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포의 왕관

“저는 지금 집이 없어요. 부상은 크지 않지만 어제부터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요. 살고 싶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요.” 5년째 내전이 계속되면서 폐허가 된 시리아 알레포에 사는 한 소녀가 지난달 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 세상에 전한 애절한 메시지입니다.

 

2011년에 시작된 “아랍의 봄” 물결은 50년 이상 지속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시리아 국민의 저항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적 저항이 내전으로 발전하고, 러시아와 아이시스(ISIS)까지 개입하면서 시리아는 완전히 폐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고향을 떠나서 피난민으로 전락했고 그 중에 2천 명 이상은 국경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8월에는 다섯 살 소년이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 폭격을 맞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무표정으로 앰브란스에 앉아 있는 사진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뒤집혀서 터키 해안가에서 발견된 빨강 셔츠를 입은 세 살배기 아기의 시신을 보고 온 세상이 함께 울었습니다. 이 모든 비극의 참상이 시리아에서 일어났고, 반군이 주둔하고 있던 알레포라는 도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알레포의 시민 운동가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나 옷 심지어 기도도 아니고, 국제 사회가 공조해서 러시아와 정부군의 폭격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폭격에 대한 상처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라니 전쟁의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레포라는 도시는 우리가 현재 갖고있는 구약성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원본은 없고 현재 가장 오래된 사본은 맛소라로 지칭되는 학자들이 필사한 것입니다. 900년경 유대인 랍비들이 양피지 위에 쓸개로 만든 잉크를 갖고 한 자 한 자 정성껏 필사했습니다. 그때까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문맥에 따라서 성경을 읽었는데, 맛소라 학자들이 정확한 발음을 위해서 모음을 첨가했고 액센트는 물론 노래로 말씀을 음미할 수 있도록 악상 표시까지 기입했습니다. 여백에는 주석도 기록했습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구약성경 히브리어를 바르게 읽을 수 있고 원본에 가깝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본이 십자군 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었지만, 그 가운데 한 권의 필사본이 이집트를 거쳐서 600년 가까이 시리아 알레포에 살던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서 보존되었습니다. “알레포 코덱스”라 불리는 히브리어 필사본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입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알레포가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1947년 이스라엘의 건국이 발표되면서 알레포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알레포 코덱스는 우여곡절 끝에 모세 오경을 비롯한 많은 분량이 소실 된 채 현재는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약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읽는 우리는 600년 동안 필사본을 보관해준 알레포라는 도시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알레포가 하나님 말씀인 구약성경을 600년 동안 품고 있었듯이, 이제 하나님께서 알레포를 품어 주시고 그곳에 평화가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알레포 왕관으로 불리는 알레포 코덱스처럼 전쟁으로 찌들고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알레포 아이들 머리 위에 왕관이 씌어 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왕관까지는 아니어도 밖에서 마음껏 뛰놀고, 학교에서 배우고, 오손도손 가족과 함께 지내고, 폭격의 공포 없이 해맑은 눈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을 바라만 볼 수 있어도 그들에게는 최고의 축복일 것입니다.

 

칼럼을 준비하면서 시리아 어린이들을 도울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들을 후원하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연말이 가기 전에 조그만 정성이라도 보내야겠습니다. 새해 정유년(丁酉年)에는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알레포를 비롯한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로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2016년 12월 29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