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습니다. 미국에 산 지 20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지난번처럼 미국 정치에 관심을 두고 결과를 지켜보기도 처음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웃어넘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반년이 다가오지만, 좌충우돌은 물론 탄핵까지 언급되는 등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데 지도자의 모습 속에서 귀감과 품격을 찾기 힘드니 안타깝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몇 개월처럼 조국 대한민국의 정치에 관심을 갖고 신문을 꼼꼼히 읽고 뉴스를 챙겨본 적도 없습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울 때가 엊그제 같은데 국정 농간으로 중간에 대통령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론이 갈리고 선거기간에도 막말이 오가는 등 한국 정치에서도 품격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어서 깜깜한 밤하늘을 비추는 달처럼 허니문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약속한 대로 통합과 협치를 이루려는 행보에 80퍼센트가 넘는 국민이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나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되면 높은 지지를 받고 시작합니다.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직이야말로 직임을 마치고 내려가는 아름다운 뒷모습이 정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구약 성경에 왕의 직무에 대한 지침이 나옵니다. 원래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고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때는 사사(士師)들이 백성을 재판하고 국가를 다스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이웃 나라처럼 왕을 세우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왕을 세우면 나라가 더욱 강해지고 모든 일이 잘될 것 같았습니다. 결국, 백성들이 왕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는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왕이 세워지면 그들이 백성을 위해서 일하기보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백성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왕을 세우면 자신들을 잘 다스리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자신들의 왕이신 하나님 대신에 여느 민족처럼 눈에 보이는 지도자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구약성경 신명기 (17:14-20)에서 왕의 직무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만큼 왕업(kingship)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합니다. 타국인은 왕이 될 수 없었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과 그들이 섬기는 점쟁이를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병마를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과도한 군비경쟁이나 전쟁을 피하라는 명령입니다. 셋째로,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많이 두면 쾌락에 빠지고 도덕성을 상실합니다. 권력을 이용해서 재산을 축적해도 안 됩니다. 왕이야말로 청렴해야 합니다. 왕의 자리는 사리사욕을 챙기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율법서를 옆에 두고, 평생 배우고 그대로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왕이라고 해서 법과 규칙을 무시한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 안 됩니다. 왕에게도 하나님 말씀을 비롯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평생 동안 겸손히 배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교만해져서 백성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통치한 왕들은 다윗과 요시야를 비롯해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왕업을 끝까지 수행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신명기 말씀의 원리를 오늘날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직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의와 정의가 아닌 다른 것을 우상처럼 섬기면 안 됩니다. 자기 관리에 엄격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합니다.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사는 미국의 대통령이 자신에게 위임된 왕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기도합니다. (2017년 5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