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것들

10월이 되면 한국의 한 대중가요 가수가 부른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어떤 이가 10월의 마지막 밤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습니다. 얼떨결에 서로 이별에 합의했는지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 10월이 되면 잊혀진 사람들이 생각나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종종 멍하니 상념에 젖곤 하는 것이 어느 가을날 우리네 모습입니다.

시간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시간만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도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됩니다. 심지어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도 이미 진행되고 있어서 수천 명의 사람이 화성이주를 신청했습니다. 이처럼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꿈꾸던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옛날에는 이랬었는데”하는 추억들이 마음 한편에서 새싹처럼 돋아납니다. 엊그제 낙엽이 지기 시작한 동네를 아내와 함께 산책하면서 옛날얘기를 나눴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공중전화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거실에 전화기 한 대 있을 때이니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끊어야 했습니다. 어쩌다가 아내 혼자 있을 때 전화를 하면, 길게 통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중전화를 거는 저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동전이 떨어졌습니다. 뚜-뚜-하는 소리가 아내와 저를 매정하게 갈라놓습니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요즘은 사전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무조건 영한사전을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알파벳과 함께 발음 기호를 익혔습니다. 그래야 사전을 찾고 단어 옆에 있는 발음기호를 따라서 영어 단어를 발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때가 묻어서 사전 옆구리가 까맣게 변해가고 돌돌 말린 것이 공부한 흔적입니다. 도시락 반찬에서 흐른 김칫국물이 사전을 덮쳐서 색깔도 변하고 냄새가 배기도 합니다. 비장한 각오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전을 통째로 외우겠다는 것입니다. 한장 한장 찢어서 외우기도 하고, 가끔 괴짜들은 사전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사전을 옆에 펼쳐놓고 두꺼운 영어책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지성인이 된 듯했습니다. 요즘은 사전을 찾을 일이 없습니다.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 폰 덕분입니다. 구글에 모르는 단어를 입력하면 발음 기호를 해독할 필요도 없이 원어민 발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래도 종종 손때 묻은 사전이 그립습니다. 단어를 찾고 발음기호를 표시해 놓으면서 영어 공부하던 때가 더 학구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표시일 겁니다.

잊혀진 것들 가운데 한 가지가 더 생각납니다. 파란색과 빨간색 줄로 둘레가 쳐진 국제우편 편지봉투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편지를 보낼 때는 꼭 그 봉투를 사용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모두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손글씨로 정성껏 써내려간 편지입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고국에 계신 부모님들과 친지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부모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칩니다. 지금은 편지는 물론 손글씨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엄지손가락만으로 셀폰 메시지를 보내고, 컴퓨터 자판으로 편지를 씁니다. 손글씨를 쓰려고 하면 옛날 같은 정감어린 필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삐뚤삐뚤 줄도 맞지않고 글씨체도 엉망입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정성이 있었고, 그렇게 쓴 편지를 읽는 감동이 있었는데 어느덧 마음속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잊혀지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편리해져서 좋지만 그래도 추억이 깃든 옛것들이 잊혀지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잊혀지고, 어르신들이 한 분 한 분 하늘나라로 이주해 가실 때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십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세상사인 줄 알지만 그래도 지난날의 추억들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서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을 반갑게 맞고 싶습니다. 구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욱 내려앉을 테니까요. 아니 지금 우리가 최신식이라고 여기는 것도 조만간 구식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변하는 것에 마음을 두기 보다 영원한 진리,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을 쏟아야겠습니다.(2015년 10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