나
원수들에게 포로로 잡혀 가서
성전에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있는 곳에서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2.
솔로몬이 기도하는 동안
백성들이 성전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함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마친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이
열왕기상 8장 54-61에 나옵니다.

백성들을 향한 솔로몬의 축복과 부탁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하나님의 선한 약속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이뤄주시길 (56절)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떠나지 마시고, 버리지 마시길 (57절)
– 백성들이 마음을 주께로 향해서 그 길로 행하길 (58절)
–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보아 주시길 (59절)
– 세상 만민에게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를 (60절)

말씀을 갖고
새벽기도회에 오신 성도님들을 축복하며
하나님 바라보고 말씀대로 사시길 부탁 드렸습니다.

새벽 기도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예배와 가정과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위에
다섯 가지 축복과 부탁이 그대로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일상이 바쁘고 때로는 힘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보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왕상 8:59-60)
Let these words of mine, with which I have pleaded before the LORD, be near to the LORD our God day and night, and may he maintain the cause of his servant and the cause of his people Israel, as each day requires, that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may know that the LORD is God; there is no other. (1Ki 8:59-60 ESV)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사랑하시는 참빛 식구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시고
날마다 저희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6.4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