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타밈”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가짜 뉴스”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뉴스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일어난 최신 소식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전하는 것인데 그 앞에 가짜가 붙었습니다. 영어 표현을 빌리면 옥시모론(oxymoron, 모순 어법)으로 들립니다. 공개된 비밀(open secret)이란 말이 성립될 수 없듯이 엄밀히 보면 “가짜 뉴스”는 모순 어법입니다. 뉴스에 가짜가 붙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꽤 어지럽습니다. 가짜 뉴스 때문인지 사람들의 마음이 갈리고 있습니다. 한마음과 한 뜻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마음이 둘로 셋으로 갈려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윗사람부터 자기 마음대로 진실을 왜곡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목적을 이루면 된다는 식입니다. 일단 권력만 잡으면 어떤 것도 숨길 수 있고 자기식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심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거기에 가짜 뉴스까지 합세하니 서로를 향한 불신이 더해집니다.

 

구약 성경 잠언 19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것을 요즘 세상에 적용하면, 가짜 뉴스를 생산해 내고 거짓을 일삼는 행위를 가리킬 것입니다. 가난해도 성실한 것은 세상의 관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진실되게 살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에서 “성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톰”입니다. 동사로 쓰이면 “타맘”이라고 발음하고 형용사는 “타밈”이라고 읽습니다. 잠언에서 성실로 번역된 “타밈”의 의미는 무엇보다 완전한 것입니다. 시작한 일을 말끔하게 끝맺는 것이 타밈입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대충 얼버무리지 않습니다. 맡겨진 일을 끝내느라 모든 힘을 쏟아서 소진될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정도의 완벽함이 타밈입니다.

 

히브리어 타밈은 잠언 말씀대로 성실을 뜻합니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는 건강함도 타밈입니다. 불의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입술로 남을 저주하거나 몹쓸 말을 쏟아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 앞에서 신실합니다. 우직하게 의로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믿을만하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마음과 행동이 똑같이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타밈은 진실을 뜻합니다. 앞뒤가 같습니다. 겉과 속이 같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억지로 핑계를 대거나, 거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거짓을 일삼고 다른 이들까지 속이려 하지만, 타밈 속에는 거짓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가짜라는 말은 얼씬도 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 곳곳에서 정직과 성실이 짝을 이뤄서 나타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은 세상에 타밈이 실종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뉴스 앞에 가짜가 붙을 수 있을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으로 서로 연결된 요즘 세상에서 누군가 가짜 뉴스를 생산해서 퍼뜨린다면, 우리는 매번 뉴스의 사실 여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번거롭고 시간 낭비입니까? 행여나 정보에 어두운 분들은 가짜 뉴스를 사실로 믿고 그것을 추종할 수도 있습니다.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약속이자 중요한 가치인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진실이 가짜 뉴스에 가리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세상이 얼마나 어지럽게 변하겠습니까? 타밈을 가로막는 가짜와 거짓은 하루속히 근절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거짓과 폭력을 일삼는 입술과 행동이 물러가고 <타밈>이 온전히 세워지길 원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되어도 타밈이 실종되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난할 지 언정 진실된 세상을 만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진실(타밈)된 것이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삶에도 타밈이 임하길 원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조화를 이루고, 거짓 없이 진실한 타밈의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와 같은 모순 어법이 사라지고 진실만이 인정받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7년 2월 23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